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桂元 진술조서:-차지철과 김재규 암투

김재규는 차지철을 지칭하면서, “저 자식을 해치워버려야지. 저놈을 그냥 둬두었다가는 각하 결심만 흐려놓고 안 될 텐데”
*아직 교정중

피의자신문조서(제1회)

피의자: 김계원
위의 사람에 대한 내란목적살인 등
피의 사건에 관하여 1979년 11월17일
육군본부계엄보통군법회의검찰부에서
검찰관 중령 전창열은
검찰서기 4갑 서윤석을
참여하게 하고 피의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신문한다.

문: 피의자의 성명, 연령, 계급 군번, 소속, 본적, 주소를 말하시오.
답: 성명은 김계원 입니다.
연령은 당 56세 생년월일은 1923년 6월28일생
계급은 군번은
소속은
본적은: 경상북도 영주군 풍기면 금계동 584
주소는: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 71

조사관은 피의사건의 요지를 설명하고 군법회의법 제231조 제2항의 규정에 의하여 진술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알려준 즉 피의자는 신문에 따라 진술하겠다고 대답하다.

문: 피의자는 형벌을 받은 사실이 있는가요?
답: 없습니다.
문: 훈장이나 기장을 받은 사실이 있는가요?
답: 수사기관에서 진술한 바와 같습니다.
문: 학력과 경력을 말하시오.
답: 군사법 경찰관 앞에서 진술한 바와 같습니다.
문: 가족사항을 말하시오.
답: 군사법 경찰관 앞에서 진술한 바와 같습니다.
문: 종교를 말하시오.
답: 기독교를 신봉합니다.
문: 생활정도를 말하시오.
답: 군사법 경찰관 앞에서 진술한 바와 같습니다.
문: 그 후 병력관계를 말하시오.
답: 경력 및 병력관계는 군사법 경찰관 앞에서 진술한 바와 같습니다.
문: 범행당시 직책을 말하시오.
답: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재직하였습니다.

문: 피의자와 김재규와의 관계를 상술 하시요.
답: 예, 첫째로 1960년도 5월경부터 본인이 육군대학 총장으로 부임 하였는바 당시 부총장으로 김재규가 재직하고 있어서 5~6개월간 관사를 이웃하여 가족끼리 잦은 왕래 등 친밀해졌습니다. 특히 그 당시 해군과 육군의 군수물자 수송 양쪽 합동 훈련을 마친 후 마산에서 술을 마시고 진해로 귀가하던 중 앞에 가던 김재규가 차사고로 부상당하자 본인이 이를 구출 병원에 입원 가료 시킨 일이 있었는 바 그 이후부터 김재규는 본인을 은인으로 생각하고 더욱 친해졌고 두 번째로 1965년도 1군사령관 재직 시 김재규가 제6사단장으로 근무하게 되었는바 당시 대통령각하께서 갑자기 6사단을 밤중에 방문한다고 하기에 본인도 참석하였고 대통령과 김재규와의 친밀한 관계를 알고 나도 더욱 친하게 지냈음.
세 번째로 본인이 1967년도 육군참모총장 재직 시 김재규가 6관구 사령관으로 재직하고 있었는바 군수지원문제 등으로 자주 접촉하였고 청와대에서 지휘관 회식 시 등에는 꼭 김재규를 대동하였으므로 자주 만났고
네 번째로 본인이 중앙정보부장 재직 당시에 김재규는 보안사령관으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수도경비 사령관인 윤필용과는 대통령의 신임을 얻고져 서로 암투하고 권력다툼을 벌이는 등 극한 대립을 하고 있어 대통령 각하의 지시로 이를 중재한 사실이 있습니다.
다섯 번째로 1978년도 본인이 주중대사로 있을 당시 귀국하면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도 영접을 나오지 않았는데 김재규 부처가 본인을 부부초대해서 따뜻하게 대해주는 등 배려를 해주어 아주 고맙게 생각하였으며
특히 본인이 국회의원 출마과정에 있어서 본인을 각하께 건의하여 본국으로 소환하여 주는 등 관심과 배려를 베풀어 주는 등 많은 신세를 입어 고맙게 생각하고 더욱 친해졌으며
여섯 번째로 본인이 1979년도 비서실장 재직 시는 평균 주2회 정도 업무관계로 각하께 보고 드리러 올 때 자주 접촉할 기회가 있어 아주 친한 사이입니다.

