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패를 떠나 조은산과 림태주 멋지게 싸웠다

<조갑제TV 녹취> 상대를 존중하되 자기 생각을 확실하게 전하는 논쟁

2020년 8월31일 여름의 마지막 날입니다. 거의 일주일동안 전국이 ‘진인(塵人) 조은산’ 열풍입니다. 조은산의 상소문,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렸던 상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화제가 되고 있고 기삿거리가 되고 있고 국민들이 읽고 있습니다.

평소에 이런 글을 잘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제가 전화를 많이 받았습니다. “이 글을 읽으니까 힘이 생긴다”, “눈이 번쩍 뜨인다”는 표현도 있고 특히 검사장이라든지 정치인이라든지 고위직에 있었던 분, 기자 출신, 외교관 이런 분들의 평가가 아주 높습니다. 그 자존심 강한 분들이. 제가 1971년부터 기자생활을 했으니까 50년인데 제 경험으로는 글 하나가 국민적 관심을 모은 것은 참 드문 일입니다. 처음이라고는 볼 수 없겠지만.

이 글은 매우 긴 글입니다. 보통 짧은 선언문이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이렇게 긴 글이 읽히고 파장을 일으킨 점에서 특이합니다. 이 글은 첫째 내공이 단단한 사람이 쓴 글입니다. 어떤 관념이나 헛된 이론에서 나온 글이 아닙니다. 체험에서 나온 글이에요. 그러니까 이분의 글에서 어떤 온기도 느껴지고 저력도 느껴집니다. 위트가 있습니다. 해학이 있습니다. 익살이 있어요. 무엇보다도 여유가 있습니다. 이게 참 좋습니다. 난도질하는, 과격한 격문 뭐 좋지요. 그러나 그런 걸 자꾸 접하면 식상합니다.

놀라운 것은 이분의 글에는 이념적 말이 한 마디도 없습니다. 그런데 매우 이념적인 글입니다. 굉장히 이념적인 글입니다. 그러나 이념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삶을 내세웁니다. 인간을 내세웁니다. 그래서 제가 감히 이 글은 문학적이다, 문학에 속한다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참 보기 드문 풍자문학(입니다). 제가 자꾸 조지 오웰 이야기를 하는 게 그겁니다. 최고의 풍자문학이 ‘돈키호테’ 아닙니까? 그리고 ‘동물농장’이죠. 자꾸 ‘동물농장’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최고의 문학이 풍자문학입니다. 풍자문학을 쓰려면 머리가 좋아야 됩니다. 아주 다양한 표현방식을 이분이 동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잊어버렸던 한국인의 운율, 우리 본래 한국어의 장점을 이분이 발견했습니다. 그 운율에 따라 글을 쓰니 읽기가 참 쉽습니다. 파도타듯이 말이죠.

여기에 한 사람이 또 끼어들었습니다. ‘림태주’라는 시인이 [제가 어제(8/30) 소개해드렸는데 쓰기는 그 며칠 전에] 쓴 글입니다. 이분이 페이스북을 통해서 조은산 씨 글을 비판했습니다. 그러니까 조은산 씨가 또 반박을 했습니다. 주고 받았어요. 이게 또 이 글(조은산 씨의 ‘시무7조’)을 유명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림태주 씨의 글에 동의하지 않지만, 림태주 씨가 쓴 글을 존중합니다. 거기에 대한 (조은산 씨의) 반론도 좋았어요. 그러니까 림태주 씨가 거기에 대한(반론에 대한) 글을 또 남겼습니다. 왜냐? 오늘 언론 보도를 보면 ‘림태주 씨가 조은산 씨를 비판한 글을 자기 페이스북에서 내렸다, 항복했다’ 하는 취지의 기사가 올랐는데 거기에 대해 림태주 씨가 오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께
하교 글은 내린 게 아니라 친구보기로 돌려 놓았습니다. 이유는 아시겠지요. 낯선 계정에서 몰려와 하도 막말과 쌍욕으로 도배를 해서 방치하기 어려웠습니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이 글도 안 보이게 된다면 그런 연유일 것입니다.>


