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의 ‘양민학살’은 부정되었다!

全斗煥 반론, “이게 과연 판사가 쓴 판결문인가”(下)
-“지방의 민심에 영합한 판결을 선고함으로써 개인적 화(禍)를 면하게 되었지만, 그로 인하여 이 나라는 역사 왜곡이라는 큰 화를 입게 되었다.”
 -1심 재판부 위협사격만 인정, 시민학살은 판단 안해. 국방부 조사 사실상 부정

“‘헬기 사격 없었다’는 진술을 쓰레기를 (분리) 재처리하듯 유죄 증거로 사용”

  

 전 前 대통령 측 변호인은, 판사가 군인들의 진술을 “쓰레기 (분리) 재처리하듯 해 유죄의 증거로 사용했다”며 분개했다. 판사는, 군인들 진술 중 ‘헬기 사격이 없었다’는 진술임에도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목격자들의 진술에 부합하는 부분이 있으면 이것만 떼내어 유죄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변호인은 “피고인에게는 쓸모없는 증거지만 그중에 쓸 만한 부분이 있으면 검사가 주워서 사용할 수 있다는 판단”이라며 이렇게 항변한다.

 <예를 들어 전교사 부사령관 김기석 장군이 육군참모차장 황영시 장군으로부터 무장헬기를 동원하여 시위를 강경 진압하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자신은 그 지시를 거부하고 대화를 통해 수습하였다고 한 진술은 헬기 사격이 없었다는 진술입니다. 그런데 원심은 김기석의 진술 중 무장헬기를 동원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진술 부분은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증거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원심이 김기석의 진술과 공소사실이 부분적으로 부합한다고 한 판단은 마치 ‘발가락이 닮았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전두환 前 대통령 측 항소이유서(초안) 中

 전두환 측은, “한 사람의 진술은 전체적 맥락에서 진술의 취지를 발견해야 마땅한데 이를 무시한 채 진술에 사용한 일부 용어가 유사하다고 하여 공소사실에 부합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악의적 사실 왜곡”이라면서 ‘헬기조종사들이 500MD 헬기의 무장사실을 자인(自認)한 진술이 헬기 기총소사에 부합한다’고 판단한 1심 판단을 강하게 규탄했다. 헬기 조종사들의 진술은 무장한 사실을 ‘자인’하면서 기총소사는 강경하게 부인하는 내용이었다. 기총소사에 대한 ‘적극적 항변’을 기총소사를 입증하는 것으로 조작했다는 뜻이다.

 1심 재판부가 ‘쓰레기 재처리하듯’ 선별적으로 유죄의 증거로 사용한 헬기조종사들의 진술은 취지가 ‘사격부인’이었다. 이들이 과거 조비오 신부를 서울지검에 명예훼손죄로 고소하면서 제출한 고소장에 무장헬기의 출동 경위, 광주에서 수행한 임무 내용, 헬기 사격이 없었다는 사실을 설명한 내용이다. 1989년 2월 MBC가 ‘어머니의 노래’에서 조비오 신부의 헬기사격설을 방영하자 당시 광주에 출동했던 헬기 조종사들이 일제히 조비오의 인터뷰가 거짓말이라며 진술 철회를 요구하고 끝내 고소에 이르렀었다. 헬기조종사들은 당시 ‘헬기 사격이 없었다’는 사실을 주장하기 위해 500MD 헬기 무장에 대해 설명했는데, 1심 재판부는 이 진술 취지를 반대로 뒤집어 헬기 사격에 부합하는 증거로 판단한 것이다.

  

 “제정신을 가진 사람의 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

  

 국방부 특조위는 과거 여러 차례 국가조사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새로운 증거를 찾지도 못했고, 헬기 사격을 했다는 사람도 총탄에 맞은 사람도 확인하지 못했지만 “명령이 있었으므로 헬기 사격이 있었다”는 괴상한 논리를 폈는데, 1심 재판부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 ‘명령’에 대한 진술에서도 재판부는 진술자의 취지를 무시하는 ‘왜곡’을 계속했다.

 1심 재판부는 ‘황영시 육군참모차장이 김기석 전교사 부사령관에게 무장헬기를 동원하여 시위대를 진압하라고 지시했다는 진술이 헬기 기총소사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는데 이는 ‘김기석이 황영시로부터 무장헬기 동원 지시를 받았지만 면전에서 그 지시를 거부하고 무장헬기를 동원하지 않았다’는 진술의 일부분이었다.

 판사는 또 광주사태 당시 506항공대장 김동근의 증언 중 ‘500MD 헬기에 탄약을 적재했다’ ‘보는 각도에 따라 7.62mm 기관총의 총구에서 섬광을 볼 수 있다’는 진술이 헬기 기총소사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김동근 506항공대장은 1995년경부터 일관되게 헬기 사격이 없었다고 진술해왔고, 이 재판정에서도 헬기 사격이 없었다고 증언한 사람이다.

