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좌파연합 세력과 싸워야 하니 우파세력을 총동원하지 않고선 大選 필패.
한국의 좌파는 왜 자동적으로 반역자인가?
좌파는 역사적으로, 구조적으로, 생래적으로 반역의 길을 걷게 되는데 문제는 그들이 정권을 잡았다는 점이다.
趙甲濟
한국 현대사의 지향점은 근대화와 국민국가건설을 완성한 여세를 몰아 자유통일하고 일류국가를 만든다는 것이다. 지난 60년간 한국인들은 다른 선진국이 수백년에 걸쳐서 이룩한 건국-호국-산업화-민주화의 네 단계를 해치웠다. 이 과정에서 한국인들은 해양정신-기업가정신-尙武정신-자주정신을 재발견했다. 이런 기적이 가능했던 것은 자유민주체제, 韓美동맹, 실용적 지도노선, 그리고 근면한 국민들의 존재 덕분이었다.
나는 지난 60년간의 네 단계 발전과정을 근대화 과정 또는 국민국가 건설과정이라 부른다. 이 근대화 과정은 자유통일을 해야만 일단락되고 다음 단계인 선진화, 즉 일류국가 건설로 전환된다. 한민족사상 가장 위대한 세대로 불리게 될 한국의 기성세대는 근대화 과정을 통해서 경제력과 군사력 기준으로 세계 10위권에 드는 근사한 나라를 만들어 후대에 넘겨주면서 이렇게 유언 아닌 유언을 했다.
'우리는 無에서 이런 나라를 만들었다. 너희들은 이 나라를 일류국가로 승격시키고 행복하게 살아라'
할아버지 부모 삼촌 세대에게 감사하면서 선진국 건설로 매진해야 할 젊은 세대중 상당수는 좌파의 속삭임에 넘어가 조국과 조상과 부모세대의 업적을 격하하고 이들의 약점을 잡고 흠집내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다.
대한민국이란 건강한 몸 속으로 '386 주사파'라는 바이러스가 들어온 것이다. 이 바이러스는 정권의 회로를 따라서 대한민국의 뇌, 심장, 신경계통에 주로 침입하여 국가의 기능을 파괴, 마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대한민국은 자유통일-일류국가 건설을 눈앞에 두고 주저 앉았다. 자유통일-일류국가 노선 이외에 다른 두 갈래 길이 나타났다. 분단고착-3류국가화, 적화통일-원시국가화의 가능성이 그것이다.
일류국가를 왜 만들어야 하는가? 인생은 어차피 一期一會, 즉 한번밖에 없다. 그렇다면 인생은 소중하게 살아야 한다. 북한에서 200년을 사는 것보다는 대한민국에서 60년을 사는 것이 더 행복한 것 아닌가. 일류국가는 행복하고 보람되고 창조적인 삶, 즉 멋진 인생을 보장해준다.
일류국가는 일류시민과 일류제도와 일류國力의 결합체이다. 일류국가의 모태는 자유와 자율성이다. 한국이 지난 60년간 근대화-선진화 노선을 자신 있게 걸어온 가장 큰 이유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를 채용함으로써 한국인들이 자유와 경쟁속에서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386 주사파나 노무현이나 김정일로 상징되는 좌파는 이 자유와 자율성을 파괴하거나 제약하려는 이념의 포로들이다. 좌파로써는 절대로 일류국가 건설이 불가능하다. 이것이 우리가 좌파의 도전을 극복해야 할 이유이다. 좌파로써는 자유통일도 일류국가 만들기도 행복한 人生도 안되는 것이다.
좌파는 한국인이 피, 땀, 눈물로써 만들어낸 일류국가의 꿈을 깨려는 세력이다. 우리의 행복한 인생을 파괴하려는 세력이다. 그들은 평화, 민족, 자주, 통일, 개혁, 평등과 같은 좋은 말을 가져가서 가장 유효한 정치적 무기로 삼은 뒤 국민들을 속인다. 그들은 관념의 포로이다. 말로써, 구호로써 天國을 만들 수 있다고 착각한다. 말에 잘 속는 한국인들이 여기에 넘어갔다. 좌파는 사람과 국가의 가장 중요한 문제가 '먹고 사는 것'이라는 점을 부인한다. 그들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모자라기 때문에 '먹고 사는 것'보다 민주주의, 민족정기, 도덕성, 개혁성이 더 중요하다고 선전한다. 이런 말장난을 경멸한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들, 즉 李承晩과 朴正熙들은 '사람이란 존재는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면 자동적으로 민주주의를 하게 되어 있다'는 실용적 관점에 서서 묵묵히 경제와 안보 제일주의를 밀고 나감으로써 민주화로 가는 길을 닦았던 것이다.
1998년 이후 좌파가 한국의 정권을 잡은 다음 한국 사회는 실천력보다 말장난이 판을 치는 친북, 분열, 저질의 길을 걸어갔다. 좌파의 가장 중요한 정책은 소외된 인간의 분노와 증오를 자극하여 자기 편으로 돌려세우는 것이다. 이런 좌파가 득세하면 패륜아나 무능자, 나태자들이 한 사회, 한 조직, 한 국가의 주도권을 잡는다. 좌파는 권력을 잡아도 거짓선동과 분열책으로써 끊임없이 다수 보수층을 약화시키지 않으면 권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생래적으로 양극화 선동 같은 숫법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좌파는 계급투쟁론의 시각에서 사회를 분석하고 처방을 내리므로 계급정당이 허용되지 않는 국민국가 안에서도 존재하지도 않는 계급적 敵을 만들고 이 敵에 대한 증오심을 고취함으로써 자기 편을 유지, 강화해가려고 한다. 분열책동은 좌파의 운명이다.
한국의 좌파는 유럽의 좌파와 또 다른 역사적 업보를 지고 있다. 한반도 좌파의 본산인 북한정권과 이념적 대결을 하고 있는 우파 대한민국내에서 좌파가 된다는 것은 자동적으로 반역성을 띤다. 더구나 한국의 좌파는 우파에 의해 소탕된 역사적 과거로 해서 거의 생래적으로 대한민국에는 적개심을, 김정일 정권에 대해서는 호감을 갖는다. 한국의 좌파는 역사적으로, 구조적으로, 생래적으로 반역의 길을 걷게 되는데 문제는 그들이 정권을 잡았다는 점에서 일어난다.
노무현과 정권의 반역적 행태 연구
'좌파의 속성인 계급투쟁론은 국가를 특정 계급의 전유물, 즉 한 단체로 인식함으로 국가 정통성에 대한 존중심이 없다. 민족사적 정통성이 어느 쪽에 있느냐를 놓고 체제의 死活을 건 싸움을 벌이고 있는 한반도에서 이런 국가관의 소유자는 반드시 조국을 배신한다.'
좌파가 한국에서는 자동적으로 反헌법, 反국가적 세력, 즉 반역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렇다.
좌파의 계급투쟁론적 세계관과 국가관이 국민국가인 대한민국 헌법에 위반된다. 우리 헌법은 계급정당을 不許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 즉 우파만 허용한다. 계급투쟁론은 사회를 계급이나 계층으로 갈라놓는 정책으로 나타나 공동체를 분열시킨다. 좌파의 속성인 계급투쟁론은 국가를 특정 계급의 전유물, 즉 한 단체로 인식함으로 국가 정통성에 대한 존중심이 없다. 민족사적 정통성이 어느 쪽에 있느냐를 놓고 체제의 死活을 건 싸움을 벌이고 있는 한반도에서 이런 국가관의 소유자는 반드시 조국을 배신한다.
盧武鉉씨가 대통령이 된 뒤에도 대한민국 건국을 '분열정권의 수립'이라고 공언한 것은 자신이 대통령으로 있는,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든 대한민국의 민족사적 정통성을 부인한 것이다. 대통령이 된 후 한번도 김정일 정권을 비판한 적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는 민족사적 정통성을 놓고 다투는 타협이 불가능한 남북한 대결에서 사실상 북한정권 편을 들고 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오늘날 한국의 위기는 여기서 출발하고 있다. 국가반역을 저지하고 國基, 즉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는 것이 제1 임무인 국군통수권자가 반역적 역사관과 국가관의 소유자란 점이다. 이런 전제하에서 그가 지난 3년여 기간중 시행해온 정책이나 언동을 살펴봄으로써 사실검증을 한번 해보자.
1. 그의 언동은 대한민국 건국의 지도자인 李承晩과 호국의 공로자인 맥아더와 근대화의 기수인 朴正熙와 대한민국 주류세력인 보수층에 대해서 공격적이거나 냉소적이며 적대적이다.
2. 6.25 때 유엔군 사령관으로써 김일성의 남침의지를 꺾고 北進을 지휘하여 자유통일 직전까지 갔던 맥아더에 대해서 한반도 감사의 말을 한 적이 없는 그는, 침략군을 보내 통일을 저지하고 대한민국을 없애려 했던 毛澤東을 존경한다.
3. 기회만 있으면, 그것이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현충일이라도 李承晩 朴正熙를 수도 없이 공격해온 그는 민족의 원수인 김일성 父子를 비판한 적이 없다. 그 이유는 좌파적 국가관으로 인해 대한민국에 반대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설사 김일성 父子가 600만 명의 동족을 죽게 한 인물이라고 해도 비판의식이 작동하지 않는 때문인 듯하다.
4. 이런 계급적, 좌파적, 反헌법적, 따라서 반역적인 국가관에 기초한 그의 안보 외교 정책도 마찬가지 경향을 보인다. 대한민국의 敵인 북한정권에 대한 그의 무비판적 굴종 자세는 북한의 동맹국인 중국에까지 연장되었다. 중국의 행패, 예컨대 탈북자를 잡아 死地로 보내는 행위나 黃砂를 한국으로 날려 보내는 행위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5. 그는 한국의 동맹국인 미국과 협력국인 일본에 대해서는 對中, 對北굴종태도와는 전혀 다른 대결적 자세를 보인다. 그 한 예로 그는 韓美 두 나라 대통령이 공유하고 있는 戰時작전통제권에 대해서 '환수'라는 표현을 써 이것이 마치 미국에 의하여 독점되고 있다는 식으로 사실을 왜곡함으로써 사실상 反美를 선동하고 있다.
