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에 대한 우상숭배

무슨 큰 사건이 났을 때 방송국 기자들이 시민 반응이란 것을 따내기 위하여 마이크를 갖다대면 엉겁결에 하는 첫 마디가 으레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였다.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이면 국민임이 당연한데 그 당연한 것을 왜 새삼 강조하는 것인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라고 전제해놓고 이야기를 해야 마음이 든든한 것이다. '국민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인 것이다'라고 은근히 과시하는 뉘앙스도 거기에 스며 있다. 그 '국민'에서 제외된다는 것이, 그리하여 일부 극렬 불순분자나 反통일분자로 분류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를 알고 있는 분단국가 국민들의 조건반사적 말투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국민'이란 낱말을 가장 즐겨쓰는 이들은 정치인들이다. '국민의 이름으로 규탄한다'느니 '국민과 함께 환영한다'느니 '국민과 더불어 분노한다'느니 말끝마다 국민, 국민, 국민이다. 정말 그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의 명칭이 누구의 허가도 받지 않고, 한푼의 사용료도 내지 않는 집단에 의해 남용되는 것을 바라보는 기분은 착잡하다.

정치적 용어로서의 국민은 허상이다. 여당이 '국민과 더불어 환영한다'고 했을 때 그 국민은 '여당을 지지하는 일부 국민'일 뿐이다. 운동권 단체에서 '국민과 함께 분노한다'고 했을 때 그 국민은 '그들을 지지하는 일부 노동자, 일부 대학생, 일부 시민들'일 뿐이다. 일부를 전체로 과대포장하기 위하여 국민이란 말이 이용되는 것이다. 정치용어로서 '국민'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 이해관계에 따라 여론이 몰리고 흩어지는 것이 현대 민주사회이다. 전체 국민이 일치된 여론을 보인다는 것은 민주사회에선 있을 수 없다.

국민들을 다 대표할 수 없기 때문에 노동자를 전문적으로 대변하는 노동당이 생기고, 중산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당이 생기는 것이다. 어떤 정당도 모든 국민들을 전부 만족시킬 수는 없다. 어떤 여자도 모든 남자를 만족시킬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모든 국민들을 다 만족시키려는 정당은 모든 남자를 다 만족시키려는 여자처럼 행동해야 한다.

대통령이나 정치지도자도 마찬가지이다. 국민들의 100% 지지를 얻기 위해서 정책을 펴다가는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하고 국민들 사이에 불화만 심게 되고 국익을 파괴하게 된다. 훌륭한 정치지도자는 60%의 지지와 40%의 반대에 만족해야 한다. 그 40%를 소외시키지 않고 납득시켜야 한다. 그래서 정치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국민을 설득하는 일이다.

설득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나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 대통령이 파출소를 방문하거나 우량 기업체를 찾아가 만나는 사람들은 등을 두드려주고 손만 잡아주면 되는 이들이다. 설득을 하려면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찾아가 만나야 한다. 그것도 정정당당하게 만나야 한다. 짜고 하는 듯한 기자회견,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다과회, 안 들어도 알 것 같은 치사, 축사, 기념사……. 이런 밋밋한 의례적 행위로써는 아무도 감동시킬 수가 없는 것이다.

정치지도자들이 있어야 할 곳은 갈등의 현장이다. 지난 대통령선거 때 후보들은 시장바닥을, 증권시장을, 산동네를, 농촌을 열심히 누비고 다녔다. 코흘리개, 지게꾼, 호스티스, 주부들의 손을 잡길 꺼리지 않았다. 그런 시절로 여야 정치지도자가 돌아가서 현장감각을 체득할 수 있다면 오늘날 한국 사회의 갈등은 지금보다 훨씬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기자들과 형사들은 '현장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입버릇처럼 자주 한다. 현장에 나가야 정보가 있고, 실마리가 있으며, 인간이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머리와 온몸으로 느끼는 감각은 도저히 글 몇 줄로써 요약할 수 없는 것이다. 현장을 고위층에게 전달하는 수단인 보고서나 사진, 그리고 비디오 필름은 숙명적으로 현장을 왜곡하게 돼있다. 지도자가 이런 간접매체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현장감각을 잃은 기자처럼 경직된 사고방식에 젖어들면서 사회의 흐름을 놓치게 되는 것이다. 갈등의 현장에서 국민과 같이 기뻐하고 울며 언쟁하고 화를 내는, 국민과 애환을 같이하는 그런 대중적 정치인이 아쉬운 시절이다.

언론과 정치인들은 '국민'을 신주 모시듯 한다. 국민들을 칭송하고, 국민들에게 아부하는 정치인은 모래알처럼 많지만 국민들을 나무라고 야단치는 논설위원이나 정치지도자들을 본 적이 있는가. 정부나 여당을 나무라는 데는 과감하면서도 대학생과 노동자와 적게 가진 자의 억지를 나무랄 때는 반드시 토를 다는 것이 우리 언론이다. '화염병도 나쁘지만 최루탄도 나쁘다'는 식의 양비론이 10여년째 판치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치국가에서 나쁜 것은 화염병이며, 최루탄은 정당한 것이다. 민주사회의 이런 기초적인 가치기준조차도 애매하게 만들고 있는 언론의 양비론은 어리광과 억지와 폭력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법을 어기는 사람들에 대한 감상적인 관용과 이해는 '법이란 것은 내 마음에 들 때만 지키는 규칙'이란 생각을 확산시킬 수가 있다. 법을 사규(社規)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오늘날 한국 사회 갈등의 원인은 이기주의의 극단적 추구 경향에 있다. 한국인들의 단점이 총체적으로 노출되고 있기 때문에 총체적 난국이 도래한 것이다. 난국 초래의 책임을 묻는 방법으로서, '국민'은 빼버리고 정부와 재벌과 여당 야당만 도마 위에 올린 채 난도질을 한다면 스트레스 해소는 될지언정 해결책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자가 비판, 그리고 국민들에 대한 비판이 진지하게 이루어지고 나서야 난국은 뚫릴 것이다.

'국민'에 대한 우상 숭배는 종국에 가서는 그 국민을 망치게 한다. 칭찬과 아부에만 익숙하고 비판을 받아본 적이 없어, 우정어린 충고에도 신경질을 내는 성격의 소유자가 어떻게 되는지 살펴볼 일이다.

어리광, 억지, 투정, 떼쓰기―이런 것들은 인격이 성숙되기 전 유아기적 행동이다.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그런 유아기적 행동을 바로잡는 데는 따뜻한 이해심 못지않게 따끔한 회초리도 필요한 것이다. 회초리를 드는 사람은 욕을 먹기 마련이다. 엄한 아버지가 욕을 먹는 만큼 그 아들은 훌륭해지는 것이다.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