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1만 명 시대를 준비하자

일일이 보도되지도 않는 탈북 난민들이 하루에 3명 이상 입국하고 있다
탈북 난민 하루 3명 이상 입국

2005년 11월 현재 통일부가 발표한 국내 거주 새터민은 7226명. 올해 탈북자를 합치면 8000여 명의 새터민이 있다. 1989년까지 총 607명에 불과했던 새터민들은 불과 17년 만에 13배나 증가했고, 2002년 이후에는 매년 1000명 이상의 탈북자들이 남한 사회에 정착하고 있다. 일일이 보도되지도 않는 탈북 난민들이 하루에 3명 이상 입국하고 있다는 얘기다.


관리자

1~2년 안에 1만 명 돌파 예상

1989년까지 불과 수백 명에 불과하던 탈북자들이 2002년 이후엔 매년 1000명 이상 늘어나더니 올해 현재 8000여명이 남한사회에 정착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사회 곳곳에서 차별대우에 울고 상대적 빈곤에 괴로워하고 있다. 일부 탈북자는 이런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급기야 ‘탈남’을 자행하기도 한다는데…. 다가오는 탈북자 1만명 시대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그들의 고단한 현실을 들여다보며 생각에 빠져보자.

남북의 치열한 체제경쟁이 지속됐던 1960~1980년대, 우리는 북에서 넘어온 사람들을 ‘귀순용사’로 불렀다. 체제 홍보에 철저히 이용당한 측면이 있지만 이들은 후한 정착금과 복리후생을 보장받았다. 김신조와 이웅평으로 대표되는 이 귀순용사들의 일견 풍요로운 삶은 당시 서민들의 부러움과 찬탄의 대상이었다.

이들은 자신이 속한 체제를 부정한 대가로 안락한 삶을 누리기도 했지만 체제 홍보에 끌려 다니면서 결국 황폐한 삶의 쓴 맛을 보기도 했다. 1990년대 이후부터 대거 몰려든 귀순자들은 ‘탈북자’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귀순’이라는 정치적 평가가 사라지고 북한 땅을 탈출한 도망자의 신분으로 그 사회적 평가가 절하되기 시작했다. 탈북이라는 말은 남한 사회의 우월성을 표현하는 하나의 상징어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탈북자들의 사회적 적응 문제가 심각한 현안으로 등장하면서 탈북자들은 ‘새터민’이란 새 이름을 얻었다. 2004년 정부가 지은 이 이름은 ‘탈북’이란 말의 부정적 어감을 완화하기 위해 정책적으로 급조된 용어이기도 했다.

‘새로운 터전에서 삶의 희망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란 뜻을 지닌 이 명칭은 그 말이 가지고 있는 모순 때문에 탈북자 자신들에게도 떨떠름하게 받아들여졌다. ‘새로운 터전’임은 확실하나 자신들이 ‘삶의 희망을 갖고 사는 존재’인가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회의와 번민에 시달렸다. 극한의 위기를 모면한 것은 틀림 없으나 남한에서의 삶 역시 녹록지 않음을 그들은 절감해야 했다.

2005년 11월 현재 통일부가 발표한 국내 거주 새터민은 7226명. 올해 탈북자를 합치면 8000여 명의 새터민이 있다. 1989년까지 총 607명에 불과했던 새터민들은 불과 17년 만에 13배나 증가했고, 2002년 이후에는 매년 1000명 이상의 탈북자들이 남한 사회에 정착하고 있다. 일일이 보도되지도 않는 탈북 난민들이 하루에 3명 이상 입국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들에게 지급되는 정착금 규모도 매년 수백 억 원에 달해 ‘탈북 관리금’의 규모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추세다. 1~2년 안에 1만 명 돌파가 거의 확실시 되고 있으며 북한의 내부 사정이 요동칠 경우 폭발적인 탈북자의 입국으로 ‘탈북자 캠프’의 설치까지도 고려하고 대비해야 할 상황이다.

새터민들은 최근 남북한-미국 관계의 악화로 더욱 민감한 정치적 이슈로 비화하고 있다. 미국은 최근 6명의 동남아 체류 탈북자를 난민으로 수용, 탈북자 문제를 북한을 압박하는 지렛대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탈북자 문제를 처리해야 하는 노무현 정권의 고민도 날로 깊어진다. 탈북 행렬을 막아서도 안 되지만 이를 조장하거나 촉진하기도 거북한 것이 노 정권의 입장이다. 이런 상황을 가슴 죄며 지켜보는 탈북 새터민들 역시 취업, 직장 내 따돌림, 학교 생활 부적응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 새터민을 상대로 한 사기 등 범죄 행위가 만연하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새터민 스스로 범법 행위를 저질러 철창행을 자초하기도 한다.

