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韓 미사일 사태의 본질은 金正日 비자금

종합보고: 金正日이 미사일 도발을 한 이유는 海外 비자금을 지키려는 발악이다.
중국은행의 김정일 비자금 계좌 확인

2000년 金大中 당시 대통령이 현대그룹을 통해서 金正日에게 4억5000만 달러의 뇌물을 주고 南北頂上회담을 매수하여 그해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金正日-金大中 회담에서 나온 것이 반역적인 6.15 남북공동선언이었다. 필자는 6.15선언이 6.25사변에 버금가는 6.15사변을 일으켰다고 주장한다.
金大中 정권이 4억5000만 달러 중 2억 달러를 보낸 은행은 검찰 수사로 밝혀졌다. 國情院 직원이 송금한 달러는 중국은행 마카오 지점내의 ‘DAESUNG BANK-2’로 들어갔다.
대성은행은 흔히 중앙당 39호실이라고 불리는 북한노동당 재정경리실 산하 은행으로서 金正日의 비자금을 관리한다. 2003년 검찰의 수사로써 金正日의 비자금이 중국은행 마카오 지점의 대성은행 계좌를 통해서 관리되고 있었다는 의외의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미국의 對北금융제재를 발동시킨 것은,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이 金正日의 불법자금을 관리해왔기 때문인데 중국의 중앙은행인 중국은행도 金正日의 계좌를 안고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미국은, 金正日이 마카오 등지의 은행에 갖고 있었던 계좌는 범죄자금 세탁, 위조달러 유통에 이용된 것이라고 규정하여 이런 계좌를 열어놓은 은행에 대해서는 미국 금융기관이 거래를 해선 안된다는 행정명령을 내려놓고 있다. 미국은 증거가 분명하게 드러난 방코델타아시아 은행만 표적으로 삼아 이 명령을 적용하여 金正日을 막다른 골목으로 몬 對北금융제재를 시작했던 것이다.

미국은 金正日의 불법자금을 관리해온 중국은행에 그런 행정명령을 적용할 경우 중국의 외환업무를 거의 마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으나 이는 美中 사이의 정면대결을 부를 것이므로 신중하게 결정하지 않으면 안된다. 중국도 미국이 중국은행과 북한정권과의 거래 사실을 조사하여 약점을 잡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런 일도 이번 유엔안보리의 對北제재안 표결 때 중국이 미국에 도전하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한 한 要因이었을 것이다. 유엔 안보리가 전원일치로 對北결의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일본의 對中압박 카드가 효과를 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서울의 정보소식통에 따르면 미국과 일본은 비공식적으로 중국에 대해서 두 가지 압력을 넣었다는 것이다. 하나는 중국이 북한정권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저지하지 않으면 미국도 장기적으로는 일본의 핵무기 개발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는 메시지였다. 또 하나는 2008년 北京 올림픽에서 일본 기업이 광고 스폰서를 하지 못하게 될 것이란 압박이었다. 그렇게 되면 北京 올림픽은 적자를 보게 된다.
북한정권은 중국측에 미사일 발사 실험 직전에 이 사실을 알렸다. 중국의 胡錦濤 주석은 즉시 金正日에게 발사 중지를 요청했으나 묵살당했다. 이것도 중국 지도부의 감정을 상하게 했다. 1980년대 金正日은 지금 중국 지도부의 위대한 스승인 鄧小平의 개혁 개방 정책을 사회주의에 대한 배신이라고 비난했다. 이것이 중국에 전해져 中北 관계가 나빠지는 한 원인이 되었다. 文革의 피해자들인 중국 지도부는 김정일을 통해서 과거의 惡夢을 연상한다고 한다.