6. 좌파의 계급적이고 분열적인 국가관에 기초한 정책을 펴온 盧武鉉 대통령은 계급적 동지로 간주되는 친북좌익세력의 불법과 폭력을 사실상 비호해왔다. 국군통수권자인 그는 평택에서 발생한, 김정일의 전위대를 주력으로 한 좌익무장폭동에 대해서 국군이 총칼로 진압하지 못하도록 敵前무장해제시키고 방패만 들고 나가게 하였다. 그 결과 국군이 좌익몽둥이부대한테 얻어맞고 쫒겨다니도록 유도했다. 여론이 들끓어도 盧대통령과 좌파적 국가관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국무총리는 '경찰이 매를 맞아도 안되지만 시위대가 매를 맞아도 안된다'는 취지의 성명을 발표하여 反국가세력을 옹호했다. 盧정권은 이 무장폭동에 관여한 단체들에 대해서 연간 1억7000만원의 國庫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7. 盧대통령과 그 부하들은 再犯간첩을 두번째 특별사면하여 북한에까지 갔다 오도록 하고 그 간첩의 상부선인 조총련 간첩이 통일운동가로 행세하며 입국해도 국정원과 검찰이 수사를 하지 못하도록 對共기관의 손발을 묶었다. 반역적 국가관의 소유자들은 反국가사범에 대해서는 원천적으로 경계심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8. 盧대통령의 계급적 국가관은 국가의 敵인 북한군이나 북한노동당에 대한 비호와 지원으로까지 나타나고 있다. 盧정권은 북한해군 함정이 서해를 남침한 데 대하여 강경대응했던 국군 장성을 문책했다. 盧정권은 그러면서 김정일이 가장 골치꺼리로 생각했고 한국군으로서는 가장 위력적인 심리전 무기였던 휴전선상의 對北방송을 중단시켰다. 盧대통령은 또 비밀 북한노동당원 송두율에 대한 검찰과 국정원의 수사를 사실상 방해했다. 법무장관은 反국가적 선동을 계속하는 강정구씨를 구속하지 못하도록 사상 처음으로 지휘권을 발동했다. 구속을 면한 강씨는 反국가-친북적인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
9. 조총련 간첩의 입국 및 反국가활동 허용과 검찰총장을 희생시킨 강정구씨에 대한 정권 차원의 수사방해 행위가 김정일 정권으로부터의 압박이나 지령에 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고 그 방향으로 수사를 의뢰하는 애국단체가 등장했다.
10. '좌파적 계급적 反헌법적 국가관'의 소유자인 盧대통령은 대한민국에 반대했던 적이 있는 사람들이나 그런 사람들의 가족을 중용하고 있다. 국무총리의 남편은 북한의 남한내 지하정당에 가입하여 10년 이상 징역을 살고 나와서도 사회주의자임을 부인하지 않고 계속해서 반미적인 발언을 하고 다닌다. 국무총리 자신이 두 차례 反국가적 범죄행위로 구속되어 실형을 살았다.
위에서 예로 든 것들은 반역적 국가관에서 파생한 대통령의 위험한 정책과 人事중 극히 일부이다. 위의 사실이 명백히 보여주는 것은 盧정권이 한국내 반역체제의 일부 또는 반역의 사령탑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가장 큰 증거는 盧대통령의 언동과 정책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대한민국을 어떻게 보는가'란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대한민국을 파괴하고 부정하려는 세력에 대한 호감과 비호, 대한민국을 만들고 지켜온 세력에 대한 적대감이 그의 가장 중요한 가치판단기준이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과 대한민국을 건설하고 지키려는 세력은 그의 적이 되고 있다. 지난 5.31 선거의 핵심적 의미는 대한민국에 적대적인 盧정권에 대한 대한민국의 반격이었다는 점이다
우파는 왜 이념전선에서 돌파당했는가
기자와 학자의 비겁함이 反국가적 좌파가 '진보'로 위장하여 우파 세상으로 침투하는 것을 허용했다.
趙甲濟
盧武鉉류의 反국가적 좌파가 어떻게 우파(자유민주주의)만 허용되는 대한민국의 헌법체제 속으로 들어와 정권까지 차지하게 되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우파 정치인들이 이념대결을 피하고 우파 지식인과 언론은 언어戰線에서 저항선을 구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파괴적 이념과 언어가 한국사회를 뒤덮어 인식의 혼란을 가져오니 朴槿惠 대표의 목덜미를 찌른 패륜아가 자신의 행위를 '대한민국의 민주를 위해서'라고 설명할 정도가 되었다.
우파 세상에서는 좌파가 반역적 본성을 숨기지 않고서는 정권을 잡을 수 없다. 이를 잘 아는 좌파는 진보, 개혁, 민주세력으로 위장했다. 정확한 용어를 쓰는 것을 생명으로 삼아야 할 기자들과 학자들은 좌파들이 불러달라는대로 불러주다가 보니 결과적으로 그들의 위장술을 도와주었다. 지난 10여년간의 좌파 득세기에 주요 매체 가운데 오직 月刊朝鮮만이 좌파를 '진보'라고 불러주지 않았다고 한국 知性史에 기록될 것이다.
김정일의 심부름꾼으로 전락한 친북좌익 세력은 지금도 자신들을 '親北'이라고 표현한 기자와 애국운동가들을 명예훼손이라고 고소하고 있는데, 이는 정확한 용어에 의해서 위장막이 걷혀지면 한국내 좌파는 진실의 햇볕을 받아 말라죽을 운명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인천의 맥아더 동상 앞에서는 몽둥이로 무장한 20代 중심의 김정일 전위대가 계란을 든 70代 老人들과 대결하는 모습이 벌어졌다. 정통 신문들조차 이날의 희한한 장면을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라고 불렀다. '반역과 애국의 대결'이라고 써야 할 언론의 이런 부정확한 보도가 좌파의 반역성에 대한 국민적 경계심을 마비시키고 각성을 더디게 하였다.
칼을 든 강도가 침입하는 것을 보고 경비원이 '강도야!'라고 소리쳐야 주인이 놀라서 경찰을 부를터인데 이 용렬한 경비원은 '쇠붙이를 든 신사분이 허가를 받지 않고 경계선을 넘고 있습니다'라고 보고했던 것이다.
한국의 언론이 말하는 '386 주사파'는 철학계의 한 유파가 아니다. 이들은 '김일성 김정일 추종 공산주의 집단'이다. '386 주사파 출신들이 정권의 요직에 들어갔다'고 보도할 것이 아니라 '386 공산주의자들이 정권의 요직을 차지했다'고 해야 국민들이 대책을 세울 것이 아닌가?
기자와 학자들이 정확한 용어를 무기로 삼아 이념戰線에서 버티어주었다면, 그리하여 수시로 경보를 발령했더라면 진보로 위장한 좌파의 체제내 침투는 저지되었을 것이다.
위장술로 이념전선을 돌파한 뒤 정권을 잡은 좌파세력은 개혁, 자주, 평화, 민족으로 위장한 안보, 경제, 對北, 외교정책을 추진하다가 최근에 와서는 자신이 생겼는지 盧대통령까지 나서서 '우리는 좌파이다'라고 공개적인 선언을 해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도 언론과 학자들과 우파를 자처하는 정치인들조차도 '우리는 반역집단이다'라는 의미의 이 도발적 선언에 대해서 따지지 않는다. 오히려 생활인들이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로써 좌파의 본색을 알아채고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 이번 5.31 선거였다.
5.31 선거 이틀 뒤 저녁 서울 강남에서 개인 택시를 타고 강북으로 오면서 운전기사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왜 열린당이 참패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노무현 정권이 과거를 캐는 게 싫어요. 과거의 경제개발을 부정하려고 그러는 모양인데, 자기들이나 잘 하지'
'양극화라는 말을 들어보았나요?'
'그것도 그렇지요. 아니 강남 사람이 잘 살아서 내가 못 살게 된 건 아니잖아요? 집값을 못올리게 하는 건 좋은데 집은 마음대로 팔고 살 수 있도록 해야지. 부자가 못살게 되면 서민들은 더 못살게 되는 것 아닙니까?'
택시 기사는 교수들을 비판했다.
'그 사람들이 참말을 해야 할텐데 코드를 맞춘다고 뻔한 거짓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
택시가 시청광장을 지나갔다. 다음날 새벽에 있을 노르웨이-한국의 월드컵 대비 평가전 응원을 위해 벌써 사람들이 모여 들고 있었다. 기사가 못마땅한 듯 말했다.
'나는 2002년에 월드컵 열기 때문에 노무현이 당선되었다고 생각해요.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응원하면 되지, 꼭 저렇게 해야 되는지 모르겠네요'
기사는 가스값과 세금이 올라 종일 시내를 누비고 다녀도 돈벌이가 어렵다고 불평했다.
'가끔 내가 왜 이렇게 헤매고 다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제발 서민들이 편하게 먹고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해요'
그는 갑자기 화가 난 듯 소리치듯이 말했다.
'세상에 부인을 죽인 사람이 어떻게 청와대에서 근무합니까'
이번 5.31선거에서 열린당이 대패한 이유를 분석하는 자리에서도 정통언론조차 상황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인식의 깊이를 보여주지 못하고 아주 피상적인 관찰에 그쳤다. 이런 분석은 모처럼 일어난 국민들의 대각성 운동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선거의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결과에 대한 정확한 해석이다. 이 해석이 이론화되어 국민들에게 확산되어야 '좌파는 안된다'는 여론이 신념으로서 뿌리내리게 된다.
조선일보는 6월1일자 기사에서 몇 가지 원인 분석을 내어놓았다. 盧정권의 무능에 국민들이 분노했다는 것이다.
<집값 폭등, 세금폭탄, 경기침체에 민심이 떠났다. 민주당과 열린당이 분당되어 전통적인 지지층이 분열되었다. 집권세력이 정치개혁을 내세우면서 지역정치를 더 키웠다. 盧대통령은 '중간평가가 아니다'면서 뒤로 숨었다>
중앙일보는 정권의 무능에 대한 누적된 民心이반이 열린당 참패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과연 두 신문이 분석한 정도의 실수에 대해서 국민들이 이처럼 철저한 응징을 했을까? 단순히 무능하다고, 세금을 많이 매겼다고, 경기가 침체되었다고 해서 여당을 해체수준으로 몰아버린 선거혁명을 했을까?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동아일보 사설은 스쳐가듯이 그 이유를 다루었다.
<저성장과 무거운 세금에 국민은 허리가 휘는데도 세계적으로 퇴조한 사회주의적 좌파정책으로 경제침체와 사회적 갈등을 부추겼다. 자주와 민족을 앞세워 한미동맹을 금가게 함으로써 '동북아의 외톨이'로 남을질 모른다는 불안감을 키웠다>
조선, 중앙일보가 지적한대로 이 정부의 정책이나 무능이 主이유였다면 전북지역을 제외한 전국을 휩쓴 열린당 응징바람은 이토록 세게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열린당뿐 아니라 민노당이 대패하고 좌파3당 중에서 온건한 것으로 비쳐지는 민주당이 善戰하고 우파로 인식되는 한나라당이 대승한 것은 하나의 암시를 준다.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 유권자들이 대통령 당의 후보에게 24%의 표밖에 주지 않았다는 것도 힌트이다.
