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2일 조갑제닷컴
이틀 전 TV조선의 트롯100년 어워즈 행사에선 상이 쏟아졌다. ‘트롯 100년 남자 베스트 가수상’은 진성, 조항조, 박현빈, 신유가 수상했고, 베스트 여자 가수상엔 금잔디, 홍진영, 김용임, 김혜연이 뽑혔다.
‘트롯 100년 작가상’을 받은 작곡가 정풍송 선생의 묵직한 수상 소감도 화제가 됐다고 조선일보는 평했다. 정풍송 선생은 '석별' '옛생각' ‘허공’ ‘미워미워미워’ ‘갈색추억’ ‘웨딩드레스’ '가버린 당신' 등 2000여 곡이 넘는 노래를 작곡한 원로인데, 패티김 이미자 최희준 조영남 조용필 인순이 최진희 김연자 설운도 주현미 등 당대 인기가수들이 그의 노래를 불렀다.
작가상 시상에 나선 ‘전국노래자랑’의 MC 송해 씨는 "늘, 아플 때나 외로울 때나 어려울 때나 불렀던 우리 트로트가 금년으로 100년을 맞았다고 한다. 내 생년월일이 1927년 4월 27일인데 트로트 역사와 거의 같은 세월을 지내왔구나 싶다”고 했다.
정풍송 선생은, 뼈 있는 한 마디를 했다.
“감사합니다. 너무나 험난했던 우리나라였습니다. 일제 탄압의 고통 속에서나 불법남침의 6.25 전쟁에서 버틸 수 있던 건 대중가요 역할이 컸던 것 같습니다”고 하더니 이렇게 당부하였다.
“그만큼 앞으로 역할도 큽니다. TV조선에서 대중가요를 다시 조명해 주고 앞으로 길을 여는 데 큰일 해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 대중가요가 앞으로 더욱 발전해서 우리 대한민국이 완전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자리 잡는 데 같이 이바지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더욱 노력하겠습니다”고 했다.
고달픈 인생의 응원가였던 트롯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는 무기일 수 있다는 암시였다. 작년 그는 조국 사태를 비꼰 '빗자루'를 발표, 문재인 정권의 위선을 풍자하였다. 경남 밀양 출신인 그는 작사가로도 유명한데, 히트 송이 가장 많은 박시춘 선생과 동향이며 우리나라 최고의 가곡 작곡가 김동진 선생의 제자이기도 하다. 2000년에 김동진 선생은 월간조선 인터뷰에서, 기자가 "후배들 중 최고의 작곡가는 누구입니까"라는 질문에 정풍송 이름을 댔다.
"후배라기보다 내 제자 중에 이수인이라고 있는데 아주 유망했지. 그리고 대중음악 쪽이지만 정풍송이도 노래가 품위 있고 좋아."
나는 근년에 정풍송 선생을 몇 번 만나 오랜 대화를 가졌다. 그와 한 인터뷰가, 조갑제TV에도 올라 있다. 건장한 체격답게 정신이 건강한 분이고 정의감이 대단하다. 시국에 대한 울분을 노래로 표현한다. 정 선생은, 나훈아가 김정은이 불러도 북한에 가지 않는 점을 들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노래 기술에 대한 칭찬보다 인간됨에 대한 칭찬이 더했다. 희대의 히트송인 '허공'도 민주화를 갈망하는 가사였는데 검열을 피하기 위하여 한 단어를 바꿨다고 한다. 아래 가사에 나오는 '그대'는 원래 '민주'였다고 한다.
정풍송 선생은 가수로는 패티김을 가장 높게 평가한다. 무슨 노래이든지 그가 부르면 명곡이 된다면서 국력이 강한 시절이었으면 세계적 가수가 되었을 것이라고 극찬하였다.
///////////////////////////////////////////
허공(노래 조용필, 작사 작곡 정풍송)
꿈이었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아쉬움남아
가슴 태우며 기다리기엔
너무나도 멀어진 그대
사랑했던 마음도
미워했던 마음도
허공속에 묻어야 만될
슬픈옛 이야기
스쳐버린 그 날들
잊어야 할 그 날들
허공속에 묻힐 그 날들
잊는다고 생각 하기엔
너무나도 미련이 남아
돌아선 마음 달래 보기엔
너무나도 멀어진 그대
설레이던 마음도
기다리던 마음도
허공속에 묻어야 만될
슬픈옛 이야기
스쳐버린 그 약속
잊어야 할 그 약속
허공속에 묻힐 그약속
////////////////////////////////////////////////
*작년 문무대왕(조갑제닷컴 회원)의 글 '정풍송과 빗자루'
풍자가요(諷刺歌謠) "빗자루"가 국민들의 애창곡이 되어 들불처럼 번져가고 있다. 돌개바람처럼 휘몰아치고 있다. 조국과 정경심 부류의 부패의혹투성이 쓰레기군상(群像)들에게 폐부(肺腑)를 찌르고 있다. "빗자루"는 이 시대의 위대한 음악가 정풍송(鄭豊松) 선생 작곡, 작사(作詞) 정욱(정풍송의 다른 이름)에 팝페라 가수 "인치엘로"가 노래했다.
