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은 왜 벙어리마냥 받아 적기만 하는가

한국 대통령뿐 아니라 미국 대통령에게도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게 어디 흔한 일인가?
지난 한미정상회담에서 가장 민망하고 창피스러웠던 순간이 있다. 현지시간 21일 두 정상의 회담 직후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서 있었던 해프닝.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이 열리면 기자회견에서 각 정상이 자국(自國) 기자 두 명씩 질문권을 주는 게 관행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ABC뉴스 기자와 CBS 뉴스 기자를 호명했다. 두 사람 모두 여성이다.

첫 질문권을 남성 기자에게 준 문 대통령이 질문할 기자를 호명할 차례였다. 그런데 "우리 여성 기자들은 왜 손 들지 않습니까?"라고 말했다. 순간 기자회견장이 얼어붙은 듯했다. 6초가량 정적이 흘렀다. 문 대통령은 다시 "아니, 우리 한국은 여성 기자들이 없나요?"라고 물었다. 다시 16초간의 정적. 결국 한 여성 기자가 마이크를 잡게 된 건 직전 질문이 끝난 뒤 30초가량 흐른 뒤였다.

이 모습을 보는 내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여성으로서 창피했다. 왜 굳이 ‘여성 기자’를 찾아야 하나? 대한민국의 ‘여성 기자’들은 대통령이 시키지 않으면 질문을 못하는 존재인가? 이런 발언을 바이든 대통령이 했다면, 미국 언론들은 ‘성(性) 차별주의자’로 비판했을 것이다. 이것은 마치, ‘여기 백인 기자만 있습니까? 흑인 기자들은 없나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매우 부적절하다.

그런데 대통령의 이런 발언을 민주당 여성 의원이 감싸고 돌았다. 더불어민주당의 권인숙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이 '왜 여성기자는 질문 안하냐'고 한 것은 '여성을 챙긴' 작지만 소중한 목소리다"라며 대통령을 두둔했다. 이어 "질문하지 않는 이에게 기회를 주기 위한 제안으로 보였다"며 "첫 번째 질문은 남성 기자가 했던 상황에서 나머지 한 질문은 여성 기자가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기회를 준 대통령의 행동은 의미 있는 노력이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권 의원의 발언을 두고 기자 출신인 전여옥 전 의원은 "위장페미다"라며 비판했다.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미국에 있는 친구는 '왜 백인기자만 질문해요', '왜 흑인 여성기자는 소극적이죠'라고 물은 수준이라고 했다"며 "공식석상에서 '성별(性別)', '국적', '피부'를 이야기하는 것은 인종문제가 늘 상존하는 서구에서는 '금기'나 마찬가지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권인숙 의원의 말을 보고 같은 여성으로 창피하다"며 "왜 여성기자는 대통령이 챙겨줘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기자는 오로지 대통령에게 질문하고 취재하는 '독립대등한 존재'다"라며 "결국 여성운동을 오로지 '권력의 발판' 내지 '뱃지 입문'용으로 삼은 민주당 여성의원의 한심하고 속보이는 여성관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문 대통령의 부적절한 발언도 민망했지만, 같은 자리에 있었던 한국 기자들의 태도도 창피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기자로서 한국 대통령뿐 아니라 미국 대통령에게도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게 어디 흔한 일인가? 서로 질문 경쟁이 벌어져야 마땅할 순간에, 꿀 먹은 벙어리마냥 받아 적기만 하는 한국 기자들의 모습을 미국 기자들은 어떻게 바라봤을까? 치열하게 준비해 상대가 드러내지 않는 사안까지 파고들 수 있는 질문을 ‘적극적으로’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기자회견장에서의 대한민국 대통령과 기자들을 보면서,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라는 말이 떠올랐다.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