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P “한 명만 미쳐 날뛴 ‘피자게이트’ 음모론이 ‘의회 폭동’으로 진화하다”

음모론에 빠져 피자가게에 소총 들고 찾아간 20대 남성, 이제는 수천 명이 의회를 급습하다

2016년 12월, 20대 남성이 자동소총으로 무장하고 워싱턴 DC의 한 피자가게를 급습한 사건이 있었다. 그는 이른바 ‘피자게이트’라는 음모론에 빠진 사람이었다. 피자게이트란 힐러리 클린턴 등 민주당 인사들이 이 피자가게에서 아동 성 착취를 하고 있다는 음모론이다. 그는 아이들을 구출하겠다며 총을 쏴댔지만 아무런 증거도 찾지 못했다. 그런 그는 4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한 뒤 2020년 3월 출소 후 보호시설에서 두 달간 생활한 뒤인 5월에 자유의 몸이 됐다.


미국의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는 한 명의 일탈(?)로 끝난 피자게이트가 어떻게 ‘큐어넌(QAnon)’이라는 음모론으로 진화해 결국 ‘의회 폭동’으로까지 이어지게 됐는지를 분석한 장문(長文)의 기사를 최근 게재했다. 이 기사를 전문(全文) 번역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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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유명 인사로 만들게 되고 마는 음모론에 사로잡힌 그는 동이 트기 전 침대에서 일어나 차를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에드거 매디슨 웰치는 그의 고향인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350마일 떨어진 미국의 수도로 향하는 차 안에서 휴대폰이 그를 비추게 한 뒤 동영상 녹화 버튼을 눌렀다.


그는 샐리스버리에 있는 그의 집에서 자고 있는 어린 두 딸에게 “악마에 의해 부패된 세상에서 너희들을 살게 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너희들이나 너희들과 같은 다른 아이들을 위해 맞서 싸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부패의 근원지라는 의심을 받는 곳을 향해 계속 달렸다. 이는 미국 워싱턴 DC 북서부에 위치한 유명한 피자집인 ‘코메 핑퐁’이었다. 피자게이트라는 거짓 음모론에 따르면 이곳에서 힘있는 민주당원들이 아이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것이다. 창고에서 근무하던 28세의 웰치는 이들을 구하려고 했다.


4년 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웰치의 전철을 밟았다. 더욱 악성의 거짓 정보와 극단주의로 전국이 뒤덮였다. 이는 피자게이트의 후임자인 큐어넌(QAnon)이었다.


이들은 이번에는 피자가게가 아닌 미 의사당을 목표로 삼았다.


1월 6일 일어난 의회 습격 사건으로 다섯 명이 숨지고 200명 이상이 체포됐으며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두 번째로 통과됐다. 이러한 뻔뻔한 행동으로 인해 미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가 뒤흔들렸다.


무엇보다도 대통령이 이런 음모론을 지지함으로써 확산되는 상황이 이어졌다. 웰치는 2016년 대선 얼마 후 워싱턴을 찾았었다. 이번에는 트럼프가 대통령직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수백 명이 의회로 돌진했다. 이들은 큐어넌의 모토인 “우리가 가는 곳에는 우리 모두가 함께 간다”가 적힌 티셔츠를 자랑스럽게 입고 있었다.


언론의 조작과 사회운동 관련 학자인 조언 도노번은 피자게이트는 거짓 정보가 어떻게 폭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조기 경고였다고 했다. 하버드 케네디 스쿨의 도노번은 “2016년 피자게이트와 큐어넌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런 행동을 한) 이유가 아니라 규모에 있다”고 했다. “4년이 흐르자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 생각이) 확산됐다”고 했다.


웰치가 2016년 12월 코메 핑퐁을 찾았을 때는 혼자였다. 아이들은 탁구를 치며 놀고 있었고 부모들은 손님이 뜸한 일요일 오후를 피자와 맥주와 함께 즐기고 있었다. 그는 가득 장전된 공격용 소총을 들고 식당에 들어갔다.


