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올림픽에 맞춰 방한했을 때의 김여정. 2018년 2월 촬영 한국 청와대
결론부터 말하자면, 만약 가까운 미래에 김정은이 급사하거나 집무 불능이 되면 당과 군의 최고위 간부가 일시적으로 직무를 대행할 수는 있어도, 최고 권력자 지위를 승계하는 것은 김여정 외에는 생각할 수 없다. 이것이 현시점에서의 필자의 견해이다. 그 이유를 말하기 전에, 우선 김정은 정권 출범 후 8년간 김여정의 궤적을 간단히 되돌아보자.
◆ 김여정의 궤적
한국 통일부가 5월 13일에 발간한 《2020 북한 주요인물정보》에 따르면, 김여정은 1988년에 태어났다. 9월생이라는 설이 유력한데, 그렇다면 현재 만 31세인 셈이다. (김정일의 요리사로 근무했던 후지모토 겐지는 저서에서 1987년이라고 밝혔다.) 어머니가 오사카 태생 재일조선인 귀국자인 고용희라는 사실은 잘 알려졌다. 김정은과 김여정은 '귀국자 2세'인 것이다.
・2012년 11월 19일에는 김정은, 김경희(김정일의 여동생)와 백마를 타는 모습이 조선중앙TV에 방영되어 로열패밀리의 일원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2014년 3월 9일 최고인민회의(국회에 해당) 대의원 선거 때 실명이 처음 등장했다. 직함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책임일꾼'이었다. 같은 해 11월에 당중앙위원회부부장이라는 직위가 알려졌다.
・2015년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 열병식이 생중계됐는데, 연설하는 김정은의 뒤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2016년 5월에 당중앙위원, 2017년에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이 되어 당내 서열 30위 안에 들었다.
・2018년 평창 올림픽에 북측 고위대표단의 일원으로서 한국을 방문해 문재인 대통령과 회담했다. 김 씨 일족으로서는 6·25전쟁 이후 처음으로 한국 영토에 발을 디뎠다.
・2018년부터 김정은이 수뇌 외교를 활성화한다. 김여정은 판문점, 베이징, 싱가포르에 동행해 김정은이 문재인, 시진핑, 트럼프와 회담할 때 보좌역으로서 곁을 지켰다.
・2019년 2월, 비핵화를 둘러싼 김정은-트럼프 제2차 회담(베트남 하노이)이 결렬로 끝났을 때 정치국 후보위원에서 이름이 빠졌지만, 2020년 4월 11일에 부활했다.
・2020년 들어 김여정 이름의 담화를 두 번 발표했다. 첫 번째는 3월 3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실험에 한국의 청와대가 강한 유감을 표명하고 중단을 요구하자, '우리(한국)는 군사 훈련을 해야 하고, 너희(북한)는 하면 안된다는 것은 적반하장의 극치', '청와대의 행태가 세살 난 아이들과 달라보이지 않는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3월 22일에는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보낸 친서에 감사의 담화를 냈다.
◆ 김여정은 자기 현시 욕구가 강한가?
정리해 보자.
① 로열패밀리의 일원임을 어필했다.
② 노동당 중추에서 지위를 급상승시켰다.
③ 김여정을 보좌하는 모습을 노출해 내외에 존재를 각인했다.
④ 이례적인 서명 담화를 내어 체제의 실세임을 과시했다.
'백두혈통', 직위, 실세의 삼위일체로 내외에 김여정의 존재를 노출시켜 온 것은, 체제 내에서의 '2인자화(化)'를 꾀하기 위한 목적이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실권이 따르지 않는 장식(얼굴마담)이 아니라, 최고 권력의 승계 순위가 1위라는 것을 어필하는 절차였다고 본다.
특징적인 것은 사진과 영상을 많이 사용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김여정은 노출되는 것을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자기 현시욕이 강하다는 인상이다. '오빠 생각하는 기특하고 바지런한 동생'에 만족하지 않고, 김여정 본인의 의사로 권력의 계단을 오르고 있을 것이다.
