國語에 對한 重大한 誤解(10)무한대의 造語능력

漢字造語의 萬能性
漢字는 一字가 一語

漢字는 一字가 一語이기 때문에 文字의 數爻가 많게 될 것은 當然한 事理다. 이는 英語單語의 數爻가 많은 것과 같은 理致에서이다. 그래서 「康熙字典」에는 四萬七千餘字가 있고, 우리나라 漢字字典에는 一萬三千餘字가 있다. 그러나 「유럽」語의 幾十萬 單語에 比하면 僅少한 數爻라 할 것이다.
그러나 「유럽」語보다는 적은 數爻라 하더라도, 四萬字나 一萬字를 文字生活에서 全部 使用한다는 것은 實際로 不可能한 일이다. 그래서 最小限의 文字로 最大限의 意味를 表現하는 方法이 發明되었다. 卽, 個別의 文字 二個를 連結함으로써 새로운 單語를 만드는 方法이 그것이다. 例하면, 意味가 서로 다른 「社」字와 「會」字를 合하면 「社會」가 되는데 이 單語는 「society」라는 意味를 갖는 새로운 言語다. 그리고 이 單語의 두 글 字를 뒤바꾸면 「會社」가 되는데 이것은 「company」라는 意味를 갖는 또다른 單語가 된다. 漢字의 「造語」는 漢字의 造字原理와 같이 「會意」의 方法으로 뜻이 다른 두 文字를 連結시킨다는 것과, 또 一字의 音이 一音이라는 理由로, 가장 自然스럽게, 가장 容易하게, 또 거의 無制限으로 造語가 可能하다.
그리고 그것이 「會意」인 까닭으로, 새로 만들어진 單語는 거의 完全에 가깝도록 제가 가져야 하는 意味를 제 스스로가 表現할 수 있다. 이것은 오직 漢字만이 가질 수 있는 偉大한 機能이다.
「유럽」에서는 高級한 文物에 對한 造語는 거의 全部를 「라틴」語에 依存한다. 卽, 「유럽」 各個 種族의 固有語로는 高等槪念의 造語는 不可能하다. 우리의 境遇도 이와 같다. 學術用語는 말할 것도 없고, 日常의 生活用語도 좀 高級한 事物이면 造語는 全部 漢字에 依存한다. 例하면, 螢光燈, 扇風機, 冷藏庫, 電蓄, 錄音, 錄畵, 高速道路, 自助精神, 自立國防 等과 같다.

學術語의 飜譯

勿論 보다 低級한 事物은 固有語로 造語할 수도 있다. 한글 學者가 「아내무섬쟁이」라는 말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恐妻家」라는 말이라고 한다. 이런 程度의 造語는 그 意味가 通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 가지고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첫째, 言語의 音節이 많아지고, 둘째, 말이 한 個의 槪念으로 固定되지 못하여 意味가 散漫하고, 셋째, 語義와 語感에 깊이가 없고 原始的이다. 「恐水病」(狂犬에 물려서 나는 病)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을 「라틴」語로 「Hydrophobia」라고 한다. 이것은 「hydro」(水, 「pho」(恐), 「bia」(病)의 세 個의 單語가 合쳐서 된 말이다. 이것을 우리 말로 바군다면, 「물무섬앓음」이 될 것이요, 이것을 「앵글로·색슨」語로 飜譯하면 「Water fear sickness」가 될 것이다. 勿論, 意味는 通한다. 그러나 이것은 「아내무섬쟁이」와 같이 語義가 至極히 散漫하고 原始的 槪念밖에 나타낼 수 없다. 그런 까닭으로, 英國人들은 이것을 自己의 固有語로 바꾼다는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고 「라틴」語를 그대로 使用한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바꿀 수 있는 것은 下等槪念에 限하는 것이요. 高等槪念에 이르면 全然히 不可能하다. 卽, 「恐妻家」를 「아내무섬쟁이」로 고치고, 「Hdrophobia」를 「Water fear sickness」로 바꿀수는 있으되 「Philosophy」, 「Sociology」, 「Ethics」等에 이르면 우리 固有語로나 「앵글로·색슨」語로는 손을 댈 수 없다. 그 까닭은 이미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 固有語에나 「앵글로·색슨」語로는 손을 댈 수 없다. 그 까닭은 이미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 固有語에나 앵글로·색슨」語에는 文明語彙가 없기 때문이다.

漢字機能의 完全性

그런데, 漢字로는 이것을 完全無缺하게 바꿔놓을 수 있다. 「Philosophy」를 「哲學」, 「Sociology」를 「社會學」, 「Ethics」를 「倫理學」으로 飜譯하였는데, 이것들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飜譯된 言語가 原語보다도 오히려 더 正確한 그 語彙가 갖는 槪念을 表現하고 있다. 더 分明히 말하면, 言語 自體가 바로 그 言語의 定義다. 그런 까닭으로, 漢字語彙는 漢字만 알면 물을 必要도 없고, 배울 必要도 없다. 이와같이 漢字는 1. 그 意味의 正確性에 있어, 2. 그 意味解得의 自動性에 있어, 3. 그 意味認識의 迅速性에 있어, 4. 少數의 文字로 多數의 言語를 만들 수 있다는 그 經濟性에 있어 人間이 文字에게 바랄 수 있는 最高의 理想을 完全히 實現하여 준 文字다.
西歐文明을 처음으로 東洋으로 들여온 것이 日本人이었다. 只今으로부터 四十餘年前, 筆者가 日本留學時節에 들은 말인데, 萬一 漢字가 없었더라면 그들은 西歐의 學術用語는 單 한 個의 言語도 飜譯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하였다.
생각컨대, 二千餘年을 걸려서 이루어진 西洋文明을 單 百年이 못되는 歲月로써 따라잡은 오늘의 日本文明은 오로지 그들이 漢字를 가졌었다는 데서 얻어진 結果요, 또 百年 前까지 가지고 있었던 그들의 固有文化도, 그들이 百濟 사람들로부터 漢字를 배움으로써 비롯된 것이다. 萬一, 그들이 漢字가 없었더라면, 世界文明의 頂上을 向하여 달리고 있는 오늘의 그들의 文化는 想像도 할 수 없는 일이요, 文明文字를 갖지 못한 「필리핀」이나 印度나 「아프리카」等과 같은 所謂 後進國의 處地를 決코 免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우리도 이와 同一하다.

