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 립서비스로 한국의 反中 노선 선언 이끌어 내…” |
이번 정상회담은 문재인 정부가 지난 4년간 가진 어느 한미(韓美) 정상회담보다 내실이 있었고 그간 근본적으로 잘못된 외교안보정책의 방향을 바로잡는 부분이 있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합니다. 제가 특히 주목한 부분은 아래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중국에 대한 스탠스가 굴종적이라고 할 만큼 과도한 친중(親中) 일변도에서 벗어나 미국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갔다는 점에서 주목됩니다. 공동성명에서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유지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은 시진핑이 대만을 흡수통일하는 데 무력 사용도 배제하지 않겠다고 공언한 데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서도 국제법 존중을 언급한 것은 반중(反中) 입장을 공식화한 데 의미가 있습니다. 중국은 남중국해 도서(島嶼)를 점령하여 여기에 군사기지를 건설해왔는데, 2016년 상설 국제중재재판소는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영유권 주장이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결한 바 있습니다. 중국의 점령을 불법으로 결정한 국제법의 편에 서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간 애매모호한 입장에서 벗어나 우리 입장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용단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중국이 가장 민감해하는 이 두 가지 사안에서 선명한 반중 노선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은 만시지탄(晩時之歎)이 있지만 그 배경이 궁금합니다. 제가 현직에서 미국과 공동성명 문안 협상을 해본 경험을 토대로 추측해 본다면 문 대통령이 남북간 이벤트에 정치적 운명을 거는 듯한 모습을 보고 미국이 문통의 소원을 들어주는 대가로 중국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노선 수정을 받아낸 것 같습니다.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포함한 과거 북한과의 모든 합의를 기초로 한 외교와 대화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수립에 긴요하다”는 문구를 받아내기 위해 친중 굴종노선을 포기하는 선택을 한 셈이죠.
문통이 전혀 내키지는 않는 것을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였겠지만 드물게 평가받을 수 있는 외교안보 분야 업적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김정은이 남북대화에 불응하더라도 이미 공개적으로 천명한 반중 노선에서 후퇴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미국으로서도 과거 합의에 대한 의례적 립서비스만으로 한국의 대(對)중국 정책을 수정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평(自評)할 것 같습니다.
‘한미 미사일지침’을 폐기한 것도 중국을 공격하는 데 사용할 중거리 탄도미사일 개발의 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미국의 반중 전략에 기여할 몫이 있습니다. 중거리 탄도미사일의 동아시아 배치는 트럼프 행정부 당시부터 미국의 대중(對中) 견제전략 일환으로 추진되어 왔는데 한국이 앞장서서 중거리 미사일을 개발 배치하면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 배치에 반대할 명분이 없어진다는 계산도 작용했으리라 짐작됩니다. 문통이 미사일지침 폐기를 요구한 것은 임기 중 전작권 전환의 숙원을 접어야 하는 상황에서 좌파의 ‘반미(反美) 자주화’ 어젠다를 달성할 현실적 대안으로 선택한 것으로 보이나 미국의 대중국 전략에 호응하는 모양새가 된 데 대해 중국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백신 분야 협력입니다. 미국이 외국지원용으로 비축하고 있는 8천만 명분의 잉여 백신은 기본적으로 인접국과 Quad 참여국에 우선적으로 배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국군 장병 55만 명분을 확보한 것은 다행입니다. 문재인 정부가 Quad 가입을 거부한 것은 Quad의 백신협력 체제 불참을 선택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동맹의 공동방위체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나름 배려한 것 같습니다. 코로나 감염을 핑계로 한미연합훈련을 연기할 핑계를 허용하지 않으려는 계산도 작용했을 수 있습니다. 한국기업이 40조 원이나 투자하기로 했는데 고작 55만 명분밖에 못 받아왔다고 매도할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한국기업의 투자는 문 대통령의 의지가 아니라 해당 기업의 독자적 결정으로 봐야 합니다. 우리정부의 반기업 정책과 규제, 미국 정부의 적극적 투자유치정책 때문에 세율이 낮고 투자환경이 유리한 미국에 투자하는 것이지 문통이 미국에 투자하라고 강요한다고 기업들이 미국으로 몰려가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국내 대신에 미국에 투자한다고 정부가 해당 기업에 보복하지 않는 한 어차피 미국에 투자하게 되어 있는 것을 두고 마치 백신을 구하기 위해 40조 원을 억지로 투자하는 것처럼 몰아붙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한국 바이오 업체들의 미국 백신 위탁생산도 업체간의 딜에 정부가 숟가락 얹는 것이지 정부의 정책적 의지와 연결시킬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끝으로 제3국 원전건설에 협력하기로 합의한 부분도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잘못되었음을 문서로 간접적으로 인정했다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에 해롭고 위험한 원전이 외국에는 이롭고 안전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한미 양국이 국제적으로 지탄받을 일을 같이하자고 공모를 한 셈이 됩니다. 몇 년 전 체코에 원전 수출을 시도할 때 구두로 우리 원전이 좋다고 한 것과 한미정상공동성명에서 문서로 원전 협력을 언급한 것은 의미가 다르다고 봅니다. 탈원전 정책의 잘못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것이 탈원전 정책의 완전한 폐기로 이어질 수 있는 첫걸음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