<주> 아래 글은 필자 개인의 견해입니다.
리버럴(liberal)한 미국 영화계가 영화 '기생충'에게 왕관을 씌워주었다. 영화 감독 봉준호란 인물은 과거 민노당(민주노동당) 당원이었다. 민노당은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前身이다.
민노당은 단순한 사회주의를 지향한 것이 아니라 '북한식 사회주의'를 지향했던 極左정당이었다. 더 쉽게 말하면 한반도 전체를 세계 최악의 전체주의 국가(북한)로 만드는 것을 지상과제로 했던 정당이란 뜻이다.
어떤 특정 정당을 지지할 때는 그 당의 정체성, 즉 이념을 따르기에 지지하는 것이다. 봉준호 씨의 경우 연세대 사회학과를 나왔으니, 최소한 '북한식 사회주의'가 뭔지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가 만든 영화들은 대체적으로 이 세계를 지극히 이분법적 시각으로 보고 있다. 더 근본적으로 말해 좌파적 ‘계급투쟁(階級鬪爭)’이 봉준호 영화의 기본 틀(frame)이다.
‘기생충’은 인간 봉준호가 생각하는 계급투쟁의 해결방안까지 담겨져 있는 것으로 보였다. 영화 초반부와 중반부는 그냥 블랙코미디 정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후반부는 모든 문제의 해결을 ‘돌덩어리’와 ‘식칼’을 통한 칼부림으로 끝을 맺는다.
부자와 가난한 자, 즉 빈부(貧富)의 해결을 폭력적으로 끝내버리는 '파괴적 세계관'이 담겨진 영화가 바로 ‘기생충’이다. 참고로 <기생충>을 보면서 후반부가 감독 장철수의 2010년작인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과 매우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와 관련하여 자칭-타칭 우파진영 사람들의 글을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이 영화를 보지도 않았고, 단순히 美國 영화제에서 賞을 받은 것, 그리고 시상식에서 감독의 그럴듯한 발언 등을 언급하며 '기생충'을 옹호해주고 있는 듯 했다.
영화 ‘기생충’은 열심히 살아온 한국의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 그리고 부유층을 ‘기생충의 숙주(宿主)’로 만들어 버렸다. 자신들이 숙주로 전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보고 ‘좋다’고 하니 저들의 두뇌에도 듣도 보지도 못한 기생충이 이미 들어앉아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김대중의 노벨평화상의 실체를 아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참고로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아라파트 前 PLO의장은 젊은시절 유명한 중동의 국제터러범으로 악명을 떨쳤다.
나의 글을 놓고 '색깔론'이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나의 대답은 아래와 같다.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이 되지 않는다!'
[관련칼럼] 민족사에서 가장 악질적 이데올로기 '북한식 사회주의'
CIA의 舊소련 분석팀을 이끌었던 리처드 파이프스(Richard Pipes) 美 하버드대 역사학과 교수는《Communism: A History》에서 “역사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전통이 없는 국가에서 공산주의가 도입될 경우, 그것은 예전 정권의 가장 나쁜 특성들을 그대로 답습한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밝혔다.
파이프스 교수의 연구를 기초로 통진당(前身은 민노당)이 실현하려했던 ‘북한식 사회주의’를 해석하면 역사상 자유민주주의 전통이 전무한 북한이 조선의 前近代的(전근대적) 封建(봉건)체제와 舊일본의 天皇制(천황제)를 모방해 만든 ‘민족사에서 가장 악질적인 체제’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1997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공산주의 黑書》에는 이런 통계가 있다. 숙청, 집단 처형, 집단 강제이주, 정부가 만든 대기근 등을 통해 공산주의 체제로부터 죽임을 당한 무고한 사람들이 약 1억 명이란 통계이다. 2500만 명을 학살한 나치(Nazi)의 범죄 조차 역대 공산정권이 자행한 학살 규모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이다.
전향한 左翼 사범 김정익 씨가 자신의 과거를 참회하며 쓴 《囚人番號 3179: 어느좌익사상범의 고백 》(국민일보社 발간)에는 옥중에서 김 씨에게 사상교육을 했던 南民戰(남민전) 사건 연루자 김○○의 발언이 아래와 같이 등장한다.
<남조선에서 민중혁명이 일어나면 최우선적으로 해야 될 일은 이 사회의 민족반동세력을 철저하게 죽여 없애야 한다. 그 숫자는 대략 2백만 정도는 될 것이다. 그래야만 혁명을 완전하게 완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략) 2백만이라는 숫자가 엄청날 것 같지만 인류역사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민족 전체를 놓고 볼 때에 그것은 소수에 불과하다. (중략)
민족주의는 피를 먹고 자라온 것이다. 우리에게 적은 숫자의 반동세력의 피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한 차원 높은 애국이요, 진정한 민족주의자의 길을 가는 숭고한 행진곡인 것이다. 우리가 있는 이 감옥은 애국 애족의 위대한 과업을 하기 위한 학교인 것이다. 버림받고 핍박받은 소외감이 눈물처럼 넘치는 우리에게 주어진 유토피아적인 학교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북한식 사회주의’ 혁명의 實體이다. 다행히 이를 실현하려했던 통진당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이 黨을 만들고 이끌었던 세력은 여전히 우리사회 곳곳에서 암세포가 되어 지금 이 시간에도 활개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