한국 국방부의 보고서: 군사비 轉用 가능성 認定

유엔 안보리가 전원일치로 對北결의안을 통과시킨 직후 對北제재협력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한 스튜어트 레비 美 재무부 테러리즘 및 금융범죄 담당 차관은 한국 정부 관계자들과 만나 開城公團의 임금 및 금강산 관광비용으로 북한에 유입되는 달러가 미사일 및 대량살상무기(WMD) 개발비용으로 轉用될 가능성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3년 전 한국 국방부 산하 국방연구원의 성채기, 박주현, 백재옥, 권오봉 연구원은 ‘북한경제위기 10년과 군비증강 능력’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금강산 관광 代價로 지급되는 달러가 군사비나 對南공작비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었다.
연구자들은 금강산 관광 代價로 現代측이 제공하는 달러는 金正日이 직접 관리하는 '宮庭경제'의 관할로 들어가 군사비나 對南공작비로 쓰일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연구자들은 또 '꼭 필요로 하는 國家戰略的 사업이 발생하는 有事시기에는 이 자금이 군사적 목적으로 투입될 중요한 資金源임에는 틀림없다고 보여진다'고 결론 내렸다.
연구자들은 이어서 金正日이 매년 6000-7000만 달러의 비자금을 축적하고 있으며 해외에서 관리되는 규모는 20-40억 달러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한국의 국가기관이 명시적으로 금강산 관광 資金의 군사비 轉用 가능성을 제기한 경우는 이 논문이 유일하다.
1993년 5월 시험발사에 성공한 중거리 탄도미사일의 개발과 관련하여 북한 內閣기관지 「民主朝鮮」은 이렇게 보도했다.
<金正日 총비서가 주재한 인민군 지휘관 회의에서 새로운 장비를 만드는 회의가 열렸는데, 그 장비는 세계적으로 아직 몇몇 나라만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엄청난 자금이 요구되었다. 이 장비를 개발한 시기는 1987년부터 1993년까지 이르는 제3차 7개년 계획의 후반기 과업을 수행하던 때라서 한 푼의 자금도 쪼개 써야 할 상황이었으나 김정일 총비서가 직접 자금을 풀어주어 짧은 기간에 위력 있는 전투기술기재를 완성했다>
故鄭周永씨가 창립한 現代그룹은 金大中 정부 시절 두 차례 10억 달러 이상을 金正日의 비자금으로 달러를 보냈다. 이 달러가 핵무기 및 미사일 개발에 轉用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유엔의 對北결의안을 엄격하게 적용할 경우 現代그룹이 운영하는 금강산 관광은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부시 행정부는 金大中과 現代그룹을 敵에게 핵 및 미사일 개발자금을 제공한 적대적 존재로 보고 있을 것이다.

미사일 도발은 결국 돈 문제

작년 9월 미국이 自國 금융기관에 대해서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 은행과 거래를 하지 말 것을 명령한 이후 北韓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대충 이러하다.

1. 세계의 거의 모든 은행들이 북한과 外換거래를 끊었다.
2. 따라서 북한의 貿易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달러로써 現金거래를 하는 수밖에 없는데, 북한이 국가적 규모의 달러 僞造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現金을 받기도 꺼린다고 한다.
3. 金正日이 스위스 등지에 넣어두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약60억 달러의 秘資金을 빼내기도 어렵고 쓰기도 어려워졌다.
4. 이 때문에 金正日의 統治자금이 減少하기 시작했다. 장군들에게 주는 선물의 量도 줄었다고 한다.
5. 북한 엘리트와 貿易일꾼들의 金正日에 대한 불만이 높아간다. 軍隊와 企業所 등 무역을 해서 자체 운영자금을 조달하는 기관들이 타격을 많이 받는다.
6. 요사이 북한은 달러現札을 들고 나와서 滿洲에 있는 작은 은행에 예금하고 이 예금을 담보로 삼아 홍콩 等地에서 대출을 받는 식의 편법도 쓰고 있다.
7. 미국의 對北금융제재 문제에 관한 한 중국을 포함한 어느 나라도 金正日 편을 들지 못한다.
8. 금융제재 이후 북한정권이 달러위조, 필로폰 제조 등 범죄행위에 의한 돈벌이를 自制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9. 반면 시리아와 이란에 대한 武器 수출을 더 많이 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려 이 테러국가들 사이는 더 밀착되고 있다.
10. 북한 엘리트층에서 金正日의 權威가 손상되고 불만은 늘어나고 있다. 金正日만 책임져야 하고 그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11. 미사일 발사 도발은 이런 딜레머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다. 결국 이번 위기는 金正日의 秘資金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즉 危機의 본질은 獨裁者의 돈 문제인 것이다.


