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소설가)
근대에 대중이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사회의 논점들은 모두 정치화되었다. 자연히, 정치적 열정이 사회를 지배하게 되었다. 불행하게도, 정치적 열정은 거의 필연적으로 정치적 증오로 표출된다. 그래서 정치적 증오를 성공적으로 부추기는 정치 이념들과 집단들이 득세하게 된다. 공산주의 정권들과 민족사회주의(national socialism) 정권들의 득세는 이 점을 잘 보여주었다.
근년에 우리 사회에서도 정치적 증오를 이용해서 권력을 잡고 유지하려는 경향이 부쩍 커졌다. 공격할 대상들을 찾아내서 악마(demon)들로 만들어 다수의 지지를 얻는 것은 전체주의 세력이 늘쓰는 전략이다. 현 정권은 드러내놓고 그런 전략을 써왔으니, 안으로는 `재벌`과 `수구 언론`을, 밖으로는 미국이나 일본과 같은 `외세`를, `악마화 된 적들(demonized enemies)`로 삼아 정치적 성공을 거두었다. 요즈음 갑자기 중심적 논점이 된 `양극화 문제`에서도 그런 전략을 이내 읽어낼 수 있다.
문제는 양극화가 아닌 가난이다.
현 정권에 따르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은 점점 가난해지고 부유한 사람들은 점점 부유해진다. 현 정권은 그런 `양극화`를 막을 강력한 처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 문제의 본질은 가난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문제지, 부유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그들 가운데 일부는 엄청난 부를 누린다는 것도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이 문제는 관행에 따라 `가난의 문제`로 불려야 맞다. `양극화 문제`로 불려야 할 까닭이 전혀 없다.
양극(兩極)은 상반된 성격을 지닌 두 개의 극들이 존재하는 상태를 뜻한다. 익숙한 예를 들면, 자기(磁氣)에는 양극(暘極)과 음극(陰極)이라는 상반된 극들이 존재한다. 그것들은 그저 둘로 나뉜 것이 아니라 한 현상의 상반된 측면들이며 성격에서 정확하게 반대다. 따라서 한 극은 다른 극과 본질적으로 연결되었고, 한 극이 다른 극을 나오게 한다는 진술은 비록 어색하지만, 아주 그르지는 않다. 가난과 부유 사이의 관계는 그렇지 않다.
첫째, 가난과 부유는 상대적이지 대척적이 아니다. 부유한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은 재산과 소득에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따름이다. 가난한 사람도 행운이나 재능 덕분에 단숨에 부유해질 수 있고 부유한 사람도 불운이나 방탕으로 단숨에 가난해질 수 있다.
다음엔, 가난과 부유 사이엔 직접적 인과 관계가 없다. 가난한 사람들 때문에 부유한 사람들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 반대도 아니다. 실은 가난한 사람들과 부유한 사람들의 절대적 재산과 소득은 대체로 함께 움직인다. 경제가 성장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재산과 소득이 늘어나고, 경제가 침체하면, 그 반대다.
셋째, 양극은 변하지 않는 상태다. 두 극이 한 현상의 대척적 측면들인 만큼, 그것들은 서로 의존하며, 자연히, 한 극을 없애려면, 다른 극을 아울러 없애야 한다. 그러나 가난과 부유는 그렇게 본질적으로 연관되지 않았고 바뀌지 않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 정치적 목적을 위한 의도적 왜곡이 나온다. 가난의 문제를 양극화 문제로 표현함으로써, 현 집권 세력은 부유와 가난 사이에 무슨 본질적 관련이 있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려면 부유한 사람들을 없애거나 징벌적 과세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노 정권은 재산불평등을 심화시킨 주범이다.
그러면 우리 사회의 현황은 어떠한가? 실제로 소득의 불평등이 걱정스러울 만큼 심해지는가?
어느 사회에서나 소득이 완전히 평등할 수는 없다. 실은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따라서 한 사회의 소득 불평등도의 심각성을 판단할 절대적 기준을 찾기 어렵고, 한 사회의 소득 불평등도를 평가하려면, 다른 나라들의 경우들과 비교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 비교는, 통념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소득 분포가 상당히 평등한 것을 보여준다.
1990년대 중엽 우리나라의 소득 분포는 상당히 좋았다. 우리나라보다 소득 분포가 나은 나라들은 대부분 북유럽의 작고 발전된 나라들이었다. 우리와 크기가 비슷한 나라들 가운데 우리보다 나은 나라들은 많지 않았다.
1997년에서 1998년 사이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의 소득 분포는 상당히 불평등해졌다. 이어 현 정권 아래서 소득 불평등도는 더욱 깊어졌다. 그래도 지금 우리의 소득분포는 상당히 평등하니, 한국의 1인당 소득은 세계 28위이지만, 소득평등도는 13위다. 한국이 거의 모든 지수들에서 OECD 국가들 가운데 최하위라는 사정을 생각하면, 이런 사정은 상당히 뜻밖이고 고무적이다.
