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당선인이 청와대 이전 계획을 발표한 가운데 언론에서 가장 많이 언급하는 이야기 중 하나는 ‘백악관처럼 만들겠다’는 내용이다.
윤 당선인은 20일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용산) 청사의 최소한의 범위 내에만 백악관같이 낮은 담을 설치하고, 여기까지 시민들이 들어올 수 있게 할 생각이다”라고 했다(채널A 보도). ‘여기까지’라는 표현이 중요한 것 같은데 많은 언론들은 “백악관처럼 시민들이 들어올 수 있게 할 생각”이라고 요약(?)해 보도했다. 한 워싱턴 특파원은 다음과 같이 썼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20일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 이전 계획을 밝히면서 “(새 용산 국방부 집무동 내에) 백악관처럼 낮은 담을 설치해 시민들이 들어올 수 있게 할 생각”이라고 했다.>
워싱턴 DC에서 10년 가까이 살아본 나는 윤 당선인의 원문을 읽기 전 위와 같은 기사내용만 보고서는 속으로 갸우뚱했다. 백악관을 시민들이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다고? 아마도 언론이 ‘시민’, ‘소통’, ‘개방’ 등에 초점을 두고 보도하다보니 이런 오해(?)가 생기게 된 것 같다.
백악관은 북쪽(라파옛 공원)과 남쪽(엘립스 공원)에 공원이 조성돼 있다. 이 공원이 시민들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개방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북쪽과 남쪽 모두 백악관에서 꽤 떨어진 위치부터는 철제 펜스가 세워져 있고 경비도 삼엄하다(백악관 지붕에는 저격수들이 배치돼 있다). 아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북쪽 펜스에서 사진을 찍으면 백악관을 꽤 가까이에서 볼 수 있으나 남쪽에서는 흐릿하게 보일 정도다. 아래 사진은 나와 같은 일반인이 가장 가까이에서 촬영할 수 있는 지점에서 찍은 것이다. 물론 청와대처럼 담벼락이 아니라 사이사이 공간이 보이는 철제 펜스라 더 개방(?)됐다고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백악관은 코로나바이러스 사태 이후 투어 프로그램을 중단했지만 4월 15일부터 재개한다는 방침이다. 찾아보니 청와대도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일반 관람객이 둘러볼 수 있는 곳은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백악관과 마찬가지로 판단된다. 청와대의 경우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진 업무 공간, 기자실 등이 여러 건물에 흩어져 있는 반면 백악관은 관련 시설이 모두 연결돼 있다는 점은 사실이다.
나는 백악관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한 미국 대통령이 있는지 찾아봤지만 그런 사례는 없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에 당선된 한 주 후 나온 뉴욕타임스 보도가 하나 있기는 하다. 트럼프가 백악관에서 계속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뉴욕 트럼프타워에 있는 그의 아파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선거유세를 해도 꼭 잠은 트럼프타워에서 자야 하는 그의 성격을 비춰보면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트럼프는 백악관으로 들어갔고 취임 며칠 뒤 진행된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는 백악관에 대한 칭찬을 하며 마음에 든다고 했다. “내가 평생 써본 전화기 중 가장 아름다운 전화기들이다”라든지, “전세계 최고의 보안이 유지된다”라면서.
백악관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백악관에 거주하지 않은 대통령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은 백악관의 장소와 설계를 확정지은 사람이지만 대통령 집무실 등 연방기관이 필라델피아에서 워싱턴으로 옮겨진 1780년을 1년 앞두고 숨졌다.
2대 대통령인 존 애덤스가 백악관을 사용한 첫 번째 대통령이었다. 그는 건물 완공이 되기 전 잠시 동안 의회 인근에 있는 ‘Tunnicliff’s City Hotel’에서 머물렀고 1800년 11월 1일 백악관으로 입주했다.
