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5·18 민주 영령과 광주 시민 앞에 용서를 구한다”

무릎 꿇고 광주 5·18 민주묘지 참배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8월19일 오전 광주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고 “5·18 민주 영령과 광주 시민 앞에 용서를 구한다. 부끄럽고 부끄럽고, 죄송하고 또 죄송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그동안 여러 기회 통해 과정과 배경을 말하며 용서를 구했지만 결과적으로 상심에 빠진 광주시민, 군사정권을 반대했던 국민들에게는 쉽게 용납하기 어려운 선택이었다”면서 “다시 한번 이에 대해 사죄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다음은 김 위원장의 참배 후 언론 발표 전문(全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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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5월 영령과 광주 시민들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된 1980년 5월 17일 저는 대학연구실에 있었습니다. 그 이틀 전 학생들이 시위를 중단할 것이라는 발표를 듣고 밀려있는 강의 준비에 열중하던 중이었습니다. 광주에서 발포가 있었고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소식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위법행위에 직접 참여하는 것도 잘못이지만 알고도 침묵하거나 눈 감은 행위, 적극 항변하지 않은 소극성 역시 작지 않은 잘못입니다. 역사의 법정에서는 이것 또한 유죄입니다. 신군부가 집권하고 만든 국보위에 저는 재무분과 위원으로 참여하였습니다. 그동안 여러 기회를 통해 그 과정과 배경을 말씀드리며 용서를 구했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상심에 빠진 광주 시민, 군사정권에 반대했던 국민들에게는 쉽게 용납하기 어려운 선택이었습니다. 다시한번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6.25전쟁 당시 저는 북한군의 총칼에 할머니를 잃었습니다. 학살을 피해 밤마다 거처를 옮기며 지내야 했습니다. 바람소리에도 신경이 곤두서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 경험을 통해 저는 쫓기는 자의 공포와 고립된 자의 좌절을 알고 있습니다. 80년 5월 광주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진 후 호남주민들이 겪었을 고립과 슬픔의 감정 또한 그에 못지 않을 것입니다. 광주에서 그런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음에도 그것을 부정하고 5월 정신을 훼손하는 일부 사람들의 어긋난 바람과 행동에 저희당은 더욱 엄중한 회초리를 들지 못 했습니다. 저희당의 일부 정치인들까지 그에 편승하는 듯한 태도까지 보였습니다. 표현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엄연한 역사적 사실까지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동안의 잘못된 언행에 당을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진실한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나라입니다. 2차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해방된 국가 가운데 자신을 지배한 과거 제국주의 국가와 대등하게 어깨를 견주게 된 나라는 우리 대한민국이 유일합니다. 그것은 세계 어느 나라 국민보다 성실하게 노력하고 정의롭게 행동한 우리 국민의 땀과 눈물의 결실입니다. 산업화와 민주화는 지금 우리를 지탱하는 소중한 양대기둥입니다. 어느 하나도 간단히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자랑스러운 역사의 과정에 적지 않은 희생과 고통이 따랐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것이 상처로 남아 아직도 낡은 이념 대립을 계속하며 사회적 통합과 발전에 방해가 되고 있습니다. 역사의 화해는 가해자의 통렬한 반성과 고백을 통해 가장 이상적으로 완성될 수 있지만 권력자의 진심어린 성찰을 마냥 기대할 수는 없는 형편에서 그 시대를 대표하여 제가 이렇게 무릎을 꿇습니다. 소위 참회와 반성이 오늘의 호남의 오랜 슬픔과 좌절을 쉬이 만들 수 없다는 것은 알지만 5.18 민주 영령과 광주 시민 앞에 부디 이렇게 용서를 구합니다.

부끄럽고 또 부끄럽습니다. 죄송하고 또 죄송합니다. 너무 늦게 찾아왔습니다. 벌써 1백 번이라도 사과하고 반성했어야 마땅한데 이제야 그 첫걸음을 떼었습니다. 작은 걸음이라도 나아가는 것이 한걸음도 나아가지 않는 것보다 낫다는 빌리 브란트의 충고를 기억합니다. 5.18 민주묘역에 잠들어있는 원혼의 명복을 빕니다. 아물지 않은 상처를 부둥켜안고 살아가는 유적들에게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민주화 유공자 여러분께도 진심어린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드립니다. 제 미약한 발걸음이 역사의 매듭을 풀고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향해 나가는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 2020년 8월 19일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김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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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뱀대가리 2020-08-22 오후 3:02