문: 비서실장 재직 시 차지철과의 관계를 상술하시오.
답: 개인적인 친분관계는 별로 없고 비서실장 직책을 맡은 후 자주접촉하게 되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차실장의 무례한 행동에 대하여 못마땅하게 여겼는데
1. 본인에 관하여는 본인이 1978.12.22 비서실장으로 부임한 이래 첫 번째 대통령각하 면접실에서 처음 만났음. 〈본인: 외국에 오래나가 있어 사정이 어두워 잘 모르니 지도해주시요. 차지철: 염려마시고 같이 잘 합시다.〉 라는 대화를 나눈 것으로 기억합니다. 얼마 안 있어. 차지철의 사무실로 부임인사차 정식으로 방문하였는데도 차지철은 그 답례로 인사를 오는 것이 예의인데도 한번도 본인의 사무실을 방문한 일이 없어 괘씸하게 생각하였습니다. 또한 보고하러가다가 본인에게 할 이야기가 있으면 2층의 본인 사무실로 올라와 이야기하는 것이 예의인데도 불구하고 차지철은 꼭 경호원을 시켜서 1층대기실로 본인을 불러 내려오게 하여서 본인은 차지철이 좀 오만하고 개성이 너무 강한 사람이라고 느꼈습니다.
또한 국무총리·각부장관 및 당직자라도 각하에게 보고를 드리러 올 때는 반드시 본인에게 들리는데 차지철은 권위의식이 강하여 재임 중 본인사무실에는 한 번도 들린 사실조차 없습니다.
그리고 정부종합청사를 각하가 순시하거나 회의참석 할 때 내빈용 에레베타를 타게될 경우 각하, 총리, 관계 장관, 차실장이 타면 차지철이가 본인에게 대기 중인 다른 에레베타를 타고 오라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2. 타인에 대한 무례한 행동에 관하여는 79년 6월 초순경 16:30. 경기도 수원시 부근 소재 뉴관악 골프장에서 각하를 모시고 백두진 국회의장, 차지철 실장, 본인, 후꾸다 전 일본수상 등이 환영 골프대회를 가졌는바.
당시 백두진 국회의장이 먼저 샤워장에 들어가 늦게 나오자, 차지철이가 샤워장문을 발로차면서 “영감 뭘해 빨리 나오시오” “그저 늙으면 죽어야 된다고” 독촉을 하므로 백 의장이 서둘러 나오면서 “미안 하외다”하는 광경을 보고 차지철 실장이 아버지뻘 되는 백 의장에게 오만불손하게 방자한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분격한 사실이 있으며, 경호를 한다는 구실하에 좌석이나 차량운행 순서 등을 무시하므로 경호실 직원과 비서실 직원과 서로 알력이 져서 불평하는 일을 들은 사실이 있습니다. 본인은 그때마다 부하를 타일렀지만 괘씸한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3. 업무상의 보고관계에 있어서도 본인은 직무상 각하가 매일 출근하시면 바로 결재서류를 가지고 결재를 받는 것이 통례이나 간혹 차지철은 각하가 출근 전에 직무실에서 대기하다가 먼저 들어 가보고 함으로서 본인이 결재를 받는데 지장이 있거나 또한 본인이나 장관이 결재를 받으려고 대기하고 있는데 차지철이 각하집무실 입구에 경호원에게 연락하여 자기가 각하를 뵈올 일이 있으니 못 들어가게 하라고 지시하여 기다리게 한 후 자기가 먼저 보고한 후 다른 사람들이 결재를 받는 일이 간혹 있으며 차지철의 월권행위 및 강경발언에 관하여 아는 바를 말씀드리면
차지철은 자기업무도 아닌 정치공작문제까지도 관여하고 첩보를 수집하여 각하에게 보고하는 등 월권행위를 자주하고 군내 중요 지휘관 및 장성급을 수시로 불러다가 술도 사주고 돈도 뿌리는 일이 있고 또한 항간에는 군인이 경호실을 다녀와야 진급 및 보직 면에서도 혜택을 본다고 하므로 이는 군의 통구계통을 문란 시키는 일이라고 한탄하였으며 특히 당시 육군참모총장 이세호 대장을 매주 1~2회 정도씩 사무실에 불러 환심을 사는 것 같았습니다.
차지철의 강경발언에 관하여는 여러 번 있습니다만 기억나는 것으로는 각하를 모시고, 유정회의장, 공화당의장, 경호실장, 본인 등이 김영삼 당수를 국회에서 제명하는 문제도 논의할 때, 차지철이 “사대주의 발언을 서슴지 않는 김영삼이 하나를 제명치 못하는 국회라면 뭣하겠는가 안 되면 내가 ‘탱크’로 밀어버리겠습니다”하는 등 상식이하의 강경발언을 자주하고
그 외에도 연장자인 본인이나 장과, 국회의장 또는 군의 선배인사들에게 까지도 아무에게나 ‘님’자를 붙여 호칭하는 일이 없이 오만불손하며 각하가 어디로 행차하시기라도 하면 영접나온 손님들에게 경호원들을 시키어 무례하게 다루는 일이 아주 있었습니다.
이러한 점을 미루어볼 때 차지철과는 빙탄불상용의 관계이고 언젠가는 각하에게 건의하여 물러나게 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문: 차지철 경호실장과 김재규와의 관계를 아는 대로 진술하시오.
답: 두 사람과의 관계는 5·16혁명 이후 각하를 측근에서 가까이 모시던 사람들이라 제 생각으로는 두 사람 간에는 대통령의 신임을 얻으려고 서로 암투를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두 사람간의 극도로 관계가 악화된 것은 지난 5월 신민당 전당대회 때 총재선거 시 중앙정보부는 이철승을 총재로 당선 시키고져 공작을 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차지철이 별도로 신민당 신도환 의원을 통해 이철승 당선 공작을 벌이게 되었으므로 중앙정보부는 각하의 지시로 중도에서 공작을 중단하게 되었는 바 결국 신도환의 이철승 지지가 지연되므로 총재선거에서 탈락되어 차지철이 비난을 받아야 할 터인데 모든 비난이 중앙정보부에 집중되었으므로 차지철과 김재규는 서로 악화가 되었습니다. 또한 신민당 총재 김영삼 제명 후 법적으로 정운갑이 총재권한 대행으로 법원결정이 되자, 차지철은 정운갑이가 리더십이 있다고 생각했고 김재규는 좀 약하다고 생각되어 별도의 지원공작을 벌였으며
특히 지난 10·16 부산에서 발생한 소요사태에 관하여 차지철은 각하에게 신민당이 배후조종한 폭동이라고 해서 선입견을 갖게 하고 중앙정보부는 조사결과 신민당이 아니고 남조선민족해방전선등 불온단체와 일부 반정부 학생들이 가담했다고 보고했으나 각하로부터 거절당하고 오히려 야단을 맞게 되자 김재규는 그 원인이 차지철의 농간에 의한 것이라고 눈치 채고 분노가 극도에 달한바 있습니다.