이번 선거에서 열린당 응징바람을 일으킨 가장 중요한 動因은 이념문제였다. 盧정권의 親北-親中-反韓-反美 정책과 계급적 시각의 국론분열 정책, 그리고 사이비 좌파적 인생관과 역사관에서 나오는 야비하고 증오에 찬 집권자들의 言動이 국민들의 양식과 양심에 불을 붙인 것이다.
노무현, 이해찬, 정동영, 유시민, 조기숙, 천정배, 강정구 같은 인물들의 막가는 언동이 국민들을 화나게 했고 열린당 응징바람을 불렀다. 이들의 어떤 언동이 그토록 국민들을 흥분시켰던가?
盧대통령이 한 국민을 자살로 몰고갔던 발언, '별놈의 보수'라는 욕설, 시민혁명해야 한다는 선동, 김정일의 핵무기 개발은 이해할 수 있다는 발언 같은 것들이다. 이런 발언들은 그 배후에 좌파적 논리의 틀을 감추고 있다. 국민들을 화나게 만들었던 정책과 언동은 거의가 좌파적 인식체계와 가치관에서 나온 것이다. 열린당과 盧정부는 국민들을 상대로 사상전을 펼쳤고 유권자들은 이 도전에 응전한 것이다. 그 결과가 5.31 선거였다.
한나라당이 1997년 大選과 2002년 大選, 그리고 2004년 탄핵사태 때 모두 패배한 이유는 좌파를 상대로 이념적 정면승부를 피함으로써 상황의 주도권을 놓쳤기 때문이다. 1997년에 마땅히 한나라당의 李會昌 후보가 따져야 했을 문제는 金大中 후보의 사상적 위험성이었다. 그의 親北前歷과 위험한 통일관에 대해서 李 후보는 끈질기게 물고늘어졌어야 했다. 그리하여 金 후보가 김정일 정권과 대결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가원수와 국군통수권자가 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란 점을 국민들에게 확실하게 인식시켰어야 했다.
당시 아들의 병역문제로 守勢였던 李 후보측은 金 후보의 사상문제를 제기하면 '색깔론'이라는 逆攻을 부르게 된다면서 金 후보에게 가장 불리한 쟁점을 피해가버렸다. 李 후보가 진정한 자유민주의 소신을 가졌더라면 이 문제는 얄팍한 계산이 아닌 철학과 이념의 원칙에 따라서 제기했어야 했다. 여기에 승부를 걸었더라면 李 후보는 당선했을 것이다. '군대도 안간 좌익행동대원 출신의 친북적 대통령'을 택할 것인가 '본인은 군대에 갔으나 아들이 군대에 안간 확실한 대한민국 편 대통령'을 택할 것인가. 이런 선택지를 유권자들에게 제시했더라면 李 후보는 근소한 차이로 이겼을 것이다.
좌파의 가장 큰 약점은 이념적 정체성이다. 우파 자유민주 체제에서 좌파는 反헌법적 존재이므로 자신의 이념적 정체성을 民主나 개혁이나 진보로 위장해야 생존할 수 있다. 이런 위장막을 과감하게 걷어내버리면 햇볕에 노출된 좌파는 자유민주체제 아래서는 절대로 생존할 수가 없다. 진실의 햇볕을 받으면 말라죽어버린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좌파들은 그들의 정체성을 벗기려는 시도에 대해서 늘 '색깔론'이란 억지로 대응해왔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 용공조작의 수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극히 일부였다. 이 극소수의 무리한 수사를 과장하여 '색깔론'을 전개하니 이념도 신념도 약한 우파 정치인들은 손을 들어버린 것이다.
李 후보가 金大中씨의 사상문제를 제기하여 낙선했다고 해도 2002년 大選 때는 틀림없이 당선되었을 것이다. 金 대통령이 4억5000만 달러의 뇌물로써 매수한 6.15 남북정상회담과 노벨평화상의 실체에 대해서 알게 된 유권자들은 1997년 大選 때 李 후보가 제기했던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고 판단하여 예언자적인 역할을 한 李 후보를 낙선시킨 것을 대하여 미안하게 생각하면서 그에게 표를 모아주었을 것이다.
李 후보는 2002년 大選에서도 좌파와 정면승부를 하지 않았다. 좌파와 싸우기 위해서는 우파를 대동단결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전략이다. 이념투쟁은 상대를 고립시키고 우리 편을 키우는 것이다. 그는 '김정일과 김대중 편이 아니면 모두 우리 편이다'는 생각을 하고 金鍾泌, 鄭夢準 세력과 손을 잡았어야 했다.
1997년에도 李 후보는 흠이 있더라도 우파일 수밖에 없는 金鍾泌 세력과 손을 잡지 않음으로써 그가 충청도 표를 끌고 좌파쪽으로 가서 김대중씨의 신원보증자 역할을 하도록 했다. 2002년에도 李 후보는 똑 같은 실수를 했다. 그는 '이념으로 분단된 한국에선 이념이 가장 큰 전략이다'는 상식을 부정하는 선거전략을 수행했던 것이다. 본인도 그러했지만 한나라당의 그 누구도 盧武鉉 후보의 좌경적 이념을 是非해야 한다는 건의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反美촛불 시위에 李 후보가 참석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바람에 정통보수층이 배신감을 느꼈다.
李씨는 지금도 그때 자신을 비판했던 보수층에 대해서 서운하게 생각한다.
'젊은 표를 얻기 위해서 전술적 좌선회를 한 것을 왜 몰라주었느냐'는 취지이다.
일견 이유 있는 항변이나 여기에 지금의 한나라당도 빠져들고 있는 무서운 함정이 숨어 있다. 우파 후보가 좌파 표를 얻으려고 하면 左右 표를 다 잃게 된다는 것은 한국과 세계 선거사상 한번도 부정된 적이 없는 불변의 공식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파 후보가 좌파에 대해서 추파를 던지는 순간 다수 우파가 그 후보에 대한 배신감을 품고서 이탈하거나 지지도가 약해진다. 우파 후보가 확실한 우파 입장을 밝히고 선거운동을 시작하면 그 소신에 감동한 보수층 유권자들이 일종의 선거운동원이 되어 중도 유권자들을 설득하기 시작한다. 자발적인 대규모 선거운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우파 후보의 전술적 좌선회는 쉽게 간파당한다. 좌파의 위장된 우선회는 金大中 후보의 경우처럼 성공하기 쉽다. 우파는 정직을 생명으로 하는 집단이고 좌파는 위장을 가장 중요한 정책수단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우파의 위장은 부자연스럽고 좌파의 위장은 자연스럽다. 우파는 위장술에서는 아마추어이고 좌파는 프로이다.
2004년 3월12일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국회에서 압도적인 표차이로 盧대통령 탄핵의결을 했다. 그 순간 兩黨 의원들은 '盧대통령은 이제 끝났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안이한 시각은 좌파의 생리와 한반도의 이념투쟁의 본질에 대한 무지함을 보여준 것에 불과했다. 盧대통령은 당시 급조된 열린당의 대통령이 아니었다. 한국의 대중조직과 방송을 장악한 거대한 좌파의 대통령이었다. 여기에 김정일 정권이 가세하여 盧대통령 구출에 나섰다. 한나라당은 졸지에 남북한 전체의 좌파, 즉 親盧親北 연합세력과 대결하는 상황으로 몰렸다. 법리상으로는 국회의 탄핵결의가 정당했으나 남북한 좌파가 조직력과 선전력을 총동원하자 국민 여론이 오도되어 反탄핵으로 돌아섰다. 이때 한나라당이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도가 있었다.
그것은 한나라당도 당원들을 총동원하여 광화문으로 불러내고 애국운동단체들의 도움을 호소하여 거리에서 더 막강한 숫자로써 좌파와 대결하는 것이었다. 거리에서 밀리지 않으면 언론의 親盧 편향 보도도 견제할 수 있었다. 한나라당은 그러나 숨어버렸다. 집에 가버렸다. 거리에도 나오지 않았다. 비겁한 의원들은 공황상태에 빠져 '탄핵은 잘못이다'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해 4월 총선에서 전멸했어야 할 한나라당이 구제된 것은 朴槿惠 대표의 대중적 인기와 보수층 여론의 궐기 덕분이었다.
5월31일 지방선거에서 열린당과 대통령에 대한 국민혐오증의 반사시익으로써 스스로도 놀란 大勝을 거둔 한나라당은 또 다시 좌파와의 싸움을 피하면 자동적으로 이긴다고 판단한 듯하다.
한나라당의 거대한 착각이 구체적으로 감지되고 있다. 5.31 선거가 한나라당에 아주 나쁜 교훈을 주는 것 같다. 즉,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좌익과도 싸우지 않고, 특히 김정일과는 좋게 지내고, 실수를 적게 하면서 열린당의 실패에 의한 반사이익만 챙기면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아주 쉽게 승리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가슴속에 새기고 있는 것이 한나라당인 듯하다.
이것은 바로 2002년 李會昌의 한나라당이 걸어갔던 길을 답습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그렇게 나오면 우선 한국의 보수층이 기준점과 자신감을 잃게 되고 온건하게 보이는 좌파측 후보로 기울게 될 것이다. 더 많은 보수층은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두 차례 그러했듯이 보수정당은 보수층을 먼저 확실하게 잡은 뒤 이 보수층을 선거운동원으로 의식화하여 좌파표를 공략해야 한다. 집토끼인 보수층 표를 제대로 잡기도 전에(그 표는 어차피 자기 표라고 생각하고) 좌파표를 얻으려고 추파를 던지게 되면 보수층이 그 변절에 견디지 못하고 반발함으로써 한나라당은 左右에서 기회주의 정당으로 경멸받게 된다. 左右를 다 잡는다는 전략을 쓰다가는 左右로부터 외면당하기 십상이다.
지방선거는 반사이익으로 이길 수 있지만 정권이 걸린 대통령 선거는 한국의 좌파연합 세력 전체와 투쟁해서 이겨야 한다. 열린당은 그 연합세력의 일부이다. 열린당보다는 김정일 정권이나 kbs mbc와 같은 좌파의 선전매체와 더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것이 한나라당이다. 한나라당도 우파 세력 전체를 동원할 수 있어야 이긴다. 문제는 한나라당에 애국우파세력에 대한 동원력이 과연 있는가이다.
