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알수록, 지내면 지낼수록 더 혼란스러움을 주는 곳, ‘북한, 어느 곳과도 같지 않은 곳’의 저자 린지 밀러 씨의 북한 이야기, 오늘은 그녀가 책을 출간하게 된 계기를 천소람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어느 곳과도 같지 않은 북한
[린지 밀러] 연극과 음악은 관중들과 공유와 연결고리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저는 독자들이 관중이 되길 원치 않았어요. 무대와 관객석이 분리되기 보다는 같은 공간에 있길 바랐습니다. 몰입형 극장 (Immersive theater)같이 말이죠. 관객석에서 연극을 바라보기보다는, 주체가 되는 겁니다. 이 책의 목적도 이와 같습니다. 제가 독자들을 대신해 북한이 어떤 장소인지, 제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요약해 주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제가 완벽히 묘사, 표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200페이지가 넘는 책을 펴냄으로써 답을 내려고 노력했고, 인간적인 모습을 표현하려 했습니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이 북한의 사람들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정치적인 부분 외적인 요소들 말이죠.
‘북한, 어느 곳과도 같지 않은 곳’의 저자 린지 밀러 씨는 관객이 주체가 돼 연극을 함께 이끌어 나가듯, 책을 읽는 독자들이 선입견을 버리고 북한 주민들의 삶을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 보기를 원했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이 책이 ‘북한에서 사는 삶은 어떨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북한에서 2년을 지냈고, 그곳을 떠난 지 2년이 되어 가지만, 아직도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기만 합니다.
[린지 밀러] 북한에서 오래 지낸 외국인들은 이 표현에 동의할 겁니다. 북한에서 더 오래 지낼수록 북한에 대해서 더 잘 알지 못하는 것 같고 혼란스럽습니다. 그래서 이 간단한 질문에 답하는 것은 굉장히 복잡합니다.
북한에 처음 도착했을 때 밀러 씨는 책을 출판할 계획이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영국으로 돌아와 그녀가 겪은 경험, 감정, 사진들을 정리하면서 북한에서의 추억, 북한 주민들과 공유했던 감정들을 떠올렸고 이를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지 북한이 어떤 곳인지, 그곳에서의 삶은 어떤지를 단지 이방인의 시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닌, 외부인들이 볼 수 없는 그곳의 분위기, 그녀가 북한에서 지내며 느꼈던 감정을 공유하려 애썼습니다. 당연히 책은 북한의 체제나 정치 상황보다는 사람 개개인에게 초점을 맞췄습니다.
[린지 밀러] 독자들이 조금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입체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왜냐하면 북한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으로만 바라보기 쉬운 곳이잖아요? 그래서 이 책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과 가정을 뒤로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북한을 바라볼 수 있게끔 독자들을 배려했습니다.
[기자] ‘북한, 어느 곳과도 같지 않은 곳’. 이 제목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린지 밀러] 북한이 어떤 곳이냐는 질문에 답하긴 정말 어려웠습니다. 제가 아는 곳, 제가 경험해 본 장소 중, 전 세계에서 북한과 같은 곳은 없거든요. 외교관의 특권을 가진 외국인들에게도 제한이 있고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들이 구분돼 있습니다. 우리는 자유 국가에서 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죠. 굉장히 특권 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입니다. (민주주의를) 북한 주민들에게 설명하긴 굉장히 힘듭니다. 북한에서 저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민주주의를) 경험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말이죠. 이것이 제가 이 책의 제목을 ‘북한, 어느 곳과도 같지 않은 곳’이라고 부르고 싶었던 이유입니다. 말 그대로 비교할 수 없는 장소거든요.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지내며 경험했던 것들은 굉장히 특별했고 여러 가지로 저에게 영향을 줬죠. 저의 행동, 생각까지도요.
진실과 거짓, 체제와 개개인
북한을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 그녀 역시 북한에 대한 매우 강한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북한에 대한 정보는 제한적이었고, 그 제한된 정보조차도 북한 정권이 전 세계에 보여주고자 했던 정제된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린지 밀러] 북한에 둘러싼 흔한 오해가 있죠. 저와 같은 이방인들은 북한에 사는 사람들에게 아주 강력한 오해와 착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도 북한 주민들과 대화를 나눌 때, 혹은 건물을 쳐다볼 때 겉모습이나 외부 모습만 보곤 하죠. 누구와 대화를 할 때 그들의 속마음을 의심하곤 합니다. ‘왜 나에게 질문을 하는 거지?’, ‘가족에 대해 왜 묻는 거지?’라는 생각을 할 수 있잖아요. 이러한 생각은 제가 지금까지 가졌던 편견 때문이겠죠. 동시에 ‘그들이 단지 저라는 사람을 알고 싶어서 질문하는 건가?’ 라는 생각도 들죠. 이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주제입니다. 북한에 대한 진실과 거짓의 선을 어디에 그려야 할지 말이죠.