물질적 삶에서 경상 소득과 더불어 재산도 당연히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재산의 불평등은 소득의 불평등보다 훨씬 심하다. 따라서 주식과 부동산 가격의 상승은 재산의 절대적 격차를 늘릴 수밖에 없다. 현 정권 아래서 주식과 부동산 가격은 가파르게 올랐다. 자연히, 부동산과 주식을 많이 가진 부유한 사람들은 더욱 잘 살게 되고, 자산이 거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졌다. 주식 가격의 상승은 일단 좋은 현상으로 볼 수 있지만, 부동산 가격의 갑작스러운 상승은 현 정권의 무지막지한 부동산 정책 때문이다. 따라서 재산에서 불평등이 깊어진 것은 책임이 오롯이 현 정권에 있다.
이상에서 살핀 것처럼, 현재 우리 사회에서 소득 분포의 불평등은 일반 시민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덜 하고 현 정권이 시민들로 하여금 믿게 하려는 것보다 훨씬 덜 심각하다. 다른 편으로는, 소득과 재산의 불평등도는 현 정권의 잘못된 정책들로 크게 심화되었다.
노 정권이 말하는 분배가 아닌 경제성장만이 살 길이다.
그러면 우리 사회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방책들로는 어떤 것을이 있는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려면, 경제성장을 통해서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 일자리를 늘리는 것은 실업자들을 줄여서, 가난해지는 사람들을 줄일 뿐 아니라 이미 가난해진 사람들이 가난에서 벗어나도록 돕는다. 현 정권이 들어선 뒤로, 경제정책의 근본적 실패로 실직자들이 많아지고 소득이 낮은 서비스업 일자리들이 비중이 높아졌다. 당연히,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무엇보다도 긴급하다.
다음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특히 그들의 자녀들을 위한, 교육에 보다 많이 투자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적 이동성을 늘려서, 가난의 세습을 막는 길로는 역시 교육이 기본이다.
셋째, 사회안전망을 합리적으로 설계해서 시행하는 일이 긴요하다. 좋은 방책은 음소득세제(negative income tax)를 통해서 사회안전망의 부작용을 줄이는 것이다. 모든 사회보장 제도들의 근본적 문제점은 그것들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일할 의욕을 잃게 되는 `의욕 저상(disincentive)`이다. 음소득세제는 이 까다로운 문제를 깔끔하게 푼다.
넷째, 가난한 사람들이 재산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집을 장만하고 최소한의 금융 자원을 지니도록 해야, 빠르게 심각해지는 재산에서의 불평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 목표를 이루는 길로는 우리 정부가 지닌 방대한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냥 또는 아주 헐값에 나누어주는 방안이 가장 효과적이다. 이 방안은 정부 재산이 효율적으로 쓰이도록 하며 근년에 우리 사회에서 짙어진 사회주의적 특질을 옅게 하는 데도 이바지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현 정권이 가난의 문제를 풀기 위해 추진해왔거나 내놓은 정책들은 대체로 비효율적이거나 가난의 문제를 오히려 깊게 만든다. 가장 큰 문제들을 일으켜온 것은 노동조합에 대해 비합리적으로 편향된 정책들이다. 노동조합이 강성하면, 많은 문제들이 나온다는 것은 거의 모든 경제학자들이 인정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노동조합은 특히 강성하고 전투적이다. 그러나 정부는 기업가들과 주주들의 재산권을 보호하려는 최소한의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 상황이 부른 가장 큰 문제는 물론 기업들의 위축과 일자리의 감소다.
현 정권이 추진한 다른 정책들도 모두 민중주의적 정책들이어서 가난을 늘렸다. 특히 빈곤층을 늘리고 사회적 이동을 어렵게 만들었다. 민중주의적 정책들은 정부를 키우고 시장을 줄인다. 그래서 경제가 비효율적이 되고 일자리가 줄어든다. 시장이 위축되면, 대신 정부가 나서서 생산성이 낮은 일시적 일자리들을 만들어낸다. 그런 민중주의적 정책들은 필연적으로 경제의 정체와 경기 불황을 부른다. 불황이 닥치면, 정부의 지원을 받는 공공부문은 살아남지만, 경쟁력이 약한 중소기업들은 몰락한다. 그래서 현 정권의 경제 정책들은 가난과 불평등을 깊게 만들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신분이 안정된 공무원들이 되기 위한 `고시 열풍`은 이런 사정을 반영한다.
노 정권의 양극화 주장은 국민 분열의 술수다.
위에서 살핀 것처럼, `양극화 문제`의 문제는 그것이 잘못된 표현이어서 문제를 더 어렵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 말을 쓰는 한, 우리는 가난의 문제를 제대로 진단하지 못하고, 당연히, 좋은 처방을 내놓지도 못한다.
물론 현 정권은 정치적 고려에서 그 말을 일부러 골랐고 앞으로도 그 말을 고집할 것이다. 합리적 시민들은 그래도 그 말이 잘못된 말이고 그것 자체가 새로운 문제들을 부른다는 것을 기회가 나올 때마다 지적해야 한다. 아울러 가난한 사람들이 늘어난 데엔 잘못된 정책들을 편 현 정권에게 큰 책임이 있다는 사실, 그래서 현 정권은 `양극화 문제` 해소를 외칠 도덕적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양극화 문제`를 외쳐 정치적 증오를 부추기는 것은 모두에게 위험하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정치적 증오가 한번 커지면, 그것을 부추긴 정치 지도자도 그것을 통제할 수 없게 되어 화를 입게 된다는 사실을 현 정권은 깨닫도록 해야 한다.
출처 : 민족정론 2006년 6월호
"양극화는 공산주의자들 언어 전술"
- 복거일(민족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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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5-31, 12: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