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세력이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사이비 좌파 세상 10년을 청산하려면 '한국에서 가장 큰 전략은 기회주의가 아니고 이념이다. 계산이 아니고 신념이다. 눈치보기가 아니라 투쟁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통령 후보가 되어야 할 것이다. 꼭 5년 전인 2001년10월호 月刊朝鮮에 기자가 썼던 글을 다시 읽어보니 한나라당의 대통령 지망자들에게 지금도 유효한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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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編輯長의 편지] 李會昌의 小利와 大義
趙甲濟 月刊朝鮮 편집위원·조갑제닷컴 대표 (mongol@chosun.com)
1979년 10월 저는 부산에서 경찰서 출입기자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10월16일 부산대학교 학생들의 도심 시위를 기폭제로 하여 釜馬사태가 터졌습니다. 10월17일 부산 남포동 길에서 시위대가 경찰의 작전트럭을 납치, 뒤집어엎고 새나온 기름에 불을 질렀습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화염이 치솟았습니다. 불길 아래서 최루탄 터지는 소리와 함성. 그 순간 「아, 이것으로 朴정권도 끝이구나」라는 느낌이 電流처럼 흘렀습니다. 그 열흘 뒤 10·26 사건. 대통령 有故 소식에 접했을 때 저는 세상의 바닥을 기는 사회부 기자의 정치적 감각을 자신하게 되었습니다.
1987년 6월10일에 시작된 서울 도심부의 反정부 시위는 명동성당 농성을 계기로 하여 확산되었습니다. 6월12일 저는 서울 종로 2가에 취재차 갔습니다. 한 노인이 최루탄 파편을 장딴지에 맞았습니다.
이 노인은 대뜸 젊은 시위대를 향해서 욕을 퍼부었습니다. 철없는 것들 때문에 내가 당했다는 식이었습니다. 그 노인의 불평을 옆에서 듣고 있던 행인들이 흥분했습니다. 갑자기 그 노인을 둘러싸더니 집단적으로 면박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역사가 지금 굽이치고 있는데 그 정도의 아픔으로 무슨 주책이냐는 뜻이었습니다. 한 노점상 아주머니도 그 노인을 욕하고 있었습니다. 그 7년 전에 경기가 나빠진다고 학생 시위대를 욕했던 도시 상인들이 생각났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고 「아, 민심이 폭발하는구나」라고 판단하고 회사에 전화를 걸어 상급자에게 『사태가 제2의 4·19로 가는 것 같습니다』라고 보고했습니다. 그 17일 뒤의 6·29 선언으로 유혈 혁명은 방지되었습니다.
기자란 직업은 民心을 이끌고 그 鼓動(고동)을 느끼는 안테나이자 청진기이기도 합니다. 역사의 물줄기가 바뀌는 길목에서 그 결정적인 순간을 목격하고 기록하며 그 흐름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기자된 사람의 쾌감이기도 합니다. 저는 요사이 또 다시 그런 역사의 鼓動을 듣습니다.
저는 지난 9월11일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 국방부 건물 테러사건에 접했을 때 이런 感이 왔습니다.
『아, 이것으로 「테러業界의 魔王」 金正日이 가겠구나. 북한·시리아·쿠바 등 테러 지원국, 혹은 깡패국가들이 도맷금으로 당하겠구나』
金大中 정부는 그동안 미국 정부에 대해서 북한을 테러국가 명단에서 빼는 데 반대하지 않는다는 뜻(묵시적 동의)을 전달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명단에 북한이 들어간 이유는 金正日의 지령에 의한 KAL 858편 폭파(115명 사망)였습니다. 金大中 정부는 피해자들의 양해도 얻지 않고, 金正日의 사과도 받지 않고 이런 행위를 했는데, 다행히 日本 정부가 일본인 납치 문제를 제기하여 북한은 여전히 테러국가로 지정된 상태입니다. 종합테러 주식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북한 정권은 중동 이슬람 국가들과 밀접한 무기거래를 해왔습니다. 미국측의 수사에 金正日 정권의 직·간접 관련이 밝혀진다면 金正日은 매운 맛을 보게 될 것입니다.
