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샤르 대신 영부인을 대통령에 앉히는 방안 미국과 논의”

‘시리아의 마리 앙투아네트’ 아스마 알아사드의 삶(3편)/戰後의 시리아는 아스마의 뜻대로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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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마 알아사드(출처: 시리아 대통령실 페이스북)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격월간지 1843에 실린 기사를 요약, 시리아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의 부인 아스마에 대한 기사를 세 차례에 걸쳐 소개하고 있다. 첫 번째 순서는 런던 출신의 모범생 여성이 시리아의 독재자와 결혼, 시리아에서 영부인으로 인정받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두 번째로는 시리아는 물론, 집안에서마저 무시받던 영부인이 어떻게 영향력을 쟁취해 ‘사막의 장미’,  ‘그림자로 가득한 나라의 빛을 밝히는 여성’과 같은 별명을 얻게 됐는지의 과정을 소개했다.


오늘은 마지막 세 번째 순서로 아스마 알아사드가 전후(戰後) 시리아에서 엄청난 권력을 잡고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모든 일들은 아스마의 뜻대로 이뤄진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코노미스트는 국제사회의 제재로 사실상의 재기가 불가능한 바샤르 알아사드를 대신해 영부인 아스마가 대통령직에 오르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고 미국 측과도 이런 얘기가 오고 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사드 부부로서나 국제사회로서나 어느 정도의 ‘윈윈’을 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이코노미스트는 대통령직 승계 얘기가 공공연히 나오는 현재 상황이 아스마로서는 매우 위험한 상황일 수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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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공개된 이메일 중에는 아사드의 결혼 생활을 엿볼 수 있는 내용도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두 사람의 관계가 양가의 이익을 유지하는 데 주요 목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바샤르는 바람둥이로 잘 알려져 있다. 유출된 이메일에 따르면 그는 여성 직원들에게 애틋한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그렇기는 하지만 바샤르와 아스마 역시 애정이 있는 관계였다. 2011년 12월 28일, 탱크들이 아스마 가족의 고향인 홈스를 돌격할 때 그녀는 바샤르에게 이렇게 편지를 보냈다. “우리가 함께 강력하게 대처한다면 이를 함께 극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해요.” 이들이 ‘극복’해야 한다고 말한 문제가 시리아 문제인지 결혼 문제인지는 불분명하다.


며칠 뒤 아스마는 바샤르의 애칭인 바타(아랍어로 오리)에게 또 이메일을 보냈다. “가끔 밤마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당신과 내 생각에 빠지게 돼요. 왜 그럴까요? 왜 내가 당신을 사랑할까요? 나는 이를 생각하며 웃게 돼요.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를 나열하면 그 길이가 몇 마일이나 될 테니까요.” 2012년 2월 바샤르는 자신의 방황에 대해 사과하는 듯한 이메일을 보냈다. 그는 서방세계의 컨트리 노래의 가사를 이메일에 썼다. “최근 나는 나를 엉망으로 만들었어요. 최근의 나는 내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 아니에요.” (注: 미국 컨트리 가수 블레이크 쉘튼의 ‘God Gave Me You’)


얼마 후 아스마는 민중 봉기 이후 첫 번째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대통령은 시리아 전체의 대통령이지 시리아인 일부의 대표가 아니다. 그리고 영부인은 이런 일을 수행하는 그를 지지한다.” 아스마는 그의 남자 옆에서 함께 하기로 했다.


바샤르와 화해한 아스마는 반체제 인사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공적인 삶으로 돌아가는 방안을 논의했다. 이때 아스마는 아버지의 도움을 받게 된다. 이때부터 아스마는 대통령직에 영원한 동반자가 된다. 2012년 여름 바샤르의 여동생 부쉬라는 그의 남편이 폭탄 폭발로 사망한 후 두바이로 도망쳤다. 반군은 자신들의 공격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는 반군이 할 수 있는 역량을 뛰어넘은 공격이었다. 부쉬라와 그의 남편은 시리아 권력 핵심부에서 反아스마 감정을 조장한 가장 큰 세력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 공격을 권력 내부의 소행이라고 봤다.


이듬해에 들어서는 바샤르의 상황 역시 좋아졌다. 그는 반란군의 진격을 저지하고 홈스의 요새에서 그들을 몰아냈다. 반군은 여전이 다마스쿠스 교외 지역 일부를 통제하고 도시 중심부로 폭탄을 쐈지만 아사드 부부를 몰아낼 수는 없었다.