2019년 11월 21일 코메 식당의 주인인 제임스 알레판티스는 이메일을 하나 받았다. 그는 바빠질 주말 영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에드거 웰치가 지역 교정시설, 즉 사회 복귀 훈련 시설로 돌아가는 것이 승인됐다는 것을 알린다. 그는 이 시설에서 2020년 3월 3일 이송될 것이다.” 이는 오하이오의 연방 교도소에서 보낸 메시지였다. “이 수감자는 2020년 5월 28일 풀려날 계획이다”고 했다.


웰치가 알레판티스의 식당에 들어간 지 거의 3년이 됐다. 그는 인터넷에서 떠도는 가짜 음모론을 깜짝 놀랄 정도의 현실로 만들었다. 살해 위협은 그 이후로도 멈추지 않았다. 한 피자게이트 신봉자는 코메 핑퐁 식당 내부에 불을 지르기도 했다.


이제 알레판티스는 웰치가 몇 달 후면 출소할 것이라는 점을 알게 됐다.


그는 아직도 두려움에 떨고 있는 직원들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할지 고민했다.


이들의 시련은 트럼프의 (첫 번째) 선거 몇 일 전부터 시작했다. 알레판티스의 (SNS) 인스타그램에는 갑자기 그를 소아성애자라고 부르는 글들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위키리크스는 힐러리 클린턴의 선거 총책인 존 포데스타의 해킹된 이메일을 공개했다. 알레판티스가 포데스타에게 자금 후원행사를 코메에서 열 수 있느냐는 이메일이었다. 포데스타는 ‘치즈피자’를 구할 수 있느냐고 했다. 인터넷 상에서 익명의 이용자들은 ‘치즈피자’가 ‘아동 포르노’를 의미한다는 거짓 주장을 내놨다 (注: Cheese Pizza와 Child Pornography 모두 이니셜이 C와 P이기 때문에 이런 말이 나왔다).  코메는 순식간에 민주당의 아동 성매매 조직이 운영하는 시설이 돼버렸다.


알렉스 존스와 같은 극우 언론인들을 통해 이런 주장이 확산됐고 (컴퓨터가 자동으로 글을 쓰는) 소셜미디어 기술을 통해 피자게이트는 더욱 더 커져나갔다.


웰치는 이런 내용을 받아들이는데 있어 수용적이었다. 그의 인생은 한 소년의 죽음으로 인해 새롭게 바뀌게 됐다. 웰치가 8세였을 당시 그의 16세 형이 자동차를 제대로 운전하지 못해 발생한 사고로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이 사고로 그의 가족은 초토화됐지만 소중한 것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갖도록 했다. 그의 부모는 유기견 보호소를 운영했고 수양 자식들을 키웠다. 외국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아이들에게 돈을 보내주기도 했다. 그의 어머니는 간호사였다. 그는 사고 이후 의용 소방관으로 활동했다.


웰치는 그의 중간 이름인 매디슨을 주 이름으로 사용한다. 그는 2010년 교회 단체와 함께 아이티를 방문해 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아이들을 돕는 일을 했다.


그의 아버지 해리는 재판부에 보낸 편지에서 “지난주 그와 전화통화를 했는데 서너 명의 아이들을 집으로 데려올 테니 같이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다”고 했다.


웰치의 고등학교 친구인 도니 쿤즈는 웰치가 항상 일종의 조증(躁症) 환자 같았다고 했다. 웰치는 2년제 대학교를 다니기 위해 윌밍턴으로 이사를 갔다. 쿤즈는 2016년 워싱턴포스트에 당시 웰치가 각종 중독에 빠졌고 재활치료를 받았다고 했다.


2016년 가을, 한때는 모험적이었던 웰치는 그가 ‘스몰스버리’라고 부르는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다. 그의 결혼 생활은 깨졌다. 그는 어머니처럼 소방관이 되려고 했으나 포기했다고 이 지역 소방 당국은 밝혔다.


웰치는 10월 어느 날 밤 ‘푸드 라이언’ 물류 창고로 출근하는 길에 13세 소년을 차로 쳤다. 이 소년은 헬기로 병원으로 이송됐다. 골절상과 머리에 부상을 당했다. 과거 긴급 구조 관련 교육을 받은 적이 있었던 웰치는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이 아이를 도와주려고 했다. 웰치는 이 사건으로 인해 기소가 되지는 않았으나 정신적으로 크게 흔들렸다.


