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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고시에 합격한 행정공무원 출신으로, 참여정부 때 제38대 국무총리를 지냈고, 국무총리 퇴임 후 약 14년이 지난 2022년, 윤석열 정부의 첫 국무총리 후보로 내정되었다.
1949년 6월 18일, 전라북도 전주부(현 전주시)에서 아버지 한병호[5](炳鎬, 1907~1982.4.28.)와 어머니 전주 최씨(1913.12.27.~1994.8.14.) 사이의 6남 3녀 중 5남으로 태어났다. 1967년에 경기고등학교[6]를 졸업했으며,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공직 입문 이후 미국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MA) 및 동 대학원 경제학 박사(Ph.D) 과정을 졸업하였다.
육군 병장 만기전역자.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수석, 서울대학교를 3등으로 졸업해 대법원장상을 받았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재학 중인 1970년 제8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하여 경제공무원으로 근무했다. 첫 발령지는 관세청이었으며, 1976년에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비서관 자격으로 歐美경협사절로 파견되었다.
1977년에 미국으로 유학, 1979년에 하버드 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귀국 후 1980년 서기관으로 승진했다. 상공부로 자리를 옮겨 미주통상과장을 맡던 1982년에 한 번 더 미국으로 유학, 1984년에 하버드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귀국 후 다시 상공부에서 과장으로 근무하다가 1989년에 부이사관으로 승진해 현재 중소벤처기업부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상공부 중소기업국의 국장을 맡았다.
1990년엔 산업정책국장을 맡았으며, 재임 기간 동안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 중 산업 관련 정책의 실무를 맡았다. 1992년에 이사관으로 승진했다. 1993년 1월엔 전자정보공업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1993년 3월,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자 대통령비서실로 파견되어 경제수석 밑의 산업담당비서관직을 맡게 되었다. 1994년 6월 청와대를 나와 상공부로 복귀, 관리관으로 승진해 기획관리실장을 맡다가 동년 12월 통상무역실장을 맡았다. 통상무역실장을 역임하는 동안 OECD 가입 추진 실무와 대일(對日) 무역 규제 해제 실무 등을 맡았다.
1996년 12월에 48세의 나이로 차관으로 승진해 1997년 3월까지 특허청장을 지냈다. 1997년 3월부터 1998년 3월까지 통상산업부 차관으로 근무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해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1998년 3월부터 2001년 2월까지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을 역임했다. 통상교섭본부장 역임 기간 동안 한미자유무역협정을 최초로 추진했고, 칠레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으며, APEC 정상회의 관련 실무를 수행했다.
2001년 3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한민국 대표부 대사를 지냈다. 2001년 11월부터 2002년 1월까지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 2002년 1월에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에 임명되었으나 같은 해 7월 한-중 마늘 협상 파문으로 인해 경질되었다.
2003년 6월 산업연구원 원장으로 취임하였다. 2004년 2월부터 2005년 3월까지 국무조정실장을 지냈다. 실장 재임 기간 중에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와 제17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는데, 당시 한덕수 국무조정실장은 열린우리당의 총선 압승 이후 "정부 정책이 왼쪽으로 급선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이라크 파병, 행정수도 이전 관련 업무도 지원하는 등 국무조정실장을 역임하며 정무·안보 관련 경험도 쌓았다.
2005년 3월부터 2006년 7월까지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재임 기간 동안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금산법'으로 불린 금융-산업자본 분리 관련 정책을 손봤다. 쌀 개방으로 인해 농민들에게 쌀 세례를 받기도 했다.
2006년 3월 이해찬 국무총리가 삼일절 골프 사건으로 사퇴하자 같은 해 4월 한명숙 국무총리가 임명될 때까지 국무총리 권한대행을 겸임하였다. 부총리 퇴임 직후인 2006년 8월엔 한미 FTA 체결지원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한미 FTA가 체결되도록 했다.
2007년 4월부터 2008년 2월까지 참여정부의 마지막 국무총리(제38대)를 지냈다. 총리 재임 기간 노무현 - 김정일 회담이 있었다.
정권교체로 출범한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2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주미대사를 역임하였다. 2012년 2월부터 2015년 2월까지 한국무역협회 회장을 지냈다. 2015년 11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기후변화센터 이사장을 역임했다.
2022년 3월,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출범한 후 윤석열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로 하마평에 올랐다. 172석의 거대 야당이 될 더불어민주당의 협조를 얻어내지 않고서는 총리 임명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민주당의 동의를 얻어낼 만한 통합형 인사로서 물망에 올랐다. 만약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받게 되면, 박정희 정부와 국민의 정부에서 국무총리직을 역임한 김종필 전 총리, 문민정부와 참여정부에서 총리직을 역임한 고건 전 총리에 이어 3번째로 대수를 달리하여 서로 다른 정권에서 국무총리직에 지명되는 사례가 된다.