전쟁이 계속될수록 바샤르는 더욱 무자비해졌다. 한 서방세계 외교관은 민간인들에 대한 포격과 공습, 폭탄 투하 등 강도가 서서히 고조되고 있었다고 했다. 그는 “이들은 이를 한 번에 사용하기도 했다. 반발이 있기는 했지만 국제사회의 개입이 있을 수준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계속해서 이런 공격 방식을 택했고 이것이 당연한 일이 돼 버렸다”고 했다. 바샤르의 범죄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은 커졌지만 시리아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이 아닌 점진적으로 목을 조르려고 한 대응 방식은 오히려 시리아에 도움이 됐다.


2013년 8월 21일 새로운 동영상이 하나 공개됐다.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다마스쿠스 교외 지역 사람들이 코와 입에서 거품을 뿜고 팔다리를 떠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었다. 수백 명이 숨졌다. 이후 실시된 유엔의 조사 결과 이들은 신경가스인 사린에 의해 살해됐다. 이는 1988년 사담 후세인이 할라브자에서 쿠르드족을 가스로 공격한 사건 이후 발생한 최악의 화학무기 공격이었다.


다음날 전세계가 이 영상을 접했을 때 시리아 영부인실은 영부인의 공식 활동을 시간대별로 자세하게 기록한 사진들을 올렸다. 사진 중 하나는 아스마와 바샤르가 꽃으로 장식된 발코니에 앉아 있는 사진이었다. 사진의 설명은 “사랑이라는 것은 음모를 무찌른 사자가 이끄는 국가이자 고향을 위해 헌신하는 영부인이다”였다. 한 페이스북 유저는 이 사진에 다음과 같은 댓글을 달았다. “부끄럽지 않나? 당신들의 국민들은 학살당하고 있는데 당신들은 그냥 구경만 하고 있다. 더 최악은 당신이 신발들을 주문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후 몇 년간 시리아에서 발생한 처참한 상황에 대한 공식 규모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 2014년 수니파 극단주의 단체인 이슬람국가(IS)가 혼란을 틈타 시리아와 이라크를 아우르는 이른바 칼리프 국가를 설립했다. 이들 종파의 폭력성은 바샤르의 군대에 심각한 위협이었다. 동시에 바샤르의 반대 세력에 대한 지지를 약화시켰고 이란과 러시아가 바샤르를 지지하는 것을 정당화했다.


시리아 영토 거의 모든 곳이 전쟁터였다. 바샤르는 2016년 마지막 남은 대도시인 알레포를 탈환했지만 시리아 도시의 절반이 잿더미가 됐다. 유엔은 2016년부터 전쟁의 사망자 수를 집계하는 것을 포기했다. 1000만 명 이상의 시리아인들이 난민이다.


샤넬의 드레스와 구두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시리아의 새로운 현실은 새로운 아스마를 필요로 했다. 하이힐과 매니큐어, 재킷, 보석들은 필요가 없었다. 납작한 단화와 티셔츠, 바지를 입은 그녀는 수척한 팔과 몸매를 그대로 드러냈다. 바샤르의 어머니인 아니사가 2016년 2월에 숨지자 아스마는 가장 강력한 상대를 잃게 됐다. 그러나 가장 큰 변화는 고통스러운 개인적 시련이었다.


2018년 아스마는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아스마는 이런 투병 생활 속에서도 대중에 대한 이미지 관리를 하고 자신이 시리아에 남아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도록 했다. 아스마의 투병 현황은 관영 매체와 대통령의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상세히 기록됐다. 침대에 누워 수술실로 들어가는 과정까지도 동영상에 찍혔다.


아스마는 머리가 빠지자 세련된 머리 스카프를 두른 채 사진을 찍었다. 그녀의 연약함과 강인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이는 반군과 싸우는 남편의 투쟁에 비유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한 방송국 인터뷰 진행자는 “암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것을 축하합니다”라고 말을 시작했다. 아스마는 “감사합니다. 우리가 곧 시리아의 승리를 축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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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마 알아사드(출처: 시리아 대통령실 페이스북)

 

親정부 성향의 언론들은 아스마가 완전히 회복되기도 전에 그녀가 시리아의 슬픔을 함께 나누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녀는 카메라맨들과 함께 가난한 고원 마을에서 문을 두드렸고 놀란 순교자들의 어머니들을 껴안고 유인물을 나눠줬다.


아스마는 자신의 영국적인 모습을 감추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했다. 아스마는 아랍어를 열심히 공부했고 시리아인조차도 더 이상 영국인 액센트를 눈치챌 수 없었다. 그녀는 서방세계와의 인터뷰 요청은 무시했고 러시아와 현지 언론사의 요청만 받아들였다. 아스마는 서방세계로부터 등을 돌렸지만 그녀가 운영하는 시설과 국제사회의 기부자들은 계속 유지됐다. 그녀의 자선단체인 시리아 신탁의 수입은 2012년 유럽연합이 제재를 가한 후 고갈됐다. 그러나 이제는 전쟁으로 황폐해진 시리아인들을 지원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인도주의적 지원이 쏟아졌다. 이 중 많은 금액은 아스마가 원하는 방향으로 들어오게 됐다.


