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립하는 상대방을 ‘악마화’ 했고 공직자인 검사들의 말을 전적으로 불신했습니다. 과도한 정서적 적대감에 사로잡혔고 논리적 확증편향에 빠졌습니다”
뼈아프게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듯한 반성문의 주인공은 유시민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다. 22일 그는 과거 검찰이 재단의 주거래 은행 계좌를 들여다봤다고 주장했던 것에 대해 사과했다. 자신의 과오를 아주 가혹하게 분석한 사과문은, 명백한 불법과 잘못을 저지르고도 사과할 줄 모르는 여권 인사들과 대비되어 주목받았다.
유 이사장은 22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홈페이지를 통해 “누구나 의혹을 제기할 권리가 있지만, 그 권리를 행사할 경우 입증할 책임을 져야 한다”며 “저는 제기한 의혹을 입증하지 못했다. 그 의혹은 사실이 아니었다고 판단한다”고 했다.
유 이사장은 이어 “무엇보다 먼저, 사실이 아닌 의혹 제기로 검찰이 저를 사찰했을 것이라는 의심을 불러일으킨 점에 대해 검찰의 모든 관계자들께 정중하게 사과드린다”며 “사과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리라 생각하지 않으며, 어떤 형태의 책임 추궁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유 이사장은 노무현재단의 후원회원들을 향해서도 "저는 입증하지 못할 의혹을 제기함으로써 노무현재단을 정치적 대결의 소용돌이에 끌어들였다"며 "노무현 대통령께서 모든 강물을 받아 안는 바다처럼 품 넓은 지도자로 국민의 마음에 들어가도록 노력해야 할 이사장의 책무에 어긋나는 행위였다"고 했다.
그는 또 "정부여당이 추진한 검찰 개혁 정책이나 그와 관련한 검찰의 행동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라면서 "우리 모두는 어떤 경우에도 사실을 바탕으로 의견을 형성해야 한다. 분명한 사실의 뒷받침이 없는 의혹 제기는 여론 형성 과정을 왜곡한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비평의 한계를 벗어나 정치적 다툼의 당사자처럼 행동했다. 대립하는 상대방을 ‘악마화’ 했고 공직자인 검사들의 말을 전적으로 불신했다"며 "과도한 정서적 적대감에 사로잡혔고 논리적 확증편향에 빠졌다"고 스스로를 평가했다.
유 이사장은 그러면서 "저는 지난해 4월 정치비평을 그만두었다"며 "정치 현안에 대한 비평은 앞으로도 일절 하지 않겠다"고 했다.
2019년 말 유 이사장은 유튜브에서 “검찰이 노무현 재단의 주거래 은행 계좌를 들여다본 사실이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한동훈 반부패 강력부’가 재단의 계좌를 추적했다는 것이다. 이어 “내 뒷조사를 한 게 아닌가 싶다. 제 처의 계좌도 다 들여다봤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공개 질의를 하고 싶다. 검찰을 비판하는 개인에 대해 불법적 사찰을 하고 검찰이 이래도 되는 것인가”라고 했다.
한동훈 검사장과 검찰이 ‘사실무근’이라며 반박하자, 유 이사장은 "내가 있지도 않은 일로 의심하고 비판해서 억울하다면 사실을 확인해 나를 혼내면 된다"고 했다.
참여연대 출신 김경율 회계사는 당시 "검찰이 노무현재단 계좌를 열람한 사실이 없다면 나는 유시민 같은 인간은 공적 공간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있지도 않은 일을 들먹이며 사태를 호도했다"고 했다. 서민 단국대 교수도 "검찰이 계좌를 들여다봤다는 거짓말은 언제 사과할 거냐"고 비판한바 있다.
수사기관에서 개인의 금융정보를 조회했을 땐 10일 안에 금융기관에서 통지를 해줘야 한다. 하지만 증거인멸 등의 우려가 있으면 6개월까진 통보를 유예할 수 있고, 그 후에도 3개월씩 두 번에 걸쳐서 통보 유예가 가능하다. 즉, 최장 1년이 지나면 계좌추적을 당한 당사자는 반드시 금융기관으로부터 그 사실을 통지받게 되어 있다.
1년이 지나도록 유 이사장이 증거를 제시하지 않고 침묵하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등 '조국흑서'(黑書) 멤버들은 유 이사장의 답변을 촉구했다. 김경율 회계사는 페이스북을 통해 “이제는 어찌 됐든 해당 금융기관에서 연락이 올 때가 됐다. 너무 궁금하다”면서 유 이사장의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서민 단국대 교수는 "한때 명민한 지식인이었던 유시민이 계좌추적에 관해 허위 사실을 퍼뜨리고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진중권 전 교수도 "그의 거짓말 때문에 유능한 엘리트 검사는 한직으로 좌천되는 수모를 겪었다"며 "응답하라 유시민. 금융기관으로부터 통보를 받았는가"라고 언론에 기고하기도 했다.
-----------------------------------
다음은 유시민 이사장의 사과문 전문
2019년 12월 24일, 저는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에서 검찰이 2019년 11월 말 또는 12월 초 사이 어느 시점에 재단 계좌의 금융거래 정보를 열람하였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 누구나 의혹을 제기할 권리가 있지만, 그 권리를 행사할 경우 입증할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나 저는 제기한 의혹을 입증하지 못했습니다. 그 의혹은 사실이 아니었다고 판단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사실이 아닌 의혹 제기로 검찰이 저를 사찰했을 것이라는 의심을 불러일으킨 점에 대해 검찰의 모든 관계자들께 정중하게 사과드립니다. 사과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리라 생각하지 않으며, 어떤 형태의 책임 추궁도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노무현재단의 후원회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저는 입증하지 못할 의혹을 제기함으로써 노무현재단을 정치적 대결의 소용돌이에 끌어들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께서 모든 강물을 받아 안는 바다처럼 품 넓은 지도자로 국민의 마음에 들어가도록 노력해야 할 이사장의 책무에 어긋나는 행위였습니다. 후원회원 여러분의 용서를 청합니다.
‘알릴레오’ 방송과 언론 보도를 통해 제가 제기한 의혹을 접하셨던 시민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정부여당이 추진한 검찰 개혁 정책이나 그와 관련한 검찰의 행동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어떤 경우에도 사실을 바탕으로 의견을 형성해야 합니다. 분명한 사실의 뒷받침이 없는 의혹 제기는 여론 형성 과정을 왜곡합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제가 했던 모든 말과 행동을 돌아보았습니다. 저는 비평의 한계를 벗어나 정치적 다툼의 당사자처럼 행동했습니다. 대립하는 상대방을 ‘악마화’ 했고 공직자인 검사들의 말을 전적으로 불신했습니다. 과도한 정서적 적대감에 사로잡혔고 논리적 확증편향에 빠졌습니다. 제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대해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지 못했습니다. 단편적인 정보와 불투명한 상황을 오직 한 방향으로만 해석해, 입증 가능성을 신중하게 검토하지 않고 충분한 사실의 근거를 갖추지 못한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말과 글을 다루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으로서 기본을 어긴 행위였다고 생각합니다. 누구와도 책임을 나눌 수 없고 어떤 변명도 할 수 없습니다. 많이 부끄럽습니다.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립니다.
저의 잘못에 대한 모든 비판을 감수하겠습니다. 저는 지난해 4월 정치비평을 그만두었습니다. 정치 현안에 대한 비평은 앞으로도 일절 하지 않겠습니다.
2021년 1월 22일 유시민
유시민의 화끈한 사과 “제기한 의혹을 입증하지 못했고,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 조샛별(조갑제닷컴)
-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2021-01-23, 03: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