몇년 전 북한의 한 고위 黨간부가 외국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북한의 모 은행으로부터 7000달러의 現札을 경비로 받아 출장을 떠났다. 出張地에서 그 돈으로 호텔값을 내니 100달러짜리가 僞造라고 했다. 그래서 7000달러를 다 검색기에 걸어보았더니 2000달러가 僞造임이 밝혀졌다. 곤욕을 치른 그는 歸國하자마자 僞造달러 뭉치를 갖고 은행으로 달려가서 따졌다. 은행에선 '우리는 그런 돈을 준 적이 없다'고 딱 잡아떼더라고 한다.
脫北한 그는 북한정권이 외교관들에게 僞造달러를 섞어서 주면서 消費하도록 시킨다고 한다. 中國사람들은 북한사람들로부터 物品代金으로 달러를 받을 때는 으례 한 20% 정도는 僞造달러가 들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미리 20% 정도를 올려서 請求한다고 한다.
對北금융제재와 미사일 발사 도발의 배경이 되는 ‘金正日 海外 秘資金’의 성격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 필요가 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 돈은 북한에 있어야 할 북한당국과 북한주민들의 公金이다. 金正日은 1980년대부터 충성의 외화벌이 사업을 독려했다. 북한사람들은 전국의 山野를 헤매고다니면서 砂金을 캐고, 송이버섯을 키우고 金鑛을 개발했다. 군대는 헤로인, 필로폰 밀조 밀매 공장을 직접 운영했다. 북한정권은 가짜 담배와 가짜 의약품에다가 달러를 위조하고 가짜 의약품까지 만드는 거대한 국제범죄기관으로 轉換했다. 외국 주재 대사관들과 외교관들은 마약밀매, 가짜달러 유통의 네트워크 역할을 했다. 이런 국제범죄 규모는 1990년대 후반부터 커져 年間 약10억 달러의 수입을 올리게 되었다.

金達玄 호소: “김정일 횡령으로 북한경제 망가져”

이런 범죄와 무역으로써 벌어들인 자금은 북한의 경제구조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金正日이 직접 관리하는 勞動黨 자금(중앙당 재정경리실, 즉 39호실 자금이라고도 한다)으로 들어가 巨額이 스위스, 마카오, 싱가포르, 홍콩으로 빼돌려졌다. 이렇게 조성된 金正日의 해외비자금은 본질적으로 북한주민들과 북한의 資源을 약탈하고 횡령한 북한의 公金인 것이다. 故 申相玉 감독이 金正日 정권을 평할 때 쓴 말이 ‘馬賊團’이었다. 북한이라는 마을을 점령하고 약탈하여 주민들을 굶주리게 하면서도 자신들은 호화판으로 생활해도 일말의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집단이란 뜻이다.
‘金正日 횡령 秘資金’이 많아질수록 收奪당한 북한경제는 망가지기 시작했다. 1990년대에 들어와 북한경제가 瀕死(빈사)상태에 빠진 가장 큰 이유는 사회주의 경제권의 몰락이 아니라 金正日이 公金을 빼돌려 秘資金化한 때문이라고 호소한 사람이 바로 金達玄부총리였다. 金 부총리와 친했다는 한 고위급 탈북자 A씨(70代)는 金씨가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요지의 울분을 터트리더라고 증언했다. 金達玄이 1988년에 정무원의 國家計劃위원회 위원장이 된 뒤의 이야기였다.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로 우리가 타격을 본 것은 많지 않았다. 우리는 바르샤바 조약에 들지도 않았고 그들 국가와 바터 무역을 조금 한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는 그 대신 東南아시아와 日本으로 무역을 확대했다. 내가 政務院의 국가계획위원장이 된 뒤 보니까 무역으로 들어오는 자금이면 경제를 돌릴 수 있겠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런데 수출한 돈이 正門으로 들어오지 않고 黨으로 빼돌려져 대성은행을 통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지 않은가. 조선은행과 무역은행은 빈털터리다. 송이버섯을 수출하여 연간 9000만 달러를 버는데 다 빠져나갔다. 스위스 은행에 잠긴 돈이 최소한 40억 달러는 된다. 金正日 동지 때문에 경제가 무너지고 있다.”
1980년대 북한에서는 興南비료공장의 현대화가 필요해졌다. 한때 연간 160만t의 硫安비료를 생산하던 이 공장은 日帝 때의 낡은 시설을 교체하지 못해서 생산량이 줄고 있었다. 관련 기술자들은 공장을 현대화하는 데 외국에서 약1억5000만 달러어치의 시설을 도입해야 한다는 계산을 하여 金達玄과 상의했다. 金達玄은 金正日에게 外貨 자금을 마련해달라고 건의했다. 金正日은 거절했다. 자신이 해외로 횡령한 公金을 비료공장 재건에도 쓰지 않으려 했다.
金達玄이 자꾸 이런 건의를 하자 김정일은 노동당 조직부 생활지도과를 시켜 그를 불러 혼을 내게 했다. 생활지도과에 불려가면 부총리급이라도 반말과 욕설을 듣고 나온다고 한다.

