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대서양에서 빙산에 충돌하여 침몰한 영국의 호화여객선 타이타닉호에 대한 통계가 있다. 1500여명이 침몰한 배에 남았다가 죽었고, 그 정도 숫자가 17척의 구명보트에 옮겨가 구조되었다. 1등석 승객중에서 어린이 전원과 144명의 여성중 139명이 살았고 남성은 70%가 죽었다. 어린이와 여성들을 우선적으로 구명보트에 태웠기 때문이다.
2등석 손님중에선 여성의 80%가 구조되었고, 남자의 90%가 죽었다. 1,2등석 손님들은 당시 미국과 영국의 최상류층이었다. 미국 최고의 부자라고 불리던 존 제이콥 아스톨씨는 아내를 데리고 와서 보트에 태운 뒤 동승하기를 거부하고 배에 남아 있다가 죽었다. 또 다른 巨富 벤자민 구겐하임은 자신에게 돌아온 보트의 자리를 여성에게 양보하고 죽었다. 그는 그 여성에게 '내 아내에게 내가 정정당당하게 행동했다고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월남전 때 미군 사령관이었던 웨스터모어랜드 장군은 미국의 정예 공정사단의 사단장으로 근무했던 적이 있었다. 이 부대가 낙하 훈련을 했다. 물론 그도 뛰어내렸다. 그날 강풍에 휘말려 부대원 7명이 죽었다. 다음날도 강풍이 불었으나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은 낙하 훈련을 중단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다만, 자신이 먼저 뛰어내려 강풍을 확인해볼테니 기다려보라고 했다. 사단장이 홀로 낙하했다. 着地엔 성공했으나 낙하산이 强風에 휩쓸려 끌려가다가 겨우 정지했다. 그는 부하들에게 지시하여 훈련을 중단시켰다.
영국의 자유민주주의는 누가 만들어서 준 것이 아니라 자본가들이 王權과 싸워 쟁취한 것이다. 그들은 富에 따른 명예와 의무를 생활신조로 삼았다. 영국의 신사는 힘 센 사람이 아니라 '신사답게 행동하는 사람들'이었다. 대부분이 자본가였다. 체제를 만든 사람들이 그 체제의 혜택을 보면서 또 그 체제를 지키기 위해서 희생할 자세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영국의 자본가들은 독재자와 선동가로부터 자유를 지켜낼 수 있었다.
오늘날 한국 자유민주체제의 가장 큰 수혜자인 자본가와 기업인들은 애국운동단체를 돕지 않는다. 오히려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敵들을 돕고 있다. 그들은 독립투사들과 군인들과 혁명가들과 엘리트 관료들이 만들어준 체제의 혜택만 볼 뿐 체제를 싸워서 지켜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는 비겁한 富者들이다. 그러니 좌파들의 밥이 되는 것이다.
19세기말 영국이 인구 3억의 인도를 다스릴 때 인도엔 약15만 명의 영국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 가운데 6만 명은 군인이었다. 영국 군인들은 이 광활한 대륙의 변경에 퍼져서 주둔했으므로 보통 인도인들은 영국 군인들을 볼 수도 없었다. 어떻게 하여 이런 少數로써 多數를 다스릴 수 있었는가.
인도행정청(India Civil Service: ICS)이 그 비밀이었다. 인도행정청에는 약1000명의 영국 공무원들이 근무했는데, 이들이 인도 각지에 파견되어 식민지 행정을 맡았다. 이 천명이 사실상 3억 인구를 다스린 것이다. 이 3억 인구는 언어만 해도 20가지이고 지방語는 셀 수 없을 정도인데다가 종교 인종도 각양각색이었다. 이런 인도를, 영국 공무원 한 사람이 30만명씩 안정적으로 관리했던 셈이다. 이 불가사의한 행정의 비밀에 대한 연구서적이 최근에 출판되었다. 데이비드 길모어(David Gilmour)라는 사람이 쓴 '지배계급'(The Ruling Caste: 출판은 Farrar, Straus, Giroux, 381페이지, 27 달러)가 그것이다.
인도행정청에서 근무할 영국인을 뽑고 훈련하는 과정에서 영국정부는 애국심과 자부심에 기반한 公人윤리를 반복교육으로 깊게 심었다. 학생들은 인도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었다. 영국정부는 이들에게 그런 현지 관련 지식보다는 '제국의 魂'을 심어주는 데 주력했다. 인도에 대한 지식은 현지에 부임하여 배우도록 했다. 그 대신 大英제국의 知的이고 도덕적인 우월성에 대한 교육이 행해졌다. '유럽 도서관 한 개의 선반위에 올라 있는 책이 인도와 아라비아 전체의 문학작품을 모두 모은 것보다 더 우수하다'는 식의 교육이었다.
著者 길모어씨는 이 책에서, '제국주의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제' 정신으로 무장한 이 젊은 관료들은 '책임을 떠 안는 것의 쾌감'을 간직하고 어떤 경우에도 조국을 실망시켜서는 안된다는 마음이 강했다고 분석했다. 이들이 인도에 가서 부임하는 곳은 교통이 불편한 奧地(오지)인 경우가 많았으므로 무슨 사고가 일어나도 상부 지시에 따라서 행동할 수가 없다.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결단력이 요구된다. 영국관료들은 실용주의와 상식에 기초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습관을 부임 초기부터 터득해나갔다.
소요사태를 예방하려면 우선 지배층이 민중을 자극하지 않아야 했다. 영국관료들은 인도사회의 풍습이나 사회적 관행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았다. 다만, 남편이 죽으면 부인을 불태워죽여서 순장하는 식의 야만적인 풍습은 금지시켰다. 인도사람들은 세금을 내고, 지역관리들을 죽이지만 않는다면 영국인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살 수 있었다. 영국관리들은 그들이 다스리는 현지의 언어에 숙달해야 했다. 이 식민통치 관리들의 행동윤리는 피지배층을 대할 때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듯이 자선적이고, 공평하며, 청렴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영국관리들은 절대로 뇌물을 받지 않는다'는 인도민중의 定評이 이들의 통치를 수월하게 해주었다.