문: 피의자와 김재규가 서로 만나 차지철을 비난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이며 어떤 내용입니까?
답: 제가 부임한지 2개월 후부터이며 김재규와 만나게 되면(매월 6~7회 정도 본인의 사무실 또는 중앙정보부 식당에서 각하를 모시는 자리) 차지철을 비난하게 되는데 주로 차지철의 오만불손한 언동과 특히 정치문제에 깊히 관여하면서 강경일변 로의 주장과 건의로서 각하를 일변도로 모든 결심을 흐리게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김재규는 차지철을 지칭하면서, “저 자식을 해치워버려야지. 저놈을 그냥 둬두었다가는 각하 결심만 흐려놓고 안 될 텐데” “각하께서 나보고 무어라고 명령하는 것은 좋지만 지가 뭔데 각하보다 한 수 더 떠서 이러 쿵 저러 쿵 나에게 이야기하는지 짜식” 등 수없이 차지철에게 증오를 터트리거나 욕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문: 정부요직 개편설에 대해서 알고 있는 바를 말 하시오.
답: 요직 개편설은 잘 모르나, 신민당 총재 공작 전후해서 금년 5월경 이후부터 김재규가 자기의 지위에 불만을 느껴서 그런지는 몰랐는지 몰라도 본인에게 “사람은 자리를 뜰때는 깨끗이 떠야하니까 형님이 제일 잘 아시니까. 제가 자리를 떠야한다거나 각하께서 못마땅한 눈치가 보이거든 제게 이야기하여 주시면 깨끗이 사표를 내겠습니다. 라고 한 사실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문: 피의자가 사고당일 만찬회에 참석하게 되 경위.
답: 오후 4시반쯤 차지철 실장으로부터 “오늘 각하를 모시고 저녁을 하게 되었으니 6시까지 김부장한테 가시요”하는 전화를 받고 본인은 17:40경 궁정동 만찬 창에 도착하여 김부장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문: 궁정동에 도착하여 김부장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습니까.
답: 먼저 궁정동 정보부 본관 응접실에서 본인이 김부장에게 “요즘일이 잘 되지 않아 고생많겠오. 하니 김부장이 하는 말이 ”부산 사태에 신민당이 개입되었다고는 하나 증거는 안 잡히고 정운갑 체재를 굳히기위해 당무위원 일괄사표제출을 공작하였으나 실패했습니다. 공화당에서 2일만 참아주었다면 정운갑 체재가 깨끗이 굳혀질 텐데 이틀간을 못 참아서 모든 것을 수포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계속하여 동일 17:50경 연회장인 ‘나’동 정원의 현관 앞 우측 섬돌앞에 둘이서 걸터앉아서 김부장이 “지금 사회공기가 얼마나 험한 줄 아십니까. 김 실장은 잘 모를 겁니다. 부산에서 계엄령이 선포되어 우선은 조용하지만 몇일이나 가겠습니까. 맑은 물에 무엇 같은 놈 한 마리가 앉아서 자주 물을 흐려놓으니 일이 되겠습니까. 오늘 저놈을(차지철 지칭) 해치워야지 올바로 되지 저놈이 각하의 판단을 흐려놓는 한 잘 될 수 없습니다” 하자 본인은 “그 친구 한 두 사람 이야기만 듣고 각하에게 뽀르륵 쫓아가서 이야기하고 그 친구 강경해서 야단이야”할 때 김 부장은 “그 친구 오늘 해치워버릴까”하자 본인은 묵묵히 고개만 끄덕이었습니다. 그러자 김재규가 “형님! 뒷일을 부탁 합니다” 할 때도 본인은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는 바 곧이어 각하가 도착하여 영접하러 나갔습니다.
문: ‘나’동 현관 앞에서 김부장이 “오늘 해치워 버릴까”하는 말을 피의자는 어떤의미로 받아드렸는가요.
답: 그것은 차지철 실장을 없애버리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대통령각하까지 해치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하였습니다.

