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미·이봉조 콤비의 대표곡…“만삭(滿朔)에 녹음하면 히트한다”

김장실의 노래 이야기(46)떠날 때는 말없이(유호 작사, 이봉조 작곡, 현미 노래, 1964년)
1960년대는 라디오 시대였다. 그러다 보니 많은 애청자들이 라디오 드라마를 즐겨 듣게 되고, 그렇게 히트한 라디오 드라마는 당시의 공식대로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 당시 인기 있었던 <동백 아가씨>, <떠날 때는 말없이>도 이와 같은 히트 공식을 따라간 경우이다.

서윤성이 각본을 쓴 영화 <떠날 때는 말없이>는 대학축제 때 가면무도회에서 만난 명수(신성일)와 미영(엄앵란)이 서로 사랑하지만 비련으로 끝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김기덕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엄앵란, 신성일, 김승호, 황정순, 주증녀, 윤일봉, 전계현 등 이름난 배우들이 출연하여 관중들의 인기를 끌었다.

당시 이 영화의 주제가 작곡을 맡은 TBC 악단장 이봉조는 같은 회사 드라마 작가인 유호에게 작사를 부탁하였다. 이때 이봉조는 이미 이 노래의 작곡을 완료한 상태였다. 작사를 부탁하던 날 작사가 유호를 텅 빈 스튜디오로 안내한 이봉조는 불도 켜지 않고 흥얼거리면서 그가 작곡한 <떠날 때는 말없이>라는 노래를 피아노로 연주하였다. 그리고 나서 “어때요? 감이 잡힙니까?”라고 물었다. “별로 안 잡히는데”라고 유호가 말하자 “작사 하면 유 선생님 아닙니까”라고 이봉조가 다시 얘기했다. 이 말을 받아서 유호는 “작곡 하면 이봉조고?”라고 말하였다.

이틀 후에 이봉조는 다시 전화를 하여 다급하게 가사가 다 되었는지 물어서 “아직 안 되었다”고 말하자 이봉조는 “급해요. 급합니다”라고 말하면서 빨리 작사를 끝내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래서 유호는 “알았으니 이따 만나지”라고 말하자 이봉조는 “전화로 가사를 불러주십시오. 작사하면 유 선생님 아닙니까”라고 말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 후 유호는 전화로 가사를 불러주었는데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래서 유호가 ”왜 말이 없어? 마음에 안 드나?“라고 묻자, 이봉조는 ”아닙니다. 이건 틀림없이 히트할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유호가 다시 ”노래는 누가 부를 건데?“ 하니까 이봉조는 ”노래 하면 현미 아닙니까“라고 대답하였다.

이 즈음 현미와 이봉조 콤비는 발표하는 곡마다 연속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밤안개>를 시발로 <보고 싶은 얼굴>에 이어 오아시스레코드에서 발매한 <떠날 때는 말없이>도 크게 히트하였다. 이 노래는 1964년 여름 서울시 중구 스카라극장 앞 목욕탕 건물 2층 녹음실에서 둘째 아이를 임신한 만삭의 현미가 선풍기 바람으로 더위를 견디며 녹음하였다. 뒤이어 같은 녹음실에서 첫째를 임신한 만삭의 이미자가 <동백 아가씨>를 녹음하여 공전의 히트를 하였다. 이런 일들로 인해 ‘만삭에 녹음하면 히트한다’는 속설이 생겼다.

<떠날 때는 말없이>가 이렇게 히트한 데에는 현미의 출중한 가창력과 이런 분위기를 살리는 이봉조의 탁월한 색소폰 연주가 한 몫을 하였다, 이 노래는 가수 현미가 가장 아끼는 노래이다. 1987년 여름 동숭동 대학로에서 거행된 연예협회장 주관 이봉조 작곡가 장례식에서 이 노래를 틀었다.

<떠날 때는 말없이>를 부른 가수 현미는 1937년 평양시에서 8남매 중 셋째 딸로 태어났다. 본명이 김명선인 그녀는 1951년 1·4 후퇴 당시 월남하여 덕성여대를 졸업하였다. 1957년 미 8군 무대의 무용수였다가 펑크 난 가수의 대타로 무대에 오르면서 가수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1962년 이봉조가 편곡한 <밤안개>로 가요계에 데뷔하여 5만 장 넘게 음반을 판매하여 언론과 가요 관계자의 관심을 받았다. 1963년 이산가족의 아픔을 위로하는 <보고 싶은 얼굴> 외에 <떠날 때는 말없이>, <몽땅 내 사랑>, <무작정 좋았어요> 등을 발표하여 인기를 얻었다.

작곡가 이봉조는 1932년 경남 남해 출신으로 진주고와 한양대 건축과를 졸업했다. 그가 진주고를 다닐 때 음악을 가르친 분이 일제 시대와 해방 직후 우리 대중음악사에 빛나는 이재호 선생님이다. 이봉조는 TBC와 KBS 악단장을 지낸 작곡가이자 색소폰 연주가이다. 그는 <맨발의 청춘>, <종점>, <안개>, <꽃밭에서>, <무인도>, <보고 싶은 얼굴>, <떠날 때는 말없이> 등 300여 곡을 작곡하였다.

그는 활발하게 국제가요제에 참가하여 입상함으로써 한국가요계의 지평을 국제적으로 넓혔다. 즉, 그리스 가요제에 출전하여 1971년 정훈희의 <너>로, 1973년에는 현미의 <나의 별>로 입상하였다. 1974년 정훈희의 <좋아서 만났지요>, 1975년 김추자의 <무인도>, 1979년 정훈희의 <꽃밭에서>로 남미 칠레가요제에서 수상하는 위업을 이룩하였다.

<떠날 때는 말없이>

그날 밤 그 자리에 둘이서 만났을 때
똑같은 그 순간에 똑같은 마음이
달빛에 젖은 채 밤새도록 즐거웠어
아~ 그 밤이 꿈이었나 비 오는데
두고두고 못다한 말 가슴에 새기면서
떠날 때는 말없이 말없이 가오리다

그날 밤 그 자리에 둘이서 만났을 때
똑같은 그 순간에 똑같은 마음이
아무리 불러도 그 자리는 비어있어
아~그 날이 언제였나 비 오는데
사무치는 그리움을 나 어이 달래라고
떠날 때는 말없이 말없이 가셨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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