재판 기록에 따르면 약 한 달 후 웰치는 여자친구에게 자신이 인터넷에서 조금 거북한 내용들을 접했다는 문자를 보냈다. 웰치는 2016년 12월 1일 “피자게이트를 찾아보고 있는데 정말 역겹다”고 했다. 여자친구는 “그만해”라고 했다.


그러나 웰치는 더 깊은 곳으로 향했다. 피자게이트 관련 동영상을 찾아보고 코메 핑퐁의 홈페이지를 찾아보는데 여러 시간을 할애했다고 재판 기록에 나와있다.


웰치는 알렉스 존스의 홈페이지에서 만들어진 피자게이트 동영상을 친구 한 명에게 보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 전쟁 참전용사인 또 다른 친구를 설득시키려고 했다. 웰치는 “소아성애자 무리를 급습하려 하는데 많은 사람의 생명을 위해 적은 사람의 생명을 희생해야 하게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보는 앞에서 아기들과 어린이들을 납치하고 고문하며 성폭행을 하는 부패한 시스템에 맞서 싸워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 참전용사는 코메 식당을 방문해 총기를 난사하는 것이 아니라 정찰을 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 재판 기록에 따르면 이때부터 웰치는 이 일을 혼자 진행하기로 했다.


이틀 후 웰치는 AR-15 소총을 손에 들고 콜트 권총을 허리춤에 찬 뒤 코메 핑퐁으로 들어갔다. 그가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놀란 종업원들은 손님들을 식탁에서 물러나 출구 쪽으로 향하도록 했다.


웰치는 피자가게를 뒤집고 다니며 존재하지 않는 지하 감옥을 찾으려 했다. 그는 열리지 않는 문을 발견하자 자물쇠 부분에 총을 쐈다. 그러나 문 뒤에 있는 공간은 컴퓨터가 쌓여있는 창고였다. 그는 결국 총을 내려놓고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린 뒤 피자가게 밖으로 나왔다. 수십 명의 경찰관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얼마 후 그의 사건을 담당하는 재판관에게 쓴 편지에서 “나는 도움이 절실한 것으로 생각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워싱턴 DC에 왔다”고 했다. “무고한 사람들을 해치거나 겁먹게 할 뜻은 전혀 없었다. 나의 결정이 얼마나 멍청하고 무모했는지 이제야 깨닫게 됐다”고 했다.


기소 절차는 순식간에 이뤄졌다. 그러나 이에 따른 결과는 알레판티스와 그의 직원들을 몇 년에 걸쳐 괴롭혔다.


2017년 6월 22일 열린 재판에서 웰치는 4년 형을 선고받았다. 코메 핑퐁의 직원 한 명은 불면증과 우울증을 겪고 있다고 했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이날 이후 나는 그냥 땅에 몸을 파묻고 싶어졌다”고 했다. “내 집 밖을 나설 수가 없었고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몇 주에 걸쳐 여러 상황이 반복적으로 전개되는 무서운 악몽에 시달리게 됐다”고 했다.


알레판티스는 웰치가 저지른 행동이 오랫동안 상처로 남겠지만 낙관적인 측면도 있다고 했다. 그는 법정에서 “나는 언젠가 더 진실적인 세상이 찾아오게 된다면 우리 모두 이날을 (한 사람의) 일탈로 생각하게 되기를 희망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일부가 미쳐버렸고 뉴스는 가짜이며 거짓이 진실로 받아들여지던 어두운 시대의 상징으로 말이다”라고 했다. “나는 거짓말과 음모론에 사로잡혀 공포를 조성하던 사람들이 이들의 행동에 따라 발생하는 피해를 깨닫게 되기를 희망한다. 나는 언젠가는 따듯함과 사랑으로 가득 찬 장소나 사회구성원들이 모인 곳에서 총성이 나오기 전에 이성(理性)을 깨우치게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피자게이트를 믿는 사람들 일부는 웰치를 향해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가 진실을 숨기는 사기극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일부 사람들은 “에드거 웰치가 아이들을 구한다”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어 그에 대한 지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한 남성은 “또 다른 상원의원 한 명이 미성년인 남자 아이와 함께 호텔방에 있는 것을 사람들이 방금 찾아냈다”고 했다. 그는 “한 남성이 이를 도우러 갔는데 국가가 그를 교도소에 가두는 것은 완전히 미친 일이다”라고 했다.


