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의 운명은 김정일에 달려 있다"

申相玉 생전 인터뷰: "북한동포들은 자신들을 외면하는 남쪽 하늘을 향해 침을 뱉고 싶어 한다"
조갑제의 申相玉 감독 인터뷰(월간조선 2001년 6월호에서 재록)

『북한의 운명은 남한에, 金大中의 운명은 金正日에 달렸다』

●북한 정권은 이해관계로 뭉친 깡패 조직
●金正日은 먼저 인간이 되어야. 지금은 神
●우상숭배체제가 개혁·개방 저지…金正日의 묘혈이 됐다
●햇볕 정책은 북한체제의 붕괴를 막아 주었다
●黃長燁씨의 부인은 자살했다
●그들은 필요할 때만 믿는다
●아직 美 CIA의 보호를 받고 있다
●독재자는 항상 멋있어 보이게 마련이고 대체로 예술을 좋아한다
●金正日은 자신을 「난쟁이 똥자루」라고 웃겼다
●崔銀姬가 만난 어린 金正男의 모습은 통통했고 일본에 불법입국했던 사람은 金正男이 맞다
●金正男이 후계자 되면 50년 간 더 남북대화해야
●남북이산가족 만남은 한민족의 잔인함을 세계에 광고한 것이다
●북한동포들은 자신들을 외면하는 남쪽 하늘을 향해 침을 뱉고 싶어 한다


『이북을 탈출해 쓴 내 手記는 민족에 대한 보고서』

―남북한관계라든지 金正日에 대해서 우리나라에서 꼭 말씀을 들어야 할 사람은 前 북한노동당 비서 黃長燁씨와 申감독 두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申감독은 남북한을 다 체험해서 비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金正日 측근으로 金正日의 비밀파티에도 참석했을 뿐만 아니라 탈출을 시도하다가 4년 반 동안 감옥소 체험도 하셨고, 그 전에는 남한에서도 감옥생활을 한 적이 있으니까 上下 좌우 두루두루 체험한 한반도에서 유일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작년 6월부터 1년 동안 남북한 관계가 격변하는 과정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셨을 텐데 그에 관한 말씀도 듣고 그동안 관찰하신 바탕 위에서 앞으로 남북관계가 어떻게 될 것인지, 통일문제나 평화공존 문제를 어떻게 봐야 될 것인지, 국민들의 마음 자세가 어떠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 자리에서 기탄 없이 말씀 해 주십시오. 우선 지난 1년 동안 마음이 안 편했을 걸로 짐작이 가는데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남북통일 문제라는 것은 관념상으로 민족 모두가 원하는 것이고 그런 분위기 때문에 잘못 얘기하면 민족 반역자처럼 취급을 당할 것 같아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이게 뭡니까. 얘기 안 하고 있었던 것은 내가 예술가라는 입장이 있고 또 말한다는 게 주제넘어 보일 수도 있고 그래서 삼가왔습니다.
金正日은 남한 사람들이 그들의 체제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력에 의한 통일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간단하고도 명료한 이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들과 정치가들이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는 알려고 하지 않는 건지 정말 궁금합니다.
우리는 사회주의라는 시험관 속에서 신음하는 이북의 2000만 동포를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이북을 탈출해, 민족에 대한 보고서를 쓰는 심정으로 手記(「조국은 저 하늘 저 멀리」)를 쓴 것은 그 이유였습니다』

崔銀姬씨 마중과 똑같은 방식의 金대통령 영접

―지금 핵심적인 말씀을 하셨는데 申감독께서 쓰신 책이 민족에 대한 보고서라는 말씀이 맞다고 봅니다. 저도 북한에 대한 시각, 金正日 정권에 대한 시각교정은 申감독한테 신세를 많이 졌습니다. 제가 申감독을 10여 년 전에 만나서 나눈 이야기와 申감독이 탈출하면서 가지고 나온 金正日의 음성이 기록된 녹음테이프, 그리고 申감독과 崔銀姬 여사께서 함께 쓴 手記 「조국은 저 하늘 저 멀리」에 나와 있는 북한 집권층의 행태 등 이런 걸 종합해서 金正日 집단은 이런 본질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이후에 북한 관련 기사를 쓸 때 지침이 되었고 아주 정확하게 북한을 볼 수 있게 했습니다. 문제는 申감독이 쓰거나 가져온 자료를 많은 사람들이 보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북한 문제에 대해서 전문가적인 식견을 가져야 할 사람들은 申감독이 쓴 책과 자료를 읽었어야 했습니다.
특히 기자들이 읽었어야 하는데 잘 읽지 않은 상태에서 보도하다 보니 작년 6월에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金正日의 애교스런 모습 또는 윗사람을 잘 모시는 예절바른 모습, 이런 것들을 아무런 여과를 거치지 않고 바로 남한 주민들에게 전달했던 것입니다. 때문에 일종의 「金正日 쇼크」가 일어나서 「金正日은 아주 괜찮은 사람이다, 그리고 金正日을 나쁜 사람으로 그린 과거의 기록이나 정부 홍보는 조작이었다」는 말이 나오게 되고 여기서 출발해서 갑자기 남북한 간에 평화무드가 일어났습니다.
그 평화무드는 「金正日은 저런 사람이니까 개혁 개방으로 나올 것이다, 그러니까 많이 도와 주어야 한다, 설사 상호주의 원칙에 맞지 않더라도 도와 주어야 한다」는 식으로 분위기가 형성됐고 때문에 지난 1년 동안 북한에 막 퍼준 것에 대해서 견제 장치가 전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1년쯤 지나고 나니까 지금은 「역시 북한은 변하지 않았구나」하는 소리가 다시 나오고 있는, 일종의 正常으로 회귀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와 崔여사가 쓴 手記에서 崔여사가 남포항에 잡혀가서 金正日을 처음 만날 때부터 金正日의 파티에 이르기까지의 장면을 보면 지난해 金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와 똑 같아요. 마중 나와서 인사하고 악수하고 자기 차 타고 같이 들어가고 파티하고 농담하고 하는 게 그대로 그려져 있는 거예요.
우리가 나이 60이 넘어서 그 手記를 쓴 건데 거짓말을 썼겠습니까. 더구나 둘이 같이 쓴 것이기 때문에 거짓말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렇게 쓴 手記이기 때문에 그걸 보면 金대통령이 평양에 가서 金正日과 한 차에 타고 그러는 게 당연한 거라는 것 알 수 있을 거예요. 우리가 쓴 手記를 보면 나쁘든 좋든 그 사람 윤곽이 다 나오죠. 성격도 나오고요』

「연방제 수락」 이라는 최악 시나리오 갖고 올 수도

―그 手記가 정확하다는 게 입증이 된 것이 崔여사께서는 6·15 전에 金正日이가 공항으로 나올 것이라고 예측을 하셨다면서요.
『틀림없이 나올 거라고 했지요』
―과거 자신의 체험 때문에 그런 거죠.
『그 사람 성격하고 제스처를 아니까요』
―申감독께서는 金正日이 서울엘 못 올 거라고 예측을 했고 현재까지는 맞아떨어졌는데 앞으로도 못 올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오고 안 오고의 문제보다는 金正日의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람 성격으로는 올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도박을 할 수 있습니다. 남한에서 연방제를 받게 하기 위해 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를 가지고 오는 것인데, 金正日은 金大中 정권이 있는 동안에 그 일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입니다.
또 한 가지 金正日이 노리는 것은 국론분열입니다. 金正日이 오면 남한 내의 친북세력에 의해 인공기가 거리 곳곳에 나부끼게 될 것이라는 것은 명약관화합니다. 또 대다수 남한 국민들은 金正日을 환영하지 않을 겁니다. 그들 사이에 심한 국론분열이 이루어질 것 또한 자명한 사실입니다. 국론분열이 결과하는 게 뭐겠습니까. 혼란 아닙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金正日의 서울방문이 그런 혼란의 종지부를 찍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그 「종지부」가 자유민주 체제의 근간을 더욱 튼튼히 하는 「종지부」가 되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金正日은 상당한 위험을 느끼면서 서울에 올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金正日 입장에서는 자기가 저지른 아웅산 테러, KAL858기 폭파, 申감독 납치 등 많은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범죄자가 가지고 있는 양심의 가책이나 불안감 때문에 위험을 느낀다는 겁니까.
『그렇지는 않아요. 그 사람은 별로 죄의식 안 느낄 거예요. 과거에 공산주의자들이 해온 걸로 봐서 그 같은 테러는 당연히 할 걸 했다고 보는 거죠. 혁명을 위해서는 어지간한 희생이 따른다고 보는 거니까. 그 사람들 수단 방법 안 가리는 사람들이니까요.
그 사람은 남한의 사정을 잘 알고 북한 인민들의 마음도 잘 알아요. 나 하고 처음 만났을 때 연회석상에서 여자 악사들이 깡총깡총 뛰면서 「지도자 동지 만세」를 부를 때 나한테 「저거 다 거짓말」이라고 말할 정도니까요. 그렇게 바보가 아니에요. 거짓말이고 아첨인 걸 다 알죠. 보통 똑똑한 사람이 아니에요』