“김대중이 巨額의 선물을 바쳤다”

고위급 탈북자 A씨는 “아직도 金達玄의 울먹이던 목소리가 귀에 쟁쟁하다”고 말했다.
“생활지도과에선 金達玄을 불러다놓고 ‘왜 黨에다 대고 돈 달라고 하는가’라고 추궁했다고 합니다. ‘외국에 돌아다니더니 노랑물이 들었는가’라면서 ‘왜 우리 것을 낮추어보는가. 노동계급의 혁명의식을 조직하고 동원하면 해결할 문제를 왜 외국돈에 의존하려고 하는가. 자기검토를 하라’고 하더랍니다. 한편으로는 노동자들을 시켜서 ‘反黨反革命(반당반혁명)분자를 축출하라’는 시위를 벌이게 했으니 興南비료공장 현대화 계획은 좌절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흥남비료공장은 年産 5만t까지 떨어졌습니다. 북한 식량난의 근본 원인은 비료 부족이었습니다. 1990년대말에 金達玄이 자살한 것도 절망감 때문이었습니다”
고위급 탈북자 A씨는 김정일의 스위스은행 비자금이 바로 북한 경제를 망친 主犯이라면서 金大中과 盧武鉉 두 사람은 “비자금을 보태주고 그 비자금을 보호해주려는 민족의 반역자이다”고 격분했다.
'2000년 6월 金大中-金正日 회담 직후 평양에서 중앙부서 부부장급 이상을 모아서 黨 선전부가 강연을 했습니다. 요지는 金大中이 흰 깃발을 들고 巨額의 선물을 바쳐서 이뤄진 것이 평양회담이란 것이었습니다. 강연자는 또 햇볕정책은 이번 회담으로써 실패했는데 그 이유는 金大中이 북한체제를 존중하고 평화공존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그때는 金大中이 5억 달러를 보낸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북한의 엘리트들은 크게 실망했습니다. 金大中이 金正日을 도와주지 않았으면 북한이 중국식 개혁 개방으로 나갔을 것이라고 지금도 아쉬워합니다“
1990년대 초 金達玄, 연형묵, 강성산 등 혁명2세대는 ‘金正日이 해외로 자금을 빼돌려 북한경제가 망가지고 있는 실상’을 金日成에게 直訴(직소)하여 김정일이 경제문제에서 손을 떼도록 만들려고 했다는 것이다. 총리출신인 강성산이 그 惡役을 맡았다. 비로소 金日成은 경제파탄의 심각성을 알아차렸다고 한다. 그는 黨 회의에서 金正日을 향해 화를 내면서 “이제부터는 내가 경제를 다루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金正日의 해외 비자금 문제를 제기했고 金正日은 그 돈이 조국통일 사업 등에 잘 쓰이고 있다고 변명하는 데 급급했다는 것이다.