문: 만찬장 내에서의 분위기는?
답: 만찬장에 각하 본인 차실장 김부장 등이 좌정하자마자 맨처름 본인의 각하에게 “금일 삽교천 행사에 다녀오시느라 피곤하실터인데 괜찮으시겠습니까”라고 말씀드리자 각하께서는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아 참 큰 공사가 잘 되었더구만”하시면서 말없이 침울한 표정으로 술을 칵테일하고 있는 김 부장에게 “부산마산에는 별일이 없지” 하고 물으니까 “예 별일 없습니다”고 김 부장이 대답하자 각하는 “부산사태는 신민당이 개입해서 하는 일인데 괜히들 놀래가지고 야단들이야. 오늘 삽교천행사에 가보았더니 대다수 국민들은 그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부산데모만 하드라도 식당뽀이나 똘마니들이 많지 않아. 그놈들이 어떻게 선별수리니 뭐니 알겠는가. 신민당에서 계획한 일인데도 괜히 개각이니 뭐니, 국회의장을 ??시켜야 된다”는 지 하면서 “중앙정보부도 수고는 많이 하는 줄 알지만 더 정확한 정보를 수집해야겠어” 할 때 김재규는 계속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얼마 후 시중을 드는 여자 2명을 들여보냈는데 계속 정치이야기가 나오므로 내보냈다가 10분 후에 들여보냈습니다. 그때부터 분위기는 부드러워졌습니다.
문: 김재규가 술자리를 몇 번이나 이석하였나요.
답: 세 번 정도 자리를 뜬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두 번째는 자리 뜬 시간이 오래 걸린 것 같습니다.