저는 金大中 정부가 지난 8·15 평양축전에 親北 인사들의 訪北을 허용하는 것을 보고는 「또 무슨 코미디가 벌어지겠구나」하고 예상했습니다. 한때 정부 당국이 이들의 訪北을 허용하지 않기로 했다는 기사가 나왔을 때는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의 金大中 대통령 행태를 유심히 관찰해 보면 그런 不許 조치를 할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金大中 대통령은 親北 좌경 단체를 단속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그들을 對北 정책 전개의 한 수단으로 삼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날 金大中 대통령의 사상에 대한 의심과 걱정이 국민들의 일상 대화에서 공공연히 나오고 있는 이유가 바로 정권과 좌파의 이상한 관계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訪北團 중 일부가 만경대 정신 계승 운운하는 코미디를 벌일 때 별로 흥분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들의 행태는 분노의 대상도 되지 않는 해프닝이지요. 그런데 제가 착각한 것이 있었습니다. 우리 국민들도 저와 같은 생각인 줄 안 것입니다. 저는 기자로서 그들의 행태를 너무나 잘 아는데 일반 국민들은 親北세력의 행태를 저처럼 잘 알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제가 看過(간과)한 것입니다. 좌경 인사들의 망동에 접한 국민들의 분노는 저의 예상을 앞질렀습니다.
月刊朝鮮이나 朝鮮日報가 민심을 격동시킨 것이 아니라 민심이 언론의 등을 밀었고 이런 흥분을 감지한 검찰은 범법자들을 구속시킬 수밖에 없었으며 金鍾泌의 自民聯은 집권여당과의 공조를 깨고 林東源 통일부 장관 불신임에 찬성한 것입니다.
金大中 대통령의 레임 덕 현상을 굳힌 일련의 사건들을 만든 것은 밑으로부터 올라온 民心의 폭발이었다는 점에서 大勢가 기울고 있구나 하는 감을 갖게 합니다.
이번 民心의 대폭발을 해석하면 金正日과 손잡고, 또는 金正日에 기대어 대한민국의 이익과 자존심을 희생시키고 私益을 추구하려는 세력에 대한 국민들의 反感일 것입니다. 이런 反感의 연장선상에서 내년 大選이 치러진다면 가장 큰 쟁점은 색깔론이 될 것입니다.
색깔이라고 한다면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인데 이념이란 말을 쉽게 표현한 말입니다. 이념에 의하여 분단된 남북한 상황에서는 정치 지도자들을 선택할 때 색깔, 즉 이념적 성향을 가장 중시하여야 합니다. 정치인의 이념을 문제삼으면 『또 색깔론인가』라고 반발하는 세력들은 감추고 싶은 이념을 가진 좌파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국 정치는 색깔론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고, 어떻게 하면 색깔논쟁을 대한민국과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정당당하게 하느냐 하는 것이 과제입니다.
즉 색깔논쟁이 대한민국(헌법) 수호세력과 反국가 세력 사이의 대결이 되면 死活이 걸린 싸움이 되는 데 반해 좌파가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헌법의 존엄성, 그리고 金正日의 악마성을 인정한 바탕 위에서 벌이는 색깔논쟁은 우리 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이념-정책 대결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려면 우선 우리 사회의 좌파가 金正日 추종 노선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색깔논쟁은 우리 정치판이 이념에 따라 좌우로 나눠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이념이라면 주로 對北觀에 의해서 표현되는 것입니다. 우리 정치판이 지역이나 인맥으로 갈려져 패싸움을 하는 것보다는 이념으로 갈라지는 것이 先進입니다. 정당정치의 본질은 이념과 이에 기초한 정책의 차이를 두고 하는 게임이니까요. 한국 정치가 선진화하려면 이번 林東源 해임 결의안 통과 때 보여 주었던 것처럼 이념이 비슷한 李會昌의 한나라당과 金鍾泌의 자민련이 손잡아 이념이 다른 여당과 경쟁하는 것이고, 이는 한국 정치의 정상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나라당의 뿌리는 全斗煥-盧泰愚-金泳三에, 자민련의 뿌리는 朴正熙의 공화당에 닿아 있습니다. 이들의 공통분모는 反共, 親대한민국입니다. 근대화 세력과 온건 민주화 세력의 연합이기도 합니다. 한국 보수세력의 90% 이상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90년 초 민정당-통일민주당-신민주 공화당 3黨 통합으로 탄생한 民自黨은 한국 보수세력의 大연합이었습니다. 이 압도적인 세력에 기반하여 1992년 大選에서 압승을 거둔 金泳三 대통령은 金鍾泌씨를 밀어내고 全斗煥-盧泰愚 前 대통령을 감옥에 보냄으로써 보수 大연합의 이념적 공통기반을 무너뜨렸습니다.