『개방을 하고 싶어하지만 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남한에 親北 세력이 있긴 있지만 압도적인 다수는 金正日에 대해서 비판적이라는 것을 金正日도 안다는 것이죠. 진정으로 환영을 못 받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있다는 것이지요. 申감독의 인간 金正日에 대한 감정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난 金正日에 대해서는 동정을 해요. 글쎄 동정할 수 없는 동정이지만 지금 현재 우상숭배라는 묘혈을 자기가 판 거예요. 그게 아킬레스 건인데 개방을 하고 싶어도 그것 때문에 못하는 거예요. 아버지한테서 정권을 물려받기 위해 큰 건조물을 짓고 갖은 아첨을 하고 그랬는데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현재 개방을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돼버렸죠. 개방을 하게 되고 정보가 자유화되면 우상숭배가 허물어지게 되니까 정권을 유지할 수 없죠』
―그런 점에서 동정을 한다는 말인가요.
『사람은 똑똑하고 자기도 개방을 하고 싶어해요. 나 하고 얘기할 때 상당히 개방을 원하면서도 못하는 답답한 심정을 얘기했죠. 手記에도 있어요』
―그러니까 개방을 하고 싶은데도 못하게 하는 게 바로 金日成·金正日 우상화인데 이 우상화는 金正日이 만들었다는 뜻입니까.
『그렇죠. 金正日은 금방 남북통일이 되는 줄 알고 그런 식으로 우상화를 했던 거예요. 통일을 위해 인민들을 일치단결하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우상화를 한 거예요. 그런데 통일문제가 길게 끌게 되니까 문제가 되는 거죠. 본인한테는 내가 金日成 같은 우상화를 하지 말라고 몇 번 말했어요. 이제는 매스컴이나 영화 같은 걸로 해야지 동상 같은 걸 세우지 말라고, 그러면 안 좋다는 얘기를 몇 번 했어요. 최근에 나도 처음 알았는데 황장엽씨가 쓴 글을 보니까 金日成이가 金正日한테 詩도 써다 준 게 있다더군요.
백두산에서 낳았다고 그러고 백두산 정일봉 어쩌구 하니까 넌센스고, 넌센스지만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이 우상숭배가 되는 거죠. 그렇게 되면 개방은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죠. 체제가 무너지니까요. 본인은 하고 싶어해요. 그런데 하고 싶을 땐 벌써 때가 늦은 거예요』
―金正日에 대한 동정심 말고 증오심은 없습니까.
『그 사람들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자란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죄책감이 별로 없어요. 崔여사를 데려 갔을 때, 나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상태에서 데려 갔으면 그 사람들이 밉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이혼한 상태였거든요. 나는 그 사람들을 수단 방법 가리지 않는 악질이라고 보는 거예요』
―우리가 金正日의 육성이 담긴 녹음 테이프를 정신분석학자에게 맡기니까 金正日이 申감독을 납치했다고 설명하는 대목에서 말을 빙빙 돌리고 좀 미안해 하고 그런 게 보이더군요. 申감독님은 죄책감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지만 그 대목을 보니까 「야, 이거 金正日도 인간이구나」하는 약간의 희망 같은 걸 느꼈습니다.
『아마 金正日이한테 신세를 많이 졌다면 나만큼 많이 진 사람도 없죠. 인간적으로 상당히 동정심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나 公的(공적)으로 볼 때는 그럴 수가 없죠』

우상숭배만 없었으면 北에 계속 있었을 수도

―심리학자들 얘기가 납치한 사람과 납치 당한 사람 사이에는 인간적인 유대관계가 생긴다고 그러던데 어땠습니까.
『저는 우상숭배만 없었으면 그냥 있었을지 몰라요. 그것도 인간이 사는 한 가지 방법이니까. 동구라파 같은 공산주의였다면 거기에 계속 있었을지 몰라요. 헝가리 같은 데는 그때도 영화 찍기 좋았으니까요』
―한국 사람들은 우상숭배를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상숭배가 인간생활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 느끼지 못하는 것 같은데 어느 정도입니까.
『요즘 젊은 사람들은 실감을 못할 거예요. 일제시대를 살아보지 않았으니까요. 천황 사진에 절하듯이 그런 식인 거죠. 이북에서는 金부자 사진 액자를 닦는 수건이 따로 있고 먼지 묻으면 큰일 나고 사진이 하나만 걸려 있으면 좋지만 둘이 걸려 있으니 소름이 끼치잖아요. 양식이 있는 사람은 그걸 볼 수 없죠』
―두 사람의 사진을 보면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의 빅 브라더(大兄)가 위에서 내려보고 있는 것처럼 심리적인 압박을 느끼는가 보죠.
『느끼죠. 느끼고 자연스럽게 신격화되죠. 모든 교육이 다 그러니까. 안타까운 것은 우리 위정자들이 이북을 너무 몰라요. 알려고도 하지 않아요. 첫째 공부를 안 해요. 「조선전사」라는 책을 보면 18권이나 되는데 그 안에 고대사 빼놓고 근대사는 전부 金日成 가계사예요. 그것만 봐도 이 사람들과 남북합작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게 소용 없다는 걸 알 텐데 말입니다. 그 사람들의 우상화는 赤化(북한식)통일을 전제로 하는 것이고 赤化는 그 사람들 신념이에요』
―만수대 혁명 박물관에 들어가면 맨 마지막 방에 金日成이 보통강에서 썼던 삽까지 전시해 놓았다면서요.
『내가 감옥에 있을 때 북한 역사학자인 이나영하고 한 1년 정도 같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조선민족해방투쟁사를 쓴 사람이에요. 그 친구는 순전히 金日成의 과거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거기에 들어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잡아넣은 건데 혁명박물관에 들어가서 본 이야기를 했더니 「그 첫 방에 김옥균이가 있지」하고 물어요. 처음에는 김옥균이부터 걸어놨던거죠. 그런데 지금은 金日成의 증조 할아버지 김응우부터 걸어놓은 거예요. 美 제너럴 셔먼호를 격퇴했다고 걸어놓은 거죠.
그런데 그게 거짓말이에요. 셔먼호 격퇴는 영화 소재로도 재미있거든요. 영화가 될 것 같아서 한 번 조사를 시켜봤더니 내가 아무리 양보를 해가지고 金日成의 할아버지 김보현, 아버지 김형직 이렇게 3代에 걸쳐서 나이를 계산해 보니까 김응우 나이가 열 살이 안 돼요. 열 살도 안 되는 어린이가 셔먼호를 격퇴를 할 수는 없잖아요.
이 혁명박물관은 1972년에 金日成 회갑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진 것으로 2만여 평의 대지 위에 5만 평방미터가 넘는 5, 6층 높이의 건물로 전시실만 90여 개나 됩니다. 입구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25m 높이의 金日成 동상이 버티고 있습니다.
이 박물관을 한 바퀴 도는 데 세 시간 반이 걸리는데 마지막 방에 보통강에서 金日成이 쓰던 네모난 삽이 걸려 있어요. 이런 정도니 우상화가 극도에 달한 거죠. 나는 돌이킬 수 없다고 봤어요. 남한에 있는 사람들도 여러 사람이 그것을 관람했다는데 그걸 보고도 金正日과 통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한심한 거죠』
―우상화 숭배 기념물을 북한에서 체험한 사람은 바로 이것을 포기하는 게 개혁개방이고 그 것을 포기하는 게 통일인데 북한이 그것을 포기하겠느냐, 하는 그런 不信을 절실하게 느끼니까 북한이 말하는 평화통일론이라든지 개혁개방이라는 것은 안 믿게 된다는 말씀이죠.
『그런 말이죠』

북한 정권은 이념 아닌 이해 관계로 뭉친 집단

―처음 만났을 때 제가 申감독께 가까이서 지켜본 金正日 일당이 어떤 분위기를 가지고 있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첫 마디가 마적단 같다는 말씀을 했습니다. 제가 이해가 된 부분이 한쪽에서는 굶어죽는데 한쪽에서는 호화로운 파티를 하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니까 마적단이 어떤 마을을 점령해 가지고 노획물을 나누어 먹고 분탕질하며 노는 그런 연상작용이 생겼습니다.
『마적단보다는 주장 주의에 의해 뭉친 집단이 아닌 이해관계로 뭉친 집단이라는 표현이 정확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金正日이 망하면 자기들도 망하는 거예요. 계급적인 단결이 아니고 순전히 이해관계를 함께 하는 깡패들 단체 같은 그런 거예요』
―많은 사람들은 북한을 주체사상이나 공산주의 이념으로 뭉친 이념집단으로 보는데요.
『주체사상이라는 건 말이 안 되는 사상입니다. 내가 이북에 있을 때 기왕에 잡혀온 거니까 공산주의 연구나 해보려고 책을 뒤져봤지만 그 안에는 스탈린 전집도 레닌 전집도 마르크스 전집도 물론 없고 아무 것도 없어요. 주체사상밖에 없는데, 주체사상이라는 게 그걸 변형한 것인 줄 알고 들여다봤어요. 「인간을 위한 사상이다」 하는데 세계의 사상 중 언제 개를 위해서 만들어진 사상 있어요? 다 인간을 위한 사상이지. 소학교 때 다 배운 거예요. 자기 힘으로 하고, 인민의 힘으로 하고, 인민이 주인이고 등등 다 똑같은 건데 그게 어떻게 사상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申감독 말씀대로 이념으로서 뭉친 단체가 아니고 이해관계로 뭉쳤다면 쉽게 말하면 깡패 집단이고 더 쉽게 말하면 공범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같은 죄를 저지른 공범집단, 그러니까 일본 공산당원이 한 말이 생각납니다. 「金正日이야 말로 공산주의자의 진정한 적이다」하는 말입니다.
북한의 개혁 개방이라는 것이 황장엽 선생은 金正日 한 사람만 결심하면 될 수 있다고 말씀을 하는데 만약 공범집단이라고 하면 공범집단 전체가 몰락하지 않는 방향으로 개혁개방을 해야 하기 때문에 金正日 혼자서도 어쩔 수가 없다는 겁니까.
『金正日 자신이 개방을 한다는 것은 자기 그룹 전체가 따라온다는 얘기니까 그걸 전제로 생각 안 하면 개방을 못 하죠』

