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30일 법무장관을 포함한 부분 개각과 함께 청와대 비서실장, 정책실장, 민정수석의 교체 발표가 있었다. 이걸로 당장 국면전환은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완전히 고장난 청와대의 국정운영 기능을 땜질 인사만으로 고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문제를 다루는 방식과 과정을 보면, 청와대가 하는 일이 어떻게 저렇게 어설프고 허술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많은 대통령 참모들 가운데 대통령이 감당해야 할 리스크를 걱정하고 더 지혜로운 해법을 건의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
물론 문 대통령의 성격과 국정운영 스타일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도 있을 것이고, 참모들의 함량 미달과 오판에서 생긴 문제도 있을 것이다. 이 기회에 청와대의 국정운영 시스템에서 드러난 근본적 문제를 한번 짚어보고자 한다. 대통령의 선택이 옳은가 그른가를 따지려는 게 아니다. 청와대에서 2년 이상 외교안보수석을 해본 사람의 입장에서, 참모 기능의 실패 원인을 한번 살펴보려는 것이다.
가장 큰 실수는 뭘까? 윤석열 징계에 대통령을 끌어들인 것이다. 대통령이 내심으로는 누군가 윤석열을 찍어내는 악역을 맡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더라도, 징계 결정에 대통령이 직접 결제를 하게 만들어서 행정법원의 소송 당사자로 만들었다는 것은 어처구니 없는 실수다.
질 가능성이 있는 소송에 대통령을 끌어들이는 위험천만한 결정을 마치 귀신에 홀린 듯 너무 경솔하게 밀어붙였다. 검찰총장 징계를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결재 없이는 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에 그렇게 했겠지만, 법적 절차적으로 그 방법밖에 없었다면 징계를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찾았어야 했다. 다른 방법도 없다면 윤 총장 임기가 끝나기를 기다렸어야 했다.
그런데 7개월도 기다릴 여유가 없어 생이빨을 뽑아내듯 윤석열을 찍어내려 했다. 대통령을 소송당사자로 만들어야 할 만큼 절박한 사정이 있었다면, 그 의도를 교묘하게 위장하거나 숨길 방도를 찾았어야 되는데, 모든 국민들이 다 알도록 광고해버렸다.
현직 대통령이 자기가 임명한 검찰총장에게 패소할 위험을 무릅쓰고 징계를 강행하면 무식한 국민들도 ‘대통령이 도대체 무슨 죽을 죄를 지었기에 검찰 수사를 피하기 위해 저런 무리수를 둘까’ 하는 그런 의심을 갖게 된다. 대통령을 검찰수사의 칼날에서 보호하기 위한 과잉충성의 발로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은 대통령에게 오히려 누를 끼치는 불충을 저지른 것이다.
국민의 눈에는 대통령의 범법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자충수로 보일 수밖에 없다. 국민을 개돼지로 취급하면 안 된다. 제왕적 대통령제 하에서 내각과 청와대 참모들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대통령을 각종 통치 리스크에서 보호하고, 그게 실패할 때 damage control 하고, 필요하면 대통령을 대신해 총알받이가 되는 것이다.
이번 윤 총장 징계 건을 처리하는 방식은 장관과 청와대 참모들이 대통령을 보호하기는커녕 도리어 외통수에 몰아넣고 똥바가지를 뒤집어씌운 건데 그런 재앙이 실제로 일어날 때까지 제동을 걸고 막는 장치가 하나도 없었다.
우리가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에 살고 있지만, 대통령이 위험에 처했을 때 내각과 참모들이 온몸을 던져서 보호할 생각을 하지 않고 물귀신처럼 같이 죽자고 대통령을 사지로 끌고 가는 것은 난생 처음 본다.
정부 여당에 김정은을 위해서 총폭탄이 되겠다는 사람은 차고 넘치는데, 文을 위해서 총알받이가 되겠다는 진정한 충신은 눈에 띄지 않는다. 코로나 백신을 얼마나 빨리 김정은에게 갖다 바칠까 궁리하는 장관은 있는데 우리 국민들에게 백신을 얼마나 빨리 구해올지를 고민하는 장관은 왜 안보일까.
추미애가 윤석열을 몰아내려는 시도 자체가 상식이 통하는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애초에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지만, 더 기가 막힌 일은 자기가 총대 메고 저지른 일은 자기 혼자 책임지고 장렬하게 전사하고 말 일이지, 대통령에게 그 파편을 뒤집어씌운 것이다. 文이 뒤에서 사주하고 응원했더라도 대통령을 책임선상에 끌어들인 것은 참모로서 기본이 안 되어 있는 것이다. 추미애는 물러났지만 대통령의 권위에 입힌 그 치명적 손상은 어떻게 회복할 건가.
내각과 청와대 참모들의 대통령 보좌 기능이 고장난 근본 원인은 뭘까.
가장 큰 원인은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막는 데 필사적으로 매달리다 보니, 다른 것은 아무것도 눈에 보이지가 않고 균형감각과 방향감각을 완전히 상실했다는 점이다. 윤석열을 찍어내는 게 아무리 중요하고 급해도, 거기에 수반될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강행할 만한 일은 못 된다는 걸 아무도 판단하지 못했거나, 했더라도 대통령에게 이것을 솔직하게 보고하고 설득하지 못한 것이다.
대통령의 퇴임 후 안위와 관련된 일이라서 말하기 조심스러웠을 수는 있겠지만, 비서실장, 정무수석, 민정수석이 직언을 못했다면 이것은 직무유기다.