아사드 정권이 장악하고 있는 지역에 원조를 제공하려고 했던 유엔 기구들은 아스마의 시리아 신탁이 중요한 창구였다. 영어를 잘 하는 직원들이 국제 규정에 익숙했던 것이다. 아스마는 봉쇄된 지역의 검문소와 출입구를 열 수 있었다. 2017년에 들어서는 아스마의 시리아 신탁이 시리아의 다른 어떤 단체보다 더 많은 자금을 지원받았다.


유엔이라는 조직은 부패하고 잔인한 상대와 종종 거래를 하게 된다. 많은 국가에서는 이런 단체를 통해서만 지원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유엔 전문가들도 시리아 정부 기관과 협력하는 데 있어 충격을 받았다. 2016년부터 2019년 사이 시리아 신탁은 유엔 기구로부터 매년 더 많은 금액을 지원받았다(2018년 첫 5개월 동안의 경우는 유엔 난민기구 혼자서 650만 달러를 지원했다). 시리아 신탁의 직원수는 2020년 기준 1500명이었다. 최근 10년 사이 10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자원봉사자의 수는 5000명에 달했다.


시리아 신탁의 대표였던 아스마는 재산 이상의 것을 얻었다. 아스마는 유엔의 지원을 관리하며 시리아 군부의 지도자들을 포함한 광범위한 후원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사람들은 아스마가 제공하는 보호와 자비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현금이 가득 담긴 여행 가방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스마는 전쟁 경제로 직접적인 이익을 얻기도 했다. 아스마가 연계돼 있는 한 사업체는 정부로부터 스마트 카드 결제 관리 계약을 따냈다. 그녀는 학창 시절 사용하던 이름을 따서 ‘엠마텔’이라고 불리는 휴대폰 유통업체를 차렸다. 이 회사의 사업자는 코드르 알리 타헤르라는 이름으로 등록됐다. 한 사업가는 타헤르가 아스마가 하는 모든 일을 대신해서 하는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아스마의 가족은 시리아 경제에서 점점 더 많은 영향력을 갖게 됐다. (야당 성향의 언론을 포함한) 시리아의 언론 매체들은 아스마의 남자형제인 피라스와 사촌 무하나드 다바그가 그녀를 대신해서 스마트 카드 회사를 운영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다마스쿠스 주재 미국 대사관에서 근무했던 직원은 아스마의 사촌인 타리프 아크라스가 “시리아 정권에 가장 유명한 경제계 인물 중 한 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12월 미국 정부는 아크라스 가문에 대한 제재를 가했다.


바샤르 정부에서 일했던 직원들은 바샤르가 아스마의 경제적 성공에 기뻐하고 그녀의 도움에 감사했다고 했다. 바샤르는 십여 년간 이어진 전쟁에 지쳤고 경제 문제는 그가 잘 모르는 분야였다. 유럽에서 활동한 아사드 가문의 로비스트에 따르면 아스마는 ‘경제 부문 수석 참모’가 돼 있었다.


2019년에 들어 러시아는 바샤르에게 차관을 갚으라며 압박했고 미국은 제재를 강화했다. 시리아 정부는 필사적으로 돈이 필요했고 아사드 부부는 이를 위한 목표물을 찾아 나섰다. 바샤르의 사촌인 라미 마클로프는 수십 년 동안 정권과의 인맥을 내세워 기업, 수입 독점, 밀수 루트 등 거대한 제국을 형성했다. 그의 중요한 사업 중 하나는 휴대전화 서비스 제공회사인 ‘시리아텔’이었다. 서류상으로만 보면 마클로프는 단순하게 성공한 사업가였다. 하지만 실제로 그는 시리아의 최고경영자 같이 행동했다. 그의 전화 한 통이면 장관도 바꿀 수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마클로프는 바샤르의 어머니인 아니사가 죽고 나자 그를 보호해주던 사람을 잃게 됐다. 시리아 재단은 마클로프가 알라위트 종파의 심장부에서 운영하던 자선재단을 인수했다. 시리아 정부는 ‘시리아텔’에 대한 법정 관리 절차에 들어갔다. 마클로프의 은행 계좌는 동결됐고 아스마의 사람들이 그의 사업체에 이사로 앉혀졌다.