이러면서 ‘진인 선생께 드리는 편지’ 해서 글을 하나 올려놓았습니다. 이 글을 읽어보니까 저는 따뜻한 마음이 생깁니다. ‘이분(림태주)이 시인의 마음을 갖고 있구나, 이런 논쟁이 필요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생각은 다르지만 상호 존중한다는 게 얼마나 좋습니까. 림태주 씨와 조은산 씨의 논쟁을 보고 승패를 말하기 전에 저는 ‘아 이것 참 한국에도 좋은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생각은 다릅니다. (저는) 가치관적으로는 조은산 씨 편이지만 림태주 씨의 글과 글을 쓰는 태도에서 상당히 마음이 끌렸습니다. 논쟁은 이런 식으로 해야 된다, 상대방의 인격을 말살하는 논쟁이 아니라 상대방의 생각을 존중하되 자기 생각을 확실하게 전하는 것, 그런 관점에서 림태주 시인의 글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조은산 씨 너무 좋아하면 림태주 씨를 미워하게 되는데, 우리 그렇게 하지 맙시다. 림태주 씨의 생각도 존중하고, 조은산 씨의 글을 좋아할 수 있는 겁니다. 이 세상은 ‘All or nothing(모 아니면 도)’이 아닙니다. 그 중간지점이 있는 겁니다. 흑백만 있는 게 아니라 중간에 회색지대가 있는 겁니다. 그것을 인정하자는 게 조은산 선생의 말입니다. 인간 세상을 가진 자와 못가진 자, 다주택자 일주택자 무주택자로 나누면 지옥이 된다고 강조하는 그 대목을 받아들인다면 우리와 생각이 다른 사람도 존중하고 다른 점과 같은 점을 발견하고…. 그래서 제가 림태주, 조은산 두 분의 공통점을 찾아보니까 시인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렇게 판단했습니다.

우선 오늘 올린 림태주 씨의 페이스북 글 중에서 몇 대목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진인 선생께 드리는 편지
(중략) 사람을 살리는 글을 쓰고자 했으나 누군가를 아프게 하고 상처내는 글이 되었을 때의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중략) 일개 범부가 꿈꾸는 이상이 가당키나 하겠습니까만은 정치를 둘러싼 권력 다툼이, 정치의 사무가 민생과 민의라는 근본에서 멀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그 민의도 품격 있게 표출되고 논의되기를 바랐습니다.
내 이름을 적시한 선생의 글을 읽고 몹시 기뻤습니다.>


(조은산 씨를) ‘선생’이라고 했네요. 상대방을 존중합니다.

<선생의 상소문이 그저 허름하고 잡스러운 글이었다면, 나는 ‘하교’ 따위의 글을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상소문 형식 자체가 해학과 풍자가 담긴 새로움을 지녔고, 내용에 공감하는 이들에게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리라 생각됩니다. 선생 글의 형식에 대구를 맞추느라 임금의 말투를 흉내 내었고, 교시하는 듯한 표현을 쓰기도 했습니다. 너그러이 이해해주리라 믿습니다.>


깔끔한 글입니다. 자기(림태주 시인)가 문재인 대통령이라는 입장에서 조은산 씨를 비판했거든요.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느냐? 그게 또 림태주 씨를 비판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당신이 뭔데 임금행세를 하느냐’, ‘문재인 대통령이 이야기해야 될 걸 당신이 왜 문재인인 척 하면서 하느냐’. 사실은 이게 실수였어요. 이분이 공격받는 가장 큰 이유가 ‘니가 뭔데, 임금이고 대통령이냐’ 이런 식으로 하니까 거기에 대해서 이분이 설명을 해주는 겁니다. <선생 글의 형식에 대구를 맞추느라 임금의 말투를 흉내 내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선생의 글이 그러했듯이 내 글도 무분별한 악성댓글에 시달렸습니다. 그 무분별에 대한 경계의 말을 선생의 독자들에게 남겨주어서 좋았습니다.>


이게 좋네요. 이게 참 좋습니다. 조은산이라는 사람이 림태주 씨의 글에 대한 비판을 하면서 진영 논리에 빠져서 욕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을 림태주 씨가 딱 받아서 고맙다고 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각자 자기가 선 자리에서 봅니다. 보이는 만큼 이해하고 보는 만큼 말합니다. 그래서 다른 자리에 선 사람의 시각과 말도 필요합니다. 세세하게 보고 말하는 사람도 필요하고 멀찍이서 숲을 바라보며 말해주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그래야 온전해진다고 나는 믿습니다.>


좋은 이야기입니다.