이 책의 다른 주제는 북한 주민들의 매우 평범하고도 인간적인 모습입니다. 북한의 체제와 핵 문제 등에 가려져 북한 주민들도 단지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종종 잊곤 합니다.
[린지 밀러] 사람들이 미사일, 퍼레이드 등에 가려져 북한의 인간적인 모습에 무감각해지는 것 같아 걱정됩니다. 모든 정치적 문제 이면에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고, 주제입니다. 한발 더 나아가 생각하면 북한도 사람들이 사는 곳이고, 우리가 말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그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죠. 아주 기본적인 것들이지만, 이 부분에 집중하고 싶었습니다. 진실과 거짓 사이의 경계, 그리고 외부인으로서 쉽게 간과할 수 있는 북한 주민들의 소소한 일상생활이 이 책의 주제입니다.
북한의 평범한 사람들 이야기 나누고파
음악가이자 음악감독인 린지 밀러 씨는 직업 특성상 평소에도 창의력, 다양한 사람들과 협력을 기를 수 있었습니다.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북한에서 그녀의 이런 경험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였습니다.
[린지 밀러] 창의력은 저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제가 찍은 수천 장의 사진에서 초반에는 건물들이 많았습니다. 외부 건축 모양, 디자인 등 말이죠. 우리가 단순히 표면적으로 볼 수 있는 것들이요. 하지만 빠르게 사람들로 초점이 바뀌었습니다. 영국에서는 길거리의 사람들과 자유롭게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죠. 하지만 북한에서는 이것들이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사생활을 존중해야 하고 거리를 둬야 합니다. 제가 북한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들의 일상생활을 제가 어떤 시각으로 보는지 창의적으로 담고 싶었습니다.
밀러 씨는 북한에서 주민들과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을 터놓고 대화를 할 수는 없었습니다. 한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그들이 감시를 받고 있는지, 외국 영화를 보는지 안 보는지 등 궁금한 것은 많았지만, 쉽게 질문할 수 없습니다.
[린지 밀러] 그들의 가족이 어떤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단서조차 없고, 이러한 질문을 할 수조차 없잖아요? 사진의 힘 중 하나는 사람들을 한 찰나에 오랫동안 머무르게 한다는 겁니다. 그 순간을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죠. 그 순간을 찍은 사진의 순간에 더 오래 머무를 수 있고 생각할 수 있고, 관찰할 수 있습니다.
북한에서 2년 동안의 기억과 추억을 더듬어 책을 발간한 밀러 씨는 정치적인 모습 이면에 우리와 똑같이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북한에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 외부세계가 집중해 주길 희망합니다.
그녀가 영국에 돌아온 뒤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북한에 있는 친구들을 다시는 볼 수 없는 점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지만, 연락을 할 수 없는 이 상황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린지 밀러] (북한에 있는 제 친구들을) 생각하면 정말 많은 감정이 듭니다. 왜냐하면 (북한을) 떠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앞으로 살면서 다시는 그들과 이야기하고 만날 수 없다는 점이었어요.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도 없죠.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그들을 잊지 않았고, 앞으로도 잊지 않을 거란 겁니다.
교복을 입고 목에 빨간 천을 두른 어린 학생들이 학교 수업을 마치고 도로에 앉아 있는 사진도 밀러 씨의 기억에 남은 장면입니다. 밀러 씨는 많은 어린 학생들이 미국 만화 영상의 상징인 디즈니 가방을 메고 있어 놀랐던 순간을 회상합니다.
[린지 밀러] 제가 상상도 못 했던 물건들을 착용하고 있었죠. 디즈니 가방을 북한에서 볼 수 있을 것을 상상이나 했겠어요? 특히 아주 어린 소녀들을 보고 있자니 여러 가지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저는 아주 어린 아이들이 (부모님 손에 이끌려 김일성, 김정일의) 벽화를 보고 절하고 있는 것을 자주 봤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입장에서 이런 경험은 무슨 의미일까 하는 의문을 가졌죠. 그래서 아이들을 볼 때마다 그들의 미래를 상상하게 됩니다. 그들이 빨간색 손수건을 목에 두르고 있지만, 단지 아이일 뿐이잖아요?