 김순현 준장이 1980. 5. 22. 이정부 103항공대장에게 AH-1J를 이용해 광주천에 위협사격을 지시한 점, 같은날 김동근 506항공대장에게 전남도청 옥상의 대공(對空)화기 진지를 제압하라고 지시한 점도 판사는 헬기 기총소사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김순현 준장의 사격 지시는 이정부·김동근 항공대장이 ‘사격 지시까지 받았지만 거절했다, 헬기 사격은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내용의 일부였다. 1심 재판부는 이 역시 ‘헬기 사격이 없었다’는 진술의 취지를 ‘헬기 사격에 부합하는 증거’로 뒤바꿔 판단했다. 전 前 대통령 변호인은 재판부의 이런 판단에 “제정신을 가진 사람의 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판사는 개인적 禍를 면했지만 나라는 역사왜곡의 禍를 당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쟁점은 1980. 5. 21. 광주 시내에서의 헬기 사격 여부에 한정”된다면서도 “1980. 5. 27. 전일빌딩 등에 대한 헬기 사격도 그 이전에 헬기 사격이 있었는지 여부에 관한 주요한 간접 사정”이라고 판단했는데 27일의 상황을 21일 상황의 간접 증거로 보았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서도 전 前 대통령 측은 “합리적 근거가 없는 자의적 추론”이라고 반박했다.

 1심 재판부는 27일 헬기사격설의 유력한 증거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의 전일빌딩 탄흔 감정 결과를 들었다. 국과수는 감정결과서에서 “(전일빌딩 10층 방송실 내에서 발견된 탄흔은) 호버링 상태의 헬기에서 발사되었을 가능성이 유력하게 추정되나 탄흔의 크기와 탄흔의 생성형태가 상충하는 현재의 결과만으로는 사용 총기의 종류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논단할 수 없음”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재판부는 국과수 감정 결과에 내처서 “UH-1H 헬기가 마운트에 거치된 M60 기관총을 이용해 전일빌딩에 대하여 사격을 실시하였음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전일빌딩 옥상에 대공화기가 설치되어 있다는 첩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작전상황은 전남도청을 점령하기 전 전일빌딩에 대한 빠른 점령이 필요한 이유를 보여주고, 실제로 계엄군은 전일빌딩을 점령한 뒤 약 35분이 지나 전남도청을 점령하였다”고 판단했다. 전일빌딩 옥상에 설치된 대공(對空)화기의 제압을 위해 UH-1H 헬기 사격이 필요했다는 뉘앙스다. 하지만 국과수 감정인은 전일빌딩 옥상에서 탄흔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광주투입 조종사들은 헬기가 공중에서 사격했을 때 절대로 전일빌딩의 그런 탄흔(彈痕) 분포가 나올 수 없다고 실감 있게 증언하였으나 배척되었다.

 전두환 前 대통령 측은 판결문의 “삼인성호(三人成虎·여러 사람이 우기면 거짓말도 꾸밀 수 있다)의 잘못을 범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문장을 인용하면서 “여러 사람이 하는 말이라고 하더라도 그 말만 듣고 진술을 판단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고는 비겁하게도 권세에 눌려 거짓을 추종하는 길을 선택했다. 이로 인하여 원심은 그 지방의 민심에 영합한 판결을 선고함으로써 개인적 화(禍)를 면하게 되었지만, 그로 인하여 이 나라는 역사 왜곡이라는 큰 화를 입게 되었다”고 비탄했다.

 전 前 대통령 측은 “광주사태에 관한 재판을 광주에서 하게 한다는 것은 대놓고 불공평한 재판을 하겠다는 것”이라며 관할 이전을 신청했다. 광주지검은 2019년 12월 3일 1심 판결에 대해 “형량이 지나치게 가볍다”며 광주지법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국방부의 ‘양민학살’은 부정되었다!


 이 판결문이 계엄군에 유리한 측면도 있다. 

 재판부는 판결문 서두에 사건의 쟁점을 정리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 사건 회고록 중 쟁점 부분에서는 피해자(注-조비오)의 주장을 ‘헬기 기총소사’가 있었다는 것으로 기재하였으나, 피해자의 진술은 헬기에 의한 사격에 중점이 있고 피고인(注-전두환)도 헬기에 의한 사격 사실 자체가 없다는 취지로 주장하고 있으며, 이 사건 회고록의 전체 취지도 피고인의 주장과 같으므로, 적시의 대상이 되는 사실은 헬기 기총소사가 아닌 헬기 사격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보아야 한다.> ―전두환 前 대통령 사자명예훼손 판결문 中

 판사는, ‘헬기 사격이 있었다면 엄청난 희생이 있었을 것’이라는 전 前 대통령 측의 반론이 “피해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위협사격을 배제한 채 시민들을 향해 조준 사격하는 것을 전제로 주장하는 것이어서 그 전제가 잘못되었다”며 배척한다. 1995년 검찰수사결과는, 전 前 대통령이 혐의가 없다고 인정한 대부분의 근거가 “헬기사격이 있었다면 실제 대규모의 피해가 발생하였으리라는 전제에 터 잡은 것이므로 위협사격의 가능성을 배제한 것이다”라면서 이 사건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고 판단한다. 판사가 갑자기 사건의 쟁점을 ‘인명살상 사격’이 아니라 ‘위협사격’으로 이동시켰다.

 1심 재판부는 “피해자가 목격한 바와 같이 1980. 5. 21. 광주에 무장상태로 있었던 505항공대 또는 506항공대 소속의 500MD 헬기가 위협사격 이상의 사격을 하였음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했을 뿐 국방부 특조위가 주장해온 ‘집단살해’ ‘양민학살’에 대해서는 판단하지 않았다. 국방부 특조위는 ‘헬기 사격’을 ‘국군에 의한 국민 학살’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시민을 향한 조준 사격’이 아닌 ‘위협사격’에 한정한 헬기 사격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판사는 국방부 특조위 조사결과를 참조할 뿐 “이 법원이 그 조사결과에 구속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국방부 특조위 보고서가 사실상 부정된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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