탈북자가 양산된 것은 1990년대 중반 상당수의 북한 주민들이 주로 식량을 구하기 위해 중국으로 넘어가면서부터다. 그 숫자는 1998~1999년에 최고조에 이르렀고 2000년에는 7만5000~12만5000명으로 추정됐다. 중국 정부의 단속과 북한 경제상황의 개선에 따른 귀국자 증가로 현재 3만~5만 명으로 줄어든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중국 동북부 지역에서는 북한 여성들이 인신매매 대상이 되거나 성매매에 종사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다.

차별이 가장 두렵다

2004년 미 국무부 인권보고서에 따르면 탈북자 수천 명이 중국에 억류돼 있거나 북한으로 송환됐다. 송환된 주민들은 거의 예외없이 감옥이나 수용소에 갇히며 중국에서 외국인 선교사와 접촉한 주민들은 특히 가혹한 처우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새터민은 전국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다. 서울 지역은 3000여 명, 이 가운데 노원구에 1000여 명, 강서·양천지역에 1300여 명이 살고 있다는 것이 탈북자동지회의 추산이다. 노원구, 강서·양천구에 새터민이 모여 있는 것은 이 지역에 영구임대아파트가 많기 때문이다. 통상 새터민들은 입국한 뒤 새터민 오리엔테이션 기관인 하나원을 거쳐 영구임대아파트를 배정받아 살게 된다.

탈북자들은 2005년 이전에 비해 정착금 규모가 1000만 원 정도 줄어들었다. 2005년부터 개정된 법률에 의거, 1인 2000만 원, 2인 2900만 원, 3인 3300만 원, 4인 3700만 원씩의 기본 정착금을 받는다. 과거처럼 한꺼번에 지급하는 제도도 사라졌다. 1인 탈북자의 경우 2000만 원 중 주거지원금 1000만 원, 초기 지급금 300만 원, 나머지 700만원은 2년에 걸쳐 매달 나누어 지급한다. 그래서 탈북 브로커들이 성공 보수로 목돈을 챙겨가는 악폐도 이제는 거의 사라졌다.

정착금이 일괄지급됐던 2004년 조사에 의하면 83%가 브로커를 통해 들어왔고, 1인당 평균 400만 원 가량을 브로커에게 뜯긴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악덕 브로커의 경우 탈북자가 임대아파트로 들어갈 때 현관에서 진을 치고 있다가 과다한 수수료를 요구하며 폭력을 행사했다.

통일부는 2005년 1월부터 새터민 정책을 ‘보호’중심에서 ‘자립·자활’ 중심의 정착지원으로 바꿨다. 자립의지를 갖춘 새터민에게 장기직업훈련, 자격증 취득, 장기취업 등 각종 자립장려금을 지급한다는 취지다. 1인당 최고 1540만 원까지 지급한다는 내용이었지만 이전 3600만 원에서 대폭 줄어든 액수다.

탈북자들은 직장 내에서의 과로보다 차별대우를 더 두려워한다. 탈북자라는 이유로 취업이 안 되는 경우 또한 비일비재다. 탈북자를 고용하면 보수의 50%를 국가에서 지원해주지만 탈북자를 선뜻 고용하는 기업은 드물다. 국내의 실업인구가 넘쳐나는 상황에 탈북자가 빈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기는 버거운 일이다.

양천구에서 만난 탈북자 김선자씨(45·가명)는 낮에는 파출부로 일하고 밤에는 파트 타임으로 음식점 주방보조 일을 한다. 한 달 벌이 80만 원 정도로 중학교,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자녀를 키우기가 버겁다. 남편이 한국에 와서 도배와 미장 교육을 몇 개월 받았지만 그 정도 실력으로 일감을 따기는 언감생심이다. 임대아파트의 월세와 관리비 20만 원을 내고 60만 원으로 생활을 꾸려간다. 2년간 분할 지급되는 돈은 고스란히 저축을 한다. 2년 후 1600만 원 정도의 목돈이 생기면 남편과 자그마한 가게를 차리는 것이 꿈이다.

새터민끼리는 교류도 거의 없다. 가족과 친인척들이 북에 있기 때문에 가급적 노출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탈북자 신분을 숨기고 조선족 행세를 하는 사람도 많다. 탈북자를 보는 눈이 훨씬 더 예민하고 차별적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남한 말에 익숙지 못해 일터에서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탈북동지회 김성민 회장은 “캐비닛 위에 있는 키를 가져오라는 말을 몰라 사장에게 혼나다가 회사를 그만둔 사람도 있다”고 말한다.