문: 평소에도 각하를 모신자리에서 김재규 부장이 자리를 오랫동안 비운사실이 있나요.
답: 평소에도 한두 번 자리를 비운사실은 있으나 이번처럼 오랫동안 자리를 비운일은 없어서 그날은 약간 초조하였습니다.
문: 김재규가 차지철과 대통령을 시해한 경위를 상술하시오.
답: TV로 KBS 뉴-스를 시청하면서 정치이야기를 계속하다가, 노래순서가 되어서 노래를 번갈아가며 부르다가 각하 우측에 앉아있던 여자가 노래를 부르던 중 김부장이 들어와 옆자리에 앉아마자 김 부장은 저를 툭 치면서 “각하 똑바로 모시시오” 하면서 차지철에게 “이 버러지 같은 새끼…” 하면서 1발을 발사하고 이어서 앞에 앉은 대통령 각하의 가슴부위를 향하여 또 1발을 발사하였습니다. 그 당시 본인이 기억나는 말은 “김 부장 왜이래”하는 차지철의 목소리와 “이거 무슨 짓이야”하는 대통령각하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렸던 것 같습니다.
그때가 19:00 K.B.S 뉴우스가 끝나고 30~40분이 경과된 후 이므로 19:40분경이었습니다.
그 직후 전기불이 나가고 연달아 총성소리가 울리어 본인은 불을 키려고 마루로 나왔다가 엉겁결에 피신하고 있던 중, 불이 다시켜지고 방안에서 총소리가 나고 무엇이 쿵하고 넘어지는 소리와 무엇이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직후 와이셔츠 바람으로 나가던 김 부장과 현관에서 마주치자 김 부장이 “나는 한다면 합니다 이제 다 끝났습니다” “보안을 철저히 하십시오” 하므로 본인니 “뭐라고 하지” 반문하니 김 부장이 “각하께서 과로로 졸도하였다고 하던지 적당히 하십시오” 하므로 본인은 “알았소 하여튼” 한 것 같습니다.
그 직후 궁금하여 연회장인 방으로 들어가는데 누군가가 방안을 들여다보며 권총을 들고 서서 “차지철이 아직 안 죽었습니다”라는 소리를 듣고 “각하 계시는 데 무슨 짓들이야” 하며 쥐고 있는 권총을 빼앗아들고 방안을 들어가 보니 방안에는 각하가 옆으로 누워 어깨에 피가 묻은 것을 보고 부상당한 것으로 알았습니다.
문: 피의자는 각하가 부상당한 후 어떻게 조치하였나요.
답: 제게 급히 현관 밖으로 뛰어나가 각하 차 옆에 있던 운전수를 데리고 들어오면서 마루에 서있던 사람들을 데리고 함께 방으로 들어가 각하를 등에 업히게 하고 현관 밖으로 나가 각하 차로 서울지구 군병원으로 가서 도착하자마자 당직 군의관에게 “빨리 외과 수술 준비하라”고 지시하고 각하를 응급실로 모셨습니다.
당직 군의관에 진단 결과 “이미 사망 하셨습니다”라는 말을 듣고 응급실을 나오면서 각하를 모시고 갔던 중앙정보부요원 2명에게 “너희들 오늘 각하 모시고 여기 있어”하고 원장실로 향하던 중 복도에서 원장을 만나 본인은 “꼭 살려야 된다”고 부탁하면서 “오늘 이 병원에서는 어떠한 사람도 출입을 금지시키라”고 지시하고 병원을 나와 민간택시를 붙잡아 타고 청와대 후문에서 경호실차를 집어타고 사무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때가 20:00경이 좀 지나서인 것 같습니다.
문: 피의자가 청와대에 도착 후 어떤 조치를 취하였나요.
답: 우선 청와대 수석비서관과 경호실차장 및 국무총리, 국방장관, 내무·법무장관, 육군참모총장을 비상 소집토록 청와대 본관 경호원 등에게 지시하였습니다.
동일 20시 25분부터 40분 사이에 최광수 고건 유혁인 등 모든 수석비서관과 경호실 차장 등에게 대통령각하께서 큰일을 당하셨으니 모두 대기하라고 지시하고 경호실 차장에게는 다른 비서관들과는 약간 떨어진 거리에서 “무슨 일이 있습니까”하며 물어서 본인은 “각하께서 무슨 큰일을 당하셨는데 차실장은 지금 부대를 지휘할 수 없으니까 이 차장이 부대를 장악해서 경계를 강화하고 경거망동하는 일이 없도록 잘 단속하시오”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중요한 시기 입니다”하자 차장이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각하와 실장은 어디계십니까” 계속 묻기에 본인은 “지금은 말 할 수 없으니까, 경비강화를 빨리하시오”하자 이 차장은 “병력출동이 필요 합니까”하기에 본인은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했으며 동일 20:40경에 국무총리께 딴사람은 부속실로 물리고 단둘이 있을 때 “각하가 서거하였습니다. 만찬 장소에서 김재규와 차지철이 싸움 끝에 김재규가 잘못 쏜 총탄에 맞아 서거 하셨습니다”고 말씀드리면서 “국방장관과 육군참모총장도 긴급히 이리 오라고 연락을 하였습니다”라고 보고 드린 바 있습니다. 21:00경 육군참모총장실에서 전화가 왔다고 해서 받아보니 김재규가 나와 “김재규입니다” 본인은 “거기 어디오”
