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연합 선언은 예멘식 內戰의 길

김대중 訪北의 위험성. 한국 사회는 이미 사상적 內戰상태에 돌입해 있지 않은가
긴급 기고/金大中 訪北과 평화체제론의 함정

평화구축 없이 남북연합 선언하면
한반도는 예멘式 內戰으로 간다

南柱洪 경기大 교수

휴전체제의 核분열 위험

金大中 前 대통령이 오는 6월 기차를 타고 평양을 방문해 金正日과 「특별한 만남」을 갖겠다고 해서 세상이 시끄럽다. 들뜬 쪽은 「무언가 남북관계의 변화를 가져오지 않겠느냐」 하는 기대감을 표시한다. 한편에서는 「金大中씨가 또 다시 6·15 공동선언 같은 이상한 합의문서를 들고 오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최근 정부 안팎의 움직임은 예사롭지 않다. 盧武鉉 정부는 북한과 모종의 「합의」를 시도하고, 이를 頂上회담으로 연계시키겠다는 구상을 갖고 있다는 소문이다. 金大中 前 대통령은 「6者회담을 상설화시키고, 이 기구를 통해 평화체제를 구축해 남북연합 단계로 가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現 정부와 金大中 前 대통령의 구상을 종합하면, 결국 6·15 공동선언式으로 통일과정을 밟아 나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얼핏 보면 이런 접근방법이 核문제를 해결하고, 南北 화해와 협력의 결정적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 「민족주의적 해법」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접근은 자칫 휴전체제의 「核분열」을 가져올 위험을 담고 있다.

비록 金大中 前 대통령의 선의의 동기는 인정하더라도, 잘못하면 북측의 통일전선에 휘말릴 위험이 도처에 깔려 있다. 북한의 일관된 對南 연방제 통일전략을 분석해 보면 그 이유는 자명하다.

북한의 연방제 통일방안은 「하나의 민족국가 안에 서로 다른 두 개의 제도와 두 정부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북한은 이제 『잠정적으로 연방공화국의 지역적 자치정부에 외교·군사권을 각각 보유케 함으로써 더 많은 권한을 부여하며, 장차로는 중앙정부의 기능을 높여 가는 방향에서 연방제 통일을 점차적으로 완성하는 문제도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종의 「국가연합」 같은 것을 먼저 실시해 보자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수정된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으로서 「낮은단계의 연방제」案이다.

南北은 2000년 「6·15 공동선언」을 통해 『南과 北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案과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하기로 하였다』고 합의했었다.


金大中 前 대통령의 착각

金大中 前 대통령은 『6·15 공동선언의 남북연합案에 북측이 자연스럽게 적응하여 통일 1단계에 들어가면, 「평화공존-평화교류 - 평화통일」 과정이 시작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위험한 착각이다.

북한은 1980년대에 내놓은 연방제案에서 「남한정권 교체」, 「주한미군 철수」, 「국가보안법 폐지」, 「공산당 활동 허용」 등을 통일의 분명한 전제조건으로 내세웠다. 金大中 정부 이후 정권 교체 부분만 빼고 나머지는 지금까지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다.

북한은 남한을 「美帝의 식민지」로 간주하고, 6·25 전쟁 때 못다 이룬 「민족해방의 완성」을 통일이라고 보고 있다. 그래서 「하나의 조선」을 내세워 민족해방론자와 인민민주주의혁명론자들을 對南공작 파트너로 삼았다. 이 공작은 작금 절정에 이르고 있다.

우리가 진정 통일을 원한다면 「국가 통일」의 차원을 넘어, 민족 동질성 회복을 위한 신뢰구축 조치들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북한은 이 순서를 반대방향으로 틀어 놓는 「통일전선式 통일방식」만을 표방하고 있다. 그것이 소위 「민족공조론」이다.

북한은 남한內에서 2000년 6·15 공동선언 이래 봇물처럼 터져 나온 좌경 민족주의와 親北 민중사관론을 이른바「聯共·聯北 統一戰線」 전략을 추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북한이 말하는 통일은 核문제를 민족주의化하여 「反美·자주」式 연방제 통일로 가자는 것이지, 金大中 前 대통령이 「남북연합」이라는 주장下에 이상적으로 펼치는 한민족의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통일이 아니다. 한마디로 오늘의 북한과 우리가 꿈꾸는 통일은 「없다」.