한나라당내에선 좌파와 싸우는 그러한 惡役은 在野우파단체에 하청을 주면 된다는 아주 건방진 말을 하는 이들이 있다. 한나라당과 애국자유운동단체 사이엔 그 어떤 동지적 관계도 설정되어 있지 않다. 한나라당내에서 그래도 애국운동세력에 대해서 고마워하거나 미안해하는 사람은 김용갑, 정형근, 김문수, 전여옥, 주성영 의원 등 열 명이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애국투쟁을 하면 표가 깎인다는 계산법(이 계산법은 좌파에서 심어준 것이다)에 속아 거리투쟁을 하는 애국자유진영을 멀리 하려고 한다. 한나라당의 이런 기회주의적 태도를 잘 아는 애국단체에선 이들을 증오, 경멸하니 한나라당과 애국단체 사이의 역할 분담은 어려울 것이다.
한나라당이 2007년의 상대를 열린당이라고 생각하면 질 것이 뻔하다. 한나라당이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상대가 열린당, 김정일, 김대중, 친북좌익 세력 등 한반도의 권력을 잡고 있는 反대한민국 연합세력 전부라고 생각하고 '대한민국에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전부 우리편이다'는 입장에서 대동단결하여 大勢를 조직화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우파를 총동원한 다음에 역시 총궐기한 좌파의 각각의 단체들과 하나하나 치열한 진지전, 고지전을 해야 하며 그 결과가 大選 승리로 나타날 것이다. 大選에선 공짜가 없다.
우파 엘리트 집단이어야 할 존재가 한나라당이다. 국가이익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할, 즉 국가엘리트 집단이어야 할 존재가 한나라당이다. 한나라당이 기회주의적 처신을 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이 한반도의 제1진실을 직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제1진실은 동족 300만명이 김정일의 反민족적, 反인륜적, 反개혁적 노선에 의해 평화시임에도 불구하고 굶어죽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직시하게 되면 김정일에 대한 분노와 북한동포들에 대한 동정심과 북한동포 해방을 핵심으로 하는 자유통일의 시급성에 대한 확신과 자유통일을 저지하고 김정일 정권을 유지시켜주려는 좌파들에 대한 경멸감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이념은 감정이라고 한다. 김정일에 대한 분노가 없으니 대한민국에 대한 사랑과 자랑도, 좌파들에 대한 경멸감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 감정적 반응도 없고, 이념무장이 안되니 국가 엘리트로서의 노블레스 오블리제 정신도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참고로 해야 할 국가 엘리트의 행태를 소개한다.
1912년 대서양에서 빙산에 충돌하여 침몰한 영국의 호화여객선 타이타닉호에 대한 통계가 있다. 1500여명이 침몰한 배에 남았다가 죽었고, 그 정도 숫자가 17척의 구명보트에 옮겨가 구조되었다. 1등석 승객중에서 어린이 전원과 144명의 여성중 139명이 살았고 남성은 70%가 죽었다. 어린이와 여성들을 우선적으로 구명보트에 태웠기 때문이다.
2등석 손님중에선 여성의 80%가 구조되었고, 남자의 90%가 죽었다. 1,2등석 손님들은 당시 미국과 영국의 최상류층이었다. 미국 최고의 부자라고 불리던 존 제이콥 아스톨씨는 아내를 데리고 와서 보트에 태운 뒤 동승하기를 거부하고 배에 남아 있다가 죽었다. 또 다른 巨富 벤자민 구겐하임은 자신에게 돌아온 보트의 자리를 여성에게 양보하고 죽었다. 그는 그 여성에게 '내 아내에게 내가 정정당당하게 행동했다고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월남전 때 미군 사령관이었던 웨스터모어랜드 장군은 미국의 정예 공정사단의 사단장으로 근무했던 적이 있었다. 이 부대가 낙하 훈련을 했다. 물론 그도 뛰어내렸다. 그날 강풍에 휘말려 부대원 7명이 죽었다. 다음날도 강풍이 불었으나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은 낙하 훈련을 중단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다만, 자신이 먼저 뛰어내려 강풍을 확인해볼테니 기다려보라고 했다. 사단장이 홀로 낙하했다. 着地엔 성공했으나 낙하산이 强風에 휩쓸려 끌려가다가 겨우 정지했다. 그는 부하들에게 지시하여 훈련을 중단시켰다.
19세기말 영국이 인구 3억의 인도를 다스릴 때 인도엔 약15만 명의 영국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 가운데 6만 명은 군인이었다. 영국 군인들은 이 광활한 대륙의 변경에 퍼져서 주둔했으므로 보통 인도인들은 영국 군인들을 볼 수도 없었다. 어떻게 하여 이런 少數로써 多數를 다스릴 수 있었는가.
인도행정청(India Civil Service: ICS)이 그 비밀이었다. 인도행정청에는 약1000명의 영국 공무원들이 근무했는데, 이들이 인도 각지에 파견되어 식민지 행정을 맡았다. 이 천명이 사실상 3억 인구를 다스린 것이다. 이 3억 인구는 언어만 해도 20가지이고 지방語는 셀 수 없을 정도인데다가 종교 인종도 각양각색이었다. 이런 인도를, 영국 공무원 한 사람이 30만명씩 안정적으로 관리했던 셈이다. 이 불가사의한 행정의 비밀에 대한 연구서적이 최근에 출판되었다. 데이비드 길모어(David Gilmour)라는 사람이 쓴 '지배계급'(The Ruling Caste: 출판은 Farrar, Straus, Giroux, 381페이지, 27 달러)이 그것이다.
인도행정청에서 근무할 영국인을 뽑고 훈련하는 과정에서 영국정부는 애국심과 자부심에 기반한 公人윤리를 반복교육으로 깊게 심었다. 학생들은 인도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었다. 영국정부는 이들에게 그런 현지 관련 지식보다는 국가엘리트로서의 자부심을 심어주는 데 주력했다. 인도에 대한 지식은 현지에 부임하여 배우도록 했다. 그 대신 大英제국의 知的이고 도덕적인 우월성에 대한 교육이 행해졌다. '유럽 도서관 한 개의 선반위에 올라 있는 책이 인도와 아라비아 전체의 문학작품을 모두 모은 것보다 더 우수하다'는 식의 교육이었다.
著者 길모어씨는 이 책에서, '제국주의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제' 정신으로 무장한 이 젊은 관료들은 '책임을 떠 안는 것의 쾌감'을 간직하고 어떤 경우에도 조국을 실망시켜서는 안된다는 마음이 강했다고 분석했다. 이들이 인도에 가서 부임하는 곳은 교통이 불편한 奧地(오지)인 경우가 많았으므로 무슨 사고가 일어나도 상부 지시에 따라서 행동할 수가 없다.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결단력이 요구된다. 영국관료들은 실용주의와 상식에 기초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습관을 부임 초기부터 터득해나갔다.
소요사태를 예방하려면 우선 지배층이 민중을 자극하지 않아야 했다. 영국관료들은 인도사회의 풍습이나 사회적 관행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았다. 다만, 남편이 죽으면 부인을 불태워죽여서 순장하는 식의 야만적인 풍습은 금지시켰다. 인도사람들은 세금을 내고, 지역관리들을 죽이지만 않는다면 영국인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살 수 있었다. 영국관리들은 그들이 다스리는 현지의 언어에 숙달해야 했다. 이 식민통치 관리들의 행동윤리는 피지배층을 대할 때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듯이 자선적이고, 공평하며, 청렴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영국관리들은 절대로 뇌물을 받지 않는다'는 인도민중의 定評이 이들의 통치를 수월하게 해주었다.
인도는 독립한 뒤에도 영국행정청의 이름만 바꾸고 그 골격을 이어갔다. 물론 영국인은 인도관리로 교체되었다. 인도는 영국관리들이 남긴 전통, 즉 자선적이고 공평하며 청렴한 공직규범을 그대로 계승하여 오늘날 세계최대의 민주국가를 운영하고 있다.
두 달 전 서울의 부자동네 사람들이 많이 나온 모임에 갔다. 구청장이 자랑을 했다.
'그곳에 임대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라는 정보를 미리 입수하니 앞이 캄캄했습니다. 우리 區가 무너질 것이란 위기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서울시를 설득하여 그곳에다가 테니스장을 짓기로 했습니다'
강북에 사는 나는 이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공무원이 이런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해도 되나'하는 생각이 하나이고, 이런 말을 듣고도 모두가 잘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이 부자마을 사람들의 양심은 도대체 몇 원짜리인가 하는 분노였다.
임대아파트가 옆에 들어서면 주거, 교육환경이 나빠지고, 아파트 값이 떨어진다고 건축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는 富者들이 있기 때문에 좌파들이 득세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양극화 선동'이 먹히는 것이다. 임대아파트 입주자를 마치 백인이 흑인 보듯이 하면서 합법적인 건축을 방해하는 이런 부자들이야말로 한국 사회를 계급적으로 분열시키는 사람들이며 도덕적으로 평가해도 친북좌파보다 못한 존재이다. 임대아파트가 들어선다고 용감하게 억지를 부리는 부자들일수록 애국운동을 기피하고, 투표일엔 외국여행을 나가는 경우가 많다. 좌파의 도전에 대한 위기의식도 거의 없다. 자신들의 자유와 재산은 그 누군가가 대신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富者들은 김정일과 그 추종세력의 위협에 직면해서도 자신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서 싸우지 않는다. 모든 생명체는 생명체로서의 존립을 위협하는 외부 세력에 대해서는 싸워야 할 생명체로서의 의무가 있다. 생명의 핵심은 자유이다. 자유를 위협하는 세력에 맞서 싸우지 않는 순간 그런 생명체는 생명력을 잃고서 無생물이 되는 것이다. 밟았을 때 꿈뜰대는 지렁이는 생명체이지만 밟아도 반응이 없는 한국의 부자들은 생명이 아니라 시체이든지 돌과 같은 무생물이다. 무생물체는 자유를 상실하여 아무런 가치가 없으므로 쓰레기 취급을 받아도 할 수 없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경멸당해야 할 부류는 못사는 사람들에게 못되게 굴면서 권력을 쥔 좌파에 대해서는 싸움을 기피하고 굴복해버리는 '잘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오만함으로써 좌파들을 키웠고 비겁함으로써 좌파들을 강화시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2007년 大選에서 사이비 좌파를 물리치고 정상적인 세력이 이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강남사람들부터 보다 겸손해지고 보다 용감해져야 할 것이다. 지금은 싸우지 않는 강남사람들과 가장 닮은 존재가 한나라당이다.
한국의 좌파는 왜 자동적으로 반역자인가?
