닉슨을 사임하게 한 내부고발자 마크 펠트 FBI 부국장의 이야기(1)

‘Deep Throat’인 그의 존재는 30년 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2017년에 개봉한 영화 중에는 ‘백악관을 무너뜨린 사나이’라는 영화가 있다.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리암 니슨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영화의 배경은 닉슨을 물러나게 한 배경이 된 워터게이트 사건이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기자의 연이은 특종으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당시 이들에게 정보를 제공한 사람은 오랫동안 베일에 쌓여 있었다. 그의 존재는 사건이 발생한지 30년이 지난 2005년에 마침내 공개됐다. 이 내부고발자(Deep Throat)는 당시 미 연방수사국(FBI) 2인자였던 마크 펠트였다. 그 사람의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의 정체는 2005년 월간지인 베니티페어를 통해 처음 알려졌다. 이 잡지는 그해 7월호에, 91세가 된 펠트의 사진에 <내가 바로 사람들이 내부고발자라고 부르는 사나이(“I’M THE GUY THEY CALLED DEEP THROAT”)>이라는 제목을 붙여 내보냈다. 이 기사는 존 오코너라는 기자가 썼는데 박진감이 넘친다. 이 기사의 일부를 발췌 번역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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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티페어의 2005년 7월호에 실린 마크 펠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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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기자에게 닉슨 워터게이트 사건의 핵심 정보를 흘린 내부고발자의 존재는 수십 년간 이어진 각종 추측에도 불구하고 공개된 적이 없다. 1970년대에 FBI 2인자로 활동했던 마크 펠트는 이제 91세가 됐다. 그는 마침내 그가 맡았던 역사적이고 베일에 숨겨져 있던 역할을 밝히기로 했다. 베니티 페어는 미국 민주주의의 영웅들의 이름과 얼굴을 특종으로 소개한다.

199년 8월, 화창한 캘리포니아의 어느 날 아침. 대학교 스페인어과 교수이자 싱글맘인 조안 펠트는 강의에 나서기 전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는 현관에서 누군가가 노크를 하는 소리에 하던 일을 멈췄다. 문 앞에는 자신을 워싱턴포스트 기자라고 소개하는 50대 정도로 보이는 정중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조안에게 아버지인 마크 펠트를 만나볼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마크는 산타 로사에 있는 조안에 집에서 같이 살았다. 이 남자는 자신의 이름이 밥 우드워드라고 했다.

조안은 밥 우드워드라는 이름을 알지 못했다. 그 역시 이번 주 전화를 걸어온 여러 기자들 중 한 명일 것으로 생각했다. 이때는 1974년 리차드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스캔들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일로 사임한 지 25주년이 되는 때였다. 기자들은 조안에게 워터게이트 당시 FBI 2인자였던 그의 아버지가 그 ‘내부고발자’가 맞느냐고 계속 물어봤었다. 두 젊은 기자들에게 백악관의 부정한 행위를 익명으로 제보한 사람이 맞느냐는 것이었다. 조안은 내부고발자로 의심받는 다른 사람들 역시 이런 전화를 받았을 것으로 생각했다.

‘내부고발자 후보들’은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의 중심이 돼왔다. 정부 고위직을 맡고 있는 사람 중에 언론에 이런 비밀을 흘릴 용기가 있는 사람이 과연 누가 있느냐는 게 궁금했던 것이다. (중략)

조안은 갑자기 궁금증이 생겼다. 다른 기자들과는 달리 이 기자는 직접 집에 찾아왔다. 또한 그는 아버지와 친구라고 주장했다. 조안은 잠시 실례하겠다며 아버지와 대화를 나눴다. 아버지는 당시 86세였다. 조안은 문 앞에 모르는 사람이 와있다고 말했다. 조안은 아버지가 ‘밥’과 만나겠다고 하자 놀랐다.

조안은 밥을 집 안으로 안내했다. 두 남자는 약 30분 동안 대화를 나눴다. 조안은 이들 두 명에게 같이 장을 보러 가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조안은 “밥은 뒷자리에 앉았다”라며 “나는 그의 삶과 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존 매케인의 (대통령) 선거운동을 취재하기 위해 서부에 왔다고 했다. 4시간 떨어진 사크라멘토에서 왔다고 했다”고 말했다. 조안은 “그는 내 연배 정도로 보였고 매력적이며 편안한 분위기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이 남자가 미혼이 아닌 게 안타까웠다”고 했다.