한 여성은 교도소에 있는 웰치에게 편지를 쓰는 방법을 물어봤다. 어떤 사람은 하트 모양을 담은 그림을 올렸다.


웰치는 교도소에서 성경 공부 모임을 이끌고 있었다. 그를 감옥에 가둔 음모론은 또 다른 것으로 빠르게 진화하기 시작했다.


2017년 10월 28일, 자신을 최상위급 정보 요원이라고 주장하는 ‘Q’라는 사람이 ‘4chan’이라는 웹사이트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의 글은 사탄을 숭배하는 소아성애자들은 코멧뿐만 아니라 전세계를 지배하고 있으며 아이들의 피를 마셔 젊음을 유지한다는 식으로 음모론을 확대했다. Q는 트럼프와 정부 관계자들이 이런 사람들이 정의의 심판을 받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큐어넌은 트위터와 페이스북, 유튜브로 확산됐고 수백만의 추종자가 생겼다. 웰치가 출소한 3월 3일이 되자 큐어넌은 이제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돼버렸다. 큐어넌을 지지한다고 밝힌 공화당의 하원의원 후보 마조리 테일러 그린은 선거에서 승리하는 길로 향하고 있었다.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위치한 사회 복귀 훈련 시설에 도착한 며칠 뒤 웰치는 그가 저지른 작전에 섭외하려고 했던 친구 중 한 명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그는 햇빛을 오랫동안 못 본 것 마냥 눈부셔했고 친구와 어깨동무를 한 채 사진기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매디슨 웰치는 세간의 주목을 별로 받지 않은 채 그의 과거 생활로 조용히 돌아가고 있었다. 3월 27일, 한때 피자게이트 문제로 그를 떠나겠다고 했던 여자친구는 그와 결혼할 계획이라는 사실을 페이스북을 통해 알렸다. 그해 9월 그녀는 그와 함께 해변가에서 찍은 사진을 올렸다. 이들은 그녀의 임신한 배에 손을 올려놓고 있었다.


웰치의 가까운 친구이자 수감 기간 편지를 주고받았던 데인 그랜베리는 “이 한 해는 그에게 정신 없는 해였다”며 “하지만 그는 집으로 돌아와 행복을 되찾았다”고 했다. 그랜베리는 (2020년) 12월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웰치를 만났다고 했다. 그랜베리는 웰치의 아내와 함께 서로 임신한 배를 비교하며 얘기를 나눴다고 한다.


평범한 일상이었다. 그랜베리가 물어보지 못한 질문들을 빼놓고는 말이다. “그는 아직도 피자게이트를 믿는가?”, “그는 Q를 추종하나?”, “의회에 대한 공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그랜베리는 “모든 사람들이 알고 싶어하지만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 어느 누구도 이런 얘기를 꺼내놓지 않는다”고 했다.


웰치와 그의 부인은 여러 차례에 걸친 인터뷰 요청에 모두 응하지 않았다. 몇 명의 친구들은 그의 동의 없이 얘기를 나눌 수 없다고 했다. 아버지인 해리 웰치는 아들과 인터뷰를 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서류상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보호관찰 기간을 우선 끝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 뒤 문을 닫았다.


웰치가 샐리스버리에 있는 집에 돌아온 지 8개월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은 채 생활하고 있다. 그가 과거 다니던 교회의 목사는 그가 체포된 이후 그를 만난 적이 없다고 했다. 지역 언론 역시 그의 출소 사실조차 전하지 않았다.


인구수 3만 3000명인 샐리스버리, 몇 명의 사람들은 피자게이트를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캐런 알렉산더 시장은 “우리에게 있어 당시 사건은 일시적 경보와 같은 사건이었다”고 했다. 그는 샐리스버리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고 이 지역을 산기슭에 있는 파리(注: 프랑스 수도)라고 불렀다. 그는 “당시 사건은 이례적인 일이었고 젊은 청년에게 있어서도 비극적인 일이었다”고 했다. “그의 정신상태가 당시 어땠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피자게이트가 워싱턴과 달리 샐리스버리에서 오랫동안 영향을 끼치지 않은 이유는 아야나 앨런이라는 사람에게 일어난 일 때문이다. 웰치가 아이들을 구출하기 위한 작전을 위해 워싱턴으로 떠난 날 아침, 그의 집에서 7마일 떨어진 곳에서 7세 소녀가 끔찍하게 목숨을 잃었다.


