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29일 화상(畵像)으로 진행된 유엔 안보리 연설에서 시리아에 대한 인도주의 지원을 강화하기 위해 폐쇄된 두 개의 국경을 다시 개방할 것을 촉구했다. 또한 현재 개방된 국경 지역을 통해서도 원조 물자가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시리아 국민들의 삶은 긴급 구호 물자를 전달받을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며 “국경을 폐쇄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개방해 구호 물자가 들어갈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다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7월 중국과 러시아는 시리아로 향하는 두 군데의 국경을 개방하는 것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에 따라 유엔은 터키로부터 연결되는 국경 지역 한 곳으로 구호 물자를 전달해온 바 있다. 시리아는 지난 10년 전 ‘아랍의 봄’이 닥친 뒤 심각한 내전에 빠지게 됐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집을 떠나 피난살이에 나섰고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규모의 난민 사태로 기록됐다. 유엔이 가장 마지막으로 사망자 추산치를 발표한 것은 2016년으로 당시 기준 약 40만 명이라고 했다. 유엔은 2014년 1월 이후부터는 사망자 수에 대한 공식 집계를 중단했다. 내전이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정권을 잡고 있는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와 이에 반대하는 국내 세력 간의 전쟁만 이뤄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특정 반대세력이 무너져도 내전은 끝이 나지 않았다. 새로운 과격단체가 이곳 저곳에서 등장했다. 이란과 터키, 미국과 러시아가 시리아 영토에서의 영향력을 위해 대리전을 치르기도 했다.
최근 들어 시리아 사태와 관련된 여러 기사들이 나오고 있다. 국제 인권 감시 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는 3월 21일 “시리아: 빵 부족 사태가 정권의 실패를 드러내다(Syria: Bread Crisis Exposes Government Failure)”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지난 10년간 이어진 내전으로 발생한 빵 부족 사태를 시리아 정권이 제대로 해결하지 못함에 따라 수백만 명의 국민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내용이다.
내전에 따라 경제와 인프라 시설이 붕괴돼 밀 생산이 크게 줄었다. 시리아 정부는 빵을 배급하고 있는데 주민들에게 균등하게 배분하지 못하고 있으며 군부와 정보당국이 이를 중간에서 가로채 이득을 취하는 등의 부패가 만연하다. 주민들은 정부가 배급하는 빵을 줄을 서서 받거나 돈을 주고 구매해야 하는데 일반 주민들은 구입할 돈도 없고 돈이 있어도 구입할 수 있는 양이 한정돼 있다.
휴먼라이츠워치의 사라 카와리 시리아 담당 분석관은 “시리아 당국은 모든 사람들이 충분한 빵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고 했다. “시리아 국민 수백만 명이 굶주리고 있는데 이는 정부가 자신들이 만든 빵 부족 사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단체는 수도 다마스쿠스는 물론 지방 도시에 거주하는 주민들과 제과점 주인, 구호 단체 직원 등을 인터뷰해 이와 같은 보고서를 냈다.
하루에 한 끼만 먹게 된 사람들
빵은 오랫동안 시리아 주민들의 주식이었다. 내전이 발생한 2011년 전만 해도 시리아는 충분한 양의 밀을 생산해 국내 수요를 맞출 수 있었다. 저소득층일수록 빵에 대한 의존도가 컸다. 그러나 독일 베를린에 있는 홈볼트 대학교가 2020년 실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시리아는 2010년부터 2018년 사이 94만3000 헥타르 상당의 농경지를 잃게 됐다. 군사 작전이 벌어지고 농민들이 다른 지역으로 피난을 갔기 때문이었다. 시리아와 러시아 군대가 불법 공습을 한 이후부터는 피해가 더욱 심해졌다. 이런 공습은 2015년부터 늘어났으며 이는 전쟁범죄에 해당될 수도 있는 작전이었다. 공습으로 인해 당시 반군 세력이 통제하던 지역의 농경지만 파괴된 것이 아니라 빵을 생산하는 제과점들도 파괴됐다.
시리아는 레바논 등으로부터 밀가루를 수입했는데 이런 상황도 지난해부터 크게 악화됐다. 시리아의 화폐 가치가 추락했으며 레바논 측 역시 미국의 제재를 우려해 시리아에 밀가루를 수출하는 것을 꺼려했다. 시리아에 가장 많은 양의 밀을 수출하던 러시아도 코로나 바이러스 발발 이후에는 밀 수출 자체를 제한했다.