평양에 있는 빨간 건물과 그 앞을 서성이는 할아버지.
그 뒤에 하얀 수건을 머리에 두른 할머니의 모습에서 그들이 겪은 세월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을지, 또 두 노인이 어떤 인생을 살았을지 밀러 씨는 쉽게 상상할 수 없습니다.
[린지 밀러] 북한의 기성세대들을 보면 그들이 어떤 인생을 경험했는지 궁금해집니다. 많은 사람이 전쟁을 겪었을 수도 있고, 고난의 행군도 겪었겠죠. (김일성-김정일-김정은) 권력 세습과 그 과정에서 혼란도 경험했을 거잖아요. 김정은 총비서가 한국의 땅을 밟고, 문재인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트럼프 전 대통령과 악수를 하는 장면도 봤겠죠? 이 모든 것을 경험한 그들의 인생은 어떨까요? 이런 질문들을 할 수도 없고, 질문한다고 해도 정직한 답변을 받지 못했겠죠.
할아버지가 입고 있는 옷이나 붉은색 건물의 색이 바뀐다면 이 사진은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어색하지 않은 사진이었을 거라고 밀러 씨는 말합니다.
[린지 밀러] 그들이 입고 있는 옷이나 건물색을 보면 매우 북한스럽다고 말할 수 있죠. 그래서 저는 이 사진을 좋아합니다. 이 짧은 순간, 저 노신사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던 걸까요? 길거리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던 걸까요? 우리 할아버지도 그러곤 했거든요. 뒤에 있는 할머니는 그의 아내일까요? 알 수 없죠.
노동신문 앞 손을 잡고 있는 연인, 사소한 변화
북한 체재와 사상을 가장 앞장서서 선전하는 ‘노동신문’사 앞. 그리고 한낮에 손을 잡고 그 앞을 걸어가는 젊은 연인의 사진에서 밀러 씨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린지 밀러] 이 사진이 좋은 이유는 ‘노동신문’은 중앙정부의 단속과 제재를 상징하잖아요? 북한 정권이 전 세계에 자신들이 어떻게 비춰졌으면 하는지에 관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곳입니다. 하지만 그 건물 앞에서 젊은 연인이 손을 잡고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북한을 보면서 이런 모습을 상상하지 않잖아요. 조금 놀라웠습니다. 하지만 젊은 세대에서는 꽤 흔한 일이었죠. 젊은 세대들이 길거리에서 손을 잡고 다니는 것을 자주 봤습니다. 이 모습은 제가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이고, 북한 정권이 보여주고자 한 이미지들이 아니었던 거죠. 북한이라는 나라는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데,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물론 변하지 않은 점들도 많지만, 이렇게 젊은 연인이 손을 잡고 걸어 다니는 것도 변화잖아요. 젊은 세대들의 자그마한 변화들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으로 담지 못한 순간들…
북한에서 생활하면서 차마 사진에 담지 못한 순간들도 있었습니다. 200페이지가 넘는 책에는 사진뿐 아니라 16개의 짧은 이야기도 함께 소개됐습니다.
사진을 찍었으면 좋았을 장면들이지만, 당시 그 사람들을 존중하기 위해 사진을 찍지 않기를 선택한 순간들입니다. 밀러 씨는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묘향산에서의 일화를 마지막으로 소개했습니다.
[린지 밀러] 하루는 정자에서 쉬고 있었어요. 한 명이 저에게 다가와서 말을 걸어와 간단한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녀는 저와 사진을 찍길 원했어요. 가족들과 온 것 같았습니다. 우리는 앉아서 사진을 찍으며 저는 그녀에게, 그녀도 저에게 팔을 둘렀습니다. 5분여 동안 정말 많은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 순간이 정말 즐거웠고, 그녀의 향수 냄새와 재치, 친절함이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이 생각을 했습니다. ‘그녀가 만약 북한이 아닌 다른 나라에 있었다면 어땠을까’라고 말이죠. 그들이 옷에 차고 있던 김일성, 김정은 배지만 뺀다면, 전 세계 어디에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순간이었죠.
이처럼 밀러 씨가 평양에서 지낸 2년 동안 사회주의 사상은 북한 곳곳에 늘 존재했지만, 밀러 씨가 주민들과 나누었던 교감과 그들의 인간적인 모습은 늘 기억 속에 남을 것 같습니다. 또 그 그리움을 달래고, 소중한 추억을 계속 간직하고픈 것이 이 책을 출간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