현실은 웰치가 생각했듯 코메 핑퐁 안에서 아이들이 고문을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현실은 어떤 사람이 차를 타고 할머니 집에서 자고 있던 쾌활한 소녀를 향해 총을 난사한 것이었다. 작은 소녀의 몸에 수십 발의 총알이 박혔다.


아야나의 어머니는 장례식에서 딸의 머리를 마지막으로 한 번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렸다. 아야나의 예쁜 얼굴에 총알이 도대체 어떤 짓을 저지른 것인지는 보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어미니인 세퀴타 우드베리는 “식탁 위에 누워있던 것만 생각난다. 너무 많은 곳에 총을 맞았다”고 했다.


아야나의 죽음으로 이 동네는 몇 주간 충격에 휩싸였다. 경찰은 보안국과 협력해 사건을 해결하려 했지만 (범인을 찾지 못해) 어느 누구도 기소돼지 않았다. 증인들은 말을 하기를 거부했다.


샐리스버리는 백인의 수와 유색인종의 수가 거의 똑같다. 미국의 여러 지역과 마찬가지로 샐리스버리 역시 인종과 정치적으로 갈라지는 상황을 겪게 됐다.


‘명성’이라는 이름의 남부군 동상이 2017년 논란이 됐다. 샬로츠빌에서 열린 우파 단결 시위가 폭력 사태로 번진 뒤였다. 이 동상은 날개가 달린 여성이 부상 입은 군인을 이송시키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 동상은 1908년부터 샐리스버리 시내에 서있었다.


알베나 헤긴스는 당시 샐리스버리에서 처음으로 당선된 여성 흑인 시장이었다. 그는 남부군 동상과 관련해 문제를 키우지 않으려 심혈을 기울였다고 했다. 그는 1906년 세 명의 흑인 남성이 린치를 당한 사건에 대한 사죄를 하는 결의안을 발의해 이미 비판을 받고 있었다.


그는 “시장으로서 많은 오해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남부군 동상을 철거하는 움직임을 이끌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그는 “이는 나의 위치 때문이 아니라 내가 흑인이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웰치가 출소하기 3일 전인 2020년 5월 25일, 백인 경찰관이 미니애폴리스에서 조지 플로이드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샐리스버리에서도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시위대가 동상 ‘명예’를 다음 목표로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전미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NAACP)의 샐리스버리 및 로완 지역 대표를 맡았던 지메일 블랙은 “‘흑인이 동상 앞에 나타나면 보는 즉시 죽여버려라’는 말이 나돌았다”고 했다. “경찰이 낮과 밤 보초를 서며 동상 근처에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됐다”고 했다. 


블랙은 5월 31일 동상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었다. 이때 시위에 반대하던 백인 제프리 앨런 롱이 총을 꺼내들고 두 발을 하늘을 향해 쐈다. 블랙의 머리를 향해서였다. 롱은 폭동을 선동했다는 중범죄 혐의를 받았지만 유죄를 인정하고 경범죄에 30일 징역형의 유예를 선고받았다.


헤긴스를 비롯한 시의회 의원들은 만장일치로 동상을 철거하기로 했다. 남부군 측 단체와 합의해 많은 남부군 군인들의 무덤이 있는 무덤에 이를 옮기기로 했다. 이는 시가 운영하는 곳이다.


시의회에는 이들을 증오하는 엄청난 양의 편지가 빗발쳤다. 남부군 깃발이 걸린 트럭이 돌아다니기도 했다. 이 트럭에는 “헤긴스를 무덤으로 보내라”라고 써있었다.


대통령 선거는 분열을 더욱 키우기만 했다. 샐리스버리 주민들은 조 바이든을 지지했지만 인근 로완 카운티 주민들은 트럼프로 쏠렸다. 이 지역 연방 하원의원인 테드 버드는 트럼프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돈 빅은 동료 공화당원들이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것에 실망했다. 로완 카운티의 공화당 의장인 72세의 빅은 “좋든 싫든 사람들이 결정을 내린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의회 습격 사건으로 간담이 서늘해졌다고 했다. 큐어넌이 로완 카운티에 확산되는 것을 보고도 똑같이 놀랐다고 했다.