세계식량기구에 따르면 2월 기준 약 1600만 명의 시리아 국민 중 최소 1240만 명이 식량 부족 상태이다. 인구 약 77.5%에 달하는 수치다. 한 해 사이 식량 부족 상태의 인구가 310만 명 증가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와 세계식량기구에 따르면 시리아 전체 가구의 46%가 하루 식량 섭취량을 줄였다. 성인의 38%는 자신들의 식량 섭취량을 줄여 아이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시리아 정부는 공공 제과점에 밀가루와 연료를 배급하고 이들 제과점은 생산한 빵을 주민들에게 판매하고 있다. 시리아 국영방송인 ‘SANA 통신’은 지난해 9월 정부가 가구당 구입할 수 있는 빵의 수를 제한했다고 보도했다. 시리아 정부는 10월 29일 정부의 보조로 만들어져 판매하는 빵의 가격을 두 배로 올렸다.
휴먼라이츠워치와 인터뷰한 한 남성은 4인 가족의 家長이라고 했다. 그는 2020년 초부터 치즈와 육류를 먹지 못하게 됐고 식사 대부분을 빵에 의존하게 됐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가 가격을 올리고 가구당 구입할 수 있는 빵의 양을 제한하자 가족 식사를 하루에 한 끼로 줄이게 됐다고 했다. 그는 “빵을 아주 작게 잘라 차(茶)에다 찍어 이를 크게 보이게 만든다”고 했다. 그는 빵의 질이 너무 좋지 않아 이렇게 해서 먹는다고도 했다.
차별받는 주민들
휴먼라이츠워치가 인터뷰한 주민들에 따르면 빵 배급 과정에서 차별이 발생하기도 한다. 군인과 정보 당국 요원은 주민 혹은 피난민과 다른 줄을 선다. 피난민은 가장 뒷전으로 밀린다. 뉴스라인 연구소의 보고서에 따르면 시리아 정보당국은 빵과 밀가루 배급 과정에 개입하기도 한다. 제과점 등으로부터 빵을 빼앗아 이를 암시장에 내다 팔고 있다는 것이다.
재정적 상황이 조금 괜찮은 가정들은 더 질이 좋은 ‘여행자용 빵’을 구입한다. 이는 정부의 보조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양을 구입할 수 있다. 또한 이들은 암시장에서 빵을 구입하기도 한다. 암시장에서 빵은 정부 보조금으로 만들어진 빵보다 150배 비싸게 거래된다. 휴먼라치워치와 인터뷰한 주민 세 명은 여행자용 빵을 파는 제과점에는 재고가 꾸준히 있지만 공용 제과점의 경우는 며칠 동안 빵을 구입할 수 없을 때도 있다고 했다. 한 주민은 “나는 내가 원하면 어디서든 빵을 구입할 수 있는데 이는 내가 이를 구입할 돈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내전으로 인해 여러 제과점들이 파괴되고 영업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하지만 제과점에 대한 정확한 피해 규모를 집계하기는 어렵다. 시리아의 상무부는 ‘재건’ 작업을 통해 시리아 내에서 운영되는 제과점의 수가 2016년 65개에서 2019년 178개로 늘어났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주민들과 구호 단체 관계자들은 정부가 통제하는 지역의 제과점 절반 가량은 파괴되거나 피해를 본 상황이라고 했다. 이에 따라 해당 지역 주민들은 다른 지역에 있는 제과점으로 가 줄을 선 뒤 빵을 배급받는다고 했다. 다른 지역 주민들까지 모여들기 때문에 빵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국제인권법에는 식량권이라는 개념이 있다. 모든 인간은 남녀노소, 거주하는 지역 등을 불문하고 충분한 음식을 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개념이다. 정부는 국민들이 굶주림에 빠지지 않도록 할 의무가 있기도 하다. 휴먼라이츠워치는 시리아 정부가 사람들을 차별하며 빵과 밀가루를 배급하는 행동을 멈춰야 한다고 했다. 또한 정보 당국이 배급 과정에 개입해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행위를 막아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시리아의 핵심 동맹이자 지금의 상황을 초래하게 한 군사 행동에 책임이 있는 러시아가 시리아에 밀가루를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제인권법 관점에서 보면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 상황에 책임이 있고 이에 따라 발생한 폭력 사태에 대한 보상을 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또한 군사 행동으로 파괴된 제과점과 농경지, 인프라 시설 중 러시아에 책임이 있는 부분은 러시아가 보상해야 한다고 했다.
