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지 역사의 가정

김일성이 6.25를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박정희는 근대화의 지도자가 될 수 없었다. 박정희를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김일성이다.



1. 김일성이 6.25 남침을 하지 않았으면 한국은 1950~60년대에 월남식으로 赤化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국내 공산주의 세력이 강했고, 韓美동맹이 구축되지 않은 상태에서 김일성이 호지명式으로 접근했더라면 적화에 성공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2. 김일성이 남침하지 않았더라면 朴正熙 대통령은 등장하지 못했을 것이 틀림없다. 6.25 때 박정희는 민간인으로 육군본부의 정보국에 근무하고 있었다. 여순14연대 반란 사건 직후 군내 좌익 숙청이 있을 때 구속 기소되어 중형을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6.25 남침이 나자 장교가 부족하고 朴씨가 월북하지 않은 것을 본 고위층에서 그를 소령으로 다시 채용한 것이다. 6.25가 없었더라면 그는 민간인으로서 일생을 마쳤을 것이고 군사혁명도 일으킬 수 없었을 것이다. 박정희를 근대화의 지도자로 만든 것은 김일성이었다.

3. 1941년 12월 일본 연합함대가 진주만을 기습하지 않았더라면 이승만 대통령은 등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의 해방은 진주만 기습에서 시작된 태평양 전쟁으로 미국이 일본에 이겼기 때문이고, 해방된 조국이 이승만을 건국의 지도자로 선택했던 것이다.

4. 金載圭가 1979년 10월26일에 박정희를 쏘지 않았더라면 朴 대통령은 민중봉기나 군사쿠데타로 물러나 오욕의 최후를 맞았을 가능성이 크다.

5. 병자호란이 났을 때 仁祖의 항복으로 조선이 망했더라면 일본 식민지가 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병자호란 뒤 조선은 엘리트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붕괴되어 쇠락의 길을 걸었다. 병자호란 뒤 새 왕조가 들어섰다면 19세기말 일본처럼 자주적 근대화를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6. 독일이 1941년 6월에 소련을 침공했을 때 미국이 소련 편을 들지 않고 두 전체주의 국가의 소모전을 구경만 했더라면 東歐의 공산화는 회피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소련 편을 들어 독일을 망하게 한 뒤 소련은 동구를 점령하여 나치보다 더한 압제를 했다.

7. 서기 668년 신라와 唐軍이 평양성을 함락시켜 고구려를 멸망시킨 뒤 唐은 백제, 고구려 故土를 지배하에 두고 신라를 속국으로 만들어버렸다. 이때 신라의 지도부(문무왕과 김유신 등)가 평화를 선택했더라면 우리는 지금 東北의 제4省 신세가 되어 중국인으로 살고 있을 것이다.

8. 김대중이 1997년에 집권하지 않았더라면?----------?
9. 노무현이 2002년에 집권하지 않았더라면?----------?
10. 2007년에 좌파 후보가 낙선한다면----------------?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