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영우TV 녹취/문재인 외교안보 정책은 왜 실패했나

韓美동맹은 동문서답(東問西答)이 일상화된 관계로 추락,중국엔 굴종과 충성을 맹세하는 나라가 되었다.
시대착오적 이념으로 무장한 선무당들이 어렵게 쌓아 올린 대한민국의 국제적 입지와 위상을 망치고 초토화시켰다. 세계의 중심 무대에서 대한민국은 보이지 않고 변방으로 밀려났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은 총체적 실패다. 지난 4년간 신기루만 쫓아다니며 헛발질하다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건진 게 없다.

북한에 대한 집요한 구애와 스토킹의 결과로 돌아온 것은, ‘삶은 소대가리도 앙천대소할 노릇’이라는 조롱만이 아니다. 요란한 ‘평화 쇼’를 벌이는 동안에도 북한은 핵미사일 능력을 증강해왔는데, 이에 대한 국민의 경각심이 마비됐다. 김정은은 지난 1월 당 대회에서 한국을 공격하는 데만 사용할 수 있는 첨단 전술 핵무기를 개발하겠다고 호언장담하기에 이르렀다. 이게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하고 북한 정권의 ‘수석대변인’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으면서 거둔 대북 정책의 성적표다. 그런데도 정부는 여전히 평화 타령만 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안위와 번영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국가들과의 관계도 지난 4년간 악화일로를 걸어왔다. 한미관계부터 살펴보자. 동맹의 생명은 신뢰다. 그런데 신뢰는 땅에 떨어지고 공조는 고사하고 소통도 어려운 상황이다. 추구하는 근본 가치와 목표가 달라서 서로 동문서답이 일상화된 관계로 추락했다. 북한과 중국을 바라보는 근본적 시각과 철학의 대립을 봉합하고, 대외적으로 부각되는 것을 막기에도 힘겨운 지경이 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미국과 동맹을 맺고 있는 걸 수치스럽게 생각하고 전작권 전환을 마치 ‘미국의 식민지 상태에서 해방되고 주권을 회복하기 위한 항미(抗美) 독립투쟁’으로 여기는 태도를 보여 왔다.

미국이 ‘사드’ 고고도 미사일 방어시스템을 배치한 것은 유사시 북한의 핵미사일로부터 미군 과 대한민국을 방어하기 위한 것인데, 이게 얼마나 못마땅하면 4년이 지나도록 환경영향평가를 빌미로 성주 기지의 정상 운용을 가로막고 있을까?

유엔 사령부의 탄생 배경과 역할을 무시하고, 남북 관계를 가로막는 장애물, 조속히 청산해야 할 역사의 적폐로 여기면서 이것을 적대시하는 시각도 여과 없이 표출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미 관계를 경시하지 못하는 이유는, 미국이 북한과 대화하고 제재를 완화해줘야 문재인 정부가 원하는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열 수 있기 때문이다.

한중(韓中)관계는 조선시대의 종속적 조공 관계로 돌아가고 있는 인상이다. ‘사드 3불합의’로 대한민국의 안보주권을 양보하는 치욕을 자초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모자랐는지, 대통령이 직접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로 치켜세우고 한국을 “작은 나라”로 폄하하는가 하면, “중국夢과 함께 하겠다”고 굴종과 충성을 맹세하는 나라가 되었다.

중국몽이 한국에게는 목숨 걸고 막아야 할 악몽이라는 걸 모르고, 동아시아의 ‘앙시앙 레짐’인 중화질서에 향수를 느끼고 중국 패권의 부활을 예찬하는 대통령을 보유한 부끄러운 나라가 되었다.