그의 부인 낸시는 “우리 카운티에 있는 많은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이에 진짜 빠져있었다”고 했다. “(큐어넌에 대해) 거의 종교적이다”라고 했다.


돈 빅은 웰치의 행동은 조금 비정상적인 사람의 행동으로 봤고 이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전국가적으로 불안정해졌다는 것이었다. 그의 임기는 3월에 끝나는데 그는 연임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했다.


바이든의 취임식이 열리던 날 에리카 멘도자는 코메 핑퐁 야외 테이블 손님에게 계산서를 건네주다 10여 명의 화난 사람들이 접근하는 것을 봤다.


의회 습격 사건이 발생한지 2주가 지났고 워싱턴에는 여전히 엄청난 수의 군인들과 철조망이 자리잡고 있었다. 또한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한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29세의 멘도자는 식당 안으로 들어가 (주인인) 알레판티스에게 문자를 보냈다. “피자게이트 시위대가 가게 앞에 왔다”고 했다. 알레판티스는 몇 분 후 가게에 도착했다. 소규모의 군중이 “지옥은 끔직하다”, “회개하거나 죽어라”라는 피켓을 흔들고 있었다.


트럼프의 대통령직의 끝은 시작 때와 마찬가지로 끝이 났다. 사람들이 코메 핑퐁을 타깃으로 삼는 것이었다.


알레판티스는 지난 4년을 웰치와 음모론자들을 이해하려 하며 보내왔다. 이들은 온라인을 통해 그를 계속해서 괴롭혀왔다. 알레판티스가 최근 받은 메시지에는 “피자 소아성애자”라는 글이 있었다. “어이, 로스차일드”, “심판이 다가오고 있다”, “넌 역겹다. 가서 목숨을 끊어라”라는 글도 있었다. 프랑스에 사는 한 남성은 “제임스, 죽을 준비 됐어?”라는 글을 보냈다.


알레판티스는 피자게이트가 음모론의 끝이 되는 것을 희망했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이러한 역겨움이 의회 의원들에게도 퍼졌다. 닳아 해어진 사회 구조가 완전하게 부숴졌다.


알레판티스는 미국이 이런 정신 나간 상황을 여전히 헤쳐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이 코메를 찾아와 증오의 말을 부르짖고 웰치처럼 존재하지 않는 것을 찾아내려고 하는 것에 더 이상 놀라지 않는다고 했다.


1월 19일 한 남성은 확성기를 들고 “이곳은 그냥 단순한 피자집이 아니다”라며 “이는 소아성애자들의 장소이기도 하다”고 했다.


알레판티스는 이들 단체가 찾아왔을 때 그가 4년 전 했던 일을 똑같이 했다. 야외에 있는 스피커 볼륨을 키워 이들을 쫓아내고 손님들이 춤을 출 수 있도록 했다.


레이디 가가의 ‘완벽한 환상(Perfect Illusion)’이라는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알레판티스는 피켓 시위대에게 샴페인이 담긴 접시 하나를 건넸다. 시위대 한 명이 앞으로 와 잔을 집어 든 뒤 인도에 부었다. 그는 그리고서는 접시를 뒤집어 넘겨 버렸다. 샴페인은 모두 땅으로 떨어졌고 깨진 유리조각들의 폭동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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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白丁 2021-02-18 오후 8:08

    미국에 이런 싸이코패스들 엄청 많습니다. 트럼프도 그중 하나이지요. 웃기는 건 한국에 이런 미국 싸이코패스들을 추종하는 무지몽매한 중생들이 있다는 거지요.

  • RedBuster 2021-02-18 오전 11:18

    긴 글이지만 끝까지 잘 읽었습니다. 일부 정신이상자 미국인들이 피자게이트, 소아성애자, 일루미나티, 프리메이슨, 큐아넌에 미쳐 날뛰는 것도 비극적이고 한심한 사회병리현상이지만 국내에도 "트럼프 대통령 . . 어쩌구 . .저쩌구 . ." 하면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지껄이는 유튜버 업계에서 이름께나 알려진 인간들이 아직도 널부러져 있는 사실이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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