<뻣뻣해진 나무는 소리를 내지 못합니다. 살아있는 한 경직되지 말아야겠습니다. 코로나 시국에 부디 건강 하시기를 빕니다.>


어떻습니까? 림태주 씨의 조은산 씨에 대한 아주 예의바른, 따듯한 글. 역시 시인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림태주 씨가 (이전에) 쓴 글을 저는 비판의 대상으로 삼습니다만, 이런 마음을 가진 분이라는 걸 이해를 하고…. 이분이 글을 쓸 때 임금의 입장에서 쓴 게 실수였습니다. 비판을 많이 받을 소지가 거기서 나온 거예요. 왜냐하면 조은산 씨의 글은 ‘진인’이라는 말처럼 ‘나는 티끌같은 존재밖에 안 됩니다’ 하면서 자기를 한없이 낮추고 그 다음에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문재인에게 들이대는 글입니다. 그러니까 이 글이 호응이 커요. 글이 고답적으로 당당하게 오만하게 쓰면 읽는 사람 기분이 나쁘잖아요. 그런데 조은산 씨는 ‘나는 티끌같은 존재입니다’라고 시작하면서 쓰니까 이게 공감대를 넓혔는데, 림태주 씨는 반대 방향으로 들어갔어요. 탑다운(Top-down) 식입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니까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만하다 이렇게 된 거죠. 전략적 실수입니다. 예컨대 림태주 씨가 쓴 글 중에 공격받을 소지가 가장 많은 대목은 이겁니다.

조은산 씨를 향해서 쓴 글인데요

<너는 백성의 욕망을 인정하라고 하였다. 너의 그 백성은 어느 백성을 말하는 것이더냐. 가지고도 더 가지려고 탐욕에 눈 먼 자들을 백성이라는 이름으로 퉁 치는 것이냐. 나에게 백성은 집 없는 자들이고, 언제 쫓겨날지 몰라 전전긍긍 집주인의 눈치를 보는 세입자들이고, 집이 투기 물건이 아니라 가족이 모여 사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다. 땅값이 풍선처럼 부풀고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수십 채씩 집을 사들여 장사를 해대는 투기꾼들 때문에 제 자식들이 출가해도 집 한 칸 마련하지 못할까봐 불안하고 위화감에 분노하고 상심하는 보통 사람들이다. 나의 정치는 핍박받고 절망하고 노여워하는 그들을 향해 있고, 나는 밤마다 그들의 한숨소리를 듣는다.>


(림태주 씨는) 문재인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겁니다. 우선 저는 문재인 대통령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림태주 씨의 이해가 거의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것 같아요. 물론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이렇게 쓸 수는 없죠. 그러나 림태주라는 친문(親文) 시인이 쓰니까 이걸 가지고 포인트를 맞춰 조은산 씨가 바로 반격이 들어왔습니다. 이게 아주 묘한 점인데 ‘백성을 완전히 가른다, 우리 편과 반대 편으로 가른다’는 것을 노출시키고 말았습니다. 림태주 씨는 순수한 분이니까 ‘아마도 문재인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라고 상당히 정확하게 대변한 것으로 보입니다.

조은산 씨가 이걸(림태주 씨의 글을) 어떤 식으로 반박했느냐?

<네 스스로 너의 백성은 집 없는 자들이고
언제 쫓겨날지 몰라 전전긍긍 집주인의 눈치를 보는
세입자들이고 집이 투기 물건이 아니라
가족이 모여 사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라 했다

그렇다면 고단히 일하고 부단히 저축하여
제 거처를 마련한 백성은 너의 백성이 아니란 뜻이냐>


결정적인 반격입니다.