•1967.2. 경기고등학교 졸업 (63회)
•1970.6. 제8회 행정고등고시 합격
•1970.12. 관세청 가격조사담당관실 사무관
•1971.2.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17] 졸업, 경제학 학사 (67학번)
•1971.2. 대법원장상 수상 (상과대학 수석 졸업)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비서관
•경제기획원 경제협력2과 사무관
•1979. 미국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1979. 경제기획원 경제협력국 경협총괄과 사무관
•1980.9. 경제기획원 정책조정국 조정3과장, 서기관
•1981.7. 경제기획원 정책조정국 조정2과장
•1981.11. 한국은행 파견
•1982.2. 상공부 통상진흥국 미주통상과장
•1984. 미국 하버드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Ph.D
•1984.7. 상공부 통상진흥국 아주통상과장
•1984.12. 상공부 산업정책관실 산업정책담당관
•1985.7. 상공부 산업정책국 산업정책과장
•1987.2. 상공부 기계공업국 수송기계과장
•1989.1. 상공부 중소기업국장[18], 부이사관
•1990.4. 상공부 산업정책국장, 이사관
•1992. 홍조근정훈장 수훈
•1993.1. 상공부 전자정보공업국장
•1993.3. ~ 1994.5. 대통령비서실 통상산업비서관 (문민정부)
•1994.6. ~ 12. 상공자원부 기획관리실장, 관리관
•1994.12. ~ 1996.12. 통상자원부 통상무역실장
•1996.12. ~ 1997.3. 제11대 특허청장 (문민정부)
•1997.3. ~ 1998.3. 제4대 통상산업부 차관 (문민정부)
•1998.3. ~ 2001.2. 초대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국민의 정부)
•2001.3. ~ 11. 주 경제협력개발기구 대한민국 대표부 대사
•2001.11. ~ 2002.1. 제6대 대통령비서실 정책기획수석비서관 (국민의 정부)
•2002.1. ~ 7. 제4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국민의 정부)
•2002.12.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
•2003.7. ~ 2004.2. 제15대 산업연구원 원장
•2004.2. ~ 2005.3. 제8대 국무조정실장 (참여정부 / 장관급)
•2005.3. ~ 2006.7. 제13대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 (참여정부)
•2006.8. 한미 FTA 체결지원위원회 위원장
•2007.4. ~ 2008.2. 제38대 국무총리 (참여정부)
•2007. 칠레 대십자훈장 수훈
•2009.3. ~ 2012.2. 제23대 주 미국 대한민국 대사관 대사 (이명박 정부 / 장관급)
•2012.2. ~ 2015.2. 제28대 한국무역협회 회장
•2013. 국민훈장 무궁화장 수훈
•2015.6.~ 청소년적십자 사업후원회 고문
•2015.11. ~ 2017.12. 제3대 기후변화센터 이사장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 내정자의 화려한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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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03, 10:31












1.나라를 책임질 대표할 공무원의 자질 중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는
철렴성과 도덕성 이리라
한덕수는 18억을 고문료로 받았다 한다
보통국민에게는 천문학적인 고문료 금액이다
18억의 탐욕적인 고문료의 한덕수는 서민을, 국민을 돌보는 위치에 있으면 안된다
더욱이 국무총리를 한 번 한 녀석이 또 총리를 하려고 하는 것 만 보아도 탐욕에 눈이 먼 비루한 소인배다
2.한덕수 정도의 절라도 출신 전문가나 지식자는 아이들 말로 우리 사회에 차고 넘치리라
3.한덕수는 깊이 참회하여야 하고
당장 내려와야 온당하다
4.(사족)한덕수 이 녀석아
녜 놈이 천국의 열쇠라도 안겨주는 고문이라도 했느냐 ?
천하의 천박한 빨갱이 녀석 같으니라구 !
여러 이유로 절라도 출신을 총리로 할려면
박주선 위원장이 새정부 국무총리가 되어야 한다
1,절라도 출신이면서도 입에 담지도 못할 절라인들의 욕을 얻어 먹으면서 정권교체의 애국의 길을 가서 윤석열 대통령 만들기에 큰 공을 세웠다
2.대통령인수에서도 애를 쓰고 있다
3.박주선은 국힘당원이고 국힘정부에서는 국힘당원이 국무총리를 하는것이어야 한다
4.박주선은 한덕수 못지않게 능력자다
한덕수는 아이들 말로 웃기는 짬뽕이다
1.한덕수는 경제부총리,국무총리,주미대사를 했다
다음 사람에게 자리를 당연히 양보를 해야 한다
한덕수는 겸양의 덕과 예의염치 없이 또 총리를 탐해서는 안된다
탐욕은 후세들의 인격도야 인성교육에 치명적 누를 끼침을 알아야 하리라
2.애국의 정권교체에 힘을 보탰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3.국힘당원이 아니다
4.한덕수가 능력자면 박주선 군도 능력자다
5.지정학적 리스크라는 얄궂은 말로 愚民을 현혹하지 말라.
華麗의 기준이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