『남쪽 하늘에 침을 뱉어라』

―앞으로도 영원히 안 된다는 말씀입니까.
『안 되죠. 개방을 할 수 있다면 어떤 의미에서 이북이 남한보다 더 클 수가 있어요』
―작년 1년 동안 흥남부두 철수 사건을 다룬 「크리스마스 카고」를 가능하면 6·25 50주년에 맞추어서 제작 개봉하려다 좌절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지난 1년 동안 남북 간의 격변 때문에 손해를 많이 본 것 같은데요.
『이북에 갔다 와서 남한에 와서도 많이 당했습니다. 내 조국에서 일해야 되겠다고 생각해 들어왔다가 안기부에서 20여 일 간 고생을 했습니다. 뭐 심지어 거짓말 탐지기까지 동원해 조사를 당했어요. 하여튼 내가 입국하려고 공항에 들어오면 한 20분씩 걸려요. 안기부에 가서 조회하고 보내 주고 안기부에서는 1년에 한 번씩보고하라고 그러고. 아주 고충을 많이 당했지요. 사실 「크리마스 카고」 같은 것은 정치성이 아무 것도 없는 것이 거든요. 그런데 그걸 제가 당시 박지원 문광부 장관에게 이런 걸 만들 테니 후원 좀 해달라고 찾아갔더니, 그때 아마 이 분이 (평양에)가기 몇 주 전이었던 것 같아요. 속으로는 딴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내가 그걸 가지고 가서 도와달라고 했으니 나도 딱하죠. 지금 내가 생각해도 우스운데, 그런 게 결국 걸려서 못했죠.
이번에 북한을 방문한 페르손 스웨덴 총리를 보세요. 金正日한테 「네가 민주주의를 하고 시장경제를 할 때만 도와 준다」고 분명히 하잖아요. 그렇게 회담을 하더라도 할 말은 해야지요. 金대통령은 그렇게 명확한 입장을 못 전하잖아요』

朴正熙 시대 보다 20~30배 강한 억압

―手記를 보면 申감독께서 탈출하려다 잡힌 후 감옥에서 4년 반 동안 살면서 많은 죄수들이 느낀 감정을 요약해서 「남쪽 하늘을 향해서 침을 뱉어라」하는 그런 심정으로 표현을 하셨는데 이것은 결국은 북한 2000만 인민 중에서 지배층을 뺀 나머지 북한 사람들이 다 그런 심정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까.
『「남쪽 하늘을 향해서 침을 뱉어라」하는 심정은 북한 사람들 전체 심정이라고 봐요. 이북은 1973년에 金日成이 金正日을 후계자로 지목한 후 정치범 수용소의 규모가 점점 커졌습니다. 내가 듣기로는 30만 명 정도가 갇혀 있다고 합니다. 金大中 대통령은 지금까지 이들의 존재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어떻습니까. 일본 정부는 1970年代와 1980年代에 최소한 10명의 일본인을 이북이 납치했다는 이유로 미국이 북한의 테러지원국 리스트 제외 협상에서 과거 테러활동의 일부로 연계시켜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니 이북의 정치범 수용소에 갇힌 죄수들이 남한을 향해 침을 뱉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 아닙니까.
또 그런 심정은 이북의 정치범들만의 심정이 아니라고 저는 단언합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우매하지 않아요. 세습이 당연하다고 따라갈 만큼 어리석지 않아요. 속으로는 다 생각하고 있거든요. 농부들까지 다 그래요. 바보가 아니니까 전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 실행을 못 할 뿐이지. 보통 억압이 심한 게 아니니까요.
내가 그곳에서 제일 놀란 것이 猛虎出林(맹호출림)에 비유되던 평안도 사람들의 성격인데 이제는 맹호출림은 고사하고 고양이 새끼도 안 돼요. 꼼짝을 못하는 거예요. 식량배급권을 중앙에서 쥐고 있고 이동권까지 쥐고 있으니까 움직일 수가 없죠』
―기질 강한 이북 사람들이 왜 그렇게 죽어 사느냐에 대해 대답을 해 주신 것 같습니다. 북한의 억압은 朴正熙 시대와 비교하면 몇 배쯤 됩니까.
『언젠가 그 얘기를 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한 20∼30배 되는 것 같아요』
―공포감을 느끼는 거죠.
『공포감이죠. 공포정치니까. 그것이 무슨 합법적인 벌을 받는다든가, 그러면 차라리 편할 거예요. 재판도 없고 당연히 판사도 없고 검사가 판사 변호사 노릇 다 합니다. 취조관 한 사람이 다 결정해 넘겨버리니까 자기가 어디로 넘어갈지, 언제 석방될지 모르니까 참 갑갑한 거죠』
―지뢰밭을 걷는 것처럼 언제 어디서 감옥을 가게 될지 모르는 불안감이 있다는 거죠.
『그런 공포를 우리가 상상을 못하죠』

『CIA 사단이 지켜 주니까…』

―히틀러나 스탈린이나 金日成 같은 이런 절대폭력 앞에서 인간은 굉장히 무력해지는 것 같습니다.
『무력해지죠. 그 사람들은 자기가 잘 해준 생각만 해요. 金正日이는 내가 제1차로 도망갔을 때 절대 내가 도망가려고 한 것을 믿으려고 하질 않았어요. 어떻게 길을 잘못 들어서 차를 잘못 타고 나간 것처럼 믿으려고 아랫사람을 시켜서 나한테 몇 번을 반문해서 물어본 일이 있어요. 다시 물어 봐라, 그렇지 않을 거다. 또 다시 물어 봐라 그렇지 않을 거다. 그래서 취조관이 한 마디 묻고는 밖에 나갔다 오고 그랬는데 金正日 생각에는 내가 도망을 갈 이유가 없는 거예요. 잘 먹여 주고 다 들어 주고 했는데』
―탈출 후 신변에 위협은 느끼지 않습니까.
『그야 뭐, 일생 느끼는 거지만 요즘은 이북이 테러하지는 못하겠죠. 자기네 체면도 있고 또 한다고 하더라도 CIA 사람들이 지켜 주고 있으니까 함부로는 못 할 거예요』
―녹음테이프 중에 申감독하고 金正日 하고 나눈 대화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金正日이가 申감독을 피랍해 간 이유를 金正日이 설명하는 대목인데 간략히 요약하면 「선진된 기술을 가져와서 우리 것 하고 결합을 시켜서 앞으로 세계로 뻗어나가도록 한다」하는 일종의 개혁 마인드입니다.
그걸 저는 申감독님을 모셔와서 북한 영화를 잘 만들어가지고 세계로 나가서 상도 받고 한다는 하나의 개혁을 실험한 걸로 봅니다. 그런데 申감독이 우상숭배의 중압감에 짓눌려 가지고 도저히 못 견디다가 탈출한 걸로 金正日의 개혁개방 실험은 실패로 끝났단 말입니다. 그게 1983~86년 무렵인데 저는 여기서 상당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영화제작의 선진기술을 가진 申감독님을 초청해 북한의 영화 인프라하고 연결하는 것까지는 성공을 했고 거기서 좋은 작품을 만들어낸 것까지는 성공을 했지만 결과적으로 북한 체제가 안 바뀌니까 申감독을 잡아둘 수 없었던 거지요. 그러니까 오늘날 金正日이가 당면하고 있는 딜레마도 같은 게 아닌가, 말하자면 개방을 해도 결국 개혁이 안 되면 金正日의 개혁 개방은 앞으로도 실패할 게 아니냐, 하는 생각을 갖게 되는데요.
『개혁 개방은 영원히 안 되죠. 지금 이북을 제대로 못 보니까 남북회담이다 뭐다 하는 거지. 남북회담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고 한 1년 후가 되면 없던 걸로 될 가능성이 많아요. 제가 보기에는 말이죠. 오히려 지금은 전쟁위협만 더 증대시켜놨어요. 돈을 계속 지원해왔으니까 이제는 안 주면 전쟁위협이 더 생기는 거죠』
―우리의 가장 성공한 對北 정책은 그동안 전쟁을 막은 겁니다. 이 정책이 성공을 했기 때문에 오늘날에 남북교섭이 가능해진 거라고 보는데요.
『金正日은 전쟁 못해요. 전쟁할 사람 같으면 벌써 했죠. 앞으로는 점점 더 힘들어지는데』