탈남 탈북자도 발생한다

생활고로 인한 탈북자의 범죄 행위도 빠른 속도로 늘어 2001년 54건, 2002년 89건, 2003년 90건이었다. 2004년에는 강도 등 강력 범죄를 저지른 탈북자가 93명이나 적발됐다. 탈북자를 상대로 돈을 뜯어낸 ‘탈북 조직폭력배’가 검거되기도 했고 탈북 여성들만 고용해 성 매매를 알선한 탈북자도 있다.

남한에서 학교 생활을 시작한 청소년들의 문제도 심각하다. 2005년 연세대 사회계열에 입학한 새터민 이진숙씨(22·여·가명)는 한 학기 만에 휴학했다. 이씨가 대학생활에서 처음 맞닥뜨린 벽은 돈이었다. 등록금은 국가에서 내주지만, 책값과 용돈이 부족했다. 이씨의 수입은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받는 매달 34만 원이 전부다.

이 돈으로 아파트 임대비 14만 원과 관리비 5만 원, 공과금을 빼면 세끼 밥 먹기도 힘들다. 책 한 권 살 돈 남지 않는다. 이씨를 힘들게 한 것은 돈뿐만이 아니었다. 문화 차이는 더욱 극복하기 힘들다. MT나 미팅, 각종 모임에 나갈 돈도 없지만 설령 나간다 해도 대학생들의 동아리 문화에 적응하기는 현재로선 거의 불가능이다.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424명의 새터민이 대학에 입학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학교를 중도에 그만둔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2000년 이후 연세대에 입학한 43명 중 2명이 자퇴하고 15명이 제적됐다. 휴학생도 10명이나 돼 재학생은 16명에 불과하다. 한국외대는 2002년 이후 입학한 52명 중 절반인 26명, 서강대는 2003년 이후 입학생 21명 중 8명이 제적·자퇴·휴학 등으로 학교를 등졌다. 국가에서는 등록금만 대주었고 대학은 이들의 적응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이 전무한 상태다.

이런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탈남’하는 탈북자도 발생했다. 2001년 9·11테러 직후 국경 검문검색이 강화된 가운데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밀입국한 ㅈ씨(40)가 그런 경우다. 현재 LA에 정착한 그녀는 미국의 불법 체류자 신분이 남한의 ‘탈북자’ 신세보다 100배는 더 낫다고 생각한다.

ㅈ씨는 자유를 만끽하면서 산다. 쫓아다니는 보안과 담당형사도 없고 직업을 구하지 못해 쩔쩔매지도 않는다. 차별도 느끼지 못한다. 영어를 못하지만 손짓 발짓과 토막영어로 운전면허증도 땄고 은행계좌도 텄다. 지난해 2월 뉴욕 체류 탈북자를 모아 ‘선한 북한사람들 모임’을 만들어 권익옹호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탈북자들은 금전적 지원 이전에 남한 사회의 실질적인 적응 프로그램의 정착이 탈북자 정책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민간단체가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들의 정착을 돕기 위해 운영하는 ‘자유시민대학’은 하나의 모델 케이스로 지목되고 있다. 5개월 코스의 이 대학을 수료한 탈북자 ㄱ씨는 “세금 정산, 창업, 부동산과 상권 연구 등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요한 ABC를 이곳에서 배웠다”고 말한다. 2002년 개교 후 매년 200명 이상의 탈북자들이 이 대학을 거쳤다.

1991년 입국해 연예인 사업가로 탈북자 최고의 성공기를 쓴 김용씨는 “탈북자들 사이에서도 제2, 제3의 정주영 회장이 나올 수 있도록 정착에 더욱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남한의 탈북자들이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야 북쪽에서도 시장경제의 우월성을 인정하게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탈북자 스스로 적응하는 노력을 보여주지 못하면 실패는 자명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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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김성민 탈북자 동지회장

“통일부 탈북자 업무 수행은 난센스”

탈북자 동지회장 김성민씨(45)는 1995년 10월 중국으로 탈북했다 강제 송환된 뒤 1996년 4월 재탈북, 1999년 2월에 남한에 정착했다. 자강도 희천 출신인 그는 북한의 대표적 작가 양성 교육기관인 평양 김형직사범대학을 졸업한 시인이다. 그는 현재 양천구 목동에서 탈북자 인터넷 라디오 방송인 ‘자유북한방송’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4월 28일에는 백악관에서 부시 미 대통령의 일본인 납북자 및 탈북자 가족 면담에 참석하기도 했다.

“부시 대통령에게 탈북자들에 대한 지원과 인권문제 해결을 위한 지원을 요청했어요. 우리 대통령보다 먼저 미국 대통령을 만나 북한 인권 문제를 논하려니 기분이 참 묘하더군요. 김정일 체제에 대한 환상은 금물인데 남한 사회에는 의외로 순진한 사람이 참 많아요.”