김부장: B-1방카입니다. B-2방카를 B-1방카로 잘못 알았던 것 같음) 근혜양이 알고 있나요.
본인: 모릅니다.
김재규: 실장님 이리 오시오. 국방장관은 이리 옵니다.
본인: 육군참모총장과 같이 이리 오시오. 라는 등 전화로 이야기를 주고받은 사실이 있습니다. 본인은 그때 육군참모총장 등 군부가 김재규의 설득으로 동인의 장악하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곧이어 21:05경 법무장관과 내무장관이 도착하였으며 내무장관은 각하 유고 소식을 눈치 채고 “치안본부에 비상하달을 해야 하니 무엇이 어떻게 된 건지 내용을 알려 주십시오”라고 수차 문의 하였으나 본인은 구체적 내용은 회피하였답니다.
조금 후에 김재규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국방장관이 이리 왔으니 형님 이리 오시오” 하므로 본인은 “지금 거기 갈 수 없습니다. 국무총리도 여기 계시니 국방장관과 육군총장을 데리고 이리 오시오” 했더니 김재규는 “안 됩니다. 지금은 갈 형편이 못됩니다. 실장께서 이리 오시오”(상당히 강경한 명령조였음) 본인: 알겠오. 하며 전화를 끊고 국무총리에게 김재규로부터의 전화내용을 보고 드리고 “김 부장이 경호실이 무서워서 못 오는 모양입니다. 총리께서 그리고 가시면 어떨 까요” 하니까 총리께서 “갑시다”하며 일어서더니 동석했던 내무·법무 장관과 같이 육본 B-2방카 육군참모총장실로 갔습니다.
21:30경-방카 내 총장실에 도착하니 많은 장성급들이 와있고 분주하게 움직이므로 김재규가 이미 군부를 장악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때 본인이 육군총장에게 상황을 알아보려고 집무실에서 침실 쪽으로 들어가려니까 김재규가 따라 들어오며 본인을 화장실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화장실에서 본인은 김재규에게 “이사람아 어떻게 하려고 각하를 그렇게 했어”했더니 김재규가 “이제는 그런 이야기 그만 하시오”하면서 “우선 계엄령을 선포해서 사태를 장악한 후 군사혁명으로 이끌어 가야합니다. 비밀을 유지 하시오”라고 하므로 본인은 묵묵히 듣고 있다가 알았다고 하였습니다.
그 직후 방카는 자리가 좁아서 국방부 장관실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문: 국방부 장관실에서의 주고 받은 말과 분위기를 상술 하시오.
답: 그날 21:40경 국방부장관실에는 최규하 국무총리, 국방·내무·외무·법무·문공 장관, 서정철 특보, 유혁인 정무 제1수석비서관 등과 김재규 본인과 육군참모총장이 대기하고 있었다. 좀 늦게 신현확 부총리가 참석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본인은 총리에게 “비상계엄을 선포하려면 국무회의를 열어야하지 않습니까?” 하니까 “물론 이지요”하고는 “계엄사유를 뭘로 할까요. 대통령 서거로 할까요. 유고로 할까요” 하기에 본인은 “대통령각하 유고로 인하여 27일 00:00시부로 계엄을 선포한다고 하면 되지 않습니까” 했더니 총리께서는 “유고만 가지고는 국민이 납득합니까. 무엇인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말해야지. 국무위원은 내용을 좀 알아야 의견을 교환할 수 있지 않습니까”라고 말하자 김재규가 옆에 있다가 “유고도 안 됩니다 국내치안이 좋지 않아서 계엄령을 선포하는 것으로 해야 합니다”라고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총리께서는 “국내에 데모가 난것도 이리고 계엄이 선포된 부산도 종용한데 그런 이유도 댈 수 없으며 대통령 유고를 어떻게 국민에게 알리지 않을 수 있습니까. 계속 보안 유지하는 것도 어려우며 우선은 당장 국무위원들은 납득하지 못할 겁니다”하며 반대하였습니다.
그때 김재규는 “왜 안 됩니까 쏘련은 1주일 이상이나 브레즈네프의 행적을 발표하지 않고 있었는데 2~3일 동안 보안유지가 왜 안 됩니까”라고 말하자 총리께서 “그러면 김 부장이나 김 실장이 국무회의에서 사유를 설명해 줄 수 있습니까” 하시니(본인은 계엄선포의 이유를 대통령 유고라고 주장하고 김재규는 치안유지곤란으로 보았기 때문인 것 같음) 김재규는 “예 하지요” 하였으나 본인은 “안 됩니다” “우리는 국무위원이 아니니까 들어갈 수 없답니다”라고 반대 하였습니다.

