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모는 미군이 있는 한 계속될 것이다"

죽기 하루 전 朴正熙는 안보대책회의에서 그렇게 말했다. 자주국방을 못하면 국민들의 人格이 성숙될 수 없다는 것이다.
1979년 10월25일 오후, 朴正熙 대통령은 피살되기 하루 전 청와대에서 안보대책회의를 주재했다. 이날의 主題는 아흐레 전에 터졌던 釜馬사태에 관한 대책이었다. 崔圭夏 총리, 金載圭 정보부장, 具滋春 내무장관 등 안보관련 책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玄鴻柱 정보부 企政국장이 종합보고를 했다. 玄 국장의 보고 중에 사태의 원인으로서 '장기집권'을 지적하는 내용이 나오자 대통령은 '정부의 失政보다는 金泳三이의 영향이 더 크다'고 논평했다. 보고를 다 들은 朴 대통령은 이런 요지의 지시를 했다.

'이번 사태에 대해 정보부 내무부 등 정부기관은 크게 반성해야 한다. 사전 정보활동이 부족했고 初動대응이 잘못되어 큰 소요로 확대되었다. 일선공무원들의 對民자세가 불손, 불친절, 불성실하여 국민들의 불만이 크다. 이런 對民자세를 바로잡기 위하여 최대한 노력하라. 한국에서 데모는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한 계속될 것이다'

朴 대통령이 '데모는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한 계속될 것이다'고 말한 것이 흥미롭다. 朴 대통령은 5.16 혁명 직후에 쓴 글이나 책에서부터 '한국인의 사대주의 근성'을 근대화의 가장 큰 걸림돌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조선조 당파싸움의 원인도 事大主義 정책에 따라 국방조차도 중국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양반들은 사소한 데 목숨을 거는 권력투쟁에만 전념한 결과라고 보았다. 해방후에도 이런 전통이 이어져 학생들과 정치인 및 지식인들은, 국방에 대해서는 미군이 알아서 해줄 것이니 나의 문제가 아니라고 밀어놓고 사회혼란만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시각이었다.

'주한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한 학생 등은 안보를 자신들의 문제로 인식하지 않고 끊임없이 무책임한 행동을 계속할 것이다'는 평소의 생각을 그는 죽기 하루 전에 피력한 것이다. 그는 '자주국방을 할 수 없는 나라는 진정한 독립국가라고 볼 수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가 죽기 하루 전까지도 한국인의 사대성을 개탄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의 근대화가 물질적으로는 성공했으나 국민정신면에서는 미완성이었음을 보여준다. 인간이든 국가이든 자신의 생존을 남에게 맡겨놓는 것은 성숙된 人格이나 國格을 갖추는 데 결정적 장애요인이 된다는 문제의식을 죽을 때까지 견지했던 것이 朴 대통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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