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빨치산 63명 북송하는 날 李在根씨 일가 및 국군포로 귀국 사실 공표(월간조선 2000년 10월호)
金容三 탑클래스 편집장 겸 출판팀장 (dragon03@chosun.com)
국가정보원은 지난 9월2일, 月刊朝鮮이 특종 보도한 납북어부 李在根(이재근)씨 및 그의 처 金聖姬(김성희)씨, 아들 成在(성재)씨 등 일가 3명 및 국군포로 5명의 한국 귀환을 공식 발표했다. 이날은 마침 미전향 장기수 63명을 판문점을 통해 북송한 날이었다.
익명의 소식통에 의하면 『李씨 일가가 한국에 귀환한 것은 지난 초여름이며, 국정원에서 조사를 받은 후 현재는 서울 신길동 소재 대성공사에서 현지 적응교육 중』이라고 했다. 현지 적응교육이 끝나면 경기도 안성 소재의 하나원에 들어가 3개월 간 정착교육을 받을 예정이라고 한다. 국정원은 李씨 일가의 귀환 사실을 수개월 간 쉬쉬하고 있다가 간첩·빨치산의 북송으로 국군포로와 납북자 송환 요구가 거세지자, 여론무마용으로 이들의 귀환 사실을 발표한 것이다.
울산에 살고 있는 李씨의 형 李在元씨는 『아직까지 동생을 만나보지 못했다』면서 『추석 전날 동생으로부터 「잘 있으니 염려 말라」는 전화연락을 받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30년 전 납북 당한 李씨 일가의 탈북, 제3국 은신 사실을 국정원은 물론, 통일부에서도 알고 있었다는 점. 통일부의 홍양호 인도지원국장은 이 사실을 인정했다. 그리고 『관계기관에 납북어부 탈북사실을 통보하고 귀환 협조를 요청했다』 고 말했다.
그런데 제3국의 한국영사관에 근무하는 탈북자 담당 영사는 고향으로의 귀환을 호소하는 李在根씨의 요청에 대해 『국가에 자꾸 부담을 주려하지 말고, 가족에게 연락하여 밀항을 하라』는 취지로 거절했다. 이 영사는 외교부 소속의 외교관이 아니라 정보기관 소속으로 밝혀졌다.
그의 귀환 후 국내 정착과정도 파행의 연속이다. 李씨는 탈북자가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이다. 반면, 李씨가 북한에서 억류생활 중 결혼한 처 金聖姬씨, 북한에서 태어난 아들 成在씨는 탈북자라는 이중 구조로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李씨 일가는 「탈북자의 국내 정착」 수순을 밟고 있다.
통일부의 홍양호 인도지원국장은 『가족들이 있고, 본인도 30여 년 이북서 살다 왔기 때문에 탈북자에 준해서 적응교육을 시키고 있는 중』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李씨는 당장 남쪽에서 살아가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기 때문에 현지 적응과정을 가족과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의사표시를 했고, 정부 입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때문에 탈북자에 준한 현지정착 과정을 밟고 있는 겁니다. 현재 상태에서는 탈북자 정착 수순을 밟는 것이 본인에게 가장 유리합니다』
국군포로의 경우는 일정 기간 조사 후 지난해 1월29일 제정된 「국군포로 대우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국내정착을 시킨다. 납북자는 이런 관련법규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 덕분에 李씨는 납북자이면서도 탈북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납북자 가족모임 회원들은 그동안 「송환 납북자 대우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위해 한나라당 의원들을 비롯, 각계 인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남북관계에 대한 현 정부의 독특한 성격상 이런 법규가 원만한 대화나 타협으로 제정될 성질은 아니었다.
납북자 가족들은 관련법규 마련을 위해 우선 동진호 선원 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국가가 국민보호를 제대로 못했고, 송환의무도 정치적 사건에 휘말려 이행치 못한 책임을 물어 배상을 청구하고, 그 근거로 「송환 납북자 대우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한다는 것이었다. 이 소송을 위해 변호사들이 무료변론을 자원하고 나섰고, 구체적인 법조문 검토작업에도 착수했다.
이 소식을 접한 통일부 측은 납북자 가족들이 손해배상 소송을 내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했음이 밝혀졌다. 이 문제로 홍양호 인도지원국장과 납북자 가족모임의 崔祐英(최우영)씨가 말다툼을 벌였으며, 흥분한 가족들이 『홍국장과의 대화 내용을 녹음해서 언론에 알리자』는 말까지 나왔다는 것이다.
이번 추석 연휴 기간 동안 통일부의 홍양호 인도지원국장과 북한인권환경팀의 배충남 사무관은 납북자 가족들을 찾아가 위로의 인사와 함께 금일봉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식을 접한 일부 납북자 가족들은 『미전향 장기수를 보낸 다음, 정부가 구겨진 체면을 세우기 위해 인사 치레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金泳三(김영삼) 정부 시절, 이인모 노인의 북송 당시에는 韓完相(한완상) 통일원 부총리가 동진호 선원 가족을 찾아가 금일봉을 주고 위로했다는 것이다.
북한으로 송환된 63명의 미전향 장기수는 붉은 색 벤츠를 타고 대규모 군중집회에서 영웅 칭호를 들으며 금의환향했다. 李在根씨 일가 및 국군포로 5명은 행여 누구에게 알려질세라 쥐도 새도 모르게 도둑처럼 귀환했다. 국군포로의 전역식도 쉬쉬하며 몰래 치렀다.●
李在根씨가 공개한 북한 생존 납북어부 명단
북한을 탈출한 납북어부 이재근씨는 현재 북한에 있는 납북어부 32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현 직책, 거주지, 고향, 출신학교, 인상착의 및 특징, 납북시점, 당시 나이 등의 순으로 싣는다(가나다순).