문: 그때의 분위기에서 피의자는 어떻게 느껴졌나요.
답: 예. 본인이 예상했던 것 보다 국무회의 장관들이 상당히 강한 반발을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문: 김재규의 체포경위에 관하여 알고 있나요.
답: 예. 제가 00:30경 부속실로 가서 그곳에 있던 사람 1명을 내보내고 본인의 보좌관을 시켜서 국방장관과 육군참모총장을 부르라고 하여 본인들 앞에서 “김재규가 각하를 시해하였고 총을 휴대하고 있으니 육군총장으로 하여금 힘 세고 날쌘 헌병으로 하여금 조용히 불러내어 체포토록 하시요”하니까 국방장관이 깜짝 놀라면서 “그놈 당장 잡아야지요”했고 육군총장은 “예 곧 하겠습니다” 했습니다. 이때 김재규가 그 방으로 들어오므로 제가 화제를 바꾸어 “요즘 군인들이 사기가 괜찮은 가요” 했더니 육군총장은 “예 괜찮습니다. 부대준비도 다 되었습니다” 하며 육군총장은 바로 B-2 방카로 가고 국방장관과 본인 및 김재규는 장관실로 되돌아가 계엄선포 문제를 논이 하며 김재규가 체포되기를 기다렸으나 소식이 없어 다음날 01:10경 제가 재차 B-2 방카로 가서 육군참모총장에게 김재규 체포를 독촉하고 있던 중 무난히 김재규가 체포되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문: 본건 범행 전 일주일간 김재규를 만난 사실이 있나요.
답: 있습니다. 10.21. 및 범행전날인 10.25일 본인사무실에서 김재규를 만나 부산사태 및 신민당 공작에 관하여 이야기 하다가 또 차지철에 대한 비난과 분노가 나왔습니다.
문: 김재규가 각하를 저격 하고나서 현관을 나서면서 피의자에게 “나는 한다면 합니다. 이제 다 끝났습니다”라고 한 것은 사전 공무한데 대한 결과가 아닌가요.
답: 김재규가 그날, 차지철을 해치운다는 말에 대한 실행의 과감성을 과시하기 위한 것 같습니다.
문: 김재규가 왜 피의자를 살려두었다고 생각하나요.
답: 본인과의 깊은 인연관계 및 차지철에 대한 관계에 있어서는 같은 입장이었고 또한 본인이 만약 조금이라도 반대를 하는 운치가 보였다면 저를 죽였을 것입니다.
문: 참고로 더 할말 있는가요.
답: 모든 것이 저의 잘못입니다. 아무할 말 없습니다.
문: 이상 진술에 허위 사실은 없나요.
답: 없습니다.



조서말미용지

위의 조서를 진술자에게 열람하게 하였던 바 자기가 진술한 대로 틀림없으며 오기나 증감 변경할 것이 전혀 없다고 말하므로 간인한 후 서명 무인하게 하다.

서기 1979년 11월17일

진술인 성명 김계원 인

육군본부계엄보통군법회의검찰부

검찰관 중령 전창열
검찰서기 4갑 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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