對南 공작에 많은 돈을 써

―그러면 자연스럽게 이렇게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북한이 전쟁을 할 수 없으니까 남한에서 친북정권을 세우겠다는 쪽으로 통일 전략을 더 강하게 추진하는 게 아닙니까.
『과거에 그랬죠. 그렇기 때문에 내가 탈출한 후 말을 안 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金正日이가 金○○씨고 金○○씨고 정치자금을 주었다고 밤낮 얘기했어요. 그 사람이 對南 공작에 많은 돈을 써요. 만약 그 돈이 전달이 되었다면 金○○씨나 金○○씨는 누구 돈인 줄 모르고 썼을 겁니다. 金正日이의 돈인 줄 알고 쓴 것은 아닐 거예요. 돈이 쓰리 쿠션으로 가니까, 후에 알고 보니까 그거더라 이렇게 되는 거지요.
어느 국회의원이 돈을 얼마 갔다 주었다는 것도 말하자면 그런 겁니다. 처음부터 뭔지 알지는 못하죠. 충성스럽게 갖다 주는 돈인 줄 알고 쓰겠죠. 그러나 나중에 알아도 어쩔 수 없는 일일 겁니다. 반공법이나 국가보안법에 저촉되기 때문에 알아도 모르는 척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북한에 계시면서 그런 이야기를 金正日의 입을 통해 들으셨습니까.
『얘기해요. 얼마를 주었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죠. 내가 와서 그런 이야기를 안 한 것은 정치에 이용될까봐, 어떤 정파에 이용될까봐 그런 얘기를 안 했고 지금에 와서는 그 분들이 다 ○○○도 했고 하니까 얘기하는 거죠』
―金正日이 실명을 들어서 이야기한다는 말씀이죠.
『다 실명을 들어서 했어요』
―그런데 그건 믿을 수 없는 얘기 아닙니까.
『나는 어느 정도 믿는 것이 對南 공작에 쓰는 돈이 엄청나기 때문이에요. 對南 공작에는 아끼지를 않아요. 최우선적으로 쓰는 분야입니다. 잡힌 간첩들이 쓰다가 만 돈 중에는 100만 달러짜리도 있잖아요. 그런데 정치자금을 안 쓰겠어요. 쓰죠』

『걱정마, 통일되면 남조선 게 다 우리 거야』

―다른 데는 돈을 아끼고 쓸 돈도 없지만 對南 공작에는 돈을 많이 쓴다, 그 이유는 뭐라고 보십니까.
『이북 식 적화통일이죠. 적화통일보다도 자기가 살기 위해서예요. 남한을 먹지 않으면 자기가 죽으니까』
―남한을 먹지 않으면 자기는 죽는다는 의식이 있다고 보십니까.
『내가 이북에서 영화 불가사리를 찍을 때 스티로폼을 일본에서 수입해다 썼거든요. 그런데 그게 석유화학 공장에서 맨 마지막 공정에서 나오는 겁니다. 공정 하나만 붙이면 되는 건데, 석유화학 공장이 있으면서도 그런 걸 못하는 이유는 사회주의 체제이다 보니까 그런 걸 미처 몰라서 못하는 거예요. 스티로폼은 영화를 찍을 때 바위도 만들고 조각도 만들고 하는 것이라 영화제작에 꼭 필요한 건데 그걸 일본에서 수입을 해온단 말예요. 그래서 그 얘기를 했더니 金正日이 「걱정마 통일되면 남조선 게 다 우리 거야」하더라구요. 물론 농도 조금 섞였지만 보통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말이 나왔겠죠』
―金正日로서는 남한을 먹으려면 전쟁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잖습니까. 그런데 전쟁은 할 수 없다고 했잖습니까.
『그게 과거 朴정권 때 「反共, 反共」 하면서 정권 끌었듯이 金正日은 「전쟁, 전쟁」 하면서 정권을 끄는 거예요. 저 사람이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는 것처럼 될까봐 金대통령은 걱정을 하나 본데 그렇게 만들지 않고 망하게 해야지요. 그게 정책이지요』
―金大中 대통령의 햇볕정책도 그쪽을 지향한다고 보지 않으십니까.
『햇볕정책이라는 거 그 사람들 듣기에 기분이 하나도 좋을 리가 없잖아요. 자기 위주로 선전하기 위한 슬로건이지 이북에서 햇볕정책으로 기분 좋을 게 뭐 있어요. 또 통일부에 대해서도 이북은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남한식 체제의 통일을 하겠다는 의지를 은연중 드러내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거죠』
―북한 정권의 미래는 어떻다고 보십니까.
『이북이 외교를 하는 게 꼭 벼랑외교를 하는데 이번에 스웨덴 총리가 갔을 때도 미사일은 꼭 팔겠다는 얘기를 하고 있고, 그러다가 결국은 두들겨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유화정책 가지고는 안 되는 나라예요』

『제일 한심한 건 남한의 지식인』

―이번에 남북 頂上회담을 계기로 남북간의 접촉이 많아지고 남한에 있는 친북 세력들이 겁도 없이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게 되니까 그동안 남북 간에 끊겨 있었던 친북조직과 對南공작 조직이 연결이 돼서 이제는 선과 선이 연결되는 정도가 아니라 면과 면이 연결됐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자연히 북한에 연동돼서 남한이 조종을 받고 남한의 친북세력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넓어졌습니다. 그게 남북간의 변화에서 아주 큰 전략적인 변화라고 보입니다.
남한의 친북세력과 북한의 對南공작 세력을 단절시켜야 안보가 제대로 튼튼해 질 것이라고 보는데, 문제는 그렇게 되면 당장 「이것은 탄압이다, 강경정책으로 회귀한다」면서 남한에서 반발이 일어날 가능성이 상당히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어떤 사람들은 內應(내응)이라고까지 하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그런데 그 민주주의라는 게 아무리 이북에서 그런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지금까지 닦아놓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터전이 있기 때문에 쉽게 안 넘어가요. 금강산 관광 같은 것도, 그 것이 되면서 잠수함 같은 게 왔다갔다 하지 않아도 돼요. 다 거기서 접선하니까. 다 열어놓은 거나 다름 없죠. 그러나 열어놔도 하루아침에 무너지거나 하지는 않죠.
다만 제일 한심한 것은 남한의 지식인들이 제대로 발언을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지난 1년 동안 발언하는 사람 못 봤어요』
―우리나라 지식인들이 지금 뭘 이야기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우리나라 지식인들이 이북을 제대로 알게 하려면, 이북 만수대 혁명박물관을 관람시켜야 합니다. 그곳에 가보면 왜 통일이 안 되는가를 금방 알게 됩니다』
―우상화 작업 때문에 통일이 안 된다는 걸 알게 된다는 겁니까.
『그렇죠』

탈출 직후 남한에 북한 공작원이 2만명쯤 있는 것으로 생각

―그쪽에서 8년 동안 생활하다가 남한에 오려니까 위협을 느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유가 뭡니까.
『그때 우리는 남한에 최소한 북한 공작원이 2만명 정도 있다고 봤거든요. 崔여사가 있던 곳이 동북리 초대소로 간첩들 양성하는 곳인데, 그런 곳이 수백 곳 있었거든요. 간첩 깐수가 이북에서 받은 지령 가운데 하나가 「신상옥 주소 확보」였던 데서 알 수 있듯이 남한에서는 절대 신원보증이 안 된다고 봤고, 그래서 미국 영주권을 얻어야겠다고 생각했죠』
―金正日이라는 인간이 어떤 인간인가에 대해서 여쭤보겠는데 우리가 정신분석학자에게 의뢰해서 녹음테이프로 金正日에 대해 분석을 해보니까 몇 가지 특징이 나타났습니다.
첫째가 말이 빠르다는 것인데 말이 빠르다는 것은 연상작용이 빠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정확한 단어가 안 나오고 엉뚱한 단어를 쓰는 것을 보면 말이 자기의 생각을 따라가지 못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어떤 경우에는 표현을 억제하는, 말하자면 사회주의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다가도 스스로 억제해 버리는 그런 것이 있었고, 잘 웃는다는 점도 특징이었습니다. 녹음을 들으면 金正日은 항상 웃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신 만만해 보이려고 그러는 거죠』
―잘 웃는다는 것은 그럼 쇼입니까.
『쇼이죠』
―자연스런 그 사람의 생리 아닙니까.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서 오는 건데,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으면 다 그 정도는 돼요』
―金正日이 침울해 있다든지 의기소침해 있다든지 하는 것을 본 적은 없습니까.
『못 봤어요. 건강은 좋지 않을 거로 봐요. 여러 가지 풍문은 있는데 내가 金正日을 처음 만났을 때도 주치의가 자신을 나이보다 10년은 더 늙었다고 그런다는 얘기를 하더라구요. 자기가 밤새 일을 하니까』
―「그놈」 「이놈」식으로 비속어를 많이 쓰는 편이죠.
『네, 많이 써요』
―「자상하다, 예의범절을 잘 지킨다」는 평가를 듣기도 하는데 이런 점은 어디서 배웠을까요.
『글쎄 아버지한테서 배웠는지 모르지만 崔여사를 대할 때도 그랬고 나한테도 그랬어요. 내 생일 다음날 金正日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생일날에는 생일상 차려 주고 거기다 무슨 선물까지 보내 주고 그 다음날 중앙당에 있는 金正日이 혼자 쓰는 3층 건물로 찾아가 만났는데 엘리베이터 앞까지 나와서 기다려 주고 갈 때도 그러고. 사람을 대할 때 아무튼 자기 심복이다, 편이다, 하고 생각하면 아주 잘 해 줘요』