그런데 박근혜, 이명박 대통령을 감옥에 보낸 기준을 文에게 적용하지 못하도록 원천 봉쇄하는 게 가능하겠는가.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낸 것은 미래의 대통령을 감옥에 보낼 기준을 설정한 것이다.
전직 대통령에게 적용한 기준이 자기에게도 적용되는 건 당연한 이치인데 이걸 피하겠다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겠다는 뜻이다. 이게 윤석열만 찍어낸다고 되겠는가. 양심을 가진 모든 검사, 판사를 모조리 다 찍어내야 하는데 그게 쉬운 일이겠는가.
진정한 충신이 있었다면 대통령에게 감옥에 갈 때 가더라도 지금부터라도 당당하게 정도를 걷도록 건의했을 것이다. 징계가 실패하자 국회에서 탄핵하자는 의원들이나, 검찰 수사권을 모두 빼앗아버릴 법을 만들겠다는 사람들은 충신이 아니라 대통령의 범법 사실을 확인시켜주고 감옥에 반드시 보내기 위해 발악하는 역신들이다.
이 사람들이 정말 대통령의 퇴임 후 안위를 걱정한다면 전직 대통령이 너무 고생하지 않도록 전용 감옥을 건립하는 게 더 현실적이지 않겠는가. 운동도 할 수 있고 낚시하기 좋은 무인도 같은 곳에 별장 같은 감옥을 만들어서 조용히 지내게 해주는 발상. 전직 대통령 예우 차원에서 국민들도 이해를 해 줄 것이다.
대통령 보좌 기능이 고장난 두 번째 원인은, 윤석열이라는 폭탄을 제거할 방법으로 추미애라는 더 큰 폭탄을 선택한 것이다. 이건 위험천만한 발상이었다. 추미애라는 폭탄이 무대에 뛰어든 순간부터 어디로 튈지 예측이 불가능해졌고 그 광기를 통제하기도 어려워졌다. 청와대 참모들이 나서더라도 대통령에 대한 리스크 관리와 damage control을 위한 보좌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여지가 줄어든 것이다.
추미애가 겨냥한 타깃만 폭파하면 다행인데, 타깃은 피해가고 보호하려던 文이 치명상을 입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자업자득이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대통령인들 추미애가 이렇게까지 깽판을 칠 줄이야 알았겠나. 사람을 잘못 보고 잘못 쓴 것인데 이것도 문 대통령의 불행이고 불운이다.
보좌기능이 고장난 세 번째 원인은 청와대가 비상구도 퇴로도 없는 막다른 골목으로 말려들어가는 데 있다. 나라든 개인이든 큰일을 도모할 때는 의도한 대로 풀리지 않을 것에 대비해 항상 비상구나 퇴로를 마련해 놓아야 하는데, ‘윤석열 찍어내기’라는 엄청난 일을 꾸미면서 출구를 만들어 놓지 않은 게 치명적 실수다.
지하 나이트클럽에 불이 났는데 비상구가 없으면 옆에서 어떤 조언을 해줘도 빠져나오는 데 아무 도움이 안 된다. 그런데 확증편향이 심한 사람일수록 자기가 하는 일이 잘못될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고 대비책 마련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확증편향에 빠진 사람들만 모여서 집단사고에 빠져있으면 집단 탈출한다는 게 집단 자살이 될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가 망쳐놓은 일들 가운데 출구가 없어 진퇴양난에 빠진 사안이 이뿐이 아니다. 외교안보 분야에서 일본군 종군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문제가 대표적이다. 일만 저질러 놓았지, 출구를 찾지 못해 몇 년째 헤매고 있는 것 아닌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윤석열을 반드시 몰아내겠다는 확고한 의지와 자신감만 있었지, 만약 법원이 대통령 편을 들어주지 않고 윤석열 편을 들 때는 어떻게 할 것인지 대비책을 마련해 둔 것 같지 않다.
뜻대로 안되면 대통령이 사과해야 할 상황이 되고 그렇게 되면 완전 스타일 구기게 된다는 걸 미리 계산했다면, 대통령을 외통수로 몰아넣는 그런 어처구니 없는 선택을 함부로 했을 리는 없다. 희망사항과 실제 일어날 일을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을 참모로 쓰면 낭패를 예약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만약 우리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어떡하지?’라고 물으면 ‘그럴 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반드시 이깁니다’라는 소리만 하지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 세상에서 절대 일어나면 안 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일이 현실 세계에서는 얼마든지 일어난다는 단순한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참모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다.
끝으로 대통령의 판단력에 문제가 있으면 아무리 유능한 참모가 있어도 별 소용이 없다. 특히 리더가 지적 자폐 증세가 있으면 듣고 싶은 얘기만 들리고 듣기 싫은 말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중요한 결정을 할 때 한 가지 측면에만 꽂혀서 함몰되면, 다양한 의견을 들어보고 균형된 판단을 내리는 기능이 고장나기 쉽다. 탈원전 정책 같은 것이 바로 그런 사례다.
문 대통령이 윤석열 징계안을 결재하기 전에 법원에서 뒤집힐 경우 어떤 리스크가 있는지, 출구전략은 뭔지, 징계 외에 대안은 없는지 이런 문제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을 구해보고 치열하게 토론하고 심사숙고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한 가지 생각에만 함몰된 나머지 종합적 판단능력을 상실한 것이다.
대통령이 상황을 완전히 잘못 짚고 결과적으로 세상의 조롱거리가 된 것은 고소해 할 일이 아니다. 국민으로서 창피하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대통령 위해 총알받이가 되겠다는 참모가 하나도 없다
- 조샛별(조갑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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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1-02, 1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