金日成의 죽음과 스위스 비자금 관계

金日成은 金正日과의 후계자 경쟁에서 져 僻地(벽지)에 내려가 있던 동생 金英柱 전 노동당 조직부장을 불러올려 副主席으로 앉혔다. 1992년 金日成의 80회 생일 잔치 때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성격이 급한 金英柱는 김정일을 가리키면서 험한 말도 했다고 한다. 1994년에 들어오면 한국의 安企部도 北韓권력층 내부의 심상치 않은 동향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김일성이 前面에 나오고 김정일이 실각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분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때는 너무 늦었다. 金正日은 권력의 실무부서를 완벽하게 장악하여 아버지를 감시하에 놓고 있었다.
1994년 7월로 예정되었던 남북頂上회담은 父子 갈등을 깊게 만들었다. 金日成은 金泳三 대통령을 만나 경제지원을 받을 생각이었고 서울 答訪(답방) 가능성까지 검토했지만 金正日은 반대했다. 1994년 7월8일 묘향산 별장에서 金日成이 심장마비로 죽었을 때 그 곁에는 主治醫師도 수입해온 心臟蘇生器機도 없었다. 고위급 탈북자 A씨는 “金正日이 金日成을 죽였다는 증거는 아직 없으나 죽음을 유도했거나 방치했다는 의심은 많이 간다”고 했다. 김정일은 김일성이 죽자 한때 아버지 편에 붙으려고 했던 간부들을 숙청했다. 상당수는 수용소로 끌려가거나 처형되었다. 金日成의 죽음으로써 혁명2세대의 꿈은 사라졌다. 金日成 父子의 갈등과 수상한 죽음을 부른 것도 스위스 은행에 예치된 金正日의 비자금이었다.
軍需, 과학기술 계통에 밝은 이 고위급 탈북자 A씨는 지난 7월5일의 미사일 발사 도발에 대해서 아주 흥미 깊은 분석을 했다. 대포동 2호가 발사된 지 40초 뒤에 공중폭파된 것은 실패가 아니라 처음부터 의도된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金正日은 이 대포동 2호를 미국을 향하여 쏠 만큼 무모하지 않습니다. 그럴 필요도 없었습니다. 1998년 실험에서 대포동 2호는 3단계까지 분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번에 실험하고싶었던 항목은 1단계 로켓의 推進力을 증가시키는 것이었습니다. 1단계 로켓의 몸통에 엔진을 여러 개 追加하여 쏜 것인데, 이 推進力을 실험하는 데는 발사 후 40초이면 충분합니다. 2, 3단계 분리 실험은 아예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어-유도장치도 달지 않았다고 봅니다. 따라서 이번 실험은 失敗作이 아닙니다. 의도된 공중폭발이었습니다”

“SS-22 미사일 실험했을 것”

