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영웅/트루먼의 10초 걸린 결단

에치슨 장관의 보고를 받은 트루먼 대통령은 "저 자식들을 무슨 수로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10초만의 결단이었다.


1950년 6월25일 김일성이 스탈린과 모택동의 지원을 약속받고 동족을 치는 전면 남침을 해왔을 때 해리 S.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고향인 미조리주 인디펜던스에 휴가차 가 있었다. 딘 에치슨 국무장관이 '이번 사태는 전면적인 대규모 군사행동이다'라고 보고하자 트루먼은 이렇게 말했다.
'딘, 그 자식들을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저지해야 합니다'
(Dean, we've got to stop the sons of bitches no matter what'
트루먼은 미국의 첨전을 결정하는 데 10초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이 결단으로 대한민국은 망하지 않게 되었고, 지금 4800만 명이 자유와 번영속에서 살고 있다.
트루먼의 이런 결단은 그가 공산주의의 악마성을 정확히 파악했기 때문이었다. 2차대전 때 미국이 스탈린의 소련을 지원하고 있을 때도 그는 루스벨트나 국무부 고관들처럼 소련과 공산주의에 속지 않았다. 그는 스탈린과 히틀러는 똑 같은 독재자라고 생각했다. 그는 아내에게 쓴 편지에서 '스탈린도 히틀러나 알 카포네 같이 믿을 수 없는 자'라고 했다. 트루먼은 또 히틀러의 나치군대가 소련을 침략하자 '만약 독일이 이기고 있으면 러시아를, 러시아가 이기면 우리는 독일을 지원해야 한다. 그리하여 자기들끼리 가능한 많이 죽이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1차 세계대전 때 참전했고 소령으로 전역한 뒤에도 주방위군에서 일하면서 예비역 대령까지 올랐던 트루먼은 소련의 본성이 근본적으로 組暴(갱스터)국가라고 보았다.

공산주의의 본질에 대해 정확한 시각을 가진 그였기에 스탈린이 2차대전의 여세를 몰아 세계赤化 전략을 추진할 때 단호하여 이를 저지하는 결의를 하고 실천에 옮길 수 있었다. 냉전은 트루먼이 혼자서 시작한 것이 아니다. 스탈린이 유럽의 점령지를 공산화하고 세계 곳곳에서 정부전복 활동을 벌이자 자유진영을 수호하기 위하여 미국이 나서면서 냉전의 막이 올랐다.
대한민국의 건국과 호국 과정 때 미국의 지도자가 트루먼이었다는 점이 우리를 구했다. 김일성 김정일에 비교하면 스탈린은 양반중에도 상양반이다. 그런 김정일에 대해 '저런 자식은 어떤 경우에도 몰아내야 해'라고 말할 수 있는 신념의 지도자가 한국에서 대통령이 될 때 국민들은 다리 뻗고 잘 수 있을 것이고 북한동포들도 희망을 갖게 될 것이다. 지도자의 도덕적 결단은 역사를 움직인다.
朴대통령은 여러번 일기와 연설에서 김일성을 '만고역적' '전쟁광' '미친 개'라고 저주했다. 그는 김일성을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 이런 도덕적 우월감이 김일성을 코너로 모는 원동력이었다. 盧 대통령은 김정일을 향해서 '저 자식'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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