북한정권이 지난 60년간 별 탈 없이 존속되어 왔다는 분명한 현실에 조금이라도 주의를 기울인다면, 북한정권 엘리트들의 체제유지 능력이 얼마나 강한지 잘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核위협」을 체제 생존의 무기로 활용해야 할 정도로 안팎의 사정이 어렵다는 북한의 현실을 주의 깊게 뜯어 보면, 金正日이 처한 딜레마가 결코 一過性(일과성)의 위기가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절체절명의 안보문제인 核문제를 포퓰리즘적인 평화체제론이나, 「내재적」 對北 포용정책 차원에서 해법을 찾을 경우 대단히 위험한 자충수가 될 수 있다. 자칫 방향과 수순을 혼돈할 경우 북한보다 우리가 먼저 체제위기의 미궁에 빠져들 가능성이 더 크다.


東獨 측에 할 말은 한 西獨

그러면 이에 대한 경고로서 독일과 예멘의 경험을 살펴보자.

두 나라는 합의통일을 했다. 그렇지만 독일은 축적된 신뢰를 통해 평화적으로 합의를 했고, 예멘은 지도부의 정치적 결단으로만 합의를 했다. 예멘은 결국 內戰(내전)을 겪고서야 再통일을 이뤘다.

지금 盧武鉉 정부가 구상하는 소위 평화체제론이나 金大中 前 대통령의 남북연합론은 모두 정치적 이상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어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최악의 경우, 한반도에서 예멘式 內戰이 벌어지는 상황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1990년의 독일통일은 西獨에 의한 일방적 흡수통일이 아니라, 兩獨 정부와 국민이 합의한 국가 간 조약에 의한 통합이었다. 東獨은 西獨연방기본법 제23조 규정에 의해 연방에 가입하는 방식으로 西獨과 하나의 나라가 됐다.

西獨이 東獨의 저항을 무릅쓰고 강제로 東獨을 흡수한 게 아니라 東獨이 그들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西獨으로의 편입을 선택한 것이었다. 東獨 사람들은 어차피 붕괴될 체제를 붙들고 있는 것보다는 西獨체제에 자발적으로 투항하는 것이 자신도 살고 민족 모두가 사는 길이라고 판단했다.

東獨 측의 이러한 자발성은 저절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西獨 정부와 국민이 유도한 것이었다. 西獨은 오랜 기간 철저한 「상호주의」와 「검증주의」에 입각해 신뢰구축 조치를 추진했으며, 東獨에 할 말은 다했다. 무엇보다 西獨은 안보문제와 통일문제를 엄격히 구분해 대처했다.

여기에 우리가 명심해야 할 독일의 교훈이 있다. 西獨은 東獨에 대해서 분단 45여 년간 정책 차원이건 정치적 차원이건, 「통일하자」는 말을 공식적으로 단 한 번도 꺼낸 적이 없었다. 모든 對동독 지원은 반드시 東獨의 변화를 조건으로 이뤄졌다. 이것이 東獨의 자발적 해체를 가져온 근본적인 요인이었다.


內戰으로 이어진 예멘式 「합의통일」

예멘의 경우를 보자. 1962년 오스만 터키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독립된 北예멘공화국이 서방권에 가담하고, 196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南예멘공화국이 공산 진영에 가담함으로써 분단되었다. 두 나라는 세 차례에 걸친 대규모 국경충돌과 세 차례의 통일협상을 치렀다.

이 세 번의 전쟁과 세 번의 협상과정에서 열 번의 頂上회담을 했고, 1990년 5월 「합의」에 의한 통일을 이뤄 냈다. 그러나 이 합의는 권력기구의 안배 등 정치적 국가통일에만 초점을 맞췄고, 사회·경제·문화 분야에서의 민족통합은 도외시했다.

결국 1994년 7월 전면 內戰이 발발했고, 무력이 우세한 北예멘이 南예멘을 패퇴시켜 흡수하고 말았다.

