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약 6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가 다가오자 각종 음모론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신기한 점 중 하나는 선거와 관련된 음모론을 펼치는 핵심 인물 중 한 명이 도널드 트럼프 현직 대통령이라는 점이다. 그는 우편투표에서 각종 부정이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이를 뒷받침할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트럼프가 선거 관련 음모론을 펴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생긴 변화 중 하나는 트럼프의 상대로 나선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 역시 이상한 음모론을 들고 나왔다는 점이다. 바이든 음모론의 핵심은 다음 두가지다. (1) 트럼프는 자신에게 불리한 사전투표(우편투표) 확대를 막기 위해 우편 업무를 담당하는 우정국(USPS)에 자금 지원을 안 하는 등 압박하고 있다 (2) 어떻게 해서든 선거를 연기하려고 할 것이다.
바이든은 오바마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인물이며 트럼프와는 달리 오랫동안 정치인 및 공직 생활을 한 사람이다. 많은 민주당 지지층이 버니 샌더스 후보가 아닌 바이든 후보를 지지한 이유 역시 트럼프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급진적인 성향의 샌더스보다 안정감과 연륜, 경험이 풍부한 바이든이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이든이 트럼프와 똑같이 정확한 증거도 제시하지 못한 채 음모론을 펴고 나서 미국 언론이 ‘바이든의 음모론’ 등의 기사들을 쓰며 그의 주장을 팩트체크하고 있는 희한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바이든은 4월 23일 선거 자금 후원자들과의 화상 컨퍼런스를 열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11월 선거를 어떻게 해서든 연기하려고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트럼프가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따라 책정한 지원금 지급 명단에 ‘우정국(USPS)’을 포함하지 않은 이유 역시 선거를 방해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우편투표에 참여하는 유권자들을 방해하려 트럼프가 지원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배경 설명을 하자면 미국의 우체국들은 현재 큰 적자를 내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에게 지원금을 요청했지만 트럼프는 거절했다. 아마존을 비롯한 대규모 배송업체들에 미국의 우정국이 충분한 돈을 받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트럼프는 우정국이 자체적으로 적자를 해결할 노력을 하지 않는 이상 조건 없이 지원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우정국이 아마존 등으로부터 돈을 더 걷으면 지원금 지급을 검토해보겠다고 했지만 우정국은 아직 답변을 내놓지 못한 상황이다.
앞서 말했듯 트럼프는 ‘우편투표’를 비롯한 ‘사전투표’에 조작이 일어나고 있다는 음모론을 믿는 사람이다. 반면 바이든은 코로나 상황이 심각하기 때문에 모든 투표를 ‘우편투표’로 대체하는 방안 등을 검토해야 하며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우편투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민주당 일각의 사전투표 확대 주장에 트럼프 행정부는 반대하는 입장이다. 선거는 각 주(州)에서 관리하는 것인데 연방정부가 주의 권한을 침해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렇게 되자 바이든은 트럼프가 우정국에 지원하지 않는 것이 사전투표 확대 업무를 아예 수행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또 다른 음모론을 들고 나왔다. 민주당 지지 성향의 사람들은 온라인을 통해 트럼프가 선거를 연기할 것이라는 주장을 계속 해왔다. 온라인에서 떠도는 음모론에 불과했는데 바이든이 이를 공식적으로 언급하게 된 상황까지 처했다.
우선 미국의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를 인용, 바이든이 23일 화상 컨퍼런스에서 한 발언들을 일부 소개한다.
<모든 사람들이 투표를 하는 것을 더욱 쉽게 만들어야 한다. 지금처럼 사실상 갇혀 있는 상태라면 특히 그렇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하다. 각 주들이 우편투표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자금을 지원해야 한다.
트럼프는 ‘투표 조작’이라는 거짓 주장은 물론, 우정국에 코로나 지원금이 들어가는 것을 막는 등 이미 선거 절차를 훼손하고 있다. 사람들이 투표하는 것을 매우 어렵게 하려는 것 아니라면 이를 달리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트럼프의 행동은) 미국적이지 않으며 그는 이 방법만이 그가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트럼프와 러시아 사이에 또 한 번 선거 개입을 위한 시도가 있을 것이다. 내 말을 잘 기록해둬라, 이 대통령은 어떤 방법으로든 선거일을 뒤로 미루려고 할 것이다. 선거가 치러질 수 없는 이유를 어떻게 해서든 만들어낼 것이다.>
바이든은 그가 이런 사실을 확인한 주체는 우정국이라는 설명까지 했다. 트럼프 대선 캠프의 대변인인 팀 머토는 바이든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그는 “(바이든의 주장은) 현실 감각을 잃어버린 패배한 후보의 비논리적인 음모론, 횡설수설에 불과하다”고 했다.
조너선 털리 조지워싱턴대학 교수는 미국의 의회 전문 매체 ‘더 힐’에 ‘언론이 침묵하는 가운데 조 바이든은 선거 음모론에 부채질을 하고 있다’는 제목의 기고문을 썼다. 그는 바이든의 음모론이 현실적이지 않은 여러 이유를 들었다. 바이든의 음모론이 현실이 될 수 없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첫 번째는 매우 간단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우정국에 추가 지원금을 지급하느냐 마느냐는 우정국의 올해 예산과는 상관이 없다. 오는 11월 선거에서 있을 우편투표는 물론, 일반투표에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 트럼프가 지원금을 주지 않는다고 해서 우정국의 업무가 축소되지도 않고 확대된다고 해서 큰 어려움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두 번째, 바이든의 주장은 미국 헌법에 맞지 않는다. 미국의 헌법 2조는 연방정부가 아닌 주정부가 선거를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미국의 대통령 선거일은 11월의 첫 월요일의 다음 화요일이다. 이는 연방법으로 규정돼 있고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뒤집을 수 없다. 전쟁이나 계엄령이 선포된 상황에서도 대통령 선거를 연기할 수 없다. 미 의회는 1845년, 대통령 선거를 11월의 첫 월요일의 다음 화요일에 치르도록 했다. 트럼프가 선거일을 바꾸기 위해서는 상하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민주당은 현재 하원의 다수당이기 때문에 의회에서 선거일을 바꿀 가능성도 없다고 봐야 한다.
선거가 연기된다면 미국 수정헌법 20조와 충돌하게 된다. 이 수정헌법은 대통령의 임기는 1월 20일 정오에 끝난다고 명시하고 있다. 트럼프가 의회를 설득해 선거일을 연기한다고 하더라도 문제가 생긴다. 그가 재선에 성공하지 않는다면 그는 어쨌든 1월 20일 정오에 백악관에서 나와야 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의 칼럼니스트인 제임스 프리먼은 27일 ‘바이든의 음모론’이라는 칼럼을 썼다. 그의 칼럼 일부를 소개한다.
<대통령 선거 시즌이 찾아왔다. 증거는 없이 사실일 것이라고 추정하는 민주당 후보가 공화국을 파괴하려는 계획의 권위주의적인 트럼프에 대한 사실 무근의 주장을 할 시기가 된 것이다. 일부 언론은 이를 따라가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다. (중략) 다른 문제들을 포함, 전직 부통령의 이런 기이한 발언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심각한 질문을 낳는다. 조 바이든은 신뢰를 받아 마땅한 사람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