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동포 여러분, 그동안 얼마나 고생하셨습니까. 이렇게 전파를 통해서나마 여러분들의 건강과 행운을 비는 수밖에 없는 한반도의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북한정권은 김일성 김정일을 자애로운 수령님, 경애하는 지도자, 친애하는 지도자, 통큰 지도자라고 받들어모십니다. 온통 사랑 愛자입니다. 오늘은 그 두 사람이 독점한 사랑이란 말을 한번 생각해봅시다. 그리고 정말 자애스러운 것과 통큰 것이 어떤 것인지 한번 따져봅시다. 김일성은 스탈린과 모택동의 힘을 빌어 동족을 쳤습니다. 그것도 일요일 새벽을 노린 기습이었습니다. 이 6.25 남침전쟁으로 한반도는 국제전쟁터가 되었습니다. 물러갔던 미군도 다시 들어왔습니다. 김일성이 미군을 불러들이 것입니다. 김일성은 그 3년간, 屍山血海, 즉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바다처럼 넘치는 아수라장을 만들었습니다. 약300만 명의 생명이 사라졌습니다. 성경에는 인간의 생명은 지구보다 무겁다고 했습니다.
그 지구보다 무거운 생명이 300만 개 없어졌습니다. 더구나 김일성은 자신이 일으킨 전쟁을 마음대로 끝내지도 못했습니다. 스탈린이 미군을 한반도에 계속해서 붙들어두기 위해서 김일성에게 휴전협상을 질질 끌면서 싸우라고 지시했기 때문입니다. 스탈린이 죽고 난 다음에야 모택동과 김일성은 휴전을 할 수 있었습니다. 목적한 바 적화통일도 이루지 못하고 동족과 중국 사람, 미국사람 , 영국사람, 호주사람, 터키사람 등등 무고한 사람들의 생명만 빼앗아간 김일성이 자애로운 지도자라면 히틀러도, 악마도 그러할 것입니다.
김정일은 아버지의 이런 악행을 이어받아 여러 가지 구제수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혁 개방을 거부함으로써 평화시에 북한주민 약300만 명을 사실상 굶겨죽였습니다. 통이 크다는 것은 가슴이 넓다는 것이고 포용력이 크다는 뜻이며 너그럽다는 뜻입니다. 통이 크다고 해서 인덕정치, 광폭 정치를 한다는 자가 북한체제의 문을 꼭꼭 닫아걸고 지배층끼리만 잘먹고 잘살면서 일반 주민들을 짐승처럼 잡아죽이고 있는데도 여러분은 김정일을 통이 큰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들은 아마도 남한의 유행가 한 두 곡은 부를 줄 아시리라 믿습니다. 탈북자들로부터 들어보니 북한동포들은, 특히 사랑의 미로, 고향의 봄, 과수원길 같은 노래를 좋아한다더군요. 곡도 곡이지만 가사가 너무나 감미로와 몰래 숨어서 테이프로 이들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는 꿈을 꾸는 듯했다는 소감도 들었습니다. 인간 세상을 계급으로 분류하여 소위 계급의 적들에 대한 증오심을 부추기는 북한의 노래들만 들었던 분들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노래는 저도 좋아합니다. 고향의 봄이란 노래는 군대에 복무할 때 고향과 부모님을 그리며 많이 불렀고 기합을 받고나서도 많이 불렀습니다. 한민족은 역시 비슷한 정서와 감성을 갖고 있구나 생각합니다.
사회주의가 가장 싦어하는 단어가 아마도 사랑이란 낱말일 것입니다. 사회주의는 인간이 가진 善惡 양면의 성격중에서 악을 충동질하여 인간의 증오심을 폭발시킵니다. 소위 계급투쟁론은 인간을 흉기로 만드는 증오의 과학입니다. 인간의 머릿속에 증오의 이념을 심어놓으면 그는 친구도 부모도 형제도 가리지 않고 고발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합니다. 사회주의가 가장 싫어하는 단어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북한전체주의는 오직 지도자와 수령만이 이 사랑이란 말을 독점하게 합니다. 수령만이 사랑받을 자격이 있고 수령만이 사랑할 자격이 있습니다.
