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8년 영국 호국경 올리버 크롬웰이 59세에 죽자 2년 뒤 영국 귀족들은 크롬웰이 처형한 찰스 1세의 아들 찰스 2세를 받아들여 왕으로 추대했다. 이로써 공화정은 10년 만에 막을 내렸다. 찰스 2세는 너그럽고 여자를 좋아하는 인물이었지만 아버지를 죽이는 데 관계했던 이들에겐 복수를 했다.
특히 아버지에게 사형을 선고했던 판사들을 찾아내 죽이거나 감옥에 보냈다. 그 사이 사망한 판사들은 부관참시를 했다. 크롬웰의 屍身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가장 좋은 자리에 안장되었었는데 이를 파내고 시신을 꺼냈다. 아버지가 처형된 12년째 되는 1661년 1월30일 처형의식을 가졌다. 시신을 상대로 교수형, 사지를 찢는 陵遲處斬(능지처참) 끝에 구덩이에 살점을 버렸다. 해골은 그 뒤 24년간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창끝에 꽂힌 채 전시되었다. 여러 사람 손을 거친 끝에 이 해골은 1960년 母校인 케임브리지 시드니 서식스 칼리지 마당에 묻혔다.
크롬웰은 독실한 청교도였고 천주교 반대파였다. 찰스 1세와 의회가 싸울 때 의회 편에 서서 鐵騎軍을 이끌었다.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도 공격, 수많은 아일랜드 인을 학살, 그 뒤 두 민족 갈등의 씨를 뿌렸다. 이런 크롬웰의 동상이 런던 국회의사당 경내에 있다. 토마스 칼라일은 19세기 영국인의 영혼을 사로잡은 ‘영웅숭배론’에서 크롬웰과 마르틴 루터를 영웅 리스트에 올려 칭송했다.
의회와 캠브리지 대학은 공화파의 정신을 이어받았다고 볼 수 있는데 옥스퍼드 대학은 왕당파의 본부였던 적도 있고, 보수당과 같은 맥락이다. 백운규 전 산자부 장관이 박근혜 정부 때 임명된 산자부 산하 공공기관장들에게 사표를 강요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 이를 언론은 블랙리스트 사건이라 부르는데 블랙리스트란 말은 찰스 1세 처형에 관련되었던 판사들 명단을 뜻한다.
블랙리스트의 으스스한 기원을 아십니까?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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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13, 18: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