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武鉉류의 反국가적 좌파가 어떻게 우파(자유민주주의)만 허용되는 대한민국의 헌법체제 속으로 들어와 정권까지 차지하게 되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우파 정치인들이 이념대결을 피하고 우파 지식인과 언론은 언어戰線에서 저항선을 구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파괴적 이념과 언어가 한국사회를 뒤덮어 인식의 혼란을 가져오니 朴槿惠 대표의 목덜미를 찌른 패륜아가 자신의 행위를 '대한민국의 민주를 위해서'라고 설명할 정도가 되었다.
우파 세상에서는 좌파가 반역적 본성을 숨기지 않고서는 정권을 잡을 수 없다. 이를 잘 아는 좌파는 진보, 개혁, 민주세력으로 위장했다. 정확한 용어를 쓰는 것을 생명으로 삼아야 할 기자들과 학자들은 좌파들이 불러달라는대로 불러주다가 보니 결과적으로 그들의 위장술을 도와주었다. 지난 10여년간의 좌파 득세기에 주요 매체 가운데 오직 月刊朝鮮만이 좌파를 '진보'라고 불러주지 않았다고 한국 知性史에 기록될 것이다.
김정일의 심부름꾼으로 전락한 친북좌익 세력은 지금도 자신들을 '親北'이라고 표현한 기자와 애국운동가들을 명예훼손이라고 고소하고 있는데, 이는 정확한 용어에 의해서 위장막이 걷혀지면 한국내 좌파는 진실의 햇볕을 받아 말라죽을 운명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인천의 맥아더 동상 앞에서는 몽둥이로 무장한 20代 중심의 김정일 전위대가 계란을 든 70代 老人들과 대결하는 모습이 벌어졌다. 정통 신문들조차 이날의 희한한 장면을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라고 불렀다. '반역과 애국의 대결'이라고 써야 할 언론의 이런 부정확한 보도가 좌파의 반역성에 대한 국민적 경계심을 마비시키고 각성을 더디게 하였다.
칼을 든 강도가 침입하는 것을 보고 경비원이 '강도야!'라고 소리쳐야 주인이 놀라서 경찰을 부를터인데 이 용렬한 경비원은 '쇠붙이를 든 신사분이 허가를 받지 않고 경계선을 넘고 있습니다'라고 보고했던 것이다.
한국의 언론이 말하는 '386 주사파'는 철학계의 한 유파가 아니다. 이들은 '김일성 김정일 추종 공산주의 집단'이다. '386 주사파 출신들이 정권의 요직에 들어갔다'고 보도할 것이 아니라 '386 공산주의자들이 정권의 요직을 차지했다'고 해야 국민들이 대책을 세울 것이 아닌가?
기자와 학자들이 정확한 용어를 무기로 삼아 이념戰線에서 버티어주었다면, 그리하여 수시로 경보를 발령했더라면 진보로 위장한 좌파의 체제내 침투는 저지되었을 것이다.
위장술로 이념전선을 돌파한 뒤 정권을 잡은 좌파세력은 개혁, 자주, 평화, 민족으로 위장한 안보, 경제, 對北, 외교정책을 추진하다가 최근에 와서는 자신이 생겼는지 盧대통령까지 나서서 '우리는 좌파이다'라고 공개적인 선언을 해버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도 언론과 학자들과 우파를 자처하는 정치인들조차도 '우리는 반역집단이다'라는 의미의 이 도발적 선언에 대해서 따지지 않는다. 오히려 생활인들이 경험에서 우러나온 지혜로써 좌파의 본색을 알아채고 거부권을 행사한 것이 이번 5.31 선거였다.
5.31 선거 이틀 뒤 저녁 서울 강남에서 개인 택시를 타고 강북으로 오면서 운전기사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왜 열린당이 참패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노무현 정권이 과거를 캐는 게 싫어요. 과거의 경제개발을 부정하려고 그러는 모양인데, 자기들이나 잘 하지'
'양극화라는 말을 들어보았나요?'
'그것도 그렇지요. 아니 강남 사람이 잘 살아서 내가 못 살게 된 건 아니잖아요? 집값을 못올리게 하는 건 좋은데 집은 마음대로 팔고 살 수 있도록 해야지. 부자가 못살게 되면 서민들은 더 못살게 되는 것 아닙니까?'
택시 기사는 교수들을 비판했다.
