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헌부(司憲府) 우물과 버스정류장의 스마트 시스템

광화문광장은 조선왕조의 광장이 아니다. 월대(月臺) 복원이 과연 ‘민족의 숙원’인가?

광화문광장이 지난 주말 재개장(再開場)했다. 두 배 정도 넓어진 광장을 보러 방문객들이 모여들고 있다. 나는 광장 인근이 사무실이다 보니 거의 매일 광장 곳곳을 오가며 방문객들을 접한다. 세종문화회관 쪽 예전 차도(車道)를 광장으로 편입, 차도 사이에 붕 떠있던 광장이 안정감을 갖게 됐다. 새로 확장된 구역엔 5000여 그루의 나무를 새로 심어 외교부, 세종문화회관, 현대해상 사옥 등 인접 건물들 앞을 녹지공간으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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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배쯤 넓어진 광화문광장.

 

이 공간 곳곳에 의자와 테이블, 벤치(등받이 없는)들이 들어서 방문객들이 앉아 쉴 공간도 많아졌다. 분수도 서너 곳 만들어 아이들이 뛰어들어가 놀 수 있게 했다. 역사박물관 건물 외벽에 대형 전광판을 만들었고 지하철 광화문역에서 광장으로 진입하는 오르막길 한 켠에도 전광판을 만들어 볼거리를 늘렸다. 예전 광장의 조형물인 세종대왕상(像), 충무공 동상은 그대로였지만 그 지하엔 세종과 이순신의 업적을 모아 꽤 큰 전시공간을 만들었다. 어린이들의 견학 장소로 인기를 얻을 듯했다. 지하 전시장은 천정이 낮아 약간 답답했고 세종문화회관 지하 식당가와 연결돼 음식냄새도 풍겼다.


며칠 광장을 돌다 보니 방문객들의 이런저런 얘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방문객들이 서로 묻고 답하는 얘기의 대부분이 광장 양쪽의 건물들(정부서울청사, 외교부, 세종문화회관, 역사박물관, 미국대사관, 교보문고, 현대해상 등)에 얽힌 이야기들이었다. 두 명의 서울시장이 만든 여러 인공물들에 대한 얘기는 별로 없었다. 세종이나 이순신 동상, 분수나 역사연표가 쓰여진 개울물길(이곳은 방문객들이 맨발을 담그고 더위를 식히는 장소가 되었음. 무좀 걸린 사람이 상류에 있을까 걱정도…)은 과거에도 있던 것이 위치를 바꾸거나 새로 추가한 정도라서일 수도 있었다. 


광장 조성자들은 이 광장을 조선의 광화문 앞길인 육조(六曹)거리를 복원하려 했고 별로 보여줄 게 없었는지 세종과 충무공 이야기 등 조선시대 이야기를 광장 곳곳에 심었다. 133척의 왜선을 격퇴한 한산대첩을 상징한다며 분수 노즐을 133개로 만들고, 사헌부 터에서 발견된 우물을 모티브로 아이들이 좋아하는 물놀이 공간(바닥우물)을 만들었다는 식이다.


광화문광장엔 조선왕조 유물이 과잉 소개돼 있다. 경복궁이 광화문 안쪽 궁궐인데 궁 밖 앞마당까지 확장시킨 것이다. '민족의 숙원'(광화문광장 사이트에 소개)인 월대(月臺)를 만들겠다고 널찍한 직선 길을 비좁은 굴곡도로로 만들어 사직동과 안국동 일대를 상시 교통체증 구역으로 만들었다. 월대 복원을 '민족의 숙원'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득세하면 ‘광장 양켠의 역사적 건물을 헐고 육조거리를 복원하자’, ‘덕수궁 대한문도 원래 자리인 시청광장 앞쪽으로 나와야 한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외국인이 보면 우리를 조선왕조 국가를 이어받은 나라로 볼까 두렵다. 북쪽은 3대세습 왕조, 남쪽은 무능과 부패로 백성을 도탄에 빠트리고 결국 일본에 팔아먹은 李氏 왕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나라로….