좌파는 역사적으로, 구조적으로, 생래적으로 반역의 길을 걷게 되는데 문제는 그들이 정권을 잡았다는 점이다.
趙甲濟
한국 현대사의 지향점은 근대화와 국민국가건설을 완성한 여세를 몰아 자유통일하고 일류국가를 만든다는 것이다. 지난 60년간 한국인들은 다른 선진국이 수백년에 걸쳐서 이룩한 건국-호국-산업화-민주화의 네 단계를 해치웠다. 이 과정에서 한국인들은 해양정신-기업가정신-尙武정신-자주정신을 재발견했다. 이런 기적이 가능했던 것은 자유민주체제, 韓美동맹, 실용적 지도노선, 그리고 근면한 국민들의 존재 덕분이었다.
나는 지난 60년간의 네 단계 발전과정을 근대화 과정 또는 국민국가 건설과정이라 부른다. 이 근대화 과정은 자유통일을 해야만 일단락되고 다음 단계인 선진화, 즉 일류국가 건설로 전환된다. 한민족사상 가장 위대한 세대로 불리게 될 한국의 기성세대는 근대화 과정을 통해서 경제력과 군사력 기준으로 세계 10위권에 드는 근사한 나라를 만들어 후대에 넘겨주면서 이렇게 유언 아닌 유언을 했다.
'우리는 無에서 이런 나라를 만들었다. 너희들은 이 나라를 일류국가로 승격시키고 행복하게 살아라'
할아버지 부모 삼촌 세대에게 감사하면서 선진국 건설로 매진해야 할 젊은 세대중 상당수는 좌파의 속삭임에 넘어가 조국과 조상과 부모세대의 업적을 격하하고 이들의 약점을 잡고 흠집내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다.
대한민국이란 건강한 몸 속으로 '386 주사파'라는 바이러스가 들어온 것이다. 이 바이러스는 정권의 회로를 따라서 대한민국의 뇌, 심장, 신경계통에 주로 침입하여 국가의 기능을 파괴, 마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대한민국은 자유통일-일류국가 건설을 눈앞에 두고 주저 앉았다. 자유통일-일류국가 노선 이외에 다른 두 갈래 길이 나타났다. 분단고착-3류국가화, 적화통일-원시국가화의 가능성이 그것이다.
일류국가를 왜 만들어야 하는가? 인생은 어차피 一期一會, 즉 한번밖에 없다. 그렇다면 인생은 소중하게 살아야 한다. 북한에서 200년을 사는 것보다는 대한민국에서 60년을 사는 것이 더 행복한 것 아닌가. 일류국가는 행복하고 보람되고 창조적인 삶, 즉 멋진 인생을 보장해준다.
일류국가는 일류시민과 일류제도와 일류國力의 결합체이다. 일류국가의 모태는 자유와 자율성이다. 한국이 지난 60년간 근대화-선진화 노선을 자신 있게 걸어온 가장 큰 이유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를 채용함으로써 한국인들이 자유와 경쟁속에서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386 주사파나 노무현이나 김정일로 상징되는 좌파는 이 자유와 자율성을 파괴하거나 제약하려는 이념의 포로들이다. 좌파로써는 절대로 일류국가 건설이 불가능하다. 이것이 우리가 좌파의 도전을 극복해야 할 이유이다. 좌파로써는 자유통일도 일류국가 만들기도 행복한 人生도 안되는 것이다.
좌파는 한국인이 피, 땀, 눈물로써 만들어낸 일류국가의 꿈을 깨려는 세력이다. 우리의 행복한 인생을 파괴하려는 세력이다. 그들은 평화, 민족, 자주, 통일, 개혁, 평등과 같은 좋은 말을 가져가서 가장 유효한 정치적 무기로 삼은 뒤 국민들을 속인다. 그들은 관념의 포로이다. 말로써, 구호로써 天國을 만들 수 있다고 착각한다. 말에 잘 속는 한국인들이 여기에 넘어갔다. 좌파는 사람과 국가의 가장 중요한 문제가 '먹고 사는 것'이라는 점을 부인한다. 그들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모자라기 때문에 '먹고 사는 것'보다 민주주의, 민족정기, 도덕성, 개혁성이 더 중요하다고 선전한다. 이런 말장난을 경멸한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들, 즉 李承晩과 朴正熙들은 '사람이란 존재는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면 자동적으로 민주주의를 하게 되어 있다'는 실용적 관점에 서서 묵묵히 경제와 안보 제일주의를 밀고 나감으로써 민주화로 가는 길을 닦았던 것이다.
1998년 이후 좌파가 한국의 정권을 잡은 다음 한국 사회는 실천력보다 말장난이 판을 치는 친북, 분열, 저질의 길을 걸어갔다. 좌파의 가장 중요한 정책은 소외된 인간의 분노와 증오를 자극하여 자기 편으로 돌려세우는 것이다. 이런 좌파가 득세하면 패륜아나 무능자, 나태자들이 한 사회, 한 조직, 한 국가의 주도권을 잡는다. 좌파는 권력을 잡아도 거짓선동과 분열책으로써 끊임없이 다수 보수층을 약화시키지 않으면 권력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생래적으로 양극화 선동 같은 숫법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좌파는 계급투쟁론의 시각에서 사회를 분석하고 처방을 내리므로 계급정당이 허용되지 않는 국민국가 안에서도 존재하지도 않는 계급적 敵을 만들고 이 敵에 대한 증오심을 고취함으로써 자기 편을 유지, 강화해가려고 한다. 분열책동은 좌파의 운명이다.
한국의 좌파는 유럽의 좌파와 또 다른 역사적 업보를 지고 있다. 한반도 좌파의 본산인 북한정권과 이념적 대결을 하고 있는 우파 대한민국내에서 좌파가 된다는 것은 자동적으로 반역성을 띤다. 더구나 한국의 좌파는 우파에 의해 소탕된 역사적 과거로 해서 거의 생래적으로 대한민국에는 적개심을, 김정일 정권에 대해서는 호감을 갖는다. 한국의 좌파는 역사적으로, 구조적으로, 생래적으로 반역의 길을 걷게 되는데 문제는 그들이 정권을 잡았다는 점에서 일어난다.
노무현과 정권의 반역적 행태 연구
'좌파의 속성인 계급투쟁론은 국가를 특정 계급의 전유물, 즉 한 단체로 인식함으로 국가 정통성에 대한 존중심이 없다. 민족사적 정통성이 어느 쪽에 있느냐를 놓고 체제의 死活을 건 싸움을 벌이고 있는 한반도에서 이런 국가관의 소유자는 반드시 조국을 배신한다.'
좌파가 한국에서는 자동적으로 反헌법, 反국가적 세력, 즉 반역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렇다.
좌파의 계급투쟁론적 세계관과 국가관이 국민국가인 대한민국 헌법에 위반된다. 우리 헌법은 계급정당을 不許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 즉 우파만 허용한다. 계급투쟁론은 사회를 계급이나 계층으로 갈라놓는 정책으로 나타나 공동체를 분열시킨다. 좌파의 속성인 계급투쟁론은 국가를 특정 계급의 전유물, 즉 한 단체로 인식함으로 국가 정통성에 대한 존중심이 없다. 민족사적 정통성이 어느 쪽에 있느냐를 놓고 체제의 死活을 건 싸움을 벌이고 있는 한반도에서 이런 국가관의 소유자는 반드시 조국을 배신한다.
盧武鉉씨가 대통령이 된 뒤에도 대한민국 건국을 '분열정권의 수립'이라고 공언한 것은 자신이 대통령으로 있는,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든 대한민국의 민족사적 정통성을 부인한 것이다. 대통령이 된 후 한번도 김정일 정권을 비판한 적이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는 민족사적 정통성을 놓고 다투는 타협이 불가능한 남북한 대결에서 사실상 북한정권 편을 들고 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오늘날 한국의 위기는 여기서 출발하고 있다. 국가반역을 저지하고 國基, 즉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호하는 것이 제1 임무인 국군통수권자가 반역적 역사관과 국가관의 소유자란 점이다. 이런 전제하에서 그가 지난 3년여 기간중 시행해온 정책이나 언동을 살펴봄으로써 사실검증을 한번 해보자.
1. 그의 언동은 대한민국 건국의 지도자인 李承晩과 호국의 공로자인 맥아더와 근대화의 기수인 朴正熙와 대한민국 주류세력인 보수층에 대해서 공격적이거나 냉소적이며 적대적이다.
2. 6.25 때 유엔군 사령관으로써 김일성의 남침의지를 꺾고 北進을 지휘하여 자유통일 직전까지 갔던 맥아더에 대해서 한반도 감사의 말을 한 적이 없는 그는, 침략군을 보내 통일을 저지하고 대한민국을 없애려 했던 毛澤東을 존경한다.
3. 기회만 있으면, 그것이 호국영령을 추모하는 현충일이라도 李承晩 朴正熙를 수도 없이 공격해온 그는 민족의 원수인 김일성 父子를 비판한 적이 없다. 그 이유는 좌파적 국가관으로 인해 대한민국에 반대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설사 김일성 父子가 600만 명의 동족을 죽게 한 인물이라고 해도 비판의식이 작동하지 않는 때문인 듯하다.
4. 이런 계급적, 좌파적, 反헌법적, 따라서 반역적인 국가관에 기초한 그의 안보 외교 정책도 마찬가지 경향을 보인다. 대한민국의 敵인 북한정권에 대한 그의 무비판적 굴종 자세는 북한의 동맹국인 중국에까지 연장되었다. 중국의 행패, 예컨대 탈북자를 잡아 死地로 보내는 행위나 黃砂를 한국으로 날려 보내는 행위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5. 그는 한국의 동맹국인 미국과 협력국인 일본에 대해서는 對中, 對北굴종태도와는 전혀 다른 대결적 자세를 보인다. 그 한 예로 그는 韓美 두 나라 대통령이 공유하고 있는 戰時작전통제권에 대해서 '환수'라는 표현을 써 이것이 마치 미국에 의하여 독점되고 있다는 식으로 사실을 왜곡함으로써 사실상 反美를 선동하고 있다.
6. 좌파의 계급적이고 분열적인 국가관에 기초한 정책을 펴온 盧武鉉 대통령은 계급적 동지로 간주되는 친북좌익세력의 불법과 폭력을 사실상 비호해왔다. 국군통수권자인 그는 평택에서 발생한, 김정일의 전위대를 주력으로 한 좌익무장폭동에 대해서 국군이 총칼로 진압하지 못하도록 敵前무장해제시키고 방패만 들고 나가게 하였다. 그 결과 국군이 좌익몽둥이부대한테 얻어맞고 쫒겨다니도록 유도했다. 여론이 들끓어도 盧대통령과 좌파적 국가관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 분명한 국무총리는 '경찰이 매를 맞아도 안되지만 시위대가 매를 맞아도 안된다'는 취지의 성명을 발표하여 反국가세력을 옹호했다. 盧정권은 이 무장폭동에 관여한 단체들에 대해서 연간 1억7000만원의 國庫지원을 계속하고 있다.