金正日의 제스처

―예절바른 행동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金大中 대통령이 金正日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金대통령에게 충고할 말씀 없으십니까.
『난 불쾌한 게 金대통령은 개인이 아니잖아요. 대한민국 역사를 총 대표하는 사람 아닙니까. 북한에 가서 金正日이 농담 몇 번 했다고 해서 괜찮다고 그러는 건 말도 안 돼요. 내 책을 보면 金正日 하고 농담하고 그런 이야기들 많은데, 이용가치가 있다면 별거 다 해 주는 사람이에요』
―역사를 대표하는 대통령으로서는 개인적인 감정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까.
『네. 그리고 그게 제스처라는 걸 알아야죠. 올브라이트한테는 안 그랬습니까. 金대통령한테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겁니다. 페르손 EU대표에게는 안 그랬습니까. 다 그랬죠』
―金正日은 예술을 좋아한다고 그랬는데, 예술적인 감각이 있습니까.
『예술적인 감각은 있습니다. 그런데 과거 독재자들은 다 예술을 좋아한다고 그랬습니다. 무솔리니도 히틀러도 그랬고 레닌과 스탈린도 그랬어요. 金正日의 경우도 독재자들이 여흥을 즐기듯이 예술을 좋아하는 거예요. 스트레스 해소하는 거예요』
―약간의 예술적 소질도 있죠.
『있죠. 영화에 대해서 일가견이 있어요』
―그는 남한에 대해서는 밉기도 하고 부럽기도 한 감정을 가지고 있죠.
『그렇죠』
―「최고」 「일등」 등 최고를 지향하는 말을 많이 쓰는 것 같아요. 왜 그럴까요.
『말버릇이죠』
―녹음테이프의 음성으로 金正日의 성격을 분석한 정신분석학자인 李根厚 박사는 『선천적으로는 대단히 감성적인 사람이지만 후천적으로는 자기통제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조건에 놓여진 사람이다, 그래서 상당히 말 속에서 갈등과 분열이 보인다』고 말하는데 어떻습니까.
『그렇죠. 영화를 많이 보지 않습니까. 영화를 보면 얻는 게 많거든요. 영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이에요. 그것밖에 없으니까, 자기를 교양할 방법이』
―金正日은 외부 세계 돌아가는 것을 주로 비디오를 통해서 많이 알죠. 외국 영화나 비디오로 찍어서 보고하는 것 등. 그걸 보고서 외국에서는 물건을 이렇게 진열한다, 이런 것까지 지시를 할 정도니까.
『물론 여자들 스커트 길이까지 정해 주니까요』
―독서를 통해서 아는 지식과 비디오를 통해서 아는 지식은 다를 것 같은데 외국에 대해서 많이 아는 척하는데 실제로 많이 압니까.
『모르죠. 사회주의체제에서만 자랐으니까 모르죠. 그러니까 우리가 소중했던 거죠』
―申감독 같은 분들을 만나서 얘기할 때는 자신을 낮추죠.
『낮출 뿐만 아니라 자신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죠. 우리가 남한에서 왔기 때문에 아무 얘기해도 겁이 안 나거든요. 무슨 얘기를 해도 새나갈 염려가 별로 없거든요』

『이 바보야, 이 바보딱지들아』

―金正日은 그런 사람한테 하는 얘기는 솔직하게 해도 되니까 어떻게 보면 두 사람이 얘기를 많이 했다는 것은 서로 언론의 자유를 공유했다는 게 되네요. 특히 金正日 쪽에서 말이죠. 녹음테이프에 담긴 두 사람이 나눈 대화에는 金正日이 사회주의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말이 많습니다. 이런 말이 있어요. 「지금은 남북대결이다. 인민들의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가 남조선한테 진다. 이게 사람들이라는 게 배(腹)는 타협할 수 없는 게 아닌가. 배에 들어오는 뭐가 있어야 먹고 봐야 잘 일할 수 있는 사람도 있는 거지 먹지 못하는 사람이 일할 생각이 나겠는가」 이런 얘기를 한단 말예요. 아주 맹랑한 얘기 아닙니까.
『그런데 이걸 알아야 해요. 북한에서 200만이 굶어 죽고 300만이 굶어죽는다고 하는데 하여간 굶어는 죽어요. 굶어는 죽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金正日이 가책을 안 느껴요. 왜 그러냐하면 아주 냉혹한 건데 이북은 인구가 2000만이 넘으면 곤란해요. 국가경영이 곤란해요. 핵심이 아니면 좀 죽어도 괜찮은 거죠』
―먹는 것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경공업의 중요성을 많이 강조를 해요. 국민소득에서 3년 안에 동구에서 제일 잘 사는 체코 동독과 대등한 수준에 올려놓겠다는 얘기를 하면서 의식주를 높이자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그게 진심 같았습니까.
『경공업을 하지 않으면, 다시 말해서 자본주의 물건이 들어오면 애들의 사상이 자본주의에 물들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경공업을 혁명적으로 바꿔서 충족을 안 시켜주면 큰일 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실제 그런 노력을 했죠.
『해도 안 됐죠. 뭐가 있어야 하죠』
―그래서 金正日이 이런 얘기를 하죠.
「지금 150개 공장이 있는데 60%가 놀고 있다. 경공업을 멸시하고 원료도 제대로 주지 않고 또 생산품에 대한 판로를 개척해주지 않고, 만든 기업소가 그 판로를 찾아야 되는데 거저 다 국가에서 하라는 게요. 우리 사람들 이런단 말입니다」
『그걸 왜 당에서 파느냐 이겁니다. 자기네들이 팔지 않고, 그런 불평도 金正日이 했습니다』
―그리고 또 이런 얘기도 있었습니다.
「평양백화점, 이 진열매대는 30년 전의 진열매대 방법과 같지 않냐. 자본주의 호화판 나라들에 가보면 말이야, 판매원도 없이 마음대로 골라가지고 나오는데 여기서는 유리창을 통해서 들여다보고 앉아서 돈 계산하고 있으니 이게 무슨 방법이냐, 이게 사람들 기호에 맞게 구미가 돋게 해야지, 그러면 밑에서 대답하는 게 이렇게 보면 어떻고 저렇게 보면 어떻습니까, 이렇게 대답한다는 거지. 그게 아니다. 호기심이 생겨가지고 들어가서 안 사면 안 되게끔 자본주의식으로 진열대를 그렇게 만들어놓아야 한다. 그러고 배정품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일부러 질서를 유지한다고 표를 나눠 주고. 그래서 『이 바보야, 이 바보딱지들아』하고 웃었다」
이걸 보면 상당히 멀쩡한 사람입니다. 1980년대 초의 金正日은 개혁 개방을 하고 싶었는데 밑에서 안 따라오고 하니까 상당히 좌절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金正日이 실제 개혁 개방을 위해 노력했다고 보십니까.
『희망사항이었죠. 노력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죠』

『북한의 운명은 남한에 달렸고 金大中의 운명은 金正日에게 달렸다』

―노력 자체도 안 했다는 겁니까.
『기계도 안 돌아가고 전기도 없을 뿐 아니라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럼 申감독한테만 金正日이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실제 정책으로는 진지하게 실천해 본 적이 없단 말입니까.
『따라올 만한 인재 양성을 안 해놨다는 말이죠』
―개혁개방을 하려면 저 혼자만 그런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되고 주변을 자기가 생각한 방향으로 의식화를 해야 되는데 그런 노력을 안 했다는 말입니까.
『의식화하면 무너지잖아요』
―그리고 무슨 말을 하느냐 하면 「촬영을 위해 배우를 싣는 차량에다 옷을 갈아입을 수 있도록 창에 종이를 바르도록 허가해 달라고 오는데 그런 것까지 나한테 승인받을 필요가 있는가, 변소 가겠다는 것까지 나한테 승인받고 가느냐, 종이 바르는 데 무슨 법이 있나」이런 얘기를 한단 말예요.
『말은 그렇게 하죠. 잘못 걸리면 그렇지 않죠. 독재라는 게 그런 게 아니에요』
―아무리 아랫사람들에게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해도 아랫사람들은 또 金正日을 찾아가서 허락을 구하게 되죠?
『책임을 안 지려고 그러는 거죠. 잘못하면 목이 달아나니까』
―그렇다면 金正日은 무지하게 바쁘겠네요.
『시시콜콜 다 간섭해야 하니까 바쁘죠』
―지금의 金正日은 자신의 운명과 북한체제의 운명을 위해 무얼 생각하고 있고 무얼 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나는 北에서 나올 때는 金正日까지 세습하고 끝날 걸로 알았어요. 그런데 엊그제 텔레비전에 나온 金正男을 보니까 그렇지 않다는 감이 드네요. 金正男도 충분히 하고도 남겠어요. 그 정도 인물이면 金正日보다 낫던데요. 당당하잖아요. 북한의 운명은 남한에 달렸고, 金大中 대통령의 운명은 金正日에 달렸다고 볼 수 있죠. 만약 金正日이가 다시 망나니 짓을 한다면 한 나라의 「통크고 똑똑한」 지도자로 金正日을 칭찬하던 金대통령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면 또 세습으로 갈 것으로 보는 겁니까
『그럴 거예요. 그러면 우리 민족은 앞으로 50년 더 남북협상해한다는 소리예요. 10년이면 무너질 정권을 햇볕이다 뭐다 해서 30년 더 버티게 해 주고 그 다음에 金正男이 또 등장할 테니까 한 50년은 더 남북협상을 해야 한다고 봐야지요』
―金正男은 金日成하고 비슷합니까, 金正日하고 비슷합니까.
『키는 金正日하고 똑 같잖아요. 귀도 그렇고. 아마 눈이 나쁜 것은 유전인데 색맹인 것 같아요』
―金正日이 색맹입니까.
『그런 것 같아요, 내가 보기에는』
―뭘 보고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영화 보고 그럴 때 알 수 있지요』
―색맹은 영화를 보면 전부 흑백으로 보입니까.
『아니, 그건 아닙니다』

