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월드시리즈 승부 조작한 ‘블랙 삭스’ 스캔들

도박왕과 결탁하다 영구제명된 8人의 선수들…그리고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

미국 메이저리그(MLB)가 현재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사인 훔치기’ 스캔들로 떠들썩하다. 미국 야구 역사상 가장 큰 스캔들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몇 번의 큰 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블랙 삭스(Black Sox)’ 스캔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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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조작으로 영구제명된 8명의 화이트삭스 선수들.

 

‘블랙 삭스’ 스캔들은 1919년 월드시리즈에서 벌어졌다.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신시낸티 레즈와 붙었는데 화이트삭스가 승부조작을 해 고의로 패배한 사건이다. 화이트삭스 선수들 8명이 승부조작에 가담한 것이 확인돼 메이저리그에서 영구제명됐다. 이런 승부조작을 계획한 것은 당시 유명한 도박꾼이자 사업가인 아놀드 로즈스타인과 애이든 클래이튼 등이다.

선수들이 승부조작에 나선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당시 화이트삭스의 구단주는 찰스 코미스키였다. 그는 선수들에게 돈을 매우 적게 주는 등 인색하다는 비판을 많이 받던 사람이다. 화이트삭스는 스캔들이 터지기 전인 1917년 월드시리즈를 우승하는 등 좋은 성적을 내는 팀이었다. 선수들은 성적에 비해 적은 보수를 받는다는 불만을 갖고 있었다.  당시 미국 메이저리그는 리저브 클로즈(reserve clause), 혹은 보류 조항이라고 불리는 방침을 엄격하게 따르고 있었다. 이 규정은 선수가 소속된 구단의 허락 없이 다른 구단으로 이적하지 못하도록 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을 보면 코미스키가 다른 구단주들보다 특별히 악독했던 것은 아니라 거의 대부분 코미스키와 비슷하게 구단을 운영했다. 참고로 리저브 클로즈 규정은 자유계약(FA) 제도가 들어선 1975년 없어졌다.

선수들이 승부조작을 본격적으로 논의한 것은 1919년 9월 21일이다. 승부조작에 가담하기로 한 선수들은 이 조작을 총괄한 선수인 칙 간딜이 머물던 뉴욕 안소니아 호텔에서 모여 계획을 짰다. 월드시리즈 1차전이 치러진 10월 1일 도박계에서는 승부조작이 일어날 것이라는 루머가 돌기 시작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신시내티가 승리할 것이라는데 돈을 걸기 시작했다. 이런 루머는 언론계에도 퍼졌다. 시카고헤럴드를 비롯한 기자들은 뭔가 이상한 행동이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관중들은 시리즈가 치러지는 내내 뭔가 이상하다는 인상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가담했던 선수들은 5000달러 이상씩을 받았다. 간딜은 3만5000달러를 받았다고 한다. 당시의 5000달러를 요즘 시세로 환산하면 약 7만6000달러(약 9160만 원)다.

화이트삭스의 1차전 선발투수로 등판한 것은 에디 치코테였다. 그는 시리즈의 첫 번째 공으로 스트라이크를 집어넣었다. 그런 다음 두 번째 공으로 신시내티의 1번 타자 모리 래스의 등을 맞췄다. 이는 선수들이 승부를 조작하기로 결심했다는 사실을 관련 도박꾼 등에게 알리는 신호의 제스처였다. 치코테는 4회에도 이상한 행동을 했다. 평범한 병살타성 타구를 잡은 치코테는 2루주자를 잡는 과정에서 악송구를 했다. 스포츠 기자들은 이 플레이를 의심스럽게 봤다. 당시 악송구를 받으려 2루 플레이트로 들어간 유격수 찰스 리스버그 역시 승부조작에 가담한 8인 중 한 명이었다. 리스버그의 시리즈 기록은 25타수 2안타였다. 에러도 네 개나 냈다. 1차전에서 신시내티는 시카고를 9대 1로 이겼다.

2차전에는 화이트삭스의 클라우드 윌리엄스가 선발투수로 등판했다. 그도 승부조작 가담 선수였다. 이 경기에서 시카고는 4대 2로 졌다. 윌리엄스는 2차전과 5차전, 그리고 8차전에 출전했는데 세 번 다 패배했다. 역사상 월드시리즈에서 0승 3패를 기록한 선수는 딱 한 명 더 있다. 1981년 뉴욕 양키스 소속 불펜 투수인 조지 프레이저가 세 번 나와 세 번 다 패전투수로 기록됐다.

3차전에는 신인인 디키 커가 선발로 출전했다. 그는 승부조작에 가담하지 않은 선수다. 그는 3차전과 6차전에 출전해 모두 승리를 거뒀다.

시리즈 도중 승부조작에 가담한 선수와 도박꾼들 사이에 갈등이 발생했다. 도박꾼들은 화이트삭스가 패배할 때마다 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으나 돈이 아직 자신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다며 이를 지키지 않았다. 나중에 한 번에 주겠다는 것이었다. 화가 난 승부조작 가담 선수들은 이들을 배신하려는 시도를 하게 됐다. 당시 월드시리즈는 9전5승제였다. 5차전이 끝났을 때까지도 돈을 제때 지급받지 못하자 이 선수들은 6차전과 7차전에서 승리를 해버렸다. 7차전 승리투수는 승부조작 8인 중 한 명이자 1차전과 4차전 패전투수였던 치코테였다.

8차전이 열리기 직전, 도박꾼들은 선수들과 선수들의 가족에 위협을 가하겠다며 협박하기 시작했다. 승부조작에 가담한 윌리엄스가 8차전에 또 등판했는데 1회에만 4점을 주는 등 최악의 피칭을 했다. 10월 9일 열린 8차전에서 신시내티는 시카고를 10대 5로 무찌르며 월드시리즈 챔피언에 올랐다.