7. 盧대통령과 그 부하들은 再犯간첩을 두번째 특별사면하여 북한에까지 갔다 오도록 하고 그 간첩의 상부선인 조총련 간첩이 통일운동가로 행세하며 입국해도 국정원과 검찰이 수사를 하지 못하도록 對共기관의 손발을 묶었다. 반역적 국가관의 소유자들은 反국가사범에 대해서는 원천적으로 경계심이 생기지 않는 것이다.
8. 盧대통령의 계급적 국가관은 국가의 敵인 북한군이나 북한노동당에 대한 비호와 지원으로까지 나타나고 있다. 盧정권은 북한해군 함정이 서해를 남침한 데 대하여 강경대응했던 국군 장성을 문책했다. 盧정권은 그러면서 김정일이 가장 골치꺼리로 생각했고 한국군으로서는 가장 위력적인 심리전 무기였던 휴전선상의 對北방송을 중단시켰다. 盧대통령은 또 비밀 북한노동당원 송두율에 대한 검찰과 국정원의 수사를 사실상 방해했다. 법무장관은 反국가적 선동을 계속하는 강정구씨를 구속하지 못하도록 사상 처음으로 지휘권을 발동했다. 구속을 면한 강씨는 反국가-친북적인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
9. 조총련 간첩의 입국 및 反국가활동 허용과 검찰총장을 희생시킨 강정구씨에 대한 정권 차원의 수사방해 행위가 김정일 정권으로부터의 압박이나 지령에 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고 그 방향으로 수사를 의뢰하는 애국단체가 등장했다.
10. '좌파적 계급적 反헌법적 국가관'의 소유자인 盧대통령은 대한민국에 반대했던 적이 있는 사람들이나 그런 사람들의 가족을 중용하고 있다. 국무총리의 남편은 북한의 남한내 지하정당에 가입하여 10년 이상 징역을 살고 나와서도 사회주의자임을 부인하지 않고 계속해서 반미적인 발언을 하고 다닌다. 국무총리 자신이 두 차례 反국가적 범죄행위로 구속되어 실형을 살았다.
위에서 예로 든 것들은 반역적 국가관에서 파생한 대통령의 위험한 정책과 人事중 극히 일부이다. 위의 사실이 명백히 보여주는 것은 盧정권이 한국내 반역체제의 일부 또는 반역의 사령탑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가장 큰 증거는 盧대통령의 언동과 정책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대한민국을 어떻게 보는가'란 점에서 찾을 수 있다. 대한민국을 파괴하고 부정하려는 세력에 대한 호감과 비호, 대한민국을 만들고 지켜온 세력에 대한 적대감이 그의 가장 중요한 가치판단기준이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과 대한민국을 건설하고 지키려는 세력은 그의 적이 되고 있다. 지난 5.31 선거의 핵심적 의미는 대한민국에 적대적인 盧정권에 대한 대한민국의 반격이었다는 점이다
우파는 왜 이념전선에서 돌파당했는가
기자와 학자의 비겁함이 反국가적 좌파가 '진보'로 위장하여 우파 세상으로 침투하는 것을 허용했다.
趙甲濟
盧武鉉류의 反국가적 좌파가 어떻게 우파(자유민주주의)만 허용되는 대한민국의 헌법체제 속으로 들어와 정권까지 차지하게 되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우파 정치인들이 이념대결을 피하고 우파 지식인과 언론은 언어戰線에서 저항선을 구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파괴적 이념과 언어가 한국사회를 뒤덮어 인식의 혼란을 가져오니 朴槿惠 대표의 목덜미를 찌른 패륜아가 자신의 행위를 '대한민국의 민주를 위해서'라고 설명할 정도가 되었다.
우파 세상에서는 좌파가 반역적 본성을 숨기지 않고서는 정권을 잡을 수 없다. 이를 잘 아는 좌파는 진보, 개혁, 민주세력으로 위장했다. 정확한 용어를 쓰는 것을 생명으로 삼아야 할 기자들과 학자들은 좌파들이 불러달라는대로 불러주다가 보니 결과적으로 그들의 위장술을 도와주었다. 지난 10여년간의 좌파 득세기에 주요 매체 가운데 오직 月刊朝鮮만이 좌파를 '진보'라고 불러주지 않았다고 한국 知性史에 기록될 것이다.
김정일의 심부름꾼으로 전락한 친북좌익 세력은 지금도 자신들을 '親北'이라고 표현한 기자와 애국운동가들을 명예훼손이라고 고소하고 있는데, 이는 정확한 용어에 의해서 위장막이 걷혀지면 한국내 좌파는 진실의 햇볕을 받아 말라죽을 운명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인천의 맥아더 동상 앞에서는 몽둥이로 무장한 20代 중심의 김정일 전위대가 계란을 든 70代 老人들과 대결하는 모습이 벌어졌다. 정통 신문들조차 이날의 희한한 장면을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라고 불렀다. '반역과 애국의 대결'이라고 써야 할 언론의 이런 부정확한 보도가 좌파의 반역성에 대한 국민적 경계심을 마비시키고 각성을 더디게 하였다.
칼을 든 강도가 침입하는 것을 보고 경비원이 '강도야!'라고 소리쳐야 주인이 놀라서 경찰을 부를터인데 이 용렬한 경비원은 '쇠붙이를 든 신사분이 허가를 받지 않고 경계선을 넘고 있습니다'라고 보고했던 것이다.
한국의 언론이 말하는 '386 주사파'는 철학계의 한 유파가 아니다. 이들은 '김일성 김정일 추종 공산주의 집단'이다. '386 주사파 출신들이 정권의 요직에 들어갔다'고 보도할 것이 아니라 '386 공산주의자들이 정권의 요직을 차지했다'고 해야 국민들이 대책을 세울 것이 아닌가?
기자와 학자들이 정확한 용어를 무기로 삼아 이념戰線에서 버티어주었다면, 그리하여 수시로 경보를 발령했더라면 진보로 위장한 좌파의 체제내 침투는 저지되었을 것이다.
위장술로 이념전선을 돌파한 뒤 정권을 잡은 좌파세력은 개혁, 자주, 평화, 민족으로 위장한 안보, 경제, 對北, 외교정책을 추진하다가 최근에 와서는 자신이 생겼는지 盧대통령까지 나서서 '우리는 좌파이다'라고 공개적인 선언을 해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도 언론과 학자들과 우파를 자처하는 정치인들조차도 '우리는 반역집단이다'라는 의미의 이 도발적 선언에 대해서 따지지 않는다. 오히려 생활인들이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로써 좌파의 본색을 알아채고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 이번 5.31 선거였다.
5.31 선거 이틀 뒤 저녁 서울 강남에서 개인 택시를 타고 강북으로 오면서 운전기사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왜 열린당이 참패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노무현 정권이 과거를 캐는 게 싫어요. 과거의 경제개발을 부정하려고 그러는 모양인데, 자기들이나 잘 하지'
'양극화라는 말을 들어보았나요?'
'그것도 그렇지요. 아니 강남 사람이 잘 살아서 내가 못 살게 된 건 아니잖아요? 집값을 못올리게 하는 건 좋은데 집은 마음대로 팔고 살 수 있도록 해야지. 부자가 못살게 되면 서민들은 더 못살게 되는 것 아닙니까?'
택시 기사는 교수들을 비판했다.
'그 사람들이 참말을 해야 할텐데 코드를 맞춘다고 뻔한 거짓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
택시가 시청광장을 지나갔다. 다음날 새벽에 있을 노르웨이-한국의 월드컵 대비 평가전 응원을 위해 벌써 사람들이 모여 들고 있었다. 기사가 못마땅한 듯 말했다.
'나는 2002년에 월드컵 열기 때문에 노무현이 당선되었다고 생각해요.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응원하면 되지, 꼭 저렇게 해야 되는지 모르겠네요'
기사는 가스값과 세금이 올라 종일 시내를 누비고 다녀도 돈벌이가 어렵다고 불평했다.
'가끔 내가 왜 이렇게 헤매고 다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제발 서민들이 편하게 먹고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해요'
그는 갑자기 화가 난 듯 소리치듯이 말했다.
'세상에 부인을 죽인 사람이 어떻게 청와대에서 근무합니까'
이번 5.31선거에서 열린당이 대패한 이유를 분석하는 자리에서도 정통언론조차 상황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인식의 깊이를 보여주지 못하고 아주 피상적인 관찰에 그쳤다. 이런 분석은 모처럼 일어난 국민들의 대각성 운동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선거의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결과에 대한 정확한 해석이다. 이 해석이 이론화되어 국민들에게 확산되어야 '좌파는 안된다'는 여론이 신념으로서 뿌리내리게 된다.
조선일보는 6월1일자 기사에서 몇 가지 원인 분석을 내어놓았다. 盧정권의 무능에 국민들이 분노했다는 것이다.
<집값 폭등, 세금폭탄, 경기침체에 민심이 떠났다. 민주당과 열린당이 분당되어 전통적인 지지층이 분열되었다. 집권세력이 정치개혁을 내세우면서 지역정치를 더 키웠다. 盧대통령은 '중간평가가 아니다'면서 뒤로 숨었다>
중앙일보는 정권의 무능에 대한 누적된 民心이반이 열린당 참패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과연 두 신문이 분석한 정도의 실수에 대해서 국민들이 이처럼 철저한 응징을 했을까? 단순히 무능하다고, 세금을 많이 매겼다고, 경기가 침체되었다고 해서 여당을 해체수준으로 몰아버린 선거혁명을 했을까?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동아일보 사설은 스쳐가듯이 그 이유를 다루었다.
<저성장과 무거운 세금에 국민은 허리가 휘는데도 세계적으로 퇴조한 사회주의적 좌파정책으로 경제침체와 사회적 갈등을 부추겼다. 자주와 민족을 앞세워 한미동맹을 금가게 함으로써 '동북아의 외톨이'로 남을질 모른다는 불안감을 키웠다>
조선, 중앙일보가 지적한대로 이 정부의 정책이나 무능이 主이유였다면 전북지역을 제외한 전국을 휩쓴 열린당 응징바람은 이토록 세게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열린당뿐 아니라 민노당이 대패하고 좌파3당 중에서 온건한 것으로 비쳐지는 민주당이 善戰하고 우파로 인식되는 한나라당이 대승한 것은 하나의 암시를 준다.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 유권자들이 대통령 당의 후보에게 24%의 표밖에 주지 않았다는 것도 힌트이다.
