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은 왜 ‘북한 비핵화’ 용어에 저항하나!”

천영우의 친절한 해설, ‘한반도 비핵화’냐, ‘북한 비핵화’냐!

지난주 18일 한미 외교국방장관 간의 ‘2+2’회담이 끝난 이후 ‘한반도 비핵화’가 맞느냐 ‘북한 비핵화’가 맞느냐 하는 때 아닌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북한 비핵화’라는 용어를 즐겨 쓰고 있고, 쿼드 정상회의 공동성명과 미·일간 ‘2+2’ 공동성명에서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런데 한·미간 ‘2+2’ 공동성명에서는 비핵화라는 용어 자체가 아예 실종됐고, 한·미 공동 기자회견에서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어느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북한 비핵화’보다 ‘한반도 비핵화’가 더 올바른 표현이라고 주장하는 믿을 수 없는 촌극이 벌어졌다.


혼란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이 두 가지 표현의 연혁과 의미, 그리고 용법을 살펴보자.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이 처음 공식적으로 사용된 것은 1991년 12월 31일 남북 간 합의에 의해 1992년 2월 19일 발효한 ‘한반도의 비핵화에 대한 공동선언’에서다. 이 선언에서 남북은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 이 8가지를 하지 않고 핵 재처리 시설과 우라늄 농축시설도 보유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북한은 당시 이미 영변단지 내에 재처리 시설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것을 ‘방사화학실험실’이라고 부르면서 재처리 시설이 아니라고 우겼다. 이후 북한은 계속 이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위반해 핵을 개발해왔고, 한국은 일편단심, 일방적으로 이 합의를 지금까지 준수해오고 있다. 


다음으로 1차 핵위기 해결을 위해 1994년 10월 21일 체결된 미·북 제네바 기본합의(Agreed Framework)에서 다시 ‘한반도 비핵화’가 등장한다. 제네바 합의 제3조 2항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조선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조치를 일관성 있게 취한다’라고 되어 있다. 이 조항의 실천적 의미는, 연변의 방사화학실험실을 해체하고 농축시설을 건설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다 알 것이다.


세 번째로 ‘한반도 비핵화’가 등장한 공식 국제문서는 2005년 6자 회담에서 채택한 9.19 공동성명이다. 9.19. 공동성명 제1조는 ‘6자는 6자 회담의 목표가 한반도의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달성하는 것임을 만장일치로 재확인하였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관련국들이 취할 조치를 구체적으로 망라하고 있다.


북한이 취할 조치가 제일 먼저 나오는데,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프로그램을 포기할 것이다’로 시작한다. 미국은 ‘한반도에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한국은 ‘자국 영토 내에 핵무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1992년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따라, 핵무기를 접수 또는 배비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재확인 했다. 이어서 ‘1992년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은 준수, 이행되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9.19.공동성명이 언급한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 비핵화를 핵심 내용으로 하고 있지만 한국과 미국의 의무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게 6자 간에 합의된 ‘한반도 비핵화’의 정의(definition)라고 할 수 있다. 


실제에 있어서는 한국은 핵무기를 보유하거나, 접수·배치한 적이 없고 농축·재처리 시설도 보유한 사실이 없으니 북한만 핵을 모두 포기하고 농축·재처리 시설을 해체하면, 한반도 전체가 비핵화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북한 비핵화가 바로 한반도 비핵화다. 괜히 죄 없는 한국까지 끌고 들어가서 ‘한반도 비핵화’라고 불러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6자 회담에서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에 합의했을까. 한국 입장에서는 ‘북한 비핵화’를 ‘한반도 비핵화’로 부르는 게 옳지도 않고 듣기에도 거북하지만 북한이 ‘조선반도 비핵화’라고 우기고,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 편을 들고, 미국과 일본도 실속 없는 용어 문제로 북한과 논쟁할 생각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한국만 혼자 이걸 문제 삼는 게 옹졸하게 보일 수 있기에 당시 참고 넘어간 것이다.


다른 나라들 입장에서는 ‘한반도 비핵화’가 북한의 농축·재처리 시설 보유를 불법화하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한국의 핵무장을 금지하는 그런 의미도 있었기 때문에 굳이 이의를 제기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고, 오히려 속으로 은근히 좋아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북한이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을 하자 10월 14일 유엔 안보리가 결의 1715호를 채택했는데, 여기서는 ‘한반도 비핵화’가 사라지고, 그 대신 결의 6항에서 북한에 대해 소위 ‘CVID(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 denuclearization)’라는 의무를 부과했다. CVID는 ‘모든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으로 포기해야 한다’는 의미인데, 유엔 안보리가 비상 입법 기능을 발휘해서 CVID를 북한의 국제법적 의무로 격상시키고, 이것을 공식화한 것이다.


북한의 핵실험에 대한 국제적 대응으로서, 북한에 초점을 맞춘 결의니까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북한 핵문제의 본질을 ‘북한의 CVID’라는 용어로 압축하고 통일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마지막으로 ‘한반도 비핵화’가 다시 등장한 문서가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미북 정상 공동성명이다. 공동성명 3항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은...조선 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하여 노력할 것을 확약하였다’고 되어 있다. 이 공동성명을 비판하는 국내 논객들 가운데 ‘북한 비핵화’가 아니고 ‘조선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을 문제 삼는 분들이 있는데, 이건 사실 부차적 문제에 불과하다. 