▲강병일 중앙당 대남연락소 지도원. 당진. 인천공고. 봉산21호 타다 70년 4월29일 납북.
▲김대곤 함북 경성군 주을온천 부근 하온포리 거주. 키가 작고 어깨가 벌어졌으며 경상도 말씨. 제주 앞바다에서 67년 4월12일 천대11호 타다 납북(27세).
▲김옥률 함남 금야군 금야탄광 선반작업공으로 근무. 거제. 얼굴이 긴 편이며 입이 오목하게 생겼음. 72년 12월28일 오대양61호 타다 납북(17세).
▲김용길 형제가 동시 납북돼 함남 단천제련소에 함께 근무. 해남. 68년 6월6일 덕산호 타다 납북(18세).
▲김장훈 평남 순천군 군자리의 군자혁명사적지 관리원으로 근무. 경주. 67년 4월12일 천대11호를 타다 납북(31세).
▲김태랑 황해북도 사리원시 기계공장 직장장. 사리원시 운하2동 거주. 청산도. 청산국민학교. 봉산21호를 타다 70년 4월29일 납북.
▲김휘남 평남 양덕군 농기계공장 근무. 완도. 키가 컸다. 72년 2월4일 안영36호 타다 납북(23세).
▲남정열 함남 금야군 비단리. 비단공장 기계 수리공. 속초. 점잖은 편. 72년 6월9일 유풍호를 타다 납북(39세).
▲박장현 함북 함흥의 가담 동흥산구역 기계공장 근무. 여천. 키가 큰 편. 85년에 32~33세. 72년 2월4일 안영35호 타다 납북(20세).
▲박휘만 황해북도 황주군 인민병원 의사. 포항수산고. 북한 억류생활 중 사리원의대 졸업. 봉산22호 갑판장으로 70년 4월29일 납북.
▲이동우 신의주 알루미늄공장 근무. 충남 홍성. 69년 5월10일 복순호 타다 납북(27세).
▲이선주 함북 경성군 농장 거주. 당진. 형이 황해도 장연군의 당 간부. 조카가 만수 대 예술단 무용수. 얼굴이 둥글고 말씨가 느림. 68년 6월6일 덕산호 타다 납북(26세).
▲이일남 함북 함주군 요업공장 엔진 수리공. 부천. 79년 입당. 높은 곳에 올라가 작업하다 허리를 다쳐 척추를 잘 쓰지 못함. 68년 6월8일 풍년호 타다 납북(27세).
▲임판길 평북 신의주 펄프공장에 근무. 옥구. 해병대 출신. 힘이 셈. 69년 5월10일 복순호 타다 납북(31세).
▲장영환 평북 태천군 광산 근무. 군포. 얼굴이 넓적하고 잘 생긴 편. 서울 말씨 사용. 74년 2월15일 수원33호를 타다 납북(27세).
▲정동배 함흥 흥남비료공장 인근 사포농장 근무. 종로. 72년 2월4일 안영35호 타다 납북(18세).
▲정영철(이재근씨는 김영철로 증언) 중앙당 대남연락소에서 남한을 왕래하는 간첩 안내원(속칭 피스톤)으로 근무. 진도. 봉산21호 타다 70년 4월29일 납북(15세).
▲진정팔 함북 나남 광산 기계공장 직맹위원장. 영일. 여자처럼 곱게 생겼음. 67년 4월12일 천대11호를 타다 납북(26세).
▲최동진 함남 이원군 기관차 수리소 근무. 보령. 얼굴이 신사처럼 반듯했음. 68년 6월6일 영신호 타다 납북(20세).
▲최종율 중앙당 정치학교 남조선언어 교관. 강진. 봉산21호를 타다 70년 4월29일 납북(19세).
▲함기남 평북 신의주 펄프공장 공급지도원. 신의주시 역전동 40반. 고성. 68년 10월30일 용명호 타다 납북(20세).
▲황석균 중앙당 정치학교 졸업 후 대남연락소 요원으로 일하다 은퇴. 태안. 납북 당시 30세.
◆정부 발표 명단에 나오지 않은 납북어부
▲김병도 함남 함흥 화정리 농장 근무. 마산. 아주 작은 전마선을 타다 김영두씨와 함께 납북.
▲김영두 함북 함흥의 차 수리 공장에 있다가 텔레비전 수리소로 옮겨 근무. 고성 또는 통영. 얼굴이 고운 편이고 신사형. 경상도 사투리.
▲김창배 함남 함흥시 입구 트랙터 부속품공장 근무. 경상도 사투리.
▲우성희 형제. 함북 북청의 과수원 사과밭에 근무. 형제가 함께 납북. 우성희가 형. 얼굴이 둥글고 노래를 잘 불렀으며 키 165Cm.
▲이해원(사망) 이재근씨가 재강습에 갔을 때 만났음. 85년 당시 30세.
▲조○○ 이씨의 중앙당 정치학교 같은 조 조장. 70년 45세. 남한에 한두 차례 침투 경력이 있음. 얼굴이 둥글고 성격 원만. 키 165Cm. 충청도 말씨.
▲최○○ 경상도 말씨. 앞니 금이빨. 살결이 검고 키 176Cm. 60년대 후반 납북된 것으로 추정. 이씨와 중앙당 정치학교에서 같은 조에 소속.
◆사망 납북어부
▲김장원 ▲김홍일 ▲서영구
아직도 납북자가 있는 줄 모르는 자에게
- 월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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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4-07, 02: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