이번 선거에서 열린당 응징바람을 일으킨 가장 중요한 動因은 이념문제였다. 盧정권의 親北-親中-反韓-反美 정책과 계급적 시각의 국론분열 정책, 그리고 사이비 좌파적 인생관과 역사관에서 나오는 야비하고 증오에 찬 집권자들의 言動이 국민들의 양식과 양심에 불을 붙인 것이다.
노무현, 이해찬, 정동영, 유시민, 조기숙, 천정배, 강정구 같은 인물들의 막가는 언동이 국민들을 화나게 했고 열린당 응징바람을 불렀다. 이들의 어떤 언동이 그토록 국민들을 흥분시켰던가?
盧대통령이 한 국민을 자살로 몰고갔던 발언, '별놈의 보수'라는 욕설, 시민혁명해야 한다는 선동, 김정일의 핵무기 개발은 이해할 수 있다는 발언 같은 것들이다. 이런 발언들은 그 배후에 좌파적 논리의 틀을 감추고 있다. 국민들을 화나게 만들었던 정책과 언동은 거의가 좌파적 인식체계와 가치관에서 나온 것이다. 열린당과 盧정부는 국민들을 상대로 사상전을 펼쳤고 유권자들은 이 도전에 응전한 것이다. 그 결과가 5.31 선거였다.
한나라당이 1997년 大選과 2002년 大選, 그리고 2004년 탄핵사태 때 모두 패배한 이유는 좌파를 상대로 이념적 정면승부를 피함으로써 상황의 주도권을 놓쳤기 때문이다. 1997년에 마땅히 한나라당의 李會昌 후보가 따져야 했을 문제는 金大中 후보의 사상적 위험성이었다. 그의 親北前歷과 위험한 통일관에 대해서 李 후보는 끈질기게 물고늘어졌어야 했다. 그리하여 金 후보가 김정일 정권과 대결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국가원수와 국군통수권자가 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란 점을 국민들에게 확실하게 인식시켰어야 했다.
당시 아들의 병역문제로 守勢였던 李 후보측은 金 후보의 사상문제를 제기하면 '색깔론'이라는 逆攻을 부르게 된다면서 金 후보에게 가장 불리한 쟁점을 피해가버렸다. 李 후보가 진정한 자유민주의 소신을 가졌더라면 이 문제는 얄팍한 계산이 아닌 철학과 이념의 원칙에 따라서 제기했어야 했다. 여기에 승부를 걸었더라면 李 후보는 당선했을 것이다. '군대도 안간 좌익행동대원 출신의 친북적 대통령'을 택할 것인가 '본인은 군대에 갔으나 아들이 군대에 안간 확실한 대한민국 편 대통령'을 택할 것인가. 이런 선택지를 유권자들에게 제시했더라면 李 후보는 근소한 차이로 이겼을 것이다.
좌파의 가장 큰 약점은 이념적 정체성이다. 우파 자유민주 체제에서 좌파는 反헌법적 존재이므로 자신의 이념적 정체성을 民主나 개혁이나 진보로 위장해야 생존할 수 있다. 이런 위장막을 과감하게 걷어내버리면 햇볕에 노출된 좌파는 자유민주체제 아래서는 절대로 생존할 수가 없다. 진실의 햇볕을 받으면 말라죽어버린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좌파들은 그들의 정체성을 벗기려는 시도에 대해서 늘 '색깔론'이란 억지로 대응해왔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에 용공조작의 수사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극히 일부였다. 이 극소수의 무리한 수사를 과장하여 '색깔론'을 전개하니 이념도 신념도 약한 우파 정치인들은 손을 들어버린 것이다.
李 후보가 金大中씨의 사상문제를 제기하여 낙선했다고 해도 2002년 大選 때는 틀림없이 당선되었을 것이다. 金 대통령이 4억5000만 달러의 뇌물로써 매수한 6.15 남북정상회담과 노벨평화상의 실체에 대해서 알게 된 유권자들은 1997년 大選 때 李 후보가 제기했던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고 판단하여 예언자적인 역할을 한 李 후보를 낙선시킨 것을 대하여 미안하게 생각하면서 그에게 표를 모아주었을 것이다.
李 후보는 2002년 大選에서도 좌파와 정면승부를 하지 않았다. 좌파와 싸우기 위해서는 우파를 대동단결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전략이다. 이념투쟁은 상대를 고립시키고 우리 편을 키우는 것이다. 그는 '김정일과 김대중 편이 아니면 모두 우리 편이다'는 생각을 하고 金鍾泌, 鄭夢準 세력과 손을 잡았어야 했다.
1997년에도 李 후보는 흠이 있더라도 우파일 수밖에 없는 金鍾泌 세력과 손을 잡지 않음으로써 그가 충청도 표를 끌고 좌파쪽으로 가서 김대중씨의 신원보증자 역할을 하도록 했다. 2002년에도 李 후보는 똑 같은 실수를 했다. 그는 '이념으로 분단된 한국에선 이념이 가장 큰 전략이다'는 상식을 부정하는 선거전략을 수행했던 것이다. 본인도 그러했지만 한나라당의 그 누구도 盧武鉉 후보의 좌경적 이념을 是非해야 한다는 건의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反美촛불 시위에 李 후보가 참석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바람에 정통보수층이 배신감을 느꼈다.
李씨는 지금도 그때 자신을 비판했던 보수층에 대해서 서운하게 생각한다.
'젊은 표를 얻기 위해서 전술적 좌선회를 한 것을 왜 몰라주었느냐'는 취지이다.
일견 이유 있는 항변이나 여기에 지금의 한나라당도 빠져들고 있는 무서운 함정이 숨어 있다. 우파 후보가 좌파 표를 얻으려고 하면 左右 표를 다 잃게 된다는 것은 한국과 세계 선거사상 한번도 부정된 적이 없는 불변의 공식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파 후보가 좌파에 대해서 추파를 던지는 순간 다수 우파가 그 후보에 대한 배신감을 품고서 이탈하거나 지지도가 약해진다. 우파 후보가 확실한 우파 입장을 밝히고 선거운동을 시작하면 그 소신에 감동한 보수층 유권자들이 일종의 선거운동원이 되어 중도 유권자들을 설득하기 시작한다. 자발적인 대규모 선거운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우파 후보의 전술적 좌선회는 쉽게 간파당한다. 좌파의 위장된 우선회는 金大中 후보의 경우처럼 성공하기 쉽다. 우파는 정직을 생명으로 하는 집단이고 좌파는 위장을 가장 중요한 정책수단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우파의 위장은 부자연스럽고 좌파의 위장은 자연스럽다. 우파는 위장술에서는 아마추어이고 좌파는 프로이다.
2004년 3월12일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국회에서 압도적인 표차이로 盧대통령 탄핵의결을 했다. 그 순간 兩黨 의원들은 '盧대통령은 이제 끝났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안이한 시각은 좌파의 생리와 한반도의 이념투쟁의 본질에 대한 무지함을 보여준 것에 불과했다. 盧대통령은 당시 급조된 열린당의 대통령이 아니었다. 한국의 대중조직과 방송을 장악한 거대한 좌파의 대통령이었다. 여기에 김정일 정권이 가세하여 盧대통령 구출에 나섰다. 한나라당은 졸지에 남북한 전체의 좌파, 즉 親盧親北 연합세력과 대결하는 상황으로 몰렸다. 법리상으로는 국회의 탄핵결의가 정당했으나 남북한 좌파가 조직력과 선전력을 총동원하자 국민 여론이 오도되어 反탄핵으로 돌아섰다. 이때 한나라당이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도가 있었다.
그것은 한나라당도 당원들을 총동원하여 광화문으로 불러내고 애국운동단체들의 도움을 호소하여 거리에서 더 막강한 숫자로써 좌파와 대결하는 것이었다. 거리에서 밀리지 않으면 언론의 親盧 편향 보도도 견제할 수 있었다. 한나라당은 그러나 숨어버렸다. 집에 가버렸다. 거리에도 나오지 않았다. 비겁한 의원들은 공황상태에 빠져 '탄핵은 잘못이다'는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해 4월 총선에서 전멸했어야 할 한나라당이 구제된 것은 朴槿惠 대표의 대중적 인기와 보수층 여론의 궐기 덕분이었다.
5월31일 지방선거에서 열린당과 대통령에 대한 국민혐오증의 반사시익으로써 스스로도 놀란 大勝을 거둔 한나라당은 또 다시 좌파와의 싸움을 피하면 자동적으로 이긴다고 판단한 듯하다.
한나라당의 거대한 착각이 구체적으로 감지되고 있다. 5.31 선거가 한나라당에 아주 나쁜 교훈을 주는 것 같다. 즉,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좌익과도 싸우지 않고, 특히 김정일과는 좋게 지내고, 실수를 적게 하면서 열린당의 실패에 의한 반사이익만 챙기면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아주 쉽게 승리할 수 있다는 가르침을 가슴속에 새기고 있는 것이 한나라당인 듯하다.
이것은 바로 2002년 李會昌의 한나라당이 걸어갔던 길을 답습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그렇게 나오면 우선 한국의 보수층이 기준점과 자신감을 잃게 되고 온건하게 보이는 좌파측 후보로 기울게 될 것이다. 더 많은 보수층은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부시 대통령이 두 차례 그러했듯이 보수정당은 보수층을 먼저 확실하게 잡은 뒤 이 보수층을 선거운동원으로 의식화하여 좌파표를 공략해야 한다. 집토끼인 보수층 표를 제대로 잡기도 전에(그 표는 어차피 자기 표라고 생각하고) 좌파표를 얻으려고 추파를 던지게 되면 보수층이 그 변절에 견디지 못하고 반발함으로써 한나라당은 左右에서 기회주의 정당으로 경멸받게 된다. 左右를 다 잡는다는 전략을 쓰다가는 左右로부터 외면당하기 십상이다.
지방선거는 반사이익으로 이길 수 있지만 정권이 걸린 대통령 선거는 한국의 좌파연합 세력 전체와 투쟁해서 이겨야 한다. 열린당은 그 연합세력의 일부이다. 열린당보다는 김정일 정권이나 kbs mbc와 같은 좌파의 선전매체와 더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것이 한나라당이다. 한나라당도 우파 세력 전체를 동원할 수 있어야 이긴다. 문제는 한나라당에 애국우파세력에 대한 동원력이 과연 있는가이다.