화이트삭스가 1919년 월드시리즈에서 승부를 조작했다는 소문은 1920년 시즌에서도 계속 퍼졌다. 당시 화이트삭스는 아메리칸리그 1위 자리를 놓고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다투고 있었다. 이런 소문은 야구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퍼졌고 1920년 9월 공식 수사단이 출범했다. 치코테는 그해 9월 28일 수사단에 승부조작이 사실이라고 자백했다.

이 때는 시즌 막바지로 가는 시점이었다. 화이트삭스는 인디언스와 치열한 리그 1위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승률이 동률이었다. 그러나 인디언스에 남아 있는 게임이 더 많은 상황이었다. 화이트삭스는 남아 있는 세 경기를 모두 승리하고 클리블랜드가 계속 패배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렇게 중요한 상황에서 구단주인 코미스키는 승부조작에 가담한 7명의 선수에게 출전 정지 처분을 내렸다. 승부조작 계획을 지휘했던 선수인 간딜은 당시 화이트삭스가 아닌 준프로리그에서 선수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출전 정지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코미스키는 아메리칸리그 1위에 오를 가능성이 없어져버릴 것을 알면서도 이런 조치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결국 화이트삭스는 남아 있는 세 경기 중 두 경기를 졌다. 클리블랜드에 두 게임차로 뒤져 리그 2위에 머물렀다.

수사단은 8명의 선수와 5명의 도박꾼을 기소하기로 결정했다. 사취(私取) 공모 등 9개의 혐의가 적용됐다. 코미스키는 승부조작에 가담하지 않은 10명의 선수와 키드 글리슨 감독에게 1500달러의 보너스를 지급했다.

이들 선수들에 대한 재판은 1921년 6월 27일 시카고에서 시작됐다. 언론을 비롯한 대중은 이 선수들을 향해 “야구를 팔아 넘긴 사람들”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이들의 유죄를 증명할 문서들이 사라졌다. 사라진 문서에는 수사단이 작성한 관련자 심문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이 재판의 배심원단은 증거 부족 등의 이유로 기소된 선수들 전원이 무죄라는 판단을 7월 28일에 내렸다. 이 문서들이 사라진 정확한 이유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코미스키와 도박왕 로즈스타인이 일종의 거래를 한 것이라고 믿고 있다. 실제로 당시 사라진 문서들은 몇 년 후 다시 세상에 나타냈는데 코미스키의 개인 변호사가 보관하고 있었다.

재판 결과에 대한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메이저리그는 떨어진 야구의 위상을 다시 세우기 위해 연방판사 출신인 키네서 마운틴 랜디스를 1920년 11월 신임 총재로 임명했다. 그가 총재가 된 지 얼마 안 돼 승부조작 선수들에 대한 판결이 내려졌던 것이다. 랜디스는 재판부의 판결이 내려진 바로 다음날 8명의 선수들을 야구계에서 영구제명한다고 발표했다.

그는 “배심원의 판결이 무엇이든 상관없다”며 “경기를 포기하는 사람, 경기를 포기하겠다고 시도하거나 약속하는 사람, 부정직한 선수들 및 도박꾼들과 회의실에 모여 경기를 포기하는 방안을 논의하거나 이런 일을 알고도 구단에 알리지 않은 사람, 이들 어느 누구도 다시는 프로야구를 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억울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승부조작 8인에 포함된 사람 중에는 벅 위버라는 선수가 있다. 그는 승부조작 계획을 알고 있었으나 이에 가담하지는 않은 사람이었다. 그는 이런 계획을 구단에 알리지 않았다는 죄로 영구제명된 것이다.

8인의 역할 등은 여전히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일례로 조 잭슨이라는 선수는 1919년 월드시리즈에서 3할7푼5리를 쳤다. 홈런 1개, 도루 5개를 기록했다. 외야수였던 그는 외야로 날아온 평범한 플라이 타구 30개를 모두 에러 없이 잡아냈다. 그는 돈을 받기는 받았다고 자백했으나 승부조작에는 가담할 마음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칙 칸딜을 비롯한 일부 선수들은 실제로 발생한 일과 대중에 알려진 일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고 주장해왔다. 실제로 가담했던 선수들과 가담한 것으로 알려진 선수들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 계획의 배후인 아놀드 로즈스타인은 이 사건과 관련해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그는 평생 동안 무죄를 주장해왔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1919년 월드시리즈를 통해 엄청난 부자가 됐다고 믿는다. 로즈스타인은 자신이 1919년 월드시리즈 도박으로 번 돈은 10만 달러가 넘지 않는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그를 연구해온 한 범죄소설가는 그가 월드시리즈로 35만 달러 이상을 벌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한편 블랙 삭스라는 이름에 대해서도 설(說)이 많다. 부패하고 더러운 것을 뜻하는 의미로 ‘블랙’이 사용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이 이름은 과거부터 사용됐다는 설도 있다. 앞서 언급했듯 코미스키 구단주는 매우 인색했다. 그는 선수들의 유니폼이 더러워져 이를 빨래하는 데 필요한 돈을 지급하지 않기도 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선수들이 자비로 빨래를 했다고 한다. 선수들은 그러다 아예 빨래를 하지 않고 반항을 했다. 옷이 더럽혀지고 양말이 거멓게 돼도 가만히 놔뒀다. 참다 못한 코미스키는 선수들의 유니폼을 강제로 빨았고 빨래 비용을 선수들의 월급에서 차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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