정말 사랑이란 어떤 것일까요. 흔히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합니다. 성경에는 기독교의 원리를 사랑, 믿음, 소망이라고 표현하면서 그중에 으뜸은 사랑이라고 규정하는 대목이 있습니다. 물론 기독교도 중세 유럽에선 사회주의처럼 교조적인 도그마로 변해 신의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수많은 전쟁을 했습니다만 종교개혁을 통해서 정치나 권력에서 손을 뗀 새로운 기독교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인류의 유산으로 전해오는 모든 문헌 중에서 사랑에 대해 가장 아름다운 말로써 定義를 내린 것은 신약성경 고린도前書 13장일 것입니다. 고린도前書는 使徒(사도)바울이 지금 터키의 에베소에 머물면서 자신이 한때 개척했던 지금 그리스의 코린트에 있는 교회와 교인들에게 써보낸 편지모음입니다. 교인들에 대해서 여러 모로 충고하는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전체가 사랑에 대한 記述(기술)입니다(한글성경과 영어성경을 참고하여 정리했습니다).
<내가 사람의 말뿐 아니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징소리나 꽹과리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예언의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다 알고 山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가난한 사람에게 내어놓고 내 몸마저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얻는 것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사랑은 질투하지 않고, 사랑은 자랑하지 않으며, 사랑은 교만하지 아니하다. 사랑은 무례하지 아니하며, 이기적이지 않고, 쉽게 성내지 않으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한다. 사랑은 惡에서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즐거워 하느니라. 사랑은 늘 지켜주고, 믿어주며, 소망하고, 견디느니라. 사랑은 영원하나, 예언은 끊어지고, 방언도 멎을 것이며, 지식도 사라지리라.
우리가 단편적으로 알고 단편적으로 예언하지만 온전한 것이 올 때는 단편적인 것이 사라지리라. 내가 어렸을 때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성장한 뒤에는 어린 것들을 버렸노라. 지금은 우리가 거울을 보듯이 희미하지만 그때가 되면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볼 것이요, 지금 나는 단편적으로 알지만 그때가 되면 주께서 나를 아시는 것처럼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니라>
17년 전 대한항공폭파범 金賢姬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고린도前書 13장을 외고 있었습니다. 金양은 있을 때 연애나 사랑 같은 말을 입엔 올리는 것조차 기피했었으나 고린도前書 13장을 읽으면서 달라졌다고 했습니다.
<'북쪽에서는 사랑이란 낱말이 수령과 조국 그리고 인민에 대한 충실성이란 뜻으로 주로 쓰입니다. 남녀간의 사랑을 표현하는 말은 『좋아한다』 『생각한다』 『각별한 사이다』 『특별한 관심이 있다』 식이랍니다. 신상옥 감독이 만든 영화 「철길따라 천만리」에서 철도 보수원의 딸이 좋아하는 남자와 키스하는 장면이 처음 나와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1980년대말 민주화 운동의 현장에서 분신자살 사건이 더러 일어났습니다. 그때 제가 우연히 읽은 대목이 고린도前書 13장의 한 구절이었습니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저에겐 이 귀절이 사랑은 없고 증오심과 사명감만 있는 분신자살을 비판하는 글로 해석되었습니다.
나치 독일의 히틀러는 국가주의자, 영국의 수상 처칠을 애국자로 비교한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국가주의자는 국가의 敵을 증오하는 마음이 기본이지만 애국자는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선이라고 합니다. 좌익들에게서 狂氣와 사명감은 느낄 수 있지만 사랑은 느낄 수 없습니다. 한국인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경쟁하고, 남북대치상황에서 투쟁해야 한다는 숙명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 경쟁과 투쟁도 사랑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有益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합니다. 惡을 미워하는 마음이 지나쳐 사랑을 잊지 않도록 자신을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김일성과 김정일을 미워하는 마음으로 해서 내 성격을 버려서는 안되겠다고 반성하기도 합니다.
생명에 대한 존중, 인간에 대한 관심, 가정과 고향에 대한 사랑, 그리고 대한민국에 대한 자부심, 그 연장선상에서 북한동포에 대한 동정심과 김정일에 대한 분노를 느끼는 것은, 모든 존재하는 것에 대한 따뜻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소중한 감정입니다. 그런 따뜻한 마음들이 모인 국가. 그 같은 이상적인 국가像과 가장 비슷한 나라는 아마도 삼국통일기의 新羅일 것입니다. 唐將 蘇定方이 신라와 함께 백제를 멸한 다음 귀국하여 唐帝 고종에게 귀국신고를 하니 고종은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왜 내친 김에 신라마저 정벌하지 않았는가. 소정방은 변명하기를, '신라는 그 임금이 어질어 백성을 사랑하고, 그 신하는 충의로써 나라를 받들고, 아랫사람들은 윗사람을 父兄과 같이 섬기므로 비록 나라는 작더라도 감히 도모하기 어려워 정벌하지 못하였습니다.'