『黃長燁 부인은 자살』

―崔銀姬 여사는 이번에 도쿄에서 추방되는 金正男이가 나오는 텔레비전을 보셨습니까.
『봤죠. 틀림없다고 하더군요』
―崔여사는 金正男이 어렸을 때 만난 걸로 아는데 金正男에 대한 기억은 어땠습니까.
『金正男이가 일곱 살 때 봤는데 그때도 살이 포동포동 쪄 있었답니다. 1978년 金正日 생일때였는데 崔여사가 나이를 묻고 이어서 이름을 물으니까 어색하고 의외라는 표정을 짓더니 「남의 이름을 다 물어?」라고 중얼거리며 뒤꽁무니질을 쳤답니다. 그러자 金正日이 「어른이 말씀하시면 『예, 저는 누굽니다』 이렇게 대답하는 거야」라고 타이르듯 말했답니다. 그 때 본 金正男은 아버지를 닮아 얼굴이 둥글둥글했고 인민복 차림이었다고 합니다』
―北에 있을 때 파티 등에서 金正日 이너서클 사람들을 봤을 텐데 그들에 의한 金正日 암살같은 사건은 일어나기 어렵다고 봅니까.
『어렵다고 봅니다』
―북한에도 황장엽씨처럼 양심가나 애국자들이 있을 것 아닙니까.
『있는데 측근에 있어도 어지간한 사람은 안 믿죠. 이게 인척관계 이런 거 다 연구해서 하는 거니까 자기만 죽는 게 아니고 다 죽는 거예요. 그러니까 어렵죠. 황장엽씨 얘기가 나온 김에 말씀드리는데 황장엽씨의 북한에 두고 온 부인이 자살했다고 합니다』
―美 CIA 정보입니까.
『믿을 만한 소식통입니다. 한국 정보기관도 알고 있을 겁니다』
― 金正日 음성 녹음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처음에 녹음할 때는 崔여사가 녹음기를 숨겨서 갔어요. 테이프는 45분짜리였는데 들어가기 전에 45분이 되면 화장실 가는 척하면서 테이프를 다시 뒤집어오라고 했는데 그거는 못했어요. 몸수색을 할 줄 알았는데 우리의 경우는 안 하더군요. 수색을 해서 휴대한 녹음기가 들키더라도 미리 말을 준비했기 때문에 많이 떨리지는 않았어요.
金正日을 만나면 비서들이 金正日 이야기를 다 적어요. 우린 그것을 알고 있었고 혹시 들키면 빨리 적지 못하니까 녹음기를 가져왔다고 그럴 참이었죠. 셋이서 앉아서 대화를 하면서 崔여사가 손수건을 가방에서 꺼내는 척하면서 녹음기를 눌렀는데 그게 녹음이 잘 됐어요』
―처음에는 그랬지만 그 다음부터는 공개적으로 했죠.
『예, 공개적으로 했죠. 전화가 걸려와 金正日이 崔여사하고 통화한 것도 잘 녹음됐고, 촬영소에 있을 때 金正日이 나한테 전화온 거는 공적으로 당비서들이 나한테 무슨 얘기를 했는가를 알기 위해 녹음을 한 것들이라 상태가 좋죠』
―金日成하고 만나서 대화한 거는 어떻게 녹음을 했습니까.
『그것도 만날 때 녹음기를 들고 가서 했죠』
―요즘도 미국 정부의 보호를 받고 계시는 것으로 아는데 금전적인 도움도 받습니까.
『요즘은 금전적인 도움은 없습니다』

『북한에서의 영화제작은 金正日 비자금으로 했다』

―金正日과 申감독과의 대화를 보면 金正日 비자금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그렇다면 申감독이 북한에서 만든 영화제작 경비는 그 비자금에서 나온 겁니까.
『외국에 다니면서 쓴 것은 그렇다고 봐야겠죠. 외국에 돌아다니며 돈을 쓸 때도 비엔나에 가서 달러를 루블로 바꿔가지고 와 썼으니까요』
―비엔나의 한 은행에서는 달러를 가지고 갔더니 은행에서 안 받았지 않습니까.
『뱅크오브 아메리카 은행이었습니다』
―그 돈을 다른 데 가서 예금시킨 후 다시 찾았죠? 혹시 위조 달러가 많지 않느냐 해서 그랬던 것 같은데 그때 외국을 갈 때 주변에 위조여권을 쓴 사람이 있습니까.
『위조여권 안 쓰고 외교관 여권을 썼죠. 우리가 가는 나라 대부분이 여권이 자유로웠던 곳이었습니다』
―아메리카 은행의 230만 달러는 申감독 개인 이름으로 예금됐던 거죠. 이 돈을 申감독 탈출 후 북한 사람들이 비엔나로 와서 대성은행 이름으로 차압을 해버렸죠.
『차압을 한 게, 우리가 탈출한 지 한 달인가 한 달 반 후였어요. 그 전에 우리가 얼마든지 찾을 수가 있었는데 찾지 않았죠. 이북에서 우리가 돈 때문에 도망갔다고 선전했기 때문에 오해받을까봐서였습니다』
―차압한 것에 대해서는 소송을 걸었다가 지셨죠.
『진 게 아니고 뱅크 오브 아메리카는 소송 결과가 결정되는 대로 따르겠다고 얘기했는데 우리가 그것을 도중에 해지했어요. 그 이유는 이북의 창구가 비엔나가 제일 커요. 서독하고 돈 거래하는 곳이 말이죠. 그런데 이북이 은행에 빚이 많고 그 빚을 안 갚아서 이북 예금은 차압될 상황에 있었어요, 차라리 이북에 보내 주는 게 낫겠다 싶어 소송을 취소했죠』
―金大中 金正日 두 사람이 대화를 하는데 金大中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어떤 전략이냐 하면 양쪽이 교류하고 대화하다가 보면은 북한이 남한한테 의존하게 만든 다음에는 우리가 북한을 원하는 대로 개혁 개방을 시킬 수 있다, 그래서 전쟁 안 하고 30년 뒤에는 통일로 가져갈 수가 있다, 이런 게 햇볕정책의 전략적인 목표인데 이게 잘못됐다고 보십니까.
『이북에서 똑같이 생각하지 않겠어요? 金大中씨 생각하고 똑같은 거죠. 이렇게 하다가 먹으려고 하겠죠』
―이북은 거꾸로 남한하고 접촉하면서 남한 사회를 혼란에 빠뜨려서 먹는다, 이런 뜻인가요.
『네, 그렇죠. 지금 이북 사람들은 金大中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대해서 잘 모를 거예요. 그저 위대한 장군님을 흠모해서 金대통령이 평양에 왔던 것으로 알고 있을 거예요. 내 얘기는 우리가 조금만 흔들리면 이북에서 군대가 내려올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한 못 나올 거예요. 광주사태 때도 위험하게 본 것은, 물론 민주화도 좋지만 좀더 커지면 이북에서 내려오죠. 명분이 있으니까』
―金正日의 당면과제를 체제유지라고 보십니까 아니면 통일이라고 보십니까.
『체제유지죠. 체제유지하기 위해서 통일도 말하는 것이고, 그래야 인민들이 따라올 테니까요』

『자유의 바람을 조금은 불어넣은 것 같다』

―스티븐 브레드너 주한미군 사령관 특별고문이 月刊朝鮮 5월호 기고에서도 밝혔지만 金正日이가 아무리 생각해도 전쟁밖에는 살길이 없다, 남한을 먹지 않으면 북한체제는 위태롭다, 그런 생각에 도달하면 전쟁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하겠지요. 그러나 내가 본 金正日은 전쟁은 못할 사람이에요』
―그 이유는요.
『그게 말로는 설명이 잘 안 되는데 성격이나 그런 걸로 봐서 목숨 걸고 전쟁을 할 그럴 사람이 못 돼요. 사람이 자살하기가 어디 쉽습니까. 金正日이는 전쟁을 도발하는 것이 자살행위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 약간 겁쟁이라는 말입니까.
『그렇다고 봐야죠. 왜냐하면 서방세계를 너무 잘 아니까』
―인간이라는 게 계산을 뛰어넘는 무슨 소신이 있으면 하는데, 金正日에게는 그런 이념이나 가치관이나 주의 주장은 없습니까. 그런 것에서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은 아닙니까.
『그들은 이해관계 집단입니다』
―이해관계로 뭉친 집단이기 때문에 이들을 뭉치게 하는 이해관계가 사라지거나 공포 억압 장치가 사라지면 이 체제는 붕괴될 것이라고 봅니다. 전에 황장엽씨도 얘기를 했는데 金正日이 외부에서 한방 큰 충격을 받아 그 권위가 땅에 떨어져 버린다든지, 미국이 압도적인 武力으로써 북한이 저항을 못하게 만들어버린다든지 이렇게 하면 북한이 타격받을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지금 현재로서는 그 방법밖에 없을 거예요. 그런데 나는 시간은 걸리겠지만 북한이 내부붕괴 될 거라고 봐요. 햇볕이 근본적으로는 잘못된 정책이기는 하지만 자유의 바람을 조금은 불어넣은 것 같아요. 금강산에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의 복장이나 그런 거 다 소문이 났을 거예요』
―북한처럼 통제된 사회에서 소문이 그렇게 빨리 확산됩니까.
『우리 부부나 黃長燁씨가 탈출했을 때도 당 간부에게만 알렸지만 이북 사람들 대부분이 알게 되었잖습니까』