우드워드와 펠트는 조안이 장을 보는 동안 차에서 기다렸다. 조안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드워드가 “아버지와 함께 점심을 먹으며 한 잔 해도 괜찮겠느냐”고 물었다고 했다. 집 밖으로 나왔는데 우드워드와 그의 차가 보이지 않았다. 이들을 찾기 위해 동네를 돌아다니다 집에서 8블록 떨어진 중학교 주차장에서 이들을 발견했다. 우드워드는 리무진 안으로 들어가는 중이었다. 조언은 우드워드에게 왜 그곳에 주차를 했었는지, 왜 리무진을 타고 왔는지 차마 물어보지는 못했다.  (중략)

이날 저녁 조안의 아버지는 점심에 있었던 이야기를 매우 열정적으로 했다. ‘밥’과 함께 마티니를 들이켰다고 했다. 조안은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번주 내내 아버지는 기자들을 피해다녔는데 이번에 온 기자와는 편안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우드워드가 왜 그렇게 조심스럽게 행동을 했는지 궁금했다. 조안은 그의 본능을 믿었다. 조안은 여전히 우드워드의 이름으로부터 워싱턴포스트와 워터케이트 스캔들을 연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방문은 우연한 방문이 아니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마크 펠트와 조안, 아들인 마크 주니어, 조안의 아들인 닉은 그 후로도 몇 년간 우드워드와 전화와 이메일로 연락을 하고 지냈다. 펠트의 나이는 90대로 향하고 있었다. 펠트는 2001년 경미한 뇌졸중을 알았다. 그의 기억력도 약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그의 정신과 유머감각을 지켜나갔다. 조안(61세)과 마크 주니어(58)는 우드워드가 펠트의 건강을 많이 걱정해줬다고 했다. (중략)

최소한 한 명의 당국자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묻혀버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 남자는 우드워드의 중요한 정보원이었다. 이 내부고발자는 워터게이트 사건이 언론에 계속 퍼지도록 하기 위해 기자가 물어보는 일을 확인해주거나 사실이 아니라고 알려줬다. 우드워드와 번스타인은 이를 통해 여러 기사를 썼고 여러 차례 워싱턴포스트 1면을 장식했다.

우드워드와 내부고발자는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첩보 작전과 비슷한 방법을 썼다. 이들의 만남 장소에 꼬리가 붙거나 엿듣는 사람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우드워드가 먼저 만남을 갖고 싶을 때에는 그의 아파트 베란다 뒤쪽에 빈 화분을 올려놨다. 내부고발자가 먼저 만남을 갖고 싶을 때에는 우드워드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20면 기사에 시계바늘을 그려놨다. 이 신문은 매일 아침 7시에 배달됐다. 이들은 지하주차장에서 접선했다. 우드워드는 항상 두 대의 택시를 갈아타고 약속 장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내려 걸어갔다. 어두운 주차장에서 이들은 조용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방해하는 사람이 등장하면 바로 확인해 탈출할 수도 있었다.

내부고발자는 비밀리에 이런 작업을 이어간 당국자였다. 워싱턴포스트 기자들이 워터게이트 사건의 비화를 다룬 1974년 출간 책에도 나와 있듯 이 내부고발자는 두려움 속에 살아야 했다. 갑자기 해고되거나 기소될 위험도 있었다. 이야기를 털어놓을 동료도 없었다. 그는 전화기와 사무실이 도청되고 있다고 의심했다. 그는 완전히 고립됐었다. 그의 인생 커리어와 소속 기관을 위험에 처하게 했다. 이 내부고발자는 우드워드와 번스타인에게 “모든 사람의 목숨이 위험하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후 몇 달 동안 워싱턴포스트의 폭로는 계속 이어졌다. 백악관의 압박과 반대하는 세력의 시위에도 맞서야 했다. 닉슨 행정부를 더욱 화나게 만든 내부고발자는 더 과감해졌다. 두 기자들이 다른 정보원으로부터 취재한 내용의 사실 확인을 해주는 것 정도가 아니라 직접 행정부의 비밀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자 대중의 분노가 커졌다. 다른 언론들도 취재 경쟁에 뛰어 들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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