불연속선을 이룬 이념전선 속에서 1997년 大選이 치러졌습니다. 우파인 金鍾泌의 자민련이 좌파로 볼 수 있는 金大中의 국민회의와 이상한 동맹을 함으로써 정권을 탄생시켰습니다. 이 정권은 좌우가 합작한 것 같은 同床異夢의 정치 세력이었습니다. 金鍾泌 총재는 金大中 대통령의 신원보증자가 되어 그에게 쏠리는 사상적 의혹을 상당 부분 완충시켜 주었습니다. 金大中 대통령의 對北 정책이 본색을 드러내자 보수층에선 金鍾泌 총재를 「보수를 팔아먹은 배신자」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만 볼 수 없는 것은 金鍾泌 총재가 金大中 정부의 對北정책을 일정하게 견제한 역할이 있기 때문입니다. 金대통령이 추진해온 국가보안법 개정이 좌초된 것과 보수층이 우려하는 사립학교법 개정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모두 自民聯의 견제가 奏效(주효)했기 때문입니다.
주민증에서 漢字 이름 표기가 없어지지 않은 것도 순전히 金鍾泌 당시 총리의 고집 덕분이었습니다. 自民聯의 한 인사는 『우리 JP는 두 번 민족과 국가를 구했다. 5·16을 통해서 국가를 赤化로부터 구했고, 漢字 이름 固守로써 민족의 뿌리를 지켰다』고 농담합니다.
앞으로 한국 정치판과 권력구조는 李會昌과 金鍾泌 총재의 연대가 成事될 것인가에 의해서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만약 두 보수 세력이 정책적 연대를 한다면 이 두 세력이 지배하는 국회가 金大中 대통령으로부터 상당한 권력을 빼오게 됩니다. 對北퍼주기 금지법을 만들어 5000만원 이상의 對北지원에 대해서는 국회의 동의를 받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킬 수도 있고, 그렇게 하면 금강산 赤字 관광에 대한 시비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두 사람의 연대가 이뤄지지 않는다면(李會昌 총재가 金鍾泌 총재 枯死 작전을 펴는 식으로) 保守 민심이 만든 大勢는 실제 정치판의 권력관계를 바꾸어놓지 못하는, 즉 물레방아를 돌리지 못하는 헛물이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李會昌 총재는 과거 두 번 金鍾泌 총재와 제휴할 기회가 있었으나 이를 거부했습니다. 199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金鍾泌 총재는 여러 번 李會昌 후보와 손잡고 싶다는 신호를 보냈고 양쪽 사이에 밀사도 오고갔으나 李총재측의 거부로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작년 총선에서 자민련이 참패하여 院內 교섭 단체 구성을 못하고 있을 때 金鍾泌 총재는 李會昌 총재의 도움을 구했으나 거절당하고 다시 金大中 대통령 품에 안기는 길을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李會昌 총재는 자신이 金鍾泌 총재와 제휴하면 그의 구호가 된 「3金 청산론」이 퇴색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합니다. 반면 李총재에게 JP와의 제휴를 권하는 쪽에서는 이런 말을 합니다.
『지금은 대한민국을 親北 세력의 도전으로부터 구하는 것이 모든 것보다 우선해야 할 과제이다. 金正日과 親北 세력에 반대하는 세력은 누구라도 友軍으로 간주하고 대동단결해야 한다. 이것이 오늘의 정치 大義이다. 3金 청산론은 李총재가 金泳三 前 대통령에게 문안을 드리고 있는 상황에서 끝난 것이 아닌가. 대쪽 이미지를 지키려는 소승적 정치가 아닌 체제를 지키려는 大乘的 정치를 선택한다면 金鍾泌 총재와의 小異를 덮고 大同단결의 길을 찾아야 한다』
다른 정치평론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李會昌 총재가 결벽증에 집착하여 이번에도 金鍾泌 총재와의 제휴를 거부한다면 그는 체제를 걱정하는 한국 主流층의 願望을 배신하는 셈이다. 지금도 많은 국민들은 李會昌씨가 과연 보수세력인가에 대해서 확신을 갖고 있지 않다. 그는 反김대중 여론의 反작용이 親이회창으로 나타난 것을 자신의 지지표라고 착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보수층이 李會昌을 외면하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月刊朝鮮이 여론조사 전문가 金杏씨의 오픈 소사이어티에 의뢰하여 매월 실시하고 있는 여론조사의 지난 9월 초 조사분에서도 위의 논평을 뒷받침하는 수치가 발견됩니다. 응답자의 약 55%는 「金鍾泌 총재가 다시 金大中 대통령과 공조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습니다.