<나는 오천만의 백성은 곧 오천만의 세상이라 하였다> 이 말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세상처럼 소중한 존재다, 최고 존엄이다’라는 겁니다. 북한에는 김정은이라는 최고 존엄이라는 한 사람이 있지만, 대한민국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최고 존엄이다, 다 자기의 세상을 갖고 있다 (이런 겁니다).

<그렇다면 너의 백성은 이 나라의 자가보유율을 들어
삼천만의 백성 뿐이며 삼천만의 세상이 이천만의 세상을 짓밟는 것이
네가 말하는 정의에 부합하느냐>


이것은 문재인 씨에 들이대는 준엄한 지적입니다. 당신이 말하는 ‘사람이 먼저다’라는 것은 ‘우리 편 사람이 먼저다’라는 것이고, 그 우리 편은 무주택자 또는 일주택자이고, 다주택자는 국민 취급도 하지 말아야 할 존재로 보는 것 아니냐, 이런 이야기죠. 이렇게 들이대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 논전(論戰)은 여기서 끝난 겁니다.

조은산 씨가 글을 쓰면 명언이 몇 개 남아요.

<나는 나의 순수했던 가난이 자랑스러워
힘껏 소리 높여 고한다
비켜라 강건한 양에게 목동 따위는 필요없다>


‘양같이 살았다. 가난하게 살았다, 그런데 그 가난을 나는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순수했던 가난이다. 그러니까 목동이 와서 나를 이끌어주고 도와주는 거, 그거 싫다. 나는 내 혼자 힘으로 서겠다.’ 이게 자유민주주의에서 제일 중요한 개인의 자유고 개인의 권리죠. 좌파는 조직으로 대항하지만 우파 진영, 자유진영에 있는 사람은 개인의 결단, 개인의 자유, 개인의 책임을 강조합니다. 바로 이런 정신이죠.

조은산 씨가 어제 참 잘한 게, 글을 쓰고 나서 이렇게 부탁을 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 부탁드립니다
시인 림태주 님의 글은 저와 같은 못배운 자의 것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써
글에 대한 혹평은 저 또한 그렇듯 큰 상처입니다
정치를 놓고 글을 들어 평가해 주시길 바랍니다>


글 못썼다고 하지 말라는 겁니다. 생각이 다르다고는 해도 되지만 글 쓴 사람에게 ‘당신 문법도 안 맞고 글 못썼다’ 이렇게 하지 말라는 겁니다. 얼마나 좋은 배려입니까. 이분(조은산)이 앞에 이 글을 시작할 때 ‘글은 참 잘 썼다’고 칭찬합니다. 글을 매끄럽게 썼다고 칭찬하면서 내용을 비판했어요. 마지막에도 절대 림태주 씨한테 글 잘 못썼다고 하지 말라는 겁니다. 문장 잘못됐다는 이야기하지 말라는 겁니다. 사실입니다. 림태주 씨의 문장은 좋은 문장입니다.

조은산 씨가 또 이렇게 토를 달았어요.

<시인 림태주 선생님

펜과 펜이 부딪혀 잉크가 낭자한 싸움에
잠시 인(仁)과 예를 잊었습니다 또한
건네는 말을 이어받음에 경어를 쓰지 못했습니다
제가 한참 연배가 낮습니다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용서해주십시오>


이렇게 쓰니까 림태주 씨가 오늘(8/31) 조은산 씨에게 그런 따뜻한 글을 쓸 수가 있었습니다. 두 분의 싸움에서 막가는 싸움이 아니라 ‘생각은 다르다 그러나 우리가 글 쓰는 사람으로서 상호 존중하자’ 하는 여백을 남겨놓았다는 점에서 저는 림태주, 조은산 두 사람에게 아주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이런 싸움, 이런 말싸움은 대한민국을 건강하게 만듭니다. 이게 바로 민주주의의 진정한 아름다움이죠. 감사합니다.


정리: 李知映(조갑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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