어짐, 사랑, 忠義, 받듬, 섬김-위의 짧은 문장 속에 등장하는 이런 키 워드가 충만한 신라였기 때문에 삼국통일과 對唐결전으로 한반도를 지켜내어 민족의 보금자리를 가꿀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만들어가려고 하는 대한민국의 모습도 이런 것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이 지구상에서 김정일처럼 지독한 악당은 달리 없습니다. 이 지구상에서 이 악당에 굴종하면서 진보를 자처하는 김대중-노무현 세력보다 더한 거짓 예언자와 위선자도 달리 없습니다. 이 지구최대의 악당과 위선자를 無力化시키기 위해서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과 가장 위대한 분노의 힘이 동원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랑은 온유하지만 모든 고통을 참고 견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김정일 독재를 견디는 힘도 결국은 사랑에서만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애국심은 조국에 대한 사랑에서 우러나온다고 하지만 대한민국은 태어날 때부터 至高至善(지고지선)한 사랑스런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결점 많고 더럽고 가난하고 냄새 나는 그런 국가였습니다. 나라를 세우는 과정에서 많은 피를 흘려야 했고, 나라를 지켜내는 과정에선 더 많은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국가의 이름으로 많은 개인들이 희생되었고 국가의 권력을 개인의 권력으로 악용한 많은 공무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때문에 국가란 낱말은 민족보다도 인기가 떨어졌고 때로는 증오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미숙아 대한민국은 그 뒤 상처투성이가 되어가면서도 열심히 일하고 배우고 또 싸우고 하면서 무럭무럭 컸습니다. 나으리들이 국가의 권력을 私用하여 배를 채우고 약한 사람들을 괴롭히던 풍조도 많이 사라졌습니다. 외국에 나가서 태극기를 보면 가슴이 뭉클해질 정도로 대한민국은 국민들의 가슴 속에서 일정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세계역사상 그래도 불과 50여년만에 국민국가를 이 정도로 발전시키고 성숙시킨 곳도 없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장래를 낙관하게 되었습니다. 나라의 주인이 바로 우리라고 생각하는 중산층의 두께도 상당합니다. 그래도 대한민국은 더 많이 변하고 배우고 커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헌법질서의 소중함을 대통령부터 지겟꾼까지 하나의 신념체계로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많은 국민들은 이제 국가를 친근하게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잘되는 것이 국가가 잘 되는 길이고 국가가 튼튼해야 안보, 복지, 자유가 증진되는 가운데 내가 안락한 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생각이 정착되면서 우리 대한민국은 이제 '당신들의 천국, 우리의 지옥' 이 아니라 '밉거나 곱거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조국'이 된 것입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에리히 프롬은 '건전한 사회'란 책에서 참사랑을 이렇게 정의하였습니다.
'생산적인 사랑이란 항상 네가지 특징을 지닌다. 상대에 대한 관심과 책임감과 존경, 그리고 호기심이 그것이다. 나는 상대의 성공과 행복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관심을 쏟는다. 나는 구경꾼이 아닌 것이다. 나는 상대에 대하여 책임감을 느낀다. 상대가 필요로 하고 요구하는 것에 대하여 늘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다. 상대가 말하는 것은 물론이고 상대가 말못할 것일수록 나는 그것에 더욱더 신경을 쓴다.
나는 그를 존경한다. '존경한다'함은 그 어원 그대로 있는 그대로 객관적으로 그를 바라본다는 뜻이다. 나는 내 희망이나 두려움으로 해서 그를 왜곡하여 보지 않는다. 나는 그를 알기 위해 애쓴다. 나는 표면적인 이해의 수준에 머물지 않고 그의 존재 핵심부로까지 꿰뚫고 들어가, 주변부가 아니라 나의 핵심과 중심부를 그의 그것들과 연결짓는다.'
이런 참사랑을 김일성 김정일이가 여러분들한테 쏟았습니까, 여러분들은 김일성 부자로부터 이런 참사랑을 받았습니까. 그렇다면 그를 경애하는 지도자라고 부르십시오. 그러지 않고 김일성 부자가 악마의 미소를 지으면서 무고한 사람들을 도살장으로 보냈다면 그를 몰아내어야 합니다. 사랑이라는 단어에 피를 묻힌 김정일을 그냥 두고는 우리 가족끼리도, 우리 이웃끼리도, 우리 친구끼리도 사랑을 나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민족끼리도 사랑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우리가 사랑을 하려면 증오의 화신이자 사랑의 걸림돌인 김정일을 제거해야 합니다.
북한동포 여러분, 사랑할 수 있는 그날을 기약하면서 다음에 만날 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김정일은 사랑의 배신자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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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3-23, 13: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