가사의 줄거리는 "표리부동한 위선자들이 국민을 속이며 나라를 거덜내고 국가의 안전보장을 위태롭게 하는 무능하고 파렴치한 부패정권을 빗자루로 싹싹 쓸어내어 피땀흘려 이룩한 자랑스런 대한민국을 후손들에게 물려 주자"로 일관된 세태풍자 가요이다. 작곡가 정풍송 선생은 "김진TV"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나라돼 가는 꼴이 너무 걱정되고 염려스러워서 위정자들에게 경종을 울리고자 가요를 제작했다"고 밝혔다. "나라가 이래 돼서야 되겠는가? 하는 국민들의 우려와 걱정을 노래가사에 담았다"고 했다.
"국민들이 가지는 보편적인 상식에 반하는 권력자들의 횡포를 용납할 수 없어서 용기를 냈다"고도 했다. "한 나라의 국무위원쯤 되면 국민들이 존중하고 인정하며 따를 만한 덕망과 인품을 갖춰야 하는데 범죄의혹이 잡범수준의 형편없는 자를 장관으로 임명하고 그런 사람을 비호하며 감싸고 도는 패거리들의 몰상식한 짓거리가 너무 한심하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이에 동조하는 사이비 예술나부랭이들이 참된 예술가들의 자존심을 짓밟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의문이 간다.
"가족사기단이란 언론의 지적이 나올 정도에다 조국의 부인,동생,조카 등 3명이 구속됐는데도 서초동에 몰려가서 "조국만큼 깨끗한 사람 어디 있느냐" 며 헛소리나발 불어대는 정치인, 작가, 가수들은 과연 무슨 양심과 자존심으로 문학을 팔고 음악을 팔아대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고도 했다.
"아무리 세상이 썪어 빠지고 지식인이 타락하고 권력의 비굴한 노예가 되어도 그래도 양심과 정의감에 불타는 예술인이 살아 있어야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다"고도 했다. 인기팝페라 "인치엘로"는 이태리에서 제대로 음악공부를 했고 장래가 기대되는 젊은 음악도들이라고도 소개 했다. 정풍송 선생의 이같은 고발과 발언을 들으면서 느껴 진 것은 그래도 이 난장판 세상에 양심과 정의감에 충만한 원로음악인이 건재하고 있다는 든든한 버팀목에 대한 기대가 솟아 나왔다. 조국 전 장관을 마치 의인이요, 개혁의 적임자인 것처럼 헛소리를 나불거려 된 유시민, 박지원, 소설가 이○수,황○영,공○영,가수 이○미,개그맨 노○렬, 그리고 청문회와 국정감사장에서 조국호위 무사를 자처한 표○원,이○희,김○민,박○민,박○미 등의 국회의원 등도 "빗자루"를 노래 듣고 부를까?
정풍송 선생은 경남 밀양출신이다. 해병대 164기 출신으로 청룡부대 제1진으로 월남전에 참전한 국가관이 투철한 역전의 용사다. 젊은 시절 한때 부산MBC에서 근무한 방송인이자 음악가이다. 음악에 대한열정과 집념을 크게 이룩하고자 서울로 올라 와서 음악인생의 새로운 장을 개척했다. 2000여 곡의 노래를 작곡,작사하기도 했다. 정풍송 선생이 작사,작곡한 작품 가운데는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애창곡이 수두룩하다. 조용필의 "허공""미워미워미워",한상일의 "웨딩드레스",조영남의 "옛생각", 홍민의 "석별", 한예진의 "갈색추억", 김연자의 "진정인가요"등이 있다.