통계로 보는 시리아의 식량난
시리아는 2011년 전만 해도 국내 수요를 충족할 수 있을 수준의 밀을 생산했다. 당시의 연간 생산량은 350만 톤에서 410만 톤으로 추정된다. 밀 생산은 물 공급에 큰 영향을 받는다. 기존 농경지가 파괴되거나 다른 곳으로 옮겨지고 인프라 시설이 파괴됨에 따라 밀 생산량은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2019년 10월부터 11월 사이 시리아의 화폐인 시리아 파운드의 가치가 급락했다. 1달러당 600 시리아 파운드에서 900 시리아 파운드까지 떨어졌다. 이는 레바논의 경제 위기와, 시리아의 돈세탁에 대한 미국의 제재 강화 등에 따른 여파였다. 제재 등으로 인해 시리아 경제인들이 레바논에 보관해놓은 통장에 접근하지 못하게 된 것도 큰 이유 중 하나였다. 시리아의 바사르 알아사드 대통령 역시 레바논 은행에 있는 시리아 잔고가 동결된 것이 시리아 경제 위기의 핵심이라는 불평을 내놓기도 했다. 2020년 초 닥친 코로나 바이러스로 시리아 파운드의 가치는 더욱 크게 떨어졌다. 2021년 3월에는 역대 최저치인 1달러당 4300 시리아 파운드로 추락했다. 시리아 화폐 가치의 하락은 밀과 연료, 비료, 그리고 밀가루와 빵 생산을 위한 기계들을 수입하는 가격이 급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리아는 석유 등 연료 수입 부문에서도 제재를 받았고 이에 따라 밀의 가격이 올라갔다. 밀 생산은 디젤 연료를 통해 이뤄진다.
앞서 언급했듯 ‘여행자용 빵’은 일반 정부 보조 빵보다 질이 좋다. 우유와 설탕과 같은 재료가 들어가기도 한다.
2020년 10월 29일 시리아 정부는 정부 보조 빵 한 봉지의 가격을 50 시리아 파운드에서 100 시리아 파운드로 올렸다(0.017달러에서 0.034 달러). 같은 시기 암시장의 빵 가격은 정부 보조 빵의 10배 이상인 250 시리아 파운드에서 1000 시리아 파운드(0.085달러에서 0.341달러)에 거래됐다.
유엔에 따르면 80% 이상의 시리아인들이 빈곤선 이하의 소득으로 생활하고 있다. 전체 가구 중 40%의 경우는 소득의 65%를 음식에 지출한다. 정부는 7인 가구 이상이 구입할 수 있는 빵의 양을 네 묶음으로 규정했다. 2인 가족은 한 묶음만 구입할 수 있다.
시리아 정부는 정보당국이 빵과 밀가루를 암시장에서 판매하는 행동을 처벌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런 상황은 계속 진행되고 있다. 휴먼라이츠워치가 인터뷰한 여러 주민들은 정보당국 요원들이 이를 암시장에서 두 배 이상의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통제하는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들을 보면 구호단체들이 지원한 밀가루와 설탕 등 식료품이 암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다. 이를 판매하는 사람들 중에는 정보당국 요원과 군인들도 있었다.
먹을 수 없는 빵
주민들은 정부 보조 빵의 경우는 거의 먹을 수 없는 수준이라고 했다. 빵이 오래돼 검정색으로 변해있거나 콩과 보리가 섞여 있다고 했다. 한 주민은 빵이 너무 안 좋아서 물에 담고 나서야 먹을 수 있는 수준이라고 했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사진이나 휴먼라이츠워치가 확인한 빵들은 빵이 바짝 말라 갈라져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제과점마다 빵의 크기가 다르다고도 했다. 한 주민은 몇 시간을 줄을 서 빵을 받게 되는데 받자마자 먹어야 한다고 했다. 바로 먹지 않으면 먹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제과점을 운영하는 두 명은 휴먼라이츠워치에 정부가 밀과 밀가루가 부족하기 때문에 이를 배급하는 것을 통제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따라 밀을 대신해 다른 재료를 빵에 넣고 있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