金正日의 시나리오 작가 비판

―식량이 무너지니까 상당부분 그렇게 돼 버렸죠. 특히 함경북도는 뒷문이 열려버린 거나 마찬가지인 경우거든요. 평양에서 멀리 떨어져서 북한 체제를 흔들지는 못하겠지만, 이런 함경북도 같은 사태가 평양에서 일어난다면 곤란한 지경에 빠지겠죠. 그런 현상이 평양까지 오느냐, 못 오느냐가 관건일 수도 있겠죠.
『그런데 우리가 상대방을 더 궁지에 몰아넣어야 하는데 자꾸 풀어 주니까 문제죠』
―수기를 보면 金正日이가 시나리오 작가들을 상대로 이런 불평을 많이 했더군요.
「시나리오를 써라 써라 해도 안 쓴다, 왜냐하면 안 써도 생활비가 나오니까, 진짜 쓰는 것은 부업이 돼 버리고 생활비는 국가에서 부담해 주니까, 그래서 과제를 주며 1년에 세 개를 쓰라고 하면 휴양소에 가서 쓰겠다고 한다, 사회주의 내부 모순 중에서 해결돼야 될 점이 너무 많다. 사업에 대한 의욕이 전혀 없다」
이런 식으로 시나리오 작가들을 막 욕하는데 실제로 시나리오 작가들의 능력이 남한에 비해서 떨어집니까.
『안 떨어져요. 잘 써요. 내가 같이 일한 애들은 다 잘 썼어요』
―그럼 생산성이 남한에 비해서 떨어지는 요인은 뭐죠.
『영화를 덜 만드니까 그렇죠. 1년에 극영화를 열 개 이하로 만듭니다. 맥시멈으로 만드는 게 그래요. 그것보다 더 만들 수 있는 여건은 되죠. 내가 있던 예술영화 촬영소는 1800명 정도 있었으니까 1년에 100편을 만들 수도 있는 여건이 됐습니다. 내가 제일 처음에 200명만 달라니까 웃더라구요. 그것 가지고 영화가 되냐고. 내가 안양 촬영소에서 200명 가지고 1년에 28편을 만든 경험이 있거든요. 한참 전성기 때는 한 달에 두 편 이상씩 했어요』
―위에서 정책적으로 그 이상 만들지 말라고 해서 그런 겁니까.
『그게 그때그때 정책에 따라서 이거 만들라 저거 만들라 하니까 좋은 작품도 안 나오고 못 따라가는 거죠. 우선 첫째 내가 가기 전까지는 영화에서 삼각관계를 못 만들게 했잖아요. 그러니까 영화가 안 되죠. 수령님 찬양하는 것 외에는 안 만들었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다른 유명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해선 만들 수가 없었어요. 안중근 영화 같은 경우 당시까지 북한에서 만든 경우가 없잖아요. 근대사에 나오는 사람 아무도 영화의 주인공으로 안 만들었잖아요』
―김옥균이도 안 만들었어요.
『안 만들었어요. 아무도 안 만들었어요』

『지금 같은 북체제 인정 통일논의는 역대 어느 정권도 할 수 있었다』

―金正日을 먼저 안 사람으로서 金大中 대통령이 하는 일에 대해 충고할 것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죠. 어떻게 하면 金正日에 속지 않을 수 있는지.
『글쎄 이 이야기는 누구든지 하는 얘기인데, 나는 金대통령이 어떤 통일을 하려는 건지 모르겠어요. 이북 체제를 인정해주고 이북 체제를 도와 주는 통일이면 어떤 대통령이고 20년 전에 다 했을 겁니다. 金대통령이 하려는 통일은 상대체제를 인정하고 민족은 영원히 분열되는 통일처럼 보입니다.
나는 6·25 남북 頂上회담에서 나온 이른바 「6·15 선언」이 노태우 대통령 때 남북이 합의한 「남북기본합의서」보다 못하다고 봅니다. 그런데도 노벨 평화상 수상이라니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노벨 평화상을 받고 싶으면 한국같은 나라의 대통령이 되지 말았어야지요. 실무가가 되지 말았어야지요. 이상과 현실은 다르니까요』
―申감독이 생각하는 통일은 어떤 겁니까.
『우리가 과거 半세기 동안 해온 게 자유민주주의 아닙니까. 내가 원하는 통일은 자유민주주의 통일입니다. 남들은 이렇게 정확하게 얘기하고 있는데 金대통령은 그 얘기를 안 하고 있고, 또 그런 얘기를 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방향으로 안 가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앞으로 30년, 아니 金正男까지 세습하면 50년 동안 이북 인민을 지금의 상태로 놔둘 것인가, 정말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사실 金大中 대통령의 마음은 평화교류 활성화인데, 북한에서는 남한의 전략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통일안을 받아라」해서 할 수 없이 마지 못해 통일을 말하지만, 그것은 어떻게 보면 金大中 대통령으로서는 남북한 간의 대화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 할 수 없이 받은 것 아니겠습니까. 통일은 당장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다고 되는 것도 아닌데 그런 식으로 이해해 줄 수 있는 면도 있지 않습니까.
『金대통령의 햇볕정책은 이북체제를 인정하고 하는 것 아닙니까. 이북체제를 인정하고 하는 거면 누구는 못합니까』

『정상회담시 여과 없이 金正日 모습 방영함으로써 彼我개념을 없애버렸다』

―북한에 계실 때 그곳 사람들은 미군이 빠지고 남한과 1 대 1로 붙으면 자신 있다고 했습니까.
『그랬죠. 실제로도 저는 주한미군이 빠지면 남한이 진다고 봅니다』
―우리가 질 리가 있겠습니까.
『미군이 없는 게 아니라 늦게 오면 질 수밖에 없는 게, 북한에는 2차 대전 때 일본 가미가제 같은 특공대가 수만명이 있습니다. 그들이 순식간에 밀고들어온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북 사람들은 남한은 미제의 식민지니까 허리띠 졸라매고 통일하자는 정신이 참 철저해요. 그들은 남한 사람들이 머리에 물들이고 다니는 것도 미제의 식민지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에요』
―주한미군이 빠져버리면 한국에서는 전쟁위협이 높아진다는 이 말씀인가요.
『하루아침이죠』
―그렇다면 金正日의 마음속에는 남한의 어떤 정권에 대해서도 얕잡아보는 게 있겠습니다. 무력으로 제압할 수 있으니까.
『우습게 보겠죠. 金正日이가 남한에서 언론사 사장들이 방북했을 때 만난 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했죠. 「내가 마음 먹으면 언제든지 통일이 될 거다」 그거 한 마디가 그 사람 입장 다 대변하는 거예요. 사실이 그래요. 그 사람 한 마디면 끝나요. 자기가 수긍하는 통일을 하면 다 따라온다는 얘기죠. 아래서는 이의가 없어요. 그리고 이런 얘기도 했습니다. 「남한에는 왜 저렇게 정당이 많나, 우리는 하나 갖고도 잘 하는데」 하는 말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했습니다』
―金正日을 상대로 법적인 대응을 할 생각은 없습니까.
『이제 金正日 재산이 (미국안에) 생기면 해야죠』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시효가 없는가요.
『미국은 없어요. 유태인은 나치한테 빼앗긴 거 스위스 은행 상대로 지금도 하고 있잖아요』
―金正日이 말의 반복이 많은 것은 더듬기 때문입니까.
『아니죠. 특별한 의미를 붙일 건 아니에요』
―그런데 이 사람이 말을 더듬거리기는 해도 자기가 하려고 하는 말은 하데요.
『그 사람은 위트가 있어요. 제일 처음에 만나러 갔을 때 마중 나와서 「내가 어떻습니까, 난쟁이 똥자루 같지요」라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옆에 있는 사람들도 웃고 해서 분위기가 부드러워졌죠. 그 말을 하기 직전에는 「남조선 아이들이 날 보고 식물인간이라고 떠들어대는데 어떻습니까」하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주변 인물들을 긴장시키는 사람입니까, 편하게 해 주는 사람입니까.
『편하게 해 주는 사람이에요. 그러나 누구나 언제 당할지 모르니까 언제나 긴장하고 있지요』
―그 편하다는 것은 마적단처럼 「형님, 동생」하는 관계의 편안함이지만 실제 「형님, 동생」하는 말은 안 쓰죠.
『그렇죠. 「형님, 동생」 하는 말은 안 씁니다』
―그 안에서는 동무라는 말을 씁니까.
『동지, 동무라는 말을 쓰죠』
―金正日이가 옆에 있는데도 그 옆에서 화투도 치고 놀고 그럽니까.
『그러죠. 그런데 하여튼 金正日이가 리드해 나가요』
―최근에 한국 언론을 보면서 걱정하시는 것은 없습니까.
『난 작년에 언론사 사장단들이 이북 가서 한 게 참 우습게 보였어요. 서로 金正日 옆에 가서 사진 찍으려고 그러고 아부하려고 그러고 난 참 그거 넌센스데요. 왜 그래야 해요. 한국 언론사 사장들이 金正日 만나는 걸 영광으로 아는 것 같은데, 한국의 언론사 사장들을 만나는 金正日이가 영광스러워해야 하는 것이지 언론사 사장들이 왜 영광스러워하냔 말예요』
―그것 때문에, 더구나 그런 것들이 텔레비전을 통해서 중계가 되는 바람에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反共 태세가 허물어져 버리고 彼我 개념이 약화돼 버렸죠. 이게 金正日의 가장 큰 소득이라고 봅니다.
『이북에서는 방송을 해도 스틸밖에 안 하잖아요. 움직이는 화면은 안 내보내잖아요』