1814년에는 영국과의 전쟁 과정에서 백악관이 불에 타는 일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제임스 매디슨 대통령은 1814년 9월 8일 ‘옥타곤(Octagon)’이라고 불리는 워싱턴의 한 별장에서 6개월간 지냈다. 건축가 윌리엄 손턴이 지은 이 건물은 1800년부터 1801년 사이에 지어졌고 존 테일러 3세 대령의 겨울 별장 용도로 만들어졌다. 테일러는 버지니아에 살던 농장주였다. 당시 매디슨 대통령은 6개월 월세비로 800달러를 지불했다고 한다. 인터넷에 있는 프로그램을 통해 당시의 물가를 현재로 환산해보니 약 1만3000달러(1580만 원)로 나온다.
제임스 먼로 대통령은 매디슨 대통령 밑에서 국무장관을 지낼 때 살던 ‘Timothy Caldwell House’에서 대통령이 되고난 뒤에도 잠깐 지냈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된 뒤인 1817년 6월부터 약 3개월간 북부에 있는 주(州)들을 방문했고 그해 9월에 워싱턴으로 돌아왔다. 그는 한 달 뒤인 10월에 백악관에 입주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1902년 백악관이 보수공사를 하게 돼 인근에 있는 별장에서 잠시 생활했다. 그는 보수공사 중 고향인 뉴욕주에 있는 곳에서도 시간을 보냈다.
캘빈 쿨리지 대통령은 1927년 백악관의 지붕 및 내부 보수공사로 워싱턴 DC 북서쪽에 위치한 패터슨 별장이라는 곳에서 잠시 생활했다.
1948년 백악관은 또 한 차례의 대규모 보수공사를 진행했다. 해리 트루먼 당시 대통령은 길 건너에 있는 영빈관 ‘블레어하우스(Blare House)’에서 3년 반 동안 살았다.
한편 대통령이 꼭 백악관에 살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고 한다. 백악관역사협회 소속 역사가인 에반 파이퍼는 2016년 한 언론 인터뷰에서, “대통령들이 백악관에서 계속 생활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 것 같다”며 “우선 하나는 상징성이다”라고 했다. “백악관이라는 것 자체가 대통령직을 의미하는 국가적 상징”이라는 것이다.
그는 “백악관에는 모든 것이 갖춰져 있다는 게 또 하나의 이유인 것 같다”며 “보안은 물론 대통령이 업무를 보는 것을 보좌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춰져 있다”고 했다.
미국 대통령 중에 백악관에 살지 않겠다고 한 사람은 없었지만 주지사들 중에서는 주지사 관저가 아니라 기존에 살던 곳에서 계속 머문 사람들이 꽤 있었다. 미국 주 중 주지사 관저가 없는 곳은 애리조나와 아이다호, 매사추세츠, 버몬트, 그리고 로드아일랜드주뿐이다. 없는 이유를 확인해보니 별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어져온 전통으로 보인다.
주지사 관저에 들어가지 않은 주지사들의 수는 꽤 된다. 이들은 자녀들의 교육환경과 세금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이유를 들며 관저에 들어가지 않았다. 2010년도에 미시건주 주지사에 당선된 릭 스나이더는 관저에서 풀타임으로 근무할 직원들이 필요 없다며 세금이 불필요한 곳에 쓰이는 것을 막겠다고 했다.
2010년대 초 콜로라도주 주지사를 지낸 존 히켄루퍼는 “여덟 살 된 아들이 매일 같이 놀 수 있는 친구들만 우리집 한 블록 안에 16명이나 된다”며 기존에 살던 집에 살 것이라고 했다. 이외에도 자녀들이 다니던 학교를 바꾸고 싶지 않다며 출퇴근 거리가 멀어져도 기존의 집을 고집한 주지사들이 꽤 있다.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 역시 트럼프의 임기 초반 열 살이던 아들 배런의 학교 때문에 평일에는 뉴욕에서 지내고 주말에만 워싱턴을 찾는 생활을 한동안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