김연자의 "진정인가요"는 "TV조선"의 "미스트롯"에서 재조명돼 무려 37년만에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 난세(亂世)에 정풍송 선생 같은 위대한 음악인이 건재함을 다행하게 생각한다. 정풍송 선생의 음악공간이 더 확대되고 그의 작품이 국민들로부터 사랑받기를 기원한다. "빗자루"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거짓말 없는 정직한 세상
우리 모두 꿈꾸던 세상
자유와 평등 공정과 정의
온 천하에 약속했었지
피땀 흘려 목숨바쳐
지켜왔던 우리의 조국
영원토록 지켜가야 할
자유민주주의 조국
사랑하는 우리 후손들
길이길이 살아 갈 이땅
건강하게 물려줘야지
오염투성이들은 못 해
하나뿐인 우리의 조국
오직 오직 영광일 뿐
표리부동 위선자들
쓰레기더미 궤변가들
빗자루로 모두 모두 싹싹싹
/////////////////////////////////////////////////////////
옛생각
노래 조영남
작사 : 강상숙
작곡 : 정풍송
뒷동산 아지랑~이
할미~꽃 피면
꽃댕기 매고 놀~던
옛 친구 생각난다
그 시절 그리~워
동산에 올라보면
놀던 바위 외롭고
흰구름만 흘러간~다
모두 다 어디갔나
모두 다 어디갔나
나 혼자 여기 서서
지난 날을 그~리~네
그 시절 그리~워
동산에 올라보면
놀던 바위 외롭고
흰구름만 흘러간~다
모두 다 어디갔나
모두 다 어디갔나
나 혼자 여기 서서
지난 날을 그~리~네
.
////////////////////////////////////////////////////////
▶ 이하 ’2020 트롯 어워즈' 수상자 명단
△ 신인상=임영웅 송가인△ 남자 베스트 가수상=진성 조항조 박현빈 신유△ PD가 뽑은 라이징 스타상=영탁△ 트롯 100년 작가상=정풍송△ 여자 베스트 가수상=김용임 김혜연 금잔디 홍진영△ K트롯테이너상=임영웅△ 글로벌 스타상=임영웅△ 10대가 뽑은 트롯 가수상=임영웅△ 트롯 100년 가왕상=송대관 현철 태진아 김연자 김수희 하춘화 남진 나훈아 설운도 주현미 장윤정△ 디지털 스타상=임영웅△ 인기상=임영웅 송가인△ 공로상=남진△ 트롯 100년 심사위원 특별상=장윤정△ 트롯 100년 대상=이미자
////////////////////////////////////////////////
작년 가을에 나는 제대 45년만에 경상북도의 산 꼭대기에 있는 공군 부대를 찾아갔다. 내가 3년 동안 졸병으로 근무하였던 곳이었다. 1219m의 山頂에 있는 부대 모습에서 거의 반 세기 전의 추억을 되살리니 정훈희의 '안개'부터 떠올랐다. 이 노래를 1000번 이상 들었다. 점심 시간, 안개와 구름이 산 허리를 휘감고 도는 가운데서 지겹게 울려 퍼지던 청아한 목소리! 우리 부대엔 그 무렵 유행하던 정훈희의 노래를 수록한 레코드 판밖에 없었던 것이다. 안개 속에서 수도 없이 들은 '안개'는 그러나 부르기는 너무 어렵다.
1985년에 이미자 씨를 인터뷰하였더니 정훈희를 높게 평가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릴리 마를렌(Lili Marleen)이란 제목의 독일 노래는 사연이 많다. 이 노래의 가사는 1차세계 대전중이던 1915년에 독일사람 한스 라이프가 지었다. 함부르크 출신의 교사였는데, 軍에 징집된 후에 썼다. '릴리 마를렌'은 자신의 여자 친구 두 사람의 이름을 합성한 제목이다. 詩의 原名은 '등불 아래 소녀'였는데 '릴리 마를렌'으로 더 유명해졌다.
1939년 이 노래는 랄레 안델젠이란 여자 가수에 의하여 레코드로 취입되었다. 작곡가는 노르베르트 슐체.
1941년 독일군대는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하여 베오그라드에 독일군 방송국을 설치했다. 이 방송국에 근무하는 한 장교가 비엔나로 휴가를 나오게 되었는데 레코드판을 사오라는 부탁을 받았다. 장교는 中古 레코드 가게에서 '릴리 마를렌'을 사 가지고 왔다. 이때까지 이 판은 겨우 700장이 팔렸을 뿐이었다.
