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권은 왜 무너졌는가?

5공세력들의 진단: 측근들의 무능, 부패, 알력이 대통령을 함정에 빠뜨렸다.
제5공화국의 탄생에 母胎 역할을 했던 국군보안사령부가 중심이 되어 만든 '第5共和國前史'라는 책이 있다. 10.26 사건과 12.12 사건을 아주 사실적으로 다루고 있어 좋은 史料(사료)이기도 하다. 이 책은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을 부른 10.26 사건을 측근들의 갈등과 부패라는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유신체제가 막을 연 후 모든 권력이 대통령 1인에게 백지위임된 이후 이들 측근의 권한은 상대적으로 커졌고, 이를 이용한 그들의 非理와 越權행위 등 폐습은 점점 深化되어갔다.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부정부패로 만연되어 있었지만, 권력의 핵심기관으로서 이런 악습의 온상은 주로 청와대 비서실, 경호실, 그리고 정보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 권력기관들을 거쳐간 수뇌들의 하나 같은 공통점은 무엇보다도 朴대통령 개인에 대한 충성심과 권력의 核에 있다는 사실을 이용한 私利私慾(사리사욕)이었다. 권력이 1인에 집중된 체제 자체의 모순에 의한 부작용이었으며, 측근의 고질적 非理는 시중에 유언비어를 나돌게 하였고, 경우에 따라 비난의 화살은 朴 대통령에게 돌려지는 自繩自縛(자승자박)의 결과를 연출하기도 했다.

체제가 硬化될수록 측근들의 비리는 심화되어 가는 경향이었다. 이제는 그들의 비리가 축재 이상의 다른 방향으로까지 비화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측근들끼리의 越權행위에 의한 알력이었으며, 차지철과 김재규의 알력은 극에 달해 마침내 대통령을 시해하는 10.26 사건으로까지 몰고 갔다.
朴 대통령의 차지철에 대한 지나친 신임은 각종 정책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방대한 조직을 바탕으로 수집, 종합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정보나 건의보다도 경호실장 차지철의 단편적이고 편견 섞인 건의를 받아들이는 결과를 초래했다.

중앙정보부장이 對신민당공작을 해서 대통령께 보고하러 가면 경호실장이 미리 보고를 해서 대통령의 결심이 끝난 후가 허다했다. 이런 경우는 통상 강경한 방향으로 결심한 연후가 되어 중앙정보부장이 비교적 온건한 방향의 건의를 해도 허사가 되기 일쑤였다. 차지철은 학원 데모설 등에 관해서도 단편적인 첩보를 사실인양 대통령에게 보고하여 '왜 정보부는 이것도 모르고 있는가'라고 대통령이 정보부장을 힐책하곤 했으나 차지철이 보고한 날짜에 소요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차지철은 朴 대통령을 독재자이며, 강경하고 자비심 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데 일익을 담당했다. 경호방법에 있어서도 시내 고층건물의 청와대로 향한 문의 폐쇄를 강요하여 국민과 대통령의 거리를 점점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는 死後 조사에서도 밝혀진 바와 같이 蓄財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경호실장의 본연의 임무를 넘어서 정치문제에 개입하여 헌정질서를 문란하게 했다는 점은 蓄財 이상의 非理임에 틀림 없다.

車실장은 10.26 사건 이전 한달 여 전부터 권총을 부관에게 맡기고 다님으로써 김재규가 대통령에게 총을 겨누었을 때 응사 한번 해보지 못하고 자신은 물론이고 대통령까지 不歸의 客이 되도록 했다. 한 마디로 1979년의 경호실은 밖에서 보기에는 위풍이 당당하고 화려했지만 내실을 기하지 못했다. 外華內貧이 적절한 표현일지 모른다.

1970년대말 朴 대통령 측근들의 지배적인 분위기는 그들이 힘을 합하여 대통령을 보좌하여 어려운 사태를 성공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부서장이 그 일의 해결에 결정적인 공을 세웠는가, 누가 대통령의 칭찬을 받는가 하는 삼척동자들의 놀음과 같은 충성심 경쟁 현상이었다.
10.26 사건 이후 合搜本部의 권력형 부정축재자 수사에서 밝혀진 내용들은 권력의 측근과 그 주위가 얼마나 부패했었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한 마디로 장기집권은 새로운 특권층을 만들어냈고, 특권층은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었다. 임무를 도외시한 축재와 이권개입은 他부서의 업무를 침범했고, 급기야는 권력층간의 알력이 생겼다. 기관간의 알력은 국론통일을 저해하였으며 국민들의 對정부신뢰도를 저하시켜 이 땅의 불신풍조를 싹트게 했고, 갖가지 사회적 돌풍을 몰고왔다. 이런 일련의 사태는 1979년의 잇단 정치파동, 사회소요 등과 복합되어 측근들간의 알력을 더욱 가속화하여 끝내는 자기들이 모시던 대통텽을 시해할 수 있는 분위기에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이렇게 준열하게 朴 정권의 말로를 진단하고 문제점을 지적했던 5공화국 세력들은 약10년간 집권하면서 그 朴정권보다도 더한 부패상을 보여주었다. 역시 한국에서 권력은 부패와 손을 끊기가 그렇게도 어려운 모양이다. 5공화국을 단죄했던 소위 민주투사들마저 집권한 뒤에는 군인출신자들의 정권에 못지 않은 부패상을 보여주었다. 정치부패를 근절하려면 또 한번의 혁명이 필요한데 문제는 그 혁명의 주체세력도 부패하고 말 것이란 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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