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시와 변론서

"평생 스시 만드는 일을 했는데 그 기술이라는 것도 단계가 끝이 없어요.”
빌딩 한 귀퉁이에 아주 작은 스시집이 있었다. 스탠드에 손님이 꽉 차면 간신히 아홉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스툴이 보였고 홀이라고 할 것 없는 작은 공간에 작은 탁자 두 개가 놓여 있었다. 화장실도 밖으로 나가야 했다. 여든 여섯 살의 영감이 아직도 카운터를 지키고 있었다. 얼굴에는 가득 검버섯이 돋고 입도 합죽했다. 그 영감은 스시를 만드는 일본 최고의 명인이라고 했다. 그런 작고 초라한 가게가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세 개를 받았다고 하고 있다. 가격도 비싸고 한 달 전에 예약을 해야 간신히 스탠드의 자리를 얻을 수 있다. 메뉴도 스시 외엔 없었다. 나는 화면에 나오는 스시 명인의 말을 무심히 듣고 있었다.

“장인이라는 게 별 게 있나요? 매일같이 하는 일을 하고 또 하고 그러는 거죠. 그러면서도 어떻게 하면 기술을 한 단계라도 더 올려볼까 하는 욕망은 가지고 있어요. 평생 이 스시 만드는 일을 했는데 그 기술이라는 것도 단계가 끝이 없어요.”

완성이라는 게 없다는 얘기였다. 개미는 평생을 일하다가 죽는다. 아무런 회의도 없어 보인다. 그게 일개미의 인생인 것 같았다. 일본 장인의 말에서는 개미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일이 우상이었고 그의 모든 것이었다. 창조주가 어떤 프로그램을 일개미의 유전자에 넣어주었길래 일개미는 그렇게 일하다 죽는 것일까. 그리고 사람을 또 그렇게 만든 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인 스시장인 ‘지로’는 이렇게 그가 장인이 된 배경을 말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군수공장에서 일하시다가 제가 일곱 살 때 돌아가셨습니다. 고향에서 사람들이 저를 떠나 보내면서 너는 돌아올 곳이 없으니 강인하게 살아가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때부터 혼자 생존했습니다. 식당에 들어가서 청소부터 시작해서 잔심부름을 했습니다. 사장이 밀고 기술자들이 때리고 해도 얻어맞으면서 버텼습니다. 저는 남의 집 처마밑이나 다리 밑에서 자지 않으려고 그렇게 했습니다.”

처절한 환경 속에서 우러난 그의 헝그리 정신이 있었다. 그래도 여기저기 다른 분야를 살피지 않고 단순한 스시 만드는 일 하나에 일평생을 바쳤다는 건 특이했다. 봉건사회를 배경으로 한 일본인 특유의 개미 정신인지도 모른다.

일본의 스시 명인을 소개하는 넷플리스 프로를 보면서 변호사인 나는 법 기술자로서 과연 어떻게 살아왔나를 그 스시 명인과 비교하면서 되돌아보았다. 스시는 겉으로 보기에는 참 단순한 구조였다. 칼로 얇게 저민 생선의 살토막을 와사비를 살짝 바른 손가락으로 뭉친 작은 밥덩이 위에 올려서 손으로 한번 꾹 누른 것이다. 법이라는 것도 그런 것 같았다. 수사기관은 사실관계 위에 법률을 스시의 생선살 같이 기계적으로 눌러 덮었다. 변호사를 시작한 초기에 나는 회의에 빠졌다. 이미 수사기록은 만들어져 있었다. 기계적인 법 적용의 결론도 어느 정도 정해져 있었다. 그걸 보면서 좀 봐달라고 읍소하는 게 변호사 역할의 전부인 것 같았다. 전관예우가 횡행했다. 아무래도 인연이 있는 사람을 도와주고 싶은 게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판사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살다가 아주 작은 빈틈 속에 있는 다른 존재를 발견하게 됐다. 진실이라는 것도 형사가 보는 진실과 변호사가 보는 진실도 시각에 따라 전혀 다를 수 있었다. 스시를 만드는 밥도 다 같은 밥이 아닌 것 같았다. 밥알 하나하나를 살아있는 것 같이 하기 위해 스시 장인은 나무통 속에 있는 밥알에 부채질을 해서 바람을 불어넣고 있었다.

검사가 단정한 범죄사실의 빈 구멍을 찾아 바람을 불어넣었다. 생선의 종류가 다양하듯 적용해야 할 법도 다양했다. 같은 생선이라도 기름진 부분과 담백한 부분이 있듯 같은 법도 해석이 다르고 적용조항이 달라질 수 있었다. 와사비가 스시를 먹는 사람의 미각을 자극하듯 변호도 재판관의 눈과 관심을 자극하는 부분이 있어야 했다. 그건 변론서류의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때그때 그 사건에 알맞은 가장 적절하고 자극적인 문장을 삽입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나는 변론요지서들을 만들어 법원에 제출하려고 애썼다. 변론요지서는 그 일본 장인이 만든 스시에 비유된다고나 할까. 고정적으로 하는 단순한 일을 그냥 무심히 넘기지 말고 기술을 한 단계라도 높이려고 살피는 마음 그걸 일본 스시 장인에게서 배웠다.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