약 51%는 「金鍾泌 총재의 자민련이 한나라당과 선택적으로 공조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으며(「낮다」란 응답은 약 39%), 「한나라당과 공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응답이 약 37%로서 「민주당과 공조해야 한다」는 응답(34%)보다도 높았습니다.
많은 보수층 사람들은 代案이 없으니 李會昌 총재를 지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가 과연 남북무장·이념대치 상황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확고히 지킬 수 있는 능력과 용기를 가진 인물인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는 것 같습니다.
李會昌 총재가 지난해 6·15 선언 이후 金大中 대통령의 對北정책이 과속하는 것을 상호주의와 검증이란 조건을 내세워 견제한 功을 인정하는 사람들도 뭔가 속이 차지 않는 표정을 짓곤 합니다.
북한의 金正日 정권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이냐의 출발점은 철학적, 역사적, 도덕적 가치 판단입니다. 이런 판단이 정확한 사실관계와 역사의 흐름에 뿌리박고 있을 때 신념과 용기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뭔가 다릅니다. 그런 사람들은 색깔논쟁이란 말로써 공격해오는 측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색깔논쟁은 많이 할수록, 정정당당하게 할수록 국가와 민족에 좋은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金正日 서울 答訪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민족반역자가 개선장군처럼 서울에 와선 안 된다. 아버지가 저지른 6·25 전쟁, 그 아버지의 아들이 저지른 아웅산 테러와 대한항공 폭파에 대해서 사과하고 와야 한다. 그렇다면 환영한다』
李會昌 총재는 「환영하지만」이라고 말하여 총론에 찬성해놓고 「그러나 사과해야 한다」는 각론 반대의 論法을 구사하는데 이는 판사의 문법으로선 괜찮을지 모르지만 정치인, 특히 야당 지도자의 문법으로서는 낙제입니다.
국민들이 李총재로부터 듣고 싶은 견해는 그의 고민이 아니라 그의 결단입니다. 李총재가 남북한의 문제를 여러 각도로 저울질하면서 고민하는 것은 그 자신의 몫입니다. 그 고민까지 국민들에게 털어놓을 필요도 없고 국민들은 듣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정치는 어차피 선택입니다.
李총재가 자칭 진보세력의 표를 얻고 싶다면 金正日 답방 환영이라고 해야 하고, 보수세력의 지지를 겨냥한다면 「이런 저런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반대」라고 해야 합니다. 총론 찬성, 각론 반대는 정치에선 찬성으로 분류됩니다. 각론 반대란 많은 경우 총론 찬성에 따른 반발을 무마하기 위한 변명입니다.李會昌 총재가 색깔논쟁이란 억지공세를 무시할 만한 논리와 신념(역사관과 국가관과 인간관)을 갖지 못한 인물이라면 그가 집권하더라도 한국 사회는 좌익의 도전으로 흔들리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한 인간의 신념은 대충 균형 있는 체험과 독서에서 나오는데 이를 人文的 교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기고-서울법대 출신으로서 명석한 李총재의 머리와 사회과학적인 지식 수준에 대해서는 의문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가슴에서 나오는 신념, 그의 인생관, 그의 역사관, 그의 국가관, 그의 세계관, 그의 大義, 그의 전략과 비전에 대해선 그만큼 확신이 서질 않는다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가 金鍾泌 총재를 어떤 가치관과 전략적 관점에서 대하느냐 하는 것을 통해서 그가 가진 인문학적 교양이 일부 드러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하여 그가 보여온 행동이 좁은 이기주의에 근거한 것인지 大義와 大望을 지닌 분인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내달에 또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5년 전 李會昌 비판기사를 다시 읽어보다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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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9-12, 23: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