'그 사람들이 참말을 해야 할텐데 코드를 맞춘다고 뻔한 거짓말을 하는 것 같습니다'
택시가 시청광장을 지나갔다. 다음날 새벽에 있을 노르웨이-한국의 월드컵 대비 평가전 응원을 위해 벌써 사람들이 모여 들고 있었다. 기사가 못마땅한 듯 말했다.
'나는 2002년에 월드컵 열기 때문에 노무현이 당선되었다고 생각해요.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응원하면 되지, 꼭 저렇게 해야 되는지 모르겠네요'
기사는 가스값과 세금이 올라 종일 시내를 누비고 다녀도 돈벌이가 어렵다고 불평했다.
'가끔 내가 왜 이렇게 헤매고 다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제발 서민들이 편하게 먹고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해요'
그는 갑자기 화가 난 듯 소리치듯이 말했다.
'세상에 부인을 죽인 사람이 어떻게 청와대에서 근무합니까'
이번 5.31선거에서 열린당이 대패한 이유를 분석하는 자리에서도 정통언론조차 상황의 본질에 다가가려는 인식의 깊이를 보여주지 못하고 아주 피상적인 관찰에 그쳤다. 이런 분석은 모처럼 일어난 국민들의 대각성 운동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선거의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결과에 대한 정확한 해석이다. 이 해석이 이론화되어 국민들에게 확산되어야 '좌파는 안된다'는 여론이 신념으로서 뿌리내리게 된다.
조선일보는 6월1일자 기사에서 몇 가지 원인 분석을 내어놓았다. 盧정권의 무능에 국민들이 분노했다는 것이다.
<집값 폭등, 세금폭탄, 경기침체에 민심이 떠났다. 민주당과 열린당이 분당되어 전통적인 지지층이 분열되었다. 집권세력이 정치개혁을 내세우면서 지역정치를 더 키웠다. 盧대통령은 '중간평가가 아니다'면서 뒤로 숨었다>
중앙일보는 정권의 무능에 대한 누적된 民心이반이 열린당 참패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과연 두 신문이 분석한 정도의 실수에 대해서 국민들이 이처럼 철저한 응징을 했을까? 단순히 무능하다고, 세금을 많이 매겼다고, 경기가 침체되었다고 해서 여당을 해체수준으로 몰아버린 선거혁명을 했을까?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동아일보 사설은 스쳐가듯이 그 이유를 다루었다.
<저성장과 무거운 세금에 국민은 허리가 휘는데도 세계적으로 퇴조한 사회주의적 좌파정책으로 경제침체와 사회적 갈등을 부추겼다. 자주와 민족을 앞세워 한미동맹을 금가게 함으로써 '동북아의 외톨이'로 남을질 모른다는 불안감을 키웠다>
조선, 중앙일보가 지적한대로 이 정부의 정책이나 무능이 主이유였다면 전북지역을 제외한 전국을 휩쓴 열린당 응징바람은 이토록 세게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열린당뿐 아니라 민노당이 대패하고 좌파3당 중에서 온건한 것으로 비쳐지는 민주당이 善戰하고 우파로 인식되는 한나라당이 대승한 것은 하나의 암시를 준다.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 유권자들이 대통령 당의 후보에게 24%의 표밖에 주지 않았다는 것도 힌트이다.
이번 선거에서 열린당 응징바람을 일으킨 가장 중요한 動因은 이념문제였다. 盧정권의 親北-親中-反韓-反美 정책과 계급적 시각의 국론분열 정책, 그리고 사이비 좌파적 인생관과 역사관에서 나오는 야비하고 증오에 찬 집권자들의 言動이 국민들의 양식과 양심에 불을 붙인 것이다.
노무현, 이해찬, 정동영, 유시민, 조기숙, 천정배, 강정구 같은 인물들의 막가는 언동이 국민들을 화나게 했고 열린당 응징바람을 불렀다. 이들의 어떤 언동이 그토록 국민들을 흥분시켰던가?
盧대통령이 한 국민을 자살로 몰고갔던 발언, '별놈의 보수'라는 욕설, 시민혁명해야 한다는 선동, 김정일의 핵무기 개발은 이해할 수 있다는 발언 같은 것들이다. 이런 발언들은 그 배후에 좌파적 논리의 틀을 감추고 있다. 국민들을 화나게 만들었던 정책과 언동은 거의가 좌파적 인식체계와 가치관에서 나온 것이다. 열린당과 盧정부는 국민들을 상대로 사상전을 펼쳤고 유권자들은 이 도전에 응전한 것이다. 그 결과가 5.31 선거였다.
우파는 왜 이념전선에서 돌파당했는가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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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6-11, 0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