그는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이 무섭다고 말했다. 북한의 요구에 끝없이 밀리다가 탈북자들의 송환 요구에도 굴복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그런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 국민이 좌시하지 않는다”는 기자의 주장을 그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듣고 있었다. 대북 정책에 대한 불신감은 크고 깊었다. 그는 요즘 ‘심각한 스트레스’를 느낀다고도 말했다.

“그 스트레스의 본질은 탈북자의 존재 자체에서 기인하는 겁니다. 탈북자들은 김정일 체제에 환멸을 느껴 북을 떠나온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남쪽은 김정일과 끊임없이 합작하고 그를 도우려 하잖아요. 그 상황 자체가 엄청난 중압감을 초래합니다. 그럼 우린 뭐냐, 뭔가 주소를 잘못 찾아온 것이 아니냐, 하는 자괴감과 당혹감을 느끼는 거죠.”

그래도 그는 남한의 탈북자 정책에는 상당한 고마움을 표시한다. 작지만 아담하고 편리한 아파트를 제공받고, 적지 않은 액수의 정착금을 받고 있는 것에 감사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건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난민이나 망명자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나라는 한국 이외에는 없다. 그런데 그를 포함한 탈북자들은 이곳 남한 사회가 불편하고 힘들고 낯설게만 느껴진다.

“어쩌다 택시 기사와 대화를 나누다가 탈북자라는 것을 밝히면 굉장한 동정심을 표시해요. 우리가 지옥에서 천국으로 왔다는 겁니다. 지옥에서 온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천국에 온 것도 아니죠. 남한 사람들도 이 사회를 천국으로 생각하진 않잖아요. 배부른 소리로 들리겠지만 탈북자들이 정착하기에는 남한 사회도 무지하게 힘든 곳입니다.”

그는 남한의 대북 정책, 탈북자 정책을 이종석 통일부 장관이 주도한다고 믿는다. 그 시스템을 그는 ‘이종석 체제’라고 이름을 붙였다. 남한의 대북 정책이 이종석 체제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탈북자 정책에서 통일부가, 다시 말해 이 장관이 손을 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건 당연한 이치죠. 통일부가 무엇을 하는 곳입니까. 북한 정권과 남북 교류와 협력을 논하는 부처입니다. 그런 부서가 탈북자 문제에 적극적인 정책적 배려를 할 수 없죠. 솔직히 말해서 통일부는 북한 정권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단 말입니다. 딱히 소홀히 해서 섭섭하단 말을 할 수 없어요. 그러나 부처 자체가 지니고 있는 한계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겨요. 행자부라든가… 다른 부처로 탈북자 담당 부처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북한에서 벌어지는 광범위한 기아 상태에 대해서도 그 실상을 잘 믿지 못하는 남한의 세태를 개탄했다. “인민군대 만큼은 최고의 식사를 보장한다”는 북한 정권의 모토도 이미 오래 전에 붕괴했으니 나머지 인민들의 식생활은 더 이상 말할 나위가 없다는 것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인민군의 부식 공급은 거의 자급자족입니다. 쌀과 소금밖에는 지급이 안 됐어요. 나머지는 자체 조달이죠. 콩을 심어 수확해서 인근 공장에 가져다주고 된장과 간장을 공급받는 겁니다. 지금은 어떤지 저도 잘 모르지만 1990년대 중반 제가 군복무할 때 평남 안주 탄광 지역에서 수없이 쓰러져 있는 아사자들을 목격했어요. 영양실조로 쓰러진 병사의 고향이 그곳이라 제가 보호자로 귀향을 인도했는데 거기서 참상을 본 것이지요. 그 친구는 차라리 군대에 있는 것이 더 나을 뻔했어요.”

2005년부터 정착금의 일괄 지급이 중단된 것에 대해서도 그는 아쉬움을 표시했다. 당시 엄청나게 횡행했던 소위 ‘기획 탈북’의 폐해를 막으려는 것이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북한 주민의 탈북의 꿈과 의지를 꺾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정착금을 노린 브로커가 개입한 탈북이 성행했던 것은 사실이죠. 그런데 정착금을 분할 지급하기 시작하면서 탈북은 더 힘들어졌어요. 기획탈북을 막자는 의도보다 탈북자의 숫자를 줄여보자는 정부의 의도가 관철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게 돼요. 정착금을 탈북 자금으로 당겨쓰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지만 그런 부작용을 과대평가하기에는 탈북자들의 염원이 너무도 절실한 거죠. 생명을 걸고 도모하는 그 행위 안에는 뭔가 절실하고 치열한 동기가 있겠지요. 우리 정부가 그런 ‘인간의 마음’들을 제대로 헤아렸으면 합니다.”

[경향신문 객원기자 한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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