    대한민국초대 대법원장 김병로, 역대 대법원장중 이분 처럼 올곧게 대법원장 직을
    이행한분 없다. 그 손자인 김종인은 할아버지 발뒤꿈치도 따라가지 못하는것
    안타깝구나.,

  • 자유의메아리 2020-08-20 오후 3:43

    종인씨 함 물어봅시다 6,25때 어디서 살았오 할머니께서 인민군 총칼에 맞아서 돌아가셧다구요 확실이 말좀하세요 당신의 할머니께서 6,25때 50대초반 노인이엿을터인데 어쩌다 ,총칼에 당했읍니까 못믿겟네요 나는서울에살았고 6월28일 인민군의 포격소리를 들으며 중구 인현동에 살았는데 아버지께서 7남매중 형님과저를 깨우며 빨리 피난가라며 형에게 백원짜리몇장 주시며 여명이 밝아오는 신새벽에 집을떠나 인도교에오니 한강은 폭파되고 강따라 마포로 밤섬근방에왓을때 전날 비가와서 밤섬에서 물을피해 육지에 올라온 가족을 태우려 건너온 전마선에 무조건 올라타고 그분가족과함께 여의도로건너오는데 강뚝에서 도강만기다리는 경찰 낙오병들이 총을쏘며 전마선을 자기들있는곳으로 대라고 소리처도 그냥 건너와 여의도에내려 우라형제는 그분들 덕분에 도강에성공하고 내리면서 고맙단인사도 제대로 못했다 이후 걸어서 수원에 밤에도착하고 아침에 공기밥 한그릇사먹고 역에나오니 남행열차마다 열차 지붕까지 인산인해로 꽉차있는데 다음열차에 석탄칸이 사람이없어 석탄칸에타고 대전에도착 안내인의 인도로 성지국민학교에 도착 한밤에 밥한그릇 얻어먹고 잠은자는둥하고 새벽에 역에 나와보니 열차마다 어제와 같았다 또 차를타고 이튼날새벽 부산에도착 외사촌향님 당시완월동 파출소 소장 이였다 나는 이렇게 피난갔고 서울에 남아계시던 1895생의의부친께서는 당시55세엿는바 인현동 판자촌이 월남 피난민들이 모여살던 동내로 이북에서 온사람들은 이북으로 가라며 집을 깡그리 헐고 인현동에서 쫓아냈다 부친께선 이후 미아리 고개 근처에 피난가는 사람에게 무허가집 천원주고 인수해서 1,4후퇴때까지 살았다그때까지는 이북서온 반동분자인데도 죽이진않고 집을헐고 북으로가라며 모두 내쫓아 미아리로또는 모두각방향으로흐트러졌다 그래도 죽이지는 않어서 생명은 부지했는데 종인씨 할머니는 어디에 살다가 어찌하여 총칼에 돌아가셧나요 믿을수가 없네요

  • 자유의메아리 2020-08-20 오전 10:27

    대한민국 초대대법원장 김병노옹 아들이라면 불효 그만하고 내려오십시오 그간 비례국회의원 여섰번이나 했다면그만하세요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나니라 만고에 옳은말씀 새겨들으시고 훌륭하신 어른 그만 욕되게 하세요 부탁합니다 추신: 요지음 종인시 하는행동을보며 좀 흥분했나봅니다 저도 욕이나하는 인간은 아닙니다 모태신앙인으로 집사안수도 받았고 나이도 1935년5월 생으로 현재 한국남자평균수명보다 5년이너 더 살고있는 85의 늙은이 올시다 앞으로 욕설이나 비속어는 삼가겟읍니다 감사합니다

  • 白丁 2020-08-19 오후 11:25

    헛수고. 차라리 김정은과 화해하는 게 더 쉬울걸.

  • rhois99 2020-08-19 오후 8:38

    아니 라도와 광주만 그렇게 대단한가 무기고 부수고 국군에게 총질한 놈들은 어떻게하고
    나는 충청도사람이지만 경상도 합천사람들아 전두환을 살리기 바란다 라도사람들 처럼 해봐라

  • 越百 2020-08-19 오후 3:51

    이렇게 歪曲까지 하면서 政治를 해야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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