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에서 내려와 써주시고 가셨나? |
유사 이래 동서를 막론하고 뜻깊은 일이나 훌륭한 인물 그리고 오래 두고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기념비를 만들어 세웠다. 그 기념비에는 당대 최고 서예가나 관련 있는 명망가나 정치 종교 지도자 등 주요 인물이나 원로의 글씨를 받아 새기는 게 일반적이다. 활자 발명 이전에 만들어진 서양 기념물에 새긴 글씨는 당연히 그 시대에 가장 활발하게 사용된 글씨체가 사용되었다.
우리나라 산업화가 막 시작될 무렵 우리 기업들이 너도나도 저명한 서예가로부터 한자로 쓴 글씨를 받아 회사 로고타입으로 한동안 사용했다. 결국은 글로벌 비즈니스 시대로 접어들면서 한자 사명(社名)을 더 이상 쓰기 어려워 모두 한글과 영문 로고타입으로 바꾸게 되었다. 몇몇 저명 서예가들이 상상수의 기념비 비문이나 건물 초석으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국정원 원훈(院訓)을 새긴 비석은 그 집단의 상징적인 가치와 존재 의미를 새겨 넣는 것으로 그 집단 최고 의결기구의 논의와 결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석재(石材) 가공을 맡은 석재업체가 제 마음대로 글씨체를 정하거나 크기나 미세한 위치까지도 알아서 할 사안은 아니다. 누군가 의뢰를 받았더라도 반드시 몇 가지 시안(試案)을 만들어 국정원 최고 수뇌부의 결정과정을 거쳐서 작업을 했음이 자명하다.
통상 이런 기념물에 새길 문안이 정해지기까지도 상당한 내부 의견 수렴과 토론 결정 과정이 필요했을 것이고. 이것을 어떤 형식으로 새겨 넣을 것인가, 자연석에 새겨 넣을 것인지 조형물을 디자인해 그 속에 넣을 것인지, 첨단 미디어아트 작품으로 할 것인지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자연석으로 결정되었다면 검은 돌이냐 흰 돌이냐, 기존에 있던 원훈석을 치우고 다시 새 돌을 구해서 새 원훈을 새겨서 세우려면 돌을 결정하는 것도 만만찮은 일이었을 것이다.
자 그럼 원훈은 결정이 되었고 이걸 어떤 글씨로 새겨 넣을 것인가. 일반적인 예를 들어 보자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첫째 당대 최고 서예가에게서 글씨를 받는다, 둘째 뜻깊은 지도자나 기릴 만한 인물로부터 글씨를 받는다. 셋째 중요 인물이 현존하지 않아 그가 남겨놓은 글씨 중에서 집자(集字)해서 새긴다. 넷째 그냥 시중에 있는 활자체 가운데 적당한 것을 택해 확대해 새긴다. 다섯째 해당 조직 전·현직 최고위층 인물의 글씨를 받아 새긴다. 뭐 대략 이런 방법 가운데 한 가지를 택하게 될 것이다. 기업의 경우 창업자나 오너 의견이 절대적이어서 그분들이 선호하는 서예가로 쉽게 결정되기 십상이다. 글씨가 남달랐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나 박정희 대통령의 경우 많은 현판 글씨와 비문을 남겼다.
이번에 문제가 된 국정원 원훈석에 사용된 글씨는 불귀의 객이 된 신영복 씨가 환생해 써 주고 다시 승천한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을 정도다. 신 씨의 독특한 글씨는 이미 서체로 만들어져 무료로 배포되었고, 소주 브랜드 로고타입으로도 사용되어 말하자면 잘 알려진 글씨다. 호불호는 있을 수 있겠으나 익숙한 글씨임에 틀림 없다.
누가 보아도 원훈석에 사용된 글씨는 신영복의 글씨체를 빼다 박았다. 반드시 일치한다는 것의 기준을 어디다 두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이건 분명 동일한 글씨다. 손글씨는 같은 필기구를 사용해도 쓸 때마다 조금씩 크기와 각도 운동감이 다를 수 있는데 이건 그 기본 습관이나 조형의 특징이 유사한 게 아니라 그냥 판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석재에 글씨를 새겨 넣는 일반적인 방식은 원본 글씨 1;1크기 또는 확대 프린트해서 돌에 부착하고 음각 또는 양각을 한다. 최근에는 다양한 기술이 개발되어 거의 원본에 가까운 수준의 가공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번 국정원 원훈석 사진을 확대해 놓고 그 위에 신영복 활자체로 조판한 글씨를 덮어씌워 보았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아주 유사하다. 석재 표면의 굴곡이 있고 크게 확대하고 조각하는 과정에서 작아 보이거나 가늘어 보이는 획을 생략하거나 부분적으로 확대하는 등의 수정을 가했을 수 있다.