한나라당내에선 좌파와 싸우는 그러한 惡役은 在野우파단체에 하청을 주면 된다는 아주 건방진 말을 하는 이들이 있다. 한나라당과 애국자유운동단체 사이엔 그 어떤 동지적 관계도 설정되어 있지 않다. 한나라당내에서 그래도 애국운동세력에 대해서 고마워하거나 미안해하는 사람은 김용갑, 정형근, 김문수, 전여옥, 주성영 의원 등 열 명이 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애국투쟁을 하면 표가 깎인다는 계산법(이 계산법은 좌파에서 심어준 것이다)에 속아 거리투쟁을 하는 애국자유진영을 멀리 하려고 한다. 한나라당의 이런 기회주의적 태도를 잘 아는 애국단체에선 이들을 증오, 경멸하니 한나라당과 애국단체 사이의 역할 분담은 어려울 것이다.
한나라당이 2007년의 상대를 열린당이라고 생각하면 질 것이 뻔하다. 한나라당이 이길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상대가 열린당, 김정일, 김대중, 친북좌익 세력 등 한반도의 권력을 잡고 있는 反대한민국 연합세력 전부라고 생각하고 '대한민국에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전부 우리편이다'는 입장에서 대동단결하여 大勢를 조직화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우파를 총동원한 다음에 역시 총궐기한 좌파의 각각의 단체들과 하나하나 치열한 진지전, 고지전을 해야 하며 그 결과가 大選 승리로 나타날 것이다. 大選에선 공짜가 없다.
우파 엘리트 집단이어야 할 존재가 한나라당이다. 국가이익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할, 즉 국가엘리트 집단이어야 할 존재가 한나라당이다. 한나라당이 기회주의적 처신을 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이 한반도의 제1진실을 직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제1진실은 동족 300만명이 김정일의 反민족적, 反인륜적, 反개혁적 노선에 의해 평화시임에도 불구하고 굶어죽었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직시하게 되면 김정일에 대한 분노와 북한동포들에 대한 동정심과 북한동포 해방을 핵심으로 하는 자유통일의 시급성에 대한 확신과 자유통일을 저지하고 김정일 정권을 유지시켜주려는 좌파들에 대한 경멸감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이념은 감정이라고 한다. 김정일에 대한 분노가 없으니 대한민국에 대한 사랑과 자랑도, 좌파들에 대한 경멸감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 감정적 반응도 없고, 이념무장이 안되니 국가 엘리트로서의 노블레스 오블리제 정신도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참고로 해야 할 국가 엘리트의 행태를 소개한다.
1912년 대서양에서 빙산에 충돌하여 침몰한 영국의 호화여객선 타이타닉호에 대한 통계가 있다. 1500여명이 침몰한 배에 남았다가 죽었고, 그 정도 숫자가 17척의 구명보트에 옮겨가 구조되었다. 1등석 승객중에서 어린이 전원과 144명의 여성중 139명이 살았고 남성은 70%가 죽었다. 어린이와 여성들을 우선적으로 구명보트에 태웠기 때문이다.
2등석 손님중에선 여성의 80%가 구조되었고, 남자의 90%가 죽었다. 1,2등석 손님들은 당시 미국과 영국의 최상류층이었다. 미국 최고의 부자라고 불리던 존 제이콥 아스톨씨는 아내를 데리고 와서 보트에 태운 뒤 동승하기를 거부하고 배에 남아 있다가 죽었다. 또 다른 巨富 벤자민 구겐하임은 자신에게 돌아온 보트의 자리를 여성에게 양보하고 죽었다. 그는 그 여성에게 '내 아내에게 내가 정정당당하게 행동했다고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월남전 때 미군 사령관이었던 웨스터모어랜드 장군은 미국의 정예 공정사단의 사단장으로 근무했던 적이 있었다. 이 부대가 낙하 훈련을 했다. 물론 그도 뛰어내렸다. 그날 강풍에 휘말려 부대원 7명이 죽었다. 다음날도 강풍이 불었으나 웨스트모어랜드 장군은 낙하 훈련을 중단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다만, 자신이 먼저 뛰어내려 강풍을 확인해볼테니 기다려보라고 했다. 사단장이 홀로 낙하했다. 着地엔 성공했으나 낙하산이 强風에 휩쓸려 끌려가다가 겨우 정지했다. 그는 부하들에게 지시하여 훈련을 중단시켰다.
19세기말 영국이 인구 3억의 인도를 다스릴 때 인도엔 약15만 명의 영국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 가운데 6만 명은 군인이었다. 영국 군인들은 이 광활한 대륙의 변경에 퍼져서 주둔했으므로 보통 인도인들은 영국 군인들을 볼 수도 없었다. 어떻게 하여 이런 少數로써 多數를 다스릴 수 있었는가.
인도행정청(India Civil Service: ICS)이 그 비밀이었다. 인도행정청에는 약1000명의 영국 공무원들이 근무했는데, 이들이 인도 각지에 파견되어 식민지 행정을 맡았다. 이 천명이 사실상 3억 인구를 다스린 것이다. 이 3억 인구는 언어만 해도 20가지이고 지방語는 셀 수 없을 정도인데다가 종교 인종도 각양각색이었다. 이런 인도를, 영국 공무원 한 사람이 30만명씩 안정적으로 관리했던 셈이다. 이 불가사의한 행정의 비밀에 대한 연구서적이 최근에 출판되었다. 데이비드 길모어(David Gilmour)라는 사람이 쓴 '지배계급'(The Ruling Caste: 출판은 Farrar, Straus, Giroux, 381페이지, 27 달러)이 그것이다.
인도행정청에서 근무할 영국인을 뽑고 훈련하는 과정에서 영국정부는 애국심과 자부심에 기반한 公人윤리를 반복교육으로 깊게 심었다. 학생들은 인도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었다. 영국정부는 이들에게 그런 현지 관련 지식보다는 국가엘리트로서의 자부심을 심어주는 데 주력했다. 인도에 대한 지식은 현지에 부임하여 배우도록 했다. 그 대신 大英제국의 知的이고 도덕적인 우월성에 대한 교육이 행해졌다. '유럽 도서관 한 개의 선반위에 올라 있는 책이 인도와 아라비아 전체의 문학작품을 모두 모은 것보다 더 우수하다'는 식의 교육이었다.
著者 길모어씨는 이 책에서, '제국주의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제' 정신으로 무장한 이 젊은 관료들은 '책임을 떠 안는 것의 쾌감'을 간직하고 어떤 경우에도 조국을 실망시켜서는 안된다는 마음이 강했다고 분석했다. 이들이 인도에 가서 부임하는 곳은 교통이 불편한 奧地(오지)인 경우가 많았으므로 무슨 사고가 일어나도 상부 지시에 따라서 행동할 수가 없다.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결단력이 요구된다. 영국관료들은 실용주의와 상식에 기초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습관을 부임 초기부터 터득해나갔다.
소요사태를 예방하려면 우선 지배층이 민중을 자극하지 않아야 했다. 영국관료들은 인도사회의 풍습이나 사회적 관행에 대해서는 간섭하지 않았다. 다만, 남편이 죽으면 부인을 불태워죽여서 순장하는 식의 야만적인 풍습은 금지시켰다. 인도사람들은 세금을 내고, 지역관리들을 죽이지만 않는다면 영국인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살 수 있었다. 영국관리들은 그들이 다스리는 현지의 언어에 숙달해야 했다. 이 식민통치 관리들의 행동윤리는 피지배층을 대할 때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듯이 자선적이고, 공평하며, 청렴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영국관리들은 절대로 뇌물을 받지 않는다'는 인도민중의 定評이 이들의 통치를 수월하게 해주었다.
인도는 독립한 뒤에도 영국행정청의 이름만 바꾸고 그 골격을 이어갔다. 물론 영국인은 인도관리로 교체되었다. 인도는 영국관리들이 남긴 전통, 즉 자선적이고 공평하며 청렴한 공직규범을 그대로 계승하여 오늘날 세계최대의 민주국가를 운영하고 있다.
두 달 전 서울의 부자동네 사람들이 많이 나온 모임에 갔다. 구청장이 자랑을 했다.
'그곳에 임대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라는 정보를 미리 입수하니 앞이 캄캄했습니다. 우리 區가 무너질 것이란 위기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서울시를 설득하여 그곳에다가 테니스장을 짓기로 했습니다'
강북에 사는 나는 이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공무원이 이런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해도 되나'하는 생각이 하나이고, 이런 말을 듣고도 모두가 잘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이 부자마을 사람들의 양심은 도대체 몇 원짜리인가 하는 분노였다.
임대아파트가 옆에 들어서면 주거, 교육환경이 나빠지고, 아파트 값이 떨어진다고 건축 반대 운동을 벌이고 있는 富者들이 있기 때문에 좌파들이 득세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양극화 선동'이 먹히는 것이다. 임대아파트 입주자를 마치 백인이 흑인 보듯이 하면서 합법적인 건축을 방해하는 이런 부자들이야말로 한국 사회를 계급적으로 분열시키는 사람들이며 도덕적으로 평가해도 친북좌파보다 못한 존재이다. 임대아파트가 들어선다고 용감하게 억지를 부리는 부자들일수록 애국운동을 기피하고, 투표일엔 외국여행을 나가는 경우가 많다. 좌파의 도전에 대한 위기의식도 거의 없다. 자신들의 자유와 재산은 그 누군가가 대신 지켜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富者들은 김정일과 그 추종세력의 위협에 직면해서도 자신의 존재를 지키기 위해서 싸우지 않는다. 모든 생명체는 생명체로서의 존립을 위협하는 외부 세력에 대해서는 싸워야 할 생명체로서의 의무가 있다. 생명의 핵심은 자유이다. 자유를 위협하는 세력에 맞서 싸우지 않는 순간 그런 생명체는 생명력을 잃고서 無생물이 되는 것이다. 밟았을 때 꿈뜰대는 지렁이는 생명체이지만 밟아도 반응이 없는 한국의 부자들은 생명이 아니라 시체이든지 돌과 같은 무생물이다. 무생물체는 자유를 상실하여 아무런 가치가 없으므로 쓰레기 취급을 받아도 할 수 없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경멸당해야 할 부류는 못사는 사람들에게 못되게 굴면서 권력을 쥔 좌파에 대해서는 싸움을 기피하고 굴복해버리는 '잘 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오만함으로써 좌파들을 키웠고 비겁함으로써 좌파들을 강화시켜주고 있기 때문이다. 2007년 大選에서 사이비 좌파를 물리치고 정상적인 세력이 이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강남사람들부터 보다 겸손해지고 보다 용감해져야 할 것이다. 지금은 싸우지 않는 강남사람들과 가장 닮은 존재가 한나라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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