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덮인 인천 연안부두에서 떠올린 ‘가슴 아픈’ 시상(詩想)

김장실의 노래 이야기(30)가슴 아프게(정두수 작사, 박춘석 작곡, 남진 노래, 1967년)
<가슴 아프게>가 나와 인기를 끌던 1967년경이면 박정희 대통령이 추진한 경제개발 열풍이 전국을 강타하던 시절이다. 농촌에 살던 많은 사람들이 이 열기에 편승하여 꿈과 희망을 찾아 도시로 몰려들었다. 이렇게 기회의 땅 도시로 온 농촌 사람들은 성실하게 일하는데다 행운까지 겹쳐서 여기저기서 제법 많은 사람들이 출세를 하였다. 스스로 회사를 세워 돈을 많이 벌거나, 이미 많이 알려진 회사의 최고위층이 되는가 하면, 고위관료나 법관 등 공직으로 진출하기도 하고, 유학을 하여 고명(高明)한 학자가 되는 등 급작스럽게 계층상승 이동을 하였다.

이 과정에서 도시로 가서 출세한 남자와 농촌(가요에서 대체로 섬으로 상징되어 나타남)에 남은 여인의 사회적 거리감이 점점 확대되었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를 담은 우리 대중가요에서는 서울로 간 남자의 출세라는 바다 때문에 농촌에 있는 여인은 그 남자에게 다가갈 수 없는 구도를 상정하고 있다. 이미자의 <동백아가씨>와 <섬마을 선생님>, 남진의 <가슴 아프게>, 그리고 조미미의 <바다가 육지라면>이 이런 논리의 연장선상에 있는 노래들이다.

한편 1960년대는 라디오 드라마나 영화의 주제곡이 인가가요로 부상(浮上)하는 패턴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던 시절이었다. 즉, 1960년대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던 인기가요 <빨간 마후라>, <동백아가씨>, <떠날 때는 말없이>, <맨발의 청춘>, <빛과 그림자>, <하숙생>, <팔도강산> 등이 모두 라디오 드라마 혹은 영화의 주제곡이었다.

이런 문화적 배경 속에서 1967년 박상호 감독은 남진, 남정임, 이빈화, 주증녀, 전양자, 어윤길 등을 출연시켜 멜로 영화 <가슴 아프게>를 촬영하였다. 가수 남진은 이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했을 뿐만 아니라 주제가도 불렀다.

이 영화를 구상하던 1966년 봄에 작사가 정두수는 지구레코드사로부터 당시로서 아주 거금인 5만 원을 받고 가수 남진이 부를 노래의 작사를 부탁받았다. 그는 노랫말을 짓기 위해 인천연안부두에 갔으나 마침 그 때 내리는 봄비와 안개로 바다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바다를 제대로 볼 수 없게 하는 봄비를 탓하며 인근 술집에서 해장국과 술을 시켜놓고 노래시를 어떻게 작사할지 여러 가지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때 그 술집의 젊은 여주인이 틀어놓은 라디오 연속극에서 뱃고동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그는 인천의 바다를 다시 보기 위해 택시를 타고 가던 중 어릴 때 자신이 놀았던 부산 광안리 바닷가가 연상되면서 마음 한편으로 “손에 잡힐 듯 잡힐 듯하면서 뱅뱅 도는 이것이 무엇이기에 나를 이토록 ‘가슴 아프게’ 하는가” 하는 화두가 떠올랐다. 그러다가 ‘바다와 나 사이’를 가로막는 것은 봄비가 아니라 ‘당신과 나 사이를 저 바다가 가로막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달리는 차 안에서 별안간 떠오르는 시상(詩想)을 단숨에 완성하였다.

공중전화로 완성된 가사를 박춘석 작곡가에게 불러주었고, 그는 과거 손인호가 불렀지만 히트하지 못했던 노래의 곡에다 이 가사를 갖다 붙여 편곡을 하였다. 한편 <울려고 내가 왔나>로 상당히 주목을 받던 남진은 1967년 3월 오아시스레코드사에서 지구레코드사로 전속을 옮겼다. 가수 남진의 지구레코드 전속 기념으로 만든 킴필레이션 음반(남진 5곡, 이미자・권혜경・박재란이 각각 2곡, 남강수 1곡)의 타이틀곡으로 이 노래가 나왔다. 발매 한 달 만에 당시 최고 인기가수 이미자를 누르고 전국 레코드 판매 1위를 기록하면서 그해 MBC 10대 가수로 선정되었다. 이와 함께 그가 출연한 영화 <가슴 아프게>도 히트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여러 가지 사연을 안고 현해탄을 건너 일본에서 살고 있는 재일동포들도 이 노래를 좋아하였다. 남진의 원곡은 물론 일본에 진출한 이성애가 리메이크한 <가슴 아프게>도 일본에서 인기를 끌었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 남진은 1946년 전남 목포 출신으로 본명은 김남진이다. 한동훈 작곡가 밑에서 수련을 쌓아 <서울 플레이보이>로 데뷔했다. 그 후 그는 <울려고 내가 왔나>, <가슴 아프게>, <미워도 다시 한번>, <우수>, <님과 함께>, <마음이 고와야지>, <그대여 변치 마오>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1969년 TBC 가수상, 1971년 TBC 가수상, MBC 10대 가수상, 1972년 MBC 10대 가수상, 1973년 TBC, 가수상, MBC 10대 가수상을 받았다. 나훈아와 함께 1970년대를 달군 소위 ‘오빠부대’의 원조이다.

<비 내리는 호남선>, <초우> 등 수많은 인기곡을 작곡한 박춘석은 <그 사람 바보야> 등을 작사한 정두수와 함께 짝을 이루어 <가슴 아프게> 등 1960년대와 1970년대 한국인의 마음을 울린 히트곡을 양산하였다.

<가슴 아프게>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쓰라린 이별만은 없었을 것을
해 저문 부두에서 떠나가는 연락선을
가슴 아프게 가슴 아프게 바라보지 않았으리
갈매기도 내 마음 같이 목메어 운다

당신과 나 사이에 연락선이 없었다면
날 두고 떠나지는 않았을 것을
아득히 바다 멀리 떠나가는 연락선을
가슴 아프게 가슴 아프게 바라보지 않았으리
갈매기도 내 마음 같이 목메어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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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솔383 2021-04-07 오후 4:21

    돌아가신 어무이 18번 가슴아프게의 사연이네요 직접 부르시니 더 진정성이 있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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