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4월15일 오후, 10시간의 비행 끝에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도착한 나는 다저스 스타디움으로 직행했다. 강연 여행을 주선해 준 김도우 통일문화진흥회장과 양준용 선생(前 경향신문 기자)이 미리 표를 예약해 놓고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오후 5시 조금 전에 스타디움 안으로 들어갔다. 5만6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이 거의 차들어가고 있었다. 경기장은 축제 분위기였다. 이날은 '최초의 흑인 메이저 리그 선수' 재키 로빈슨이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前身(전신)인 뉴욕의 브루클린 다저스의 유니폼을 입고 에베츠 필드에 등장한 지 6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재키 로빈슨 60주년'의 날이라고 하여 이날 치러진 메이저 리그의 모든 식전행사엔 그를 추모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는 로빈슨을 등장시킨 팀이었으므로 이곳 행사가 主무대가 되었다. 재키 로빈슨의 미망인인 라헬 로빈슨 여사는 아주 厚德(후덕)하게 생긴 할머니였다. 당시는 로빈슨 재단을 운영하고 있었다. 最多(최다) 홈런기록 보유자인 행크 아론, 최초의 흑인감독 프랭크 로빈슨, 흑인 인권운동가 재시 잭슨, 전설적인 다저스 게임 중계 아나운서 빈 스컬리 등이 메이저리그 협회 총재인 버드 세리그와 함께 기념행사에 참여했다.
이날 기념식에서 한 마디씩 한 모든 사람들은 '재키 로빈슨이 야구의 인종차별 벽을 부숨으로써 야구나 스포츠뿐 아니라 미국 사회 전체의 地形(지형)을 바꿔놓았다'고 말했다. 재키 로빈슨은 그런 선구자 役(역)을 맡을 만큼 자존심이 강하고 참을성이 있으면서도 실력도 좋았다. 1972년 53세에 일찍 죽은 재키 로빈슨은 이런 名言(명언)을 남겼다.
'한 인생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주지 않는 한 중요하지 않다.(A life is not important except in the impact it has on other lives.)'
이 문장이 다저 스타디움 여기저기를 장식하고 있었다. 오늘날 미국 프로야구는 흑인에 이어 南美系(남미계),한국·일본系까지 참여하여 人材(인재)풀이 국제화되고 내용도 풍성하게 되었다.
재키 로빈슨이란 한 위대한 도전자의 용기와 희생이, 그리고 그를 키워준 다저스 팀의 안목이 피부색의 벽을 무너뜨리고 야구도, 미국도, 그리고 우리의 삶도 즐겁고 보람되게 만든 것이다.
그 10년 전 재키 로빈슨 등장 50주년 기념식 때는 클린턴 대통령이 연설했고 메이저 리그 협회 총재 버드 셀리그가 재키 로빈슨의 등번호 '42'를 메이저 리그 전체 팀에서 영구히 은퇴시키기로(그리하여 어느 선수도 이 번호를 사용할 수 없다) 했다는 결정을 발표했었다. 이날 LA 다저스는 선수 전원이 '등번호 42'를 입고 나와 라이벌인 샌디에고 파드레스를 눌렀다.
'42'라는 영화를 어제 텔레비전으로 보았다. 해리슨 포드가 로빈슨을 보살폈던 다저스 야구단 단장으로 나왔다. 로빈슨 역은 최근 사망한 채드윅 보스먼이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트럼프가 정말 나쁜 사람이란 생각을 했다. 인종차별주의자를 미국 대통령으로 뽑은 유권자들도 문제가 많다. 인종주의 선동으로 나치라는 괴물이 탄생했는데, 미국 백인들이 흑인들에 대한 분노로 트럼프를 뽑았다. 민주주의의 한계이다.
미국 최초의 흑인선수 재키 로빈슨을 보면서 트럼프를 생각했다.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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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9-07, 15: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