일본과의 관계도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지금처럼 추락한 적이 없었다. 문재인 정부는 4년 내내 과거사에 집착하느라 현재를 파탄내고, 미래로 가는 발목을 잡는데 정권의 운명을 거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일본의 오부치 총리 간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 그리고 노무현 정부의 강제징용 문제에 관한 결론과 대립하고 이를 부정하는 정책에 매달렸다. 2005년 이해찬 총리를 위원장으로 한 ‘민관(民官) 공동위원회’가 강제징용 보상은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되었기 때문에, 일본에 법적 배상을 요구하기 곤란하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한·일 간의 싸움은 ‘민관 공동위’에 정부 위원으로 참여한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과 현직 문재인 대통령 간의 싸움이기도 하다. 죽창가를 들먹이며 위안부 합의를 맹공격하고 대통령이 직접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며 일전불사의 자세로 나오더니, 금년에 들어서는 아무 설명도 없이 위안부 합의는 살아있다고 하고, 일본과 대화하겠다고 한다. 도대체 진심이 뭔지 종잡을 수가 없다.

국제무대에서 대한민국의 존재감도 땅에 떨어졌다. G20 정상회의와 핵안보 정상회의 같은 모임은 세계적 아젠다를 논의하고 설정하는 자리다. 이런 정상회의를 한국이 좀 주최해달라고 대국의 정상들이 우리 대통령에게 사정하고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핵심 아젠다를 설정하고 조정하면서 이끌어가던 그런 리더십은 이제 흔적도 찾아보기 어렵다. 세계의 중심 무대에서 대한민국은 보이지 않고 변방으로 밀려났다. ‘혼밥’에 익숙한 대통령의 모습이 쪼그라든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상징한다.

외교안보 정책의 모든 전선에서 이렇게 짧은 기간에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은 일부러 애를 써도 어려운 일이다. 역대 어느 정부도 거둘 수 없었던 이런 총체적 부실을 문재인 정부가 불과 4년 만에 이뤘다. 시대착오적 이념으로 무장한 선무당들이 어렵게 쌓아 올린 대한민국의 국제적 입지와 위상을 망치고 초토화시켰다.

이런 참담한 실패는 왜 일어났는지, 뭐가 잘못되었는지 그 원인을 규명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는 평화가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이치에 대한 무지와 착각이다. 문재인 정부는 평화의 환상과 진정한 평화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간 추진해 온 것은 평화의 환상, 평화의 신기루였지 지속 가능한 평화가 아니다. 평화라는 게 주술과 엄숙한 선언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당사국들이 모여서 ‘전쟁은 끝났다’, ‘평화가 왔다’ 이렇게 선언한다고 평화가 저절로 오는 게 아니다.

평화를 달성하는 방법론에 있어서 ‘능력에 기초한 접근법’(capacity-based approach) 대신에 ‘의도에 기초한 접근법’(intention-based approach)을 선택한 데 근본적 문제가 있다.

즉, 북한의 평화 파괴 능력이 증가하더라도 김정은의 평화 파괴 의도만 줄이고 관리하면 항구적 평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김정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을 최선의 평화 유지 방법으로 여기는 것도 이런 신앙에서 나온 것이다. ‘의도에 기초한 접근법’은 안보정책에서는 반드시 피해야 할 금기사항이다. 능력은 지속성이 있고 숨기기 어려운 반면, 의도는 얼마든지 위장할 수 있고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의도는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의 평화 파괴 의도를 줄이고 관리하는 노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능력을 줄이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능력이 없으면 의도가 있어도 평화를 파괴할 수 없는 것이다. 능력만 있으면 의도를 위장하고 있다가 마음만 먹으면 평화를 파괴할 수 있다.

북한은 평화를 파괴할 가공할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데, 우리는 북한에 평화를 강제할 능력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북한이 전쟁과 평화를 결정하고 평화의 조건을 결정할 칼자루를 쥐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대한민국은 북한의 핵 인질로 전락하고, 우리가 누리는 평화는 인질범인 김정은의 자비와 선의에 의존하는 굴욕적·노예적 평화가 된다. 김정은의 일방적 자비가 지속되는 동안만 누리는 위태로운 평화에 불과한데 이걸 명예롭고 지속 가능하고 품격 있는 평화인양 호도하고 여기에 국민들이 열광하도록 여론을 오도해왔다.