방문객들이 궁금해 한, 이 공간을 차지한 건물들은 '세계 7대강국 대한민국'의 컨트롤 타워였던 곳들이고 아직도 대부분 그 기능을 하고 있는 곳들이다. 여기에 지금은 사라진 중앙청 건물과 길 건너편의 조선일보·동아일보와 서울시청, 국회(현 서울시의회 자리) 등 한국을 대표하거나 했던 건물들이 즐비한 곳이다. 광장 어느 곳에도 이 명소들에 대한 소개가 없다. 멀쩡한 건물의 역사적 가치는 외면하고 땅 속 초라한 유물(사헌부 자리 우물 등)이나 찾고 있는 격이다. 뉴욕 맨하탄을 찾는 사람들에게 타임스퀘어 대신 인디안박물관이나 초기 네덜란드 이주민 유적을 안내하는 식 아닌가? 한국의 대표 건축물과 그 건물에서 일한 사람들 이야기, 그게 광화문 광장의 주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헌부 자리 우물과 첨단 버스 정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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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헌부 터 우물(가운데 네모난 곳).

 

내가 본 광화문 광장의 최고 코미디는 사헌부 자리를 발굴한 뒤 유물이라고 따로 널찍한 공간에 전시한 곳이다. 우물과 담벼락 일부라고 하는데 허접하기가 이를 데 없다. 사방 1미터 정도 공간의 우물은 마치 옛 화장실 모습이어서 외국인들이 오해할까 두려웠다. 안내문을 봐도 문화재적 가치가 있어보이지 않았다. 사헌부가 요즘의 감사원 같은 곳이었다는데 제 기능을 다했다면 조선왕조가 일본에 먹혔을까 생각했다.

 

역사박물관 앞쪽 버스정류장에서 용산구 원효로 방면 버스를 타려고 노선도를 찾았는데 얼마 전처럼 벽에 없었다. 가만히 보니 노선 번호들이 터치 스크린 속에 있었다. 눌러보니 상세한 노선도가 나왔다. 외국어로도 선택 가능했다. 그 번호의 차가 몇 분 뒤 도착한다는 안내 전광판대로 차가 도착했다. 이명박 대통령 때부터 시작, 역대 정부가 개선(改善)해 온 세계적 수준의 최첨단 버스정류장이었다. 건국 74년, 세계 7대 강국의 성취물 중 하나가 바로 광화문광장 버스정류장이 아닐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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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 버스정류장의 '스마트 키오스크 시스템'.

 

에어컨이 잘 나오는 차에 앉아 광장을 차창으로 보니 세종문화회관 쪽 광장이 나무숲에 적당히 가려져 보였다. 나무들이 무럭무럭 자라 세종문화회관 지붕 높이까지 자라면 광장 곳곳의 비대칭, 권위적으로 보인 세종대왕상의 모습도 좀 작게 보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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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의 미래 모습처럼 조성된 외교부 앞 공원

 

외교부 건물 앞 작은 공원은 광장의 미래 모습 같았다. 광장과 따로 떨어져 꾸준히 조경을 해놓은 공간이 이번에 광장과 편입됐다. 이곳 나무그늘엔 10여 개의 벤치도 있어 앉아서 광장을 볼 수 있는 명당이었다. 


이곳엔 시인 신석정의 시비(詩碑), 한글어문학회 사건 기념비도 있었지만 주위 풍광을 해칠 정도의 크기는 아니었다. 광장 인근에선 친숙한 인물도 만날 수 있다. 세종문화회관 계단을 오르면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휘호도 있고 현대해상 건물 일층 로비엔 한국 고도성장의 주역인 정주영 회장의 흉상도 남아있다. 광장이 모든 걸 담을 수는 없겠지만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든 위인들을 무시하고 썩어빠진 왕조의 우물에서 오늘의 성취를 찾으려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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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의 세종문화회관 개관 기념 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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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해상 건물 1층 로비의 정주영 현대 회장 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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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학산 2022-08-14 오후 1:21

    우리 같이 구석진 시골 한구석에 사는 사람들에겐
    정말 고마운 글이고 지식이며 정보입니다
    특히 월대 복원과 사헌부 우물에 대한 기자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먼저 댓글을 다신 白丁 님과 골든타임즈 님의 의견에도 박수를 보냅니다

  • 골든타임즈 2022-08-13 오전 11:14

    검증되지 않은 세종. 이순신 등 동상 철거하고. 이승만. 박정희 동상을 광화문에 세우시오.

  • 白丁 2022-08-13 오전 5:43

    광화문 광장에는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상이요 화폐에는 진짜 얼굴도 모르는 세종대왕, 이순신, 이황, 이율곡, 신사임당이다. 경복궁, 덕수궁 수문장 교대식, 국악 군악대…내 눈에는 그저 꼴불견이다. 대한민국 건국 74년에 아직도 스스로 망한 조선왕조를 기리며 살고있는 대한민국. 대한민국에는 기릴만한 인물이 그리도 없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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