「센서스」라는 말의 來歷

우리나 日本人은 談話에 있어서나 文章에 있어서, 漢字語로나 固有語로 充分히 飜譯하여 使用할 수 있는 言語까지도 즐겨 英語를 그대로 使用하고 있다. 요새것으로는 「에티켓」, 「브리핑」, 「심포지움」, 「쎄미나」, 「센서스」, 「마이·리빙」 等이 그런 것들이다. 이것은 지극히 적은 一例에 不過하거니와 요새, 新聞記者 아저씨들이나, 「아나운서」아가씨들은 무척 많은 英語를 우리 말에 섞어쓰고 있다. 그래서 筆者는 理解하지 못하는 말이 날로 늘어가고 있다.
위의 例가운데, 「센서스」라는 말이 있는데 언젠가 國家가 하는 人口調査表의 表題에서 筆者는 처음 보는 말이었다. 只今도 筆者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또 어디 나라 말인지도 모른다. 率直히 말하여, 그때 筆者는 이것을 보고 甚한 衝擊을 느꼈던 것이다. 이 나라의 政治를 하고 行政을 한다는 이른바, 指導的 位置에 있는 사람들의 判斷力이 얼마나 흐려져 있는가 함을 實感하였기 때문이다. 「人口調査」라면 적어도 三千萬國民을 相對로 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 表題가, 그래도 글줄이나 읽은 바 있는 筆者도 모르는 外國語로 되어있는 것이다. 이번 人口調査가 美國이나 俄羅斯의 植民地로서 本國에 報告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라면 모르되, 萬一 그런것이 아니라면 그 表題를 國民의 絶對多數가 모르는 外國語를 便用하였다는 것은 그 底意가 어디에 있는 것인가? 言語나 文字는 人間과 人間間의 意思疏通이 그것의 唯一絶對의 存在理由다. 그래서 筆者는 우리가 中國에서온 漢字語를 使用하는 것이 나쁜 일이 아니라는 것과 同樣으로 우리가 그밖의 外國語를 使用하는 것을 決코 나쁘다고 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理解할 수 없는 것은, 國民이 모르는 이와 같은 外國語를 使用하는 것이, 그대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조상의 빛난 얼」이라든가, 「主體意識」等과는 어떤 關係에 있는 것인가 함이다. 또 「우리말 도로찾기」와 「우리말 갈고 닦기」와는 어떤 函數關係에 있는 것인가? 또, 國民에게 對하여, 漢字語를 使用하는 것은 事大思想이고, 英語를 使用하는 것은 主體思想이라는 말인가? 나는 그대들에게 嚴肅히 묻고저 한다.

外國語使用 않는 中國人

그러나, 中國人은 어떤 外國語라도 그대로 使用하는 法이 없고, 完全히 漢字로 飜譯하여 使用한다. 例하면, 化學에 있어서의 元素의 名稱은 말할 것도 없고 分子構造式에 있어서의 符號까지도 完全히 漢字를 使用한다. 그들은 「올림픽」을 「世界運動大會」라고 한다. 이와같이 中國人이 外國語를 完全히 飜譯할 수 있다는 것은 中國語의 語彙가 「유럽」語보다도 더 豊富하고 더 完全한 것이라는 것을 意味한다. 그리고 中國語의 語彙가 그렇게 豊富하고 또 그렇게 完全할 수 있는 것은 漢字造語의 萬能性에 緣由하는 것이요, 이 造語의 萬能性은 위에서 본 바, 漢字가 갖는 高度한 機能에 原因한다.

二種文字 使用하는 韓國人의 幸福

漢字는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글字 한 字가 다 저마다 뜻을 가지고 있는 너무도 完璧한 文字이기 때문에, 純漢文章을 읽을 때는 우리의 마음은 一刻의 餘裕도 가질 수 없는 重壓感으로 苦痛마저 느끼게 된다. 또 이와는 反對로 純한글 文章을 읽을 때는 그것이 너무도 미련하고 더뎌서 緩行列車라도 탄 것처럼 또한 苦痛을 느낀다. 그런데, 國漢文混成文章을 읽을 때는 우리의 마음은 緊張과 弛緩이 快適한 調和를 이루어 마치 無痛을 할 때와도 같은 律動의 快感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마음의 負擔이 거의 없이 快速調로 讀書를 하게 된다. 우리는 지금 人類가 發明한 모든 文字中 가장 좋은 表音文字와 가장 슬기로운 表意文字를 同時에 使用한다는 過分한 幸福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도 昨年 讀書週間의 調査인데, 世界의 年平均 一人當 讀書量은 日本人이 最高로 年 三○○○面, 韓國人이 年 六○面으로 되어 있다. 위와같이 事實에 대하여 日本의 「石井式漢字敎育」의 創案者 石井勳은 그 原因은 오로지 그들이 漢字와 「가나」의 混用文을 使用하는 데 있다고 하였고, 또 日本人의 이와같은 偉大한 讀書力에 대하여 英國 케임브리지 大學敎授 데보노 博士는 「이 讀書力은 장차 日本을 世界第一로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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