예멘은 독일처럼 긴 신뢰구축 과정 없이, 민족 동질성이 전혀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남북연합을 위한 頂上회담과 정치적 결단으로 통합을 기계적으로 추진했다. 말이 좋아 남북연합이지, 총리는 南예멘이 맡되 副총리는 北예멘이 맡고, 각료는 북측에 19명, 남측에 15명 배정했다. 「국방장관은 남측이 맡으나 軍 총참모장은 북측 軍이 맡는다」는 식의 나눠먹기를 했다. 물론 이는 초보적 국가연합 단계를 뛰어넘은 무모한 조치였다.

국정운영이 제대로 될 리 없고, 軍의 지휘·명령체계가 제대로 설 리 만무했다. 內戰의 씨앗은 합의 통합의 순간 잉태되고 있었다.

이러한 예멘의 경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첫째, 통일은 頂上회담 같은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통일협상을 시도한다고 해도 협상은 반드시 양측 국민 간의 신뢰구축과 정신적 공감대가 전제돼야 한다. 셋째, 현격한 국력 격차가 있는 상황에서의 대등한 통합은 대단히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現 정부 안팎의 햇볕론자들은 6·15 공동선언을 金科玉條(금과옥조)처럼 여기고, 이 방식으로 안보문제와 통일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6·15 공동선언을 통일전선전략으로 활용하면서, 지금 한국 사회는 이미 사상적 內戰상태에 돌입해 있지 않은가.


인위적 南北연합하면 內戰 불가피

북한은 6·15 공동선언을 명분 삼아 對南공작을 집요하게 강화시켜 왔다.

2006년 신년사에서 민족공조를 강조하면서 「남조선內 反보수 대연합」을 구축하라고 선동한 것은 단적인 예이다. 만약 金 前 대통령의 訪北이 이뤄지고, 이것이 여당의 영토조항 수정요구 개헌논쟁과 맞물려 「남북연합」이 추진될 경우 다음과 같은 추론이 가능해진다.

金正日 정권이 망해 가면 망해 갈수록 한국의 政情(정정)은 「민족공조」로 金正日 정권의 운명과 함께 출렁이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북한이 지금처럼 남한의 일방적 지원으로 생명줄을 연장하는 데 성공한다면, 우리의 내분을 조장하기 위해 모든 「우리민족끼리」 수단을 동원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남북 頂上회담을 통해 남북연합을 인위적으로 밀어붙이면, 궁극적으로 예멘式 內戰이 불가피해질 수 있다. 「통일전쟁」을 치르자는 말인가?

어설픈 평화체제 구축과 남북연합이 자칫 전쟁을 유발하는 함정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베트남의 경우는 자유월남과 공산월맹 사이에 신뢰가 전혀 없었으므로, 결정적인 기회가 왔다고 판단되면 어느 한쪽이 힘에 의한 통일을 시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美軍이 철수하자마자, 힘의 균형이 무너졌다고 판단한 월맹의 大공세가 시작된 것이다.

미국은 월맹과 파리평화협정을 체결했지만, 이 평화협정은 사실상 베트남 포기협정이었다.

이 정부 안팎에서 『(남북평화협정으로)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해 북한 核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얘기하지만 이건 「美·北 평화협정을 연결고리로 하여 휴전체제를 해체함으로써 核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자」는 북한 측 선전·선동의 한국式 버전에 불과하다.


평화도, 자유도 잃을 수 있다

西獨 정부는 통일이 가까운 장래에 인위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음을 국민들에게 솔직히 알리고, 「東獨의 실체는 인정하되 대신 東獨人들의 인권보장을 요구하는 것이 西獨人들의 의무요, 西獨人들의 권리」라고 가르쳤다.

이런 정치교육을 통해 東獨에 대한 西獨 체제의 절대적 우위를 확보했다.

우리는 이러한 관점에서 북한에 대한 우위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2007년 大選을 의식해 현상타파가 우선인 평화체제론만을 들고 남북대화와 核협상에 나선다면, 우리는 궁극적으로 평화도 잃고 자유도 잃는 결과를 맞게 될 것이다.

통일의 필수불가결한 전제조건은 신뢰구축의 제도화이다. 베트남은 처음부터 이를 무시했기 때문에 赤化(적화)되었고, 예멘은 이것을 소홀히 해서 內戰이라는 代價(대가)를 치렀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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