이에 대응하여 마클로프는 아스마를 무너뜨리기 위한 작전에 나섰다. 2020년 5월 마클로프는 페이스북에 ‘권력 핵심부’의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비난하는 동영상을 올렸다. 러시아 언론들은 아랍 소식통을 인용해 바샤르가 부인을 위해 데이비드 호크니 그림을 구입하는 데 3000만 달러를 사용했다는 보도를 내보냈다(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어찌 됐든 마클로프는 현재 가택 연금 상태로 지내고 있다. 그가 살아 있는 이유는 그가 해외에 보유한 100억 달러 계좌에 대한 비밀번호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다.


아스마의 인수합병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시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휴대전화 회사도 법정 관리에 들어갔다. 지난달 아스마의 측근들이 이 회사에 이사로 임명됐다. 아스마의 이름을 딴 ‘엠마텔’이라는 회사는 전국에 지점을 두고 있다(바샤르가 통제권이 없는 곳에도 지점이 들어섰다).


아스마의 경제적 성공과 무자비한 경영 전략은 그가 열심히 만들어 놓은 이미지를 손상시켰다. 시리아의 한 사업가는 “어떤 사람들은 아스마를 여전히 사랑하고 그의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녀가 교활하고 탐욕스러운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더 이상 아스마가 시리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한다고 비판하는 사람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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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마 알아사드(출처: 시리아 대통령실 페이스북)

 

지난해 말 아스마가 살고 있는 다마스쿠스 근교의 주민들은 주변 지형이 엄청나게 바뀐 것을 보게 됐다. 존경받는 대령의 모습을 그린 오래된 동상 옆에 말의 머리를 묘사한 거대한 조각상이 설치됐다. 아스마의 측근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지역 주민들은 이런 사치에 대해 불만을 가졌다. 걸프 지역 신문들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시리아 당국은 말의 머리를 철거했지만 몇 시간 뒤에 다시 설치됐다. 이것이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전후(戰後)의 시리아에서는 아스마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영 방송은 ‘자스민의 여인’에 대한 방송 분량을 계속 늘렸다. 아스마 부모의 고향인 홈스 지역에는 그녀의 모습을 담은 거대한 포스터들이 설치됐다. 포스터들로 집들 전체가 뒤덮여 있다. 시리아 영부인으로서는 특이한 일인데 장관들이 사무실에 영부인의 초상화를 바샤르의 초상화와 함께 걸어 놓게 됐다.


마클로프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져 있고 바샤르의 여동생과 어머니가 떠난 상황에서 아스마를 견제할 수 있는 내부 경쟁자가 없다. 아스마의 측근들이 대통령 집무실에서 최고위직을 맡고 있다. 다마스쿠스와 유럽을 자주 여행하는 한 사업가는 “아스마가 왕궁 지명자들을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그녀가 원하는 누구든 임명할 수 있다.”


국내외에 있는 시리아인들은 아스마가 정상에 오르려는 정치적 야심을 품고 있는지에 대해 공개적으로 추측을 하고 있다. 바샤르의 상황이 악화되면 아스마가 정권을 유지하면서 시리아의 다수 종파인 수니파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게 될 것인지 여부다. 아사드 가족이 이런 계획에 대한 지지를 구하기 위해 미국 관리들을 만났다는 소문도 있다. 전직 시리아 외교관은 “바샤르와 아스마 모두 이 문제를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대통령이 되고 싶어하고 둘 다 정권을 구하기 위한 혁명적 해결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한때 영국은 아스마의 야망을 지지했을지도 모른다. 영국과 관계를 갖고 있는 중동 지도자들을 늘리려는 목적에서다. 아사드 가문의 거침없는 행동에도 불구하고 영국 정부는 아스마의 시민권을 취소하지 않았다. 영국은 10대였던 런던 출생의 샤미마 베굼이 시리아로 가 이슬람국가(IS)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그의 시민권을 박탈한 바 있다.


알라위트 강경파들은 아스마가 대통령직에 도전하는 것을 지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스마의 가장 강력한 잠재적 적은 바샤르의 남동생인 마헤르일 것이다. 그는 여전이 악명 높은 육군 4기갑사단을 지휘하고 있다. 시리아 상황을 잘 아는 두바이 주재 시리아 무역업자는 “군부와 알라위트 종파는 아스마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음모를 꾸밀 것”이라고 했다.


아스마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지만 동시에 더욱 취약한 상황이다. 대통령이라는 야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조차도 아스마에게는 위험한 일일 수 있다. 많은 아스마의 친구들은 몇 년 전부터 그녀와 거리를 뒀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녀의 안녕(安寧)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가장 높은 자리를 위해 런던 서부 출신의 소녀가 무리한 일에 나설 수도 있다. 아사드 부부의 친구인 와픽은 “아스마가 걱정된다”고 했다. 하지만 아스마가 오래 전에 깨달았듯이 이제는 되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없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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