『金正日은 신이 아닌 인간이 되어야』

―북한 정치범 수용소를 가지고 세계적인 작품을 만들고 싶지는 않습니까.
『하고 싶어요. 그래서 정치범 수용소에 있다가 탈출한 친구도 만났는데 방해가 들어와요.
난 과거에는 그런 생각을 안 했는데 장차는 내가 갔다온 얘기도 텔레비전 드라마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하라고 그러겠습니까. 이 정부도 그렇고 이북도 조선일보 폭파한다는 사람들이니까 그거 하면 방송국 폭파한다고 그럴 텐데』
―金正日에게 한 마디 충고를 한다면 어떤 말을 전해 주고 싶으신가요.
『내가 金正日에게 보낸 편지에 씌어 있어요. 한마디로 인간이 되어라, 인간으로 하강하라 이거죠. 인간선언 하고 민족 앞에 과거의 연극을 용서해 달라고 빌어라, 그러면 지금 남북통일하는 것보다 더 큰 위대한 영웅이 된다, 이 말을 해 주고 싶은 거죠』
―1%라도 가능성이 있는 얘기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럴 수도 있는 사람이라고 몇 년 전까지는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우상화하는 것을 보고 지금은 단념했고 현재로서는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金正日을 코너로 몰아야 하는데 우리가 북한을 코너로 몰아서 金正日로 하여금 내부 변화를 모색케 하는 그런 단계까지는 가보지 않았거든요,
『햇볕정책 안 했으면 그 정도까지 갔죠.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강하게 나오니까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잖아요. 고분고분해졌잖습니까. 미국에 추파만 던지고 있잖아요』
―金正日은 朴正熙에 대해서 한 번도 얘기 안 했죠.
『별로 없었어요. 그냥 군사깡패라고 그랬죠. 내가 한 번 朴정권이라고 했다가 혼났죠. 그게 무슨 정권이냐고 야단이었죠. 그리고 金正日을 그 양반이라고 지칭했다가도 혼났죠. 우린 보통 「그 양반 뭐하고 있느냐」 하는 식으로 그 양반이라는 말은 존칭이잖아요. 양반은 착취 계급이니까 「양반」이라는 말은 나쁜 말인 거였죠』
―金正日은 申감독의 手記를 봤을까요.
『봤을 거예요. 그 사람은 읽을 사람이에요』

『공산당은 필요할 때만 믿는다』

―탈출을 한 가장 큰 이유는 뭡니까.
『우상숭배 때문에 그 나라는 희망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죠』
―그 나라는 희망이 없더라도 영화감독의 입장에서 뭐든지 만들 수 있었잖습니까.
『만들 수 있어도 공산당이라는 것은 필요할 때만 신임하는 거니까요. 필요없으면 그 때부터 신임이 없어져요. 영화 「닥터 지바고」에 그와 유사한 대화가 나와요. 공산당은 필요할 때만 신임한다고 말이죠. 남한에서 그 영화를 볼 때는 몰랐는데 이북에서 그 대사를 들으면서는 실감이 나더군요. 하지만 그곳이 東유럽 정도만 됐어도 안 나왔어요. 그런데 탈북자들은 우상숭배에 대해서 별로 거부감을 안 느끼는 것 같아요. 그 문제에 대해서 별로 말하는 게 없데요』
―자연스럽게 생각하니까 그런가봐요. 申감독은 여기서 자유세계를 경험하고 올라 가셨으니까 비교가 가능한 거고 그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거죠. 北에 가셨을 때가 유신 시대가 아닙니까. 최근에 정치적인 탄압이 가장 강했을 때인데 그것보다 이삼십 배의 압박을 느끼셨다고 했으니까 북한 정권의 압제가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朴정권의 탄압은 상대적인 압제지만 북한은 절대적인 압제니까, 즉 北은 전체주의고 여기는 독재니까 느끼는 압제의 강도가 다를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북한에 있으면서 朴正熙를 너무 미워했다고 후회는 안 하셨습니까.
『아니, 나는 사실 朴正熙가 살아 있었으면 미국으로 안 가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겁니다. 朴正熙 하고 나 하고는 잘 아니까. 朴正熙가 만약 있어서 나를 만났으면 내 배를 한 번 치고 「여보, 어디 갔다 왔어」 이랬을 사람이고, 나도 웃었을 사람이에요』
―朴대통령하고 1대 1로 만난 적이 있습니까.
『많지요. 술도 같이 먹고, 영화만 되면 가지고 올라가서 시사회도 하고 그랬어요. 영화도 알고 민족정기를 가진 사람이었어요. 그런 면에서 사람 괜찮아요』
―朴대통령 사망 소식은 곧바로 알았습니까.
『아뇨, 崔여사는 금방 알았는데 나는 그때 감옥에 있었으니까 죄수들을 통해서 알았죠. 믿어지지가 않았죠』
―납치돼 갔을 때도 金正日이가 북한의 실질적 통치자로 느껴졌습니까.
『느꼈죠. 우리 납치한 것도 金正日이 지시한 거라는 얘기를 했잖아요. 어디 우리 납치를 통치자가 아니라면 마음대로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면 金日成이 金正日 눈치를 본다는 점도 느끼셨습니까.
『네, 느꼈죠. 그건 황장엽씨 의견과 같아요. 1973, 74년부터 권력을 잡은 것 같아요』
―그래도 金正日이가 金日成이한테는 잘 했죠. 경계심을 안 느끼게끔 말이죠.
『그래요. 하여튼 金日成이 타고 다니는 차는 자기부터 타보니까요. 편안한지 아닌지 살피는 거죠. 만수대 극장 출입문의 크기가 작다고 늘리기도 했어요. 아버지가 출입하기 불편하다고 말입니다. 정주영 회장이 그래서 金正日을 효심이 깊은 사람이라고 했잖아요』

金日成 자신도 믿어버린 자신의 가짜 전기

―절대 권력을 가진 사람의 심리 상태는 제가 잘 나서 그렇게 됐다고 생각하고 밑에 있는 사람들과는 인간의 차원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죠. 운명적으로 됐든 제가 잘 나서 됐든 일종의 황제의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金日成 전기가 백두산 기슭, 고난의 행군 등 세 권이 있는 데 그거 정말 잘 썼습니다. 집체작인데 사실 픽션입니다. 그런데 金日成이가 그걸 읽고나서 하는 말이 「그거 정말 내가 하던 때와 비슷하게 썼다」고 했다는 겁니다. 전부 가공인데도 말이죠. 본인도 점차 허구를 자기 걸로 만들어가면서 믿어버리는 거예요.
인간이라는 게 절대권력자에 대한 동경심이나 부러움이 있거든요. 그게 잘못되면 이게 그 사람에 대한 존경심 호감으로 가게 되고 절대권력자는 항상 자신만만하니까, 인간이라는 건 자신만만하면 우선 여유도 있고 그러니까 바깥에서 보기에 상당히 그럴 듯하게 멋지게 보이지 않습니까. 金正日이가 그렇게 보이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독재자는 항상 매력적인 인간으로 보이게 마련 아닙니까.
『그렇다고 봐야죠』
―그런 것을 여과 없이 보여 주는 텔레비전은 많은 사람들을 오판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속이게 되는 것 아닙니까. 金正日 같은 경우 작년 6월 이후 남한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단 말이에요. 글을 쓰는 사람은 단서를 붙이지만 텔레비전은 유쾌하게 농담하는 것만 단순하게 보여 주었던 거죠. 金正日은 이런 연출 능력이 있습니까.
『있죠. 있고도 남죠. 그것과 관련해서 이산가족 상봉 장면들이 방송되었는데 차라리 안 하는 게 좋았을 겁니다. 우리가 잔인한 민족이라는 걸 세계에 알린 꼴이 됐기 때문입니다. 50년 동안 가족을 못 만나게 한 민족이라는 걸 全세계에 자랑한 거죠. 또 다섯 살 때 헤어졌다가 환갑이 다 된 나이에 만난 형제가 무슨 감격이 솟겠습니까. 1회성 쇼에 이용한 거예요』
―만약 이산가족들이 서신교환, 면회소 설치 등 항구적인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 한 쇼로 그치는 거죠.
『쇼도 잔인한 쇼죠. 제가 보기에는 면회소도 만들 수 없어요. 이북에서는 이산가족 만남에 보낼 사람 다 보냈거든요. 더 보낼 수 있는 성분 좋은 사람이 없어요. 앞서 이북에서 보낸 사람들, 다 출세한 사람들 아닙니까. 정말 통일을 원하면 동서독처럼 60세 이상 노인은 상호방문을 자유롭게 해 주든가, 서로 양쪽 텔레비전을 자유롭게 시청하게 해 주든가 하는 실질적인 진전이 있어야죠. 쇼 가지고는 안 됩니다』
―북한에도 예술이 있다고 봐야 합니까.
『예술이 없죠. 박태환씨가 쓴 「땅」이라는 소설이 있어요. 거기 6·25 때 농민이 궁해서 장사를 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것 때문에 비판을 당하잖아요. 농민이 어떻게 장사를 하냐고. 그런 나라니까요』
―北에서 준비하던 징기스칸은 그 뒤에 안 만들어졌죠.
『네, 거기서 만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징기스칸은 어디에서 찍을 계획이었습니까.
『헝가리에서 찍으려고 했어요. 말(馬)이 많으니까. 이북에서 말 타는 사람 한 300명 데려가서 찍을 계획이었지요. 죽기 전에 만들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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