A씨는 또 다른 첩보를 내어놓았다. 발사된 여섯 발의 노동 미사일과 스커드 미사일중 하나는 북한식 SS-22 중거리 미사일이란 것이다. 북한 軍部는 노동 미사일보다도 스커드 미사일을 좋아한다. 노동 미사일을 쏘는 데는 연료주입이나 充電(충전)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발각되기도 쉽기 때문이다. 2000년 무렵부터 북한 과학원은 SS-22 미사일 모방 설계를 완성하여 試製品을 만들었고 A씨는 그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이 미사일은 물론 핵무기 운반용이다. SS-22는 스커드 미사일보다 사정거리는 길고(1000km 이상) 적중도가 높다. 북한이 폐기된 SS-22 설계도를 어떻게 구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고 한다.
SS-22는 1979년에 소련이 SS-12 중거리 미사일을 代替하면서 배치한 신형 미사일에 서방측이 붙인 이름이다. SS-22는 스커드 B형을 개량한 것이고 같은 發射車臺(발사차대)를 쓴다. 소련은 이 미사일을 소련영토에 배치하고서도 西유럽의 대부분을 사정거리 안에 두었다. A씨의 주장대로 SS-22 미사일 시험발사가 성공했다면 이는 金正日이 한국과 일본을 위협할 수 있는 중요한 전략무기를 하나 더 손에 넣었다는 뜻이다. SS-22의 사정거리라면 일본의 중부지방까지 포함된다. A씨는 북한 과학자들이 아직 믿을 수 있는 핵폭탄을 만들지 못했고, 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을 정도로 500kg까지 小型化 시키는 데는 이르지 못했으나 성공했다고 金正日에게 허위보고를 했을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진정한 사회주의자와 손 잡아야”

A씨는 “북한 정권내부에 反김정일 개혁세력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고 여러번 말했다. 그는 “그 개혁세력이 자유민주주의자이기를 기대해선 안된다”고 주문했다. 金達玄, 연형묵 등 혁명2세대로 대표되었던 이들은, 김정일이 사회주의를 파괴한 자이므로 사회주의를 再建(재건)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생각해보십시오. 金正日은 사회주의자의 허울을 쓰고 金氏王朝를 통치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가 해외로 빼돌린 자금이 專制왕국에서 이뤄진 일이라면 좋다 이겁니다. 王族들이야 별도의 經濟圈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 자는 사회주의를 자칭하면서 그런 짓을 하는 겁니다. 金正日은 권력을 세습하고, 배급경제를 망쳐 주민들을 굶겨죽임으로써 북조선의 사회주의를 스스로 파괴했습니다. 이제는 한국의 자유민주주의자들이 애국심이 있는 북한의 진짜 사회주의자들과 손잡고 金氏王朝를 타도해야 합니다. 한반도의 左右가 같이 金正日을 공격해야 합니다. 이것은 善과 惡의 싸움이 아니라 악마와의 싸움입니다”
고위급 탈북자 A씨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2000년의 6.15 회담을 보고 평양의 양심적인 사회주의자들이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릅니다. 우리 代는 이렇게 살다가 가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푸념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부시의 금융제재가 들어가니 그들도 다시 희망을 가질 것입니다. 한국과 미국이 金正日을 압박해주는 것이 이들 사회주의자를 격려해주는 일입니다. 외부의 金正日 압박이 강해지고 金正日이 수습하지 못한다면 宮庭 쿠데타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먼저 김정일 가족내에서 叛旗(반기)를 드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여기에 개혁주의자들이 합세하여 金正日에게 경제관리권을 내어놓으라고 설득할 수 있습니다. 물론 金正日이 경제권을 내어놓으면 그것이 몰락의 시초가 되겠지요. 그런 뒤에 중국 鄧小平식 개혁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북한체제의 목표가 對南적화가 아니라 인민들을 먹여살리는 것이 될 때 비로소 남북관계가 개선될 것이고, 이때엔 한국이 주도하는 남북연방제도 가능할 것입니다. 金正日을 상대로 연방제를 한다니까 반대가 많겠지만 시장주의를 지향하는 애국적 사회주의자를 상대로 한 연방제는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國民行動本部라는 단체는 미사일 발사 사태 이후 盧武鉉 대통령을 비판하는 신문광고를 냈다. 이런 句節이 있었다.
<김정일이 미사일 도발을 한 이유는 海外 비자금을 지키려는 발악입니다. 김정일이 북한주민들을 착취하고 金大中을 협박하여 만든 60억 달러 이상의 비자금을 횡령하여 마카오 스위스 은행 등에 숨겨놓는 바람에 북한경제가 망가진 것입니다. 따라서 金正日 편을 드는 것은, 독재자의 도둑질을 돕고 북한주민들의 고통을 永續시키려는 反민족, 反통일, 反인류범죄행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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