베오그라드의 독일군 방송은 레코드판이 많지 않아 '릴리 마를렌'을 자주 틀었다. 괴벨스가 이끌던 나치 독일의 선전부는 이 노래가 厭戰(염전) 분위기를 퍼뜨릴 수 있다고 판단, 방송금지 조치를 취하였다. 그랬더니 나치, 이탈리아 등 主軸國(주축국)의 병사들이 방송국에 항의하기 시작했다. 지중해 주변에 배치된 부대의 병사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싸우던 독일의 롬멜 軍團 병사들도 '릴리 마를렌을 듣고싶다'고 방송국에 요구했다. 롬멜 장군도 이 노래를 좋아하여 베오그라드 방송국에 '매일 듣도록 해달라'고 했다.
이렇게 되니 괴벨스도 내키지는 않았지만 생각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베오그라드 방송은 아예 밤 9시55분 프로의 로고 송으로 박아버렸다. 연합군 병사들도 독일방송을 듣다가 이 노래를 좋아하게 되었다. 이탈리아에서 작전중이던 연합군은 가사를 바꿔 불렀다. 독일출신으로 미국에서 활약중이던 마르렌 디트리히도 이 노래를 불렀다. 이 여배우의 이름이 곡목과 발음이 비슷하여 릴리 마를렌을 디트리히가 처음 부른 것으로 오해하는 이들이 많다. 여러 가수가 불렀지만 마르렌 디트리히가 부른 '릴리 마를렌'이 가장 유명하다.
'뉴렌베르크 재판'이란 1960년대 영화엔 디트리히가 독일인으로 출연하고 맥주집에서 독일사람들이 '릴리 마를렌'을 합창하는 장면이 있다.
미국의 음반회사 RCA는 1944년에 페리 코모를 시켜 이 노래를 취입했다. 캐나다의 경보병 특수여단은 '릴리 마를렌'을 느린 행진곡으로 사용하고 있다.
릴리 마를렌을 부른 최초 가수인 랄레 안델젠은 전쟁중엔 공개장소에서 이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되었다. 戰後 그녀는 사라졌다가 1959년 '네버 온 선데이'라는 영화의 주제곡(原曲은 멜리나 메르쿠리가 불렀다)을 독일어로 부르면서 인기를 얻었다. 안델젠은 1972년 67세에 비엔나에서 죽었다. 그가 묻힌 랑게욱에는 '릴리 마를렌'을 기념하는 안델젠의 동상이 서 있다.
릴리 마를렌은 경쾌하면서도 哀調를 띄고 있는 노래이다. 한 일본인 작가는 '릴리 마를렌을 찾아서'라는 實錄을 쓰기도 했다. 릴리 마를렌은 2차 세계대전을 대표하는 노래이다. 敵과 我軍이 같이 불렀기에. youtube.com으로 들어가면 여러 가수들이 부른 '릴리 마를렌'이 올라 있다.
*릴리 마를렌이란 노래제목과 혼동되기도 한 마르렌 디트리히는 1992년에 미국에서 91세로 죽었다. 가수와 여배우를 겸한 全天候 예능인이었다.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최초의 독일 배우였다. 디트리히는 민주주의가 滿開하였던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를 체험한 예술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히틀러의 反유대주의를 증오하였다. 1939년에 미국시민이 된 이후엔 연합군 위문공연을 많이 다녔다. 위험한 戰線에 왜 그렇게 자주 가느냐는 질문에 대하여 디트리히는 '그것이 고귀한 행동이므로...'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릴리 마를렌을 독일어로 부른 것도 연합군의 反나치 심리전을 돕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미국 대통령이 주는 '자유의 메달'을 받았는데 그녀는 이를 가장 큰 영광으로 생각했었다고 한다.
한눈에 보는
베스트 기사
- 1 권양숙이 딸을 위해 건넨 13억 돈상자는 환치기 방식으로 미국으로 송금되었다!
- 2 北김여정 입에서 '삶은 소대가리' 욕설 안 나와서 '로우 키(low key)'인가
- 3 ‘답변이 제한됩니다’는 하나마나 한 말장난
- 4 '암살자(들)'의 가장 궁금증…유해진 박해일 이민호, 왜 출연했나?
- 5 북한군 두 포로 공개- 왜 잔인하고 무책임?
- 6 '부캉이'가 인기더니 결국 신격화?
- 7 우리의 아들인 국군 장병 3명이 다친 사고입니다
- 8 잠시 韓이 싫었지만 이젠 韓을 위한 변명을
- 9 "나 자살하지 않았어. 살해됐어”
- 10 지금 한동훈에게 필요한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