싱가포르 공동선언의 본질적 문제는 양측이 취할 조치의 순서에 북한의 일관된 입장이 그대로 반영된 데 있다. 미국이 제재 해제를 통해 새로운 미·북 관계를 수립하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를 수립하고, 대북 안전보장을 제공하는 미국의 의무가 북한의 비핵화 의무보다 먼저 나오도록 순서를 배치함으로써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해소가 비핵화의 선결조건이라고 주장할 근거를 북한에 제공한 게 가장 큰 문제다. ‘조선반도 비핵화’냐 ‘북한 비핵화’냐 하는 것은 본질을 벗어난 논란이다.


물론 북한이 말하는 ‘조선반도 비핵화’의 개념이 ‘북한의 비핵화’와는 완전히 다른 건 사실이다. 북한이 발하는 ‘조선반도 비핵화’가 뭔지는 2016년 7월 6월 북한 정부 대변인 성명에 명시되어 있다. 이 성명에서 북한은 자신들의 핵 개발이 ‘한반도 전역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한 필수불가결의 전략적 선택’이라고 하면서 ‘한반도 비핵화에는 남한의 핵 폐기와 한국 주변의 비핵화가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의 실현을 위한 5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첫째, ‘남조선에 끌어들여놓고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앟는 미국 핵무기부터 모두 공개해야 한다’, 둘재 ‘남조선에서 모든 핵무기와 그 기지들을 철폐하고 세계 앞에 검증받아야 한다’, 셋째, ‘미국이 조선반도와 그 주변에 수시로 전개하는 핵 타격 수단들을 다시는 끌어들이지 않겠다는 것을 담보해야 한다’, 넷째, ‘그 어떤 경우에도 핵으로, 핵이 동원되는 전쟁행위로 우리를 위협 공갈하거나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여 핵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을 확약해야 한다’, 그리고 다섯 째 ‘남조선에서 핵 사용권을 쥐고 있는 미군의 철수를 선포해야 한다’, 이렇게 되어 있다.


북한이 말하는 ‘조선반도 비핵화’는 ‘북한 비핵화’보다는 훨씬 개념이 광범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북한의 일방적 주장에 불과하고 관련 당사국 간에 합의된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받아들일 필요도 없고 의무도 없다.


그런데 그나마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1~4번째 조건까지는 사실 별 문제가 없다.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하면, 북한의 재래식 위협을 막아내는 데 굳이 미국의 핵 확장 억지에 의존할 필요가 있겠는가. 5항의 미군 철수 요구도 문구를 정밀 분석해보면, 절대적인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철수 이유로서 주한미군이 한국에서 핵 사용권을 쥐고 있다는 주장을 내세우는데, 핵 사용권이 미국 대통령에게 있고, 실제 사용할 주체는 미국 전략 사령관이지 주한미군 사령관이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되면 주장의 근거는 없어지는 것이다. 또 주한미군을 철수하라는 게 아니라 ‘철수를 선포하라’고 하는 것도 묘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궁극적 목적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들먹인 것이다. 북한식의 현란한 변증법적 장난인데 핵무장을 비핵화의 하나의 과정, 또 비핵화의 동의어로 사용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면 김정은의 비핵화 약속을 잘못 알아듣고 감동하기가 쉽다. 실제 그런 일이 3년 전에 일어났다.


6자 회담에서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이 ‘북한 비핵화’와 ‘조선반도 비핵화’가 어떻게 다른지, 필자에게 친절히 설명한 적도 있다. 김계관은 ‘조선반도 비핵화’차원에서 미국이 한국에서 핵무기를 모두 철수했는지 자기들이 직접 주한미군 기지를 사찰하겠다고 했었다. 그리고 한국이 비밀 핵무기 개발계획을 완전히 포기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한국 원자력 연구소도 사찰하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필자는 실제로 존재하는 북한 핵부터 먼저 해결하고, 그리고 나서 존재하지 않는 핵무기는 천천히 논의해도 된다고 응수한 적이 있다.


여기까지가 ‘한반도 비핵화’와 ‘북한 비핵화’의 개념 차이에 대한 설명이다.


그런데 한미 ‘2+2’회담 직후 공동 기자회견에서 불링컨 장관은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고집하고, 정의용 외교장관은 ‘한반도 비핵화’가 맞다고 주장했는데 참 어이가 없다.


미국의 블링컨 장관은 한국의 입장을 대변하고, 정의용 장관은 북한의 입장을 옹호하는 참 희한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한·미 양국의 입장에서는 북한만 비핵화하면 한반도 비핵화는 완성되는 것인데, 굳이 우리까지 걸고넘어지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쓸 이유가 어디 있나. 한·미간에 논의할 때는 당연히 ‘북한 비핵화’라고 하는 게 맞고, 북한과 얘기할 때는 용어 갖고 얼굴 붉히기 싫으면 북한이 좋아하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할 수 없이 사용하는 것이지, 그게 옳기 때문에 사용하는 게 아니다.


쿼드 정상 공동성명과 미·일 공동성명에 들어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이 한·미 공동성명에서 빠진 걸 보면 우리 측이 비핵화라는 용어 사용에 얼마나 결사적으로 저항했는지 짐작이 간다. 공동 기자회견에서조차 ‘북한 비핵화’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가 옳다고 우기는 정의용 장관의 정신세계가 참으로 궁금하다.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쓰면 김정은에게 불경죄를 짓는다고 생각하는 그런 인상을 준다. 김정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김정은에 충성하는 걸 동맹 간 결속과 공조보다 더 중시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데, 왜 ‘북한의 비핵화’라는 용어 사용에 거부감을 숨기지 못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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