또 한 가지 가설은 신 씨의 글씨를 너무나 좋아한 서예가가 오랫동안 그의 글씨를 임모(臨摸)하며 공부하여 거의 동일한 경지에 올랐다면 그 서예가 글씨를 받아 새기는 것이다. 이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전문가도 구별하기 힘들 추사 선생의 붓글씨 모조품이 수없이 많으니…. 신영복 글씨 오마주를 한 서예 작품일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그 임모한 글씨가 신영복체가 아니라고 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은 아무개가 신영복 글씨를 따라서 그대로 썼다고 밝힌다.
어떤 경우라도 지금 원훈석에 새겨진 글씨는 신영복의 글씨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억지다. 자소(字素)의 조형과 붓의 끌림, 세로획의 꺾임, 가로획의 기울기 등 너무나 같다. 지문과 같이 도저히 위조가 불가능한, 글씨 쓰기에 나타나는 습관이 그대로 드러난다.
윗줄 마지막 글자인 ‘한’과 아랫줄 첫 글자 ‘한’은 히읗의 상투 부분이 다른 모양인데 신영복체는 윗줄 마지막 글씨와 동일한 모양이다.
아랫줄 마지막 부분에 ‘헌’자의 히읗은 상투 부분이 배가 들어간 모양인데 이는 활자에서와 동일하다. 물론 다소 상이한 모습도 보이는데 이응이나 히읗의 동그라미 부분이 활자체는 약간 삼각형인데 원훈석 글씨는 원형에 가까운 모양이다. 특히 ‘리을’은 신영복 글씨만이 가진 특징이 아주 도드라져 보이는데 아라비아 숫자 3에 꼬리가 달린 것 같은 모습이다.
받침 니은으로 이어지는 붓의 끌림 각도가 조금 완만해진 것도 차이가 있으나 서체의 큰 골격과 구조적 특징은 동일한 글씨체로 보아야 할 것이다.
원훈석에 새긴 글씨는 100% 크기가 같게 쓰여진 글씨로 새긴 것 같지는 않다. 신영복 글씨를 오마주한 어떤 서예가가 새로 쓴 글씨라면 원훈석에 새길 실제 크기로 썼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대개는 사용처를 미리 알고 쓰게 되므로 아주 작은 크기가 아닌 적당한 크기의 글씨로 썼을 것이다. 종이의 크기가 주는 한계도 있으므로 구태여 1:1 크기로 쓸 필요가 없다. 활자체를 이용했다면 당연히 확대를 해서 사용할 수밖에 없다. 새기는 도구는 전통적인 정이나 전동공구를 이용하는데 조각 과정에서 약간의 가필과 생략 굵기의 조절은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 부분적인 차이로 근본이 바뀌지 않는다.
신영복 활자체든, 신영복 글씨를 흉내 내 쓴 붓글씨든 신영복 글씨의 골격과 조형 특징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면 그 글씨를 다른 글씨라고 할 수 있겠는가. 가정집 문패든 전각 현판이든 아무 글씨로나 새겨 달지는 않는다. 그 글씨와 글씨를 쓴 이가 주는 상징성과 가치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家長)의 엉성한 글씨로 문패를 써 달면 어떤가. 지존이나 명필의 글씨가 아니더라도 그걸 쓸 만한 사람이 그럴 만한 장소에 써 붙인 글씨여야 떳떳하고 멋지지 않을까. 누구를 흠모해서 그 사람의 글씨로 비문을 새겼다면 당당하게 밝히면 될 일이다.
前 한국시각정보디자인협회 수석부회장, 前 조선일보 아트디렉터
조의환
조갑제닷컴은 24일 오전 국정원 대변인실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무기징역 선고받고 20년 복역한 사람의 서체로 원훈석을 제작한 게 적절한가'에 대한 입장과 일부 언론에 국정원 관계자가 "정확히는 신영복의 생전 글씨체를 본뜬 어깨동무체"라고 밝힌 데 대한 확인을 요청했다. 국정원 대변인실은 "내부 부서와 협의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바로 답변할 수 없다"면서 "24일 저녁까지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주겠다"고 했으나 25일 오전 11시50분 현재까지 연락이 없다.












I think how scary human ideology is!
They show us about it without any shame.
On the contrary they seem to be proud of themselves
to do it
Thanks.
문제인과 박지원이 답하라.왜 신영복의 글씨채를 국정원 원훈석에 썻는지 말이다.
골수 공산주의자 신영복에게 그렇게도 마음의 빗을 졌는냐?
경애하는 공화국 북반부 광명성체로 쓰고싶었을텐데, 그래도 눈치가 보였는지 차선책을 택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