인도는 독립한 뒤에도 영국행정청의 이름을 India Administrative Service로 바꾸고 그 골격을 이어갔다. 물론 영국인은 인도관리로 교체되었다. 인도는 영국관리들이 남긴 전통, 즉 자선적이고 공평하며 청렴한 공직규범을 그대로 계승하여 오늘날 세계최대의 민주국가를 운영하고 있다. 영국 행정관료의 전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慈善, 公平, 淸廉은 어느 시기, 어느 나라에서도 통용될 수 있는 국가엘리트의 행동규범이다. 영국의 인도통치의 예에서 보듯이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기도 하다. 자선, 공평, 청렴의 행동규범을 뒷받침한 것은 애국심과 자부심이었다.
국가, 전통, 그리고 자신에 대한 자존심으로 무장한 국가엘리트가 이끌어가는 대한민국은 언제 만들어질 것이며, 이런 엘리트 집단을 양성할 국가적 교육기관은 또 어떻게 만들 것인가.
李承晩 대통령은 독립투사 엘리트의 대표였고, 朴正熙 全斗煥 盧泰愚는 군 장교단의 대표였다. 이들은 국가를 찾겠다고 싸우고, 국가를 지키려고 고민하고 피를 흘리는 과정에서 國益을 중심에 놓고 思考하는 습관을 길렀다. 그 뒤에 등장한 소위 민주투사 출신들은 당파, 지역, 계급의 이익을 국민과 국가의 이익보다 우선시키면서 국가 엘리트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고 말았다. 이 민주투사 출신들은 역대 정권과 싸우는 과정에서 정권과 국가를 혼동하였다. 그들은 정권에 대한 유감이 국가에 대한 유감으로 변질됨으로써 애국심의 근저를 이루는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역사와 전통에 대한 존중심을 상실하고 말았다. 그러니 정권을 잡고도 대한민국의 주인이란 의식보다는 손님의식, 또는 백성의식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좌파정권 담당자들에게 국민들에 대한 善意와 공평과 청렴을 기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동떨어지게 보이는가.
역사, 철학, 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애국심과 자부심으로 자신을 가득 채운 국가 엘리트층의 再建이 바로 가장 중요한 대한민국 再建사업이다.
두 달 전 서울의 부자동네 사람들이 많이 나온 모임에 갔다. 구청장이 자랑을 했다.
'그곳에 임대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라는 정보를 미리 입수하니 앞이 캄캄했습니다. 우리 區가 무너질 것이란 위기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서울시를 설득하여 그곳에다가 테니스장을 짓기로 했습니다'
강북에 사는 나는 이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공무원이 이런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해도 되나'하는 생각이 하나이고, 이런 말을 듣고도 모두가 잘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이 부자마을 사람들의 양심은 도대체 몇 원짜리인가 하는 분노였다.
임대아파트가 옆에 들어서면 주거, 교육환경이 나빠지고, 아파트 값이 떨어진다고 건축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는 부자들이 있기 때문에 좌파들이 득세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양극화 선동'이 먹히는 것이다. 임대아파트 입주자를 마치 백인이 흑인 보듯이 하면서 합법적인 건축을 방해하는 이런 부자들이야말로 한국 사회를 계급적으로 분열시키는 사람들이며 도덕적으로 평가해도 친북좌파보다 못한 존재이다. 임대아파트가 들어선다고 용감하게 억지를 부리는 부자들일수록 평소엔 호화판 생활을 즐기면서 애국운동을 기피하고, 투표일엔 외국여행을 나가는 경우가 많다. 좌파의 도전에 대한 위기의식도 거의 없다. 자신들의 자유와 재산은 그 누군가가 대신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富者들은 김정일과 그 추종세력의 위협에 직면해서도 자신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서 싸우지 않는다. 모든 생명체는 생명체로서의 존립을 위협하는 외부 세력에 대해서는 싸워야 할 생명체로서의 의무가 있다. 생명의 핵심은 자유이다. 자유를 위협하는 세력에 맞서 싸우지 않는 순간 그런 생명체는 생명력을 잃고서 無생물이 되는 것이다. 밟았을 때 꿈뜰대는 지렁이는 생명체이지만 밟아도 반응이 없는 것은 생명이 아니라 시체이든지 돌과 같은 무생물이다. 무생물체는 자유를 상실하여 아무런 가치가 없으므로 쓰레기 취급을 받아도 할 수 없다.
친북좌파들은 자신들의 존립을 보장받기 위하여 피나는 투쟁을 계속해왔다. 여론과 언론과 권력면에서 압도적으로 불리한 조건하에서도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가치를 지키고 확장하기 위하여 싸웠다. 그들의 지향점은 틀려먹었으나 생명체로서의 의무는 다한 셈이다. 따라서 도덕적으로 봐서도 싸우는 좌파는 안 싸우는 우파보다 우월하다.
가장 경멸해야 할 부류는 못사는 사람들에게 못되게 굴면서 권력을 쥔 좌파에 대해서는 싸움을 기피하고 굴복해버리는 '잘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오만함으로써 좌파들을 키웠고 비겁함으로써 좌파들을 강화시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2007년 大選에서 사이비 좌파를 물리치고 정상적인 사람이 이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강남사람들부터 보다 겸손해지고 보다 용감해져야 할 것이다.
타이타닉호에서 죽음을 택한 부자들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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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6-07, 00: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