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무트 콜의 ‘자유·민주·자결권에 의한 통일론’ 성공
통일전략을 생각한다 : 릴레이인터뷰(1) 이영기 교수
북한체제와 남북통일의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지만, 한 가지 공통된 점이 있다면 북한의 현 김정일체제가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일 것이다.
김정일 이후 남북은 과연 어떤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며, 강력한 통일한국의 건설은 가능할 것인가. 본지는 전문가들과의 릴레이인터뷰를 통해 바람직한 통일전략과 미래 한국의 비전을 모색해 보기로 한다. 첫번째 순서로 이영기 명지대 객원교수의 의견을 들었다. 인터뷰는 지난 15일 본사사옥에서 이뤄졌다.
독일통일전문가 이영기 명지대 객원교수
-독일 및 유럽연구센터 소장, 독일함부르크 대학 석사, 독일자유베를린 대학 박사
- 현 북한체제는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 것으로 보는가
한 나라의 실정을 가장 정확하게 보는 것이 경제인이다. 함부르크에 동북아경제인협회가 있는데 작년 평양사무소를 폐쇄했다. 북한경제는 구제불능이며 더 이상 북한에 머무를 가치가 없다는 것이 독일 경제인들이 내린 결론이다.
우리 정부는 뚜렷한 통일정책이 없는 가운데 북한에 대한 지원을 계속하고 그 정권을 유지하려 하고 있는데 통일정책을 새로 세워 추진해야 한다.
- 독일의 통일정책은 무엇이었나
1987년 호네카의 서독 방문요청이 있자 핼무트 콜은 방문행사를 동독에 생중계할 것을 조건으로 요구했다. 동독이 2민족 2국가를 주장하고 있었을 때인데, 헬무트 콜은 그때 생중계를 통해 동독인들에게 자유와 민주를 기본으로 한 자결권에 의한 통일을 강조했다.
동독인들이 여기에 호응하면서 ‘우리는 한 국민이다. 통일은 우리 것이다’라는 구호와 통일운동이 일어났다.
또한 통일에 대한 확신이 중요한데 콜은 체제우위에 대한 확신과 ‘하나님의 뜻으로 반드시 통일이 될 것’이라는 신념을 확고하게 밀고 나갔다. 특히 기민당의 경우 자유민주국가인 미국과의 가치공동체를 중요시했다. 콜 총리가 통일과정에서 아버지 부시 당시 미 대통령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 독일의 분단 상황과 한반도의 상황을 비교한다면
서독은 2차대전 이후 아데나워가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중에 자유주의를 택했다. 경제적으로는 사회적 시장경제와 계획경제 중에서 전자를 택했는데 자유방임경제는 당시 상황에서 문제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아데나워 초대 총리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비슷한 점이 많다. 그는 소련의 팽창정책으로 동서분단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이후에도 동독의 국가연합제 주장에 반대했다. 이것은 남한만의 단독정부 건설을 추진한 이승만 박사의 판단과 비슷한 것이었다. 국내파 사람들은 세계 정세 판단에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동독의 국가연합제 주장은 동독을 국제법상 인정해주는 것이었기에 불가능했던 것이다. 아데나워의 서방정책에 브란트가 추진한 동방정책이 보완관계를 이루면서 통일의 밑거름이 됐다.
한편 독일에서는 민주주의체제에 대한 교육이 철저히 이뤄지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 현재 친북정권이 들어서고 학생들이 그러한 성향에 물든 것은 민주주의교육이 되지 않아 가치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 우리 나라에서는 독일통일에 비용이 많이 들었다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은데
구 동독사람들의 80%가 통일은 잘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서독사람들의 생활도 통일 이전에 비교할 때 못해진 것이 없다. 경제성장률이 더디어졌지 마이너스성장은 아니다. 기민당과 사민당이 대연정을 다시 시작했는데 미국 및 이스라엘과의 관계개선과 경제적 성장정책을 추진하는 문제가 풀리면 경제성장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또한 통일비용이 아무리 들어도 그것을 민족문제와 비교할 수 없다. 우리 나라가 통일비용 때문에 통일을 못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독일이 통일을 통해 이룬 성과는 무엇인가
독일통일이 있었기에 유럽연합이 가능해졌다. 또한 동서유럽 분단이 없어진 지금 적어도 한동안은 유럽에서 전쟁의 위험이 사라졌다. 분단된 한반도가 있는 동북아에서는 전쟁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지 않은가.
또한 통일 이전에는 프랑스가 유럽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는데 이후에는 독일이 그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독일은 지리적으로도 중간 위치에 있고 인구면에서 강국이다. 프랑스나 영국에서 독일의 영향력을 제지하는 면이 있지만 독일의 영향력은 점점 커지고 있고 동구권도 빨려 들어오고 있다. 한마디로 독일 국민의 자존심과 국제사회 위상이 높아졌다.
- 독일은 공산당이 무너지고 동독이 독일연방제로의 편입을 결정하면서 1년 만에 통일이 됐다. 김정일정권이 종식된다면 2년 정도의 조정기간과 자유선거 실시 후 4년 중임 기간을 거치고 나서 대한민국과 통합을 해야 한다는 방안과, 부작용이 있더라도 독일처럼 가급적 바로 통일하자는 방안이 있을 것 같다.
독일의 경우 편입이라기 보다, 구동독이 자유선거를 통해 먼저 새로운 정부를 세우고 이후 서독정부의 협상을 통해 서독체제에 스스로 ‘가입’을 한 것이다. 서독에 흡수된 것이 아니라 품위를 갖고 스스로 들어간 것으로 봐야 한다. 북한에서도 이런 시나리오가 가능할 수 있다.
급진적 통일과 같이 선동적인 것은 안 되고, 의욕적으로 가되 불가피한 단계는 거쳐야 할 것이다. 동독은 1년 걸렸지만 북한의 경우 3, 4년 정도의 자유체제에 대한 학습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특히 북한은 오랜 기간의 학정이 있었기에 인적 처리문제도 간단치 않을 것이다.
- 북한의 일반 주민들은 조속한 통합과 남한과의 자유왕래를 원할 텐데 혼란방지를 이유로 휴전선 장벽의 유지가 가능할 것으로 보는가
왕래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우선 이산가족들이 서로 만나려 할 것이고 그러한 열망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는 것은 좋지 않을 것이다.
1953년 6월 18일 반공포로 석방시 포로들이 도시와 농촌으로 감쪽같이 다 스며 들어갔고 어려운 조건에서 이리저리 다 보호를 받은 사례도 있다.
또한 우리 나라에서는 기독교의 복음전파력이 강한데 이들이 북한선교에 많이 나설 것이고 이는 통일의 내적 요소로도 바람직한 것이 될 것이다.
김범수기자 2006-04-20 오전 11:13:00
통일전문가 인터뷰(1) 이영기 명지대 교수
- 김범수(미래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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