‘아무리 나쁜 평화도 전쟁보다는 낫다’는 평화 지상주의는 인질이 패배주의와 굴종을 정당화할 때 애용하는 논리다. 인질범을 체포하거나 흉기를 내려놓게 하기 위해 강압적 수단을 사용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영원히 인질로 살아가는 게 낫다는 주장이다. 이런 평화에 목숨 걸고 매달리면 김정은 남매의 질책에도 말대꾸 한번 못하고, 우리 국유재산을 폭파해도 배상 청구할 생각도 못하는 심리 상태에 빠진다.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북한 체제 수호를 위한 입법 요구에도 복종하는 일까지 벌어지는 것이다. ‘대북 전단 금지법을 만들라’고 엄포를 놓자, 문명세계의 온갖 조롱과 비난을 감수하고도 무조건 복종하는 것은 인질이 인질범 편을 드는 스톡홀름 신드롬의 대표적 사례로, 앞으로 학계의 연구 대상이 될 것 같다.

민주화 세력을 자처하고 인권을 중시한다는 사람들이 북한 폭압체제 수호의 전위대로 나선 것도 인질범의 자비를 구걸하기 위한 인질의 처절한 몸부림이다.

정책 실패의 두 번째 원인은 ‘위협 인식’ 능력의 고장이다. 우리에 대한 실존적 위협이 어디서 오는지를 판단하는 게 ‘위협 인식’인데, 이것이 외교안보전략의 출발점이다.

위협 인식에 고장이 나면 적과 동지를 구분할 수 없고, 누구와 손을 잡을지, 누구를 멀리할지 결정할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문재인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을 보면 한반도 평화에 대한 위협은 핵무장한 북한이 아니라 미국의 대북정책에서 온다고 믿는 것 같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어도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만 포기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우리 안보에 위협이 안 된다고 철석같이 믿는 것 같다. 동아시아 지역 차원에서는 우리나라의 자주 독립에 대한 최대 위협은 항상 역내 신흥 패권세력에서 왔다. 이 역사적 교훈을 망각하면, 적과 동지를 혼동하게 된다. 20세기 초에 조선이 일본에 침탈당한 것은 당시 일본이 동아시의 패권국이었기 때문이다. 21세기에 우리의 주권에 대한 위협은 21세기 패권세력인 중국에서 올 것이다.

중국의 패권적 횡포에서 나라를 지키는 것이 외교안보전략의 중심 과제임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가 일본을 적대시하고 중국을 하늘같이 받드는 자세는 과거사에 대한 집착이 위협 인식에 고장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정책 실패의 세 번째 원인은 wishful thinking, 즉 희망사항과 확증편향이 정책을 지배하는 현상이다. 외교안보정책은 이념과 신앙의 영역이 아니라 국가의 생존과 안위, 번영을 확보하기 위한 실사구시의 영역이다.

외교는 상대가 있기 때문에 우리의 희망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은데도, 우리가 바라는 대로 풀릴 것이라는 확증편향에 빠지면, 출구전략 마련을 소홀히 하게 된다. 일본과 큰 싸움을 벌여놓고 퇴로를 찾느라 갈팡질팡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희망사항과 확증편향은 초현실주의적, 자폐적 외교안보정책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북한 중심적 세계관에 함몰되는 것도, wishful thinking과 확증편향, 그리고 지적 자폐증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본다. 자나 깨나 북한만 보이고 세상만사가 북한으로 통하는 길로 보인다. 속초에 산불이 났는데도 ‘북한으로 번질까’ 걱정되고, 우리 국민들에게 접종할 백신을 구하기도 전에 ‘김정은에게 갖다 주면 얼마나 좋아할까’ 하는 생각부터 하는 것도, 이런 현상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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