◆김씨 일족 지배의 '영속성과 순결'을 최고 강령에 명기
북한의 최상위 규약은 헌법이나 노동당 규약이 아니라 《당의 유일적령도체계확립의 10대원칙》이라는 대외비공개 강령이다. 요약하면, 노동당원은 물론 전 국민・전 조직이 오직 김정은(당이라고 표기)에 대해서만 절대 충성・절대복종하라는 내용이 끝없이 적혀 있다. 모든 국민은 《10대원칙》에 따라, 김정은의 '령도(지도)'를 일상생활과 행동의 지침으로 삼아야 하며 소속 조직에서 매주 1회 열리는 '생활총화'라는 회의 때 확인받는다.
《10대원칙》은 김일성-김정일 시대였던 1974년에 만들어져 2013년 6월 김정은 시대에 맞춰 개정됐다. 그때, '우리 당과 혁명의 명맥을 백두의 혈통으로 영원히 이어나가며…(중략)…그 순결성을 철저히 고수 하여야 한다'라는 문장이 추가됐다. 즉, 김씨 일족 외의 지도자는 있을 수 없다는 것, 권력의 세습 승계를 영원히 이어간다는 것이 최고 강령에 명기된 것이다.
젊고 미숙한 김정은에게 대물림하는 시기에, 산전수전 다 겪은 실력자들이 군과 당내의 기반을 바탕으로 김정은을 컨트롤하거나 김씨 일족 지배를 위협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강력한 통제 장치를 마련해둔 것이다. 실제로, 이 장치가 가동되어 피바람이 몰아쳤다.
◆ 김여정의 '2인자화'는 일족 지배의 위기 관리책
2013년 12월, 최대 권력자이자, 김정일의 여동생인 김경희의 남편이었던 장성택이 숙청・처형당했다. 그 이유는 '당의 유일적 령도체계를 확립하는 사업을 저해하는 반당 반혁명적 종파 행위'와 '국가 전복 음모 행위'였다. 장성택이 자신의 세력을 키워 김 씨 일족 지배를 뒤흔들었다고 간주한 것이다.
1984년생으로 알려진 김정은은, 확실하지 않지만 자녀가 3명이라고 한다. 장자는 아직 10살 정도일 것이다. 아이 한 명에게 후계 작업을 시작하기까지 적어도 10 수년이 필요할 것이다. 그때까지 김정은이 죽거나 장기간 집무 불능 상태가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김여정의 '2인자화' 진행은, '백두혈통'에 의한 통치=김 씨 일족 지배를 '영원'히 '순결'하게 지키기 위한 위기 관리책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김평일의 가능성은? '여자는 안된다' 주장은?
일부에서는 김정일의 이복동생이자 지난해 체코 대사를 퇴임하고 귀국한 김평일(1954년생)이 후계자가 될 가능성을 주장하는 움직임도 있다. 하지만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김평일은 김일성과 김일성의 후처인 김성애(1928년생. 혹은 1925년생) 사이에서 태어났다. 용모가 김일성과 비슷하다. 1970년대 초 김성애가 조선민주여성동맹을 기반으로 권세를 휘두르게 되자 미래의 유력 후계자 후보로 주목받은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김성애가 김정일과 권력 다툼에 패한 후에는 1979년부터 줄곧 동유럽 여러 나라에서 외교관으로 부임했다. 지난해 체코 주재 대사를 퇴임하고 40년 만에 귀환했다.
외부 세계에서 보면 김평일도 넓은 의미의 '백두혈통'의 일원이지만, 김정일-김정은과 다른 방계(傍系)이며 '곁가지'이므로 '순결'하지 않다. 또한 그를 지지하는 세력은 국내에 절대 존재할 수 없다. 만약 조금이라도 김평일을 밀어주는 조짐이 보이면 '유일적 령도체계' 위반으로 산산조각이 날 것이다.
북한 사회는 남존여비 풍조가 강하니까 김여정 후계는 어렵지 않겠냐는 지적도 있다. 지금껏 1000명 이상의 북한 사람들을 취재한 내 느낌으로 말하자면, 분명히 일본, 한국, 중국 조선족 사회보다 북한 사회의 젠더 불평등은 훨씬 심각하다. "여자가 지도자라니"라는 회의(懷疑)도 나올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김여정 이외의 선택지는 보이지 않는다. '여자이니까'라는 조롱을 막기 위해서라도, 노출을 수반하는 '2인자화' 작업이 필요했던 것이다. (경칭 생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