黃長燁 선생은 1997년에 한국으로 온 뒤 재미 있는 증언을 하나 했다. 김정일이 히틀러를 숭배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김정일을 비웃었다.
'파쇼를 욕하는 사람이 파쇼의 元祖를 좋아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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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이 왜 히틀러를 숭배할까'하고 생각을 깊게 해보면 웃을 일이 아니라 전율할 일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영국의 유명한 전략가 리델 하트에 따르면 히틀러의 전쟁觀은 군인들과 근본적으로 달랐다고 한다. 히틀러는 볼세비키의 혁명 전술을 연구하여 전쟁에 응용했다는 것이다. 히틀러는 전쟁을 군인들의 고유영역으로 보지 않고 선전, 침투, 협박, 교란, 심리전 등 혁명의 기술이 총동원되는 국가총력전으로 파악했다. 하트는 공산혁명의 기술을 전쟁에 적용했다는 점에서 히틀러를 군사적 천재로 보았다.
하트는 배후 교란과 기동전을 2대 무기로 하는 히틀러의 전략이 징기스칸의 몽골 기마군단 전술과 유사하다고도 했다. 히틀러는 공세를 취하기 전에 먼저 敵國의 내부에서 협조자를 구하여 후방 교란을 시킨다. 동조자가 여러 가지 혼란을 조성하여 적국의 저항력을 약화시키게 하고 협조적인 정부까지 구성하도록 한다.
히틀러는 이런 반역 유도를 위해서 뇌물에 의존하지 않았다. 히틀러의 이념에 동조하거나 출세지향적인 자생적인 협조자들을 적국의 지도층 내부에서 확보했다. 이런 환경을 조성한 뒤 결정적 순간이 오면 히틀러는 특공대를 여행객이나 장사꾼으로 가장하여 침투시켰다. 이들은 통신선을 단절하거나 소문을 퍼뜨리고 敵國의 지도적 인물을 암살, 납치한다. 공중침투 부대가 추가로 투입되어 이들과 협력하여 후방을 교란한 뒤 기동부대가 결정타를 날린다.
히틀러는 정면돌파 작전을 어리석은 짓이라고 경멸했다고 한다. 후방 침투와 교란, 그리고 우회 돌파가 그의 특기였다. 하트는 '히틀러의 전쟁은 두 개의 D로 시작되었다. 敵國의 사기를 무너뜨리는 일(Demoralization)과 조직을 교란시키는 일(Disorganization)이 그것이다'라고 썼다('전략').
히틀러의 위의 전략은 1938년 오스트리아 합병작전에서 거의 완벽하게 적용되었고, 1940년 프랑스 침공작전에서 상당 부분 성공적으로 적용되었다. 하트가 소개한 히틀러의 '혁명전쟁' 전략은 북한의 對南적화戰略과 90% 이상 일치하고 있다.
1. 김정일의 赤化전략은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 이론에 근거한다. 민족해방론은 美帝의 식민지인 한국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韓美동맹을 해체하거나 결정적으로 약화시키는 것을 당면 목표로 삼는다.
2. 인민민주주의혁명론은 남한내의 친북세력이 인민(민중)을 결집시켜 용공정권을 수립하는 것을 뜻하는데 그 활동에 방해가 되는 국가보안법 철폐를 당면 목표로 삼고 있다.
3. 노무현 정권은 韓美연합사해체工作과 보안법 死文化로써 김정일의 對南적화공작에 결과적으로(또는 의식적으로) 동조하고 있다.
4. 김정일은 선전매체를 동원하여, 용공정권을 세우는 데 방해가 되는 한국의 애국진영을 공격하고 있고, 여기에 친북세력과 盧정권이 합세하는 경우가 많다. 남북한 좌파세력이 협조하여 애국인사들을 감금, 납치, 살해하는 단계로까지 진행된다면 이는 김정일의 공세가 임박했음을 의미할 것이다.
5. 용공정권이 남한에서 세워지면 김정일은 이 정권과 연방제赤化통일을 논의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김정일은 이런 요구조건을 낼 것이다. '국방장관과 내무장관과 국정원장은 우리가 지명한 사람으로 임명하라'고.
6. 용공정권의 반역을 알아차리고 애국세력이 들고 일어날 것이고 이에 맞서 정권의 후원하에 공산세력이 거리로 나설 것이다. 김정일이 앉힌 내무장관은 경찰을 시켜 애국세력을 탄압하고 좌익을 비호한다. 방송과 언론은 일제히 애국세력을 反통일세력으로 몬다. 물리력과 선전력에서 밀리는 한나라당(그때까지 존재한다면)은 연방제 통일을 하려면 국민투표나 헌법개정을 해야 한다고 나설 것이다.
7. 용공정권이 여론조사에서 유리하게 나오거나 국회에서 절대 다수의석을 차지했다면 국민투표나 헌법개정을 허용하겠지만 불리하다고 판단되면 반대세력을 침묵시키는 강제조치를 취할 것이다. 1938년 오스트리아 병합의 경우, 히틀러는 침공 협박으로써 국민투표를 추진한 정권을 물러나게 했었다.
8. 남북연방제가 실시되어도 한국군을 접수하지 않으면 혁명은 성공한 것이 아니다. 이때는 구실을 만든다. 예컨대 남한지역정부는 애국세력의 궐기를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북한군을 불러들인다. 국방장관은 국군에 대해서 휴전선에서 4km 물러나 충돌 없이 북한군의 南進을 허용하라고 지시한다. 물론 그 전에 국방부와 3軍의 지휘부는 협조적인 인물들로 교체된다. 이때 북한군이 핵무장을 하고 있으면 일이 더 쉬워진다. 국군이 저항할 경우 부득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는 협박을 한다.
9. 이런 식으로 無血적화통일을 하는 데 걸림돌은 국제관계이다. 韓美동맹이 튼튼하게 유지될 경우엔 아예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韓美동맹이 날아간 뒤라도 독재국가에 의한 민주국가 흡수는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반대를 부를 것이다. 김정일은 이 적화통일이 민족내부의 문제이며 평화적인 점을 내세울 것이고, 핵과 미사일로써 美日의 개입을 견제하려 할 것이다.
10. 히틀러는 오스트리아를 흡수 합병할 때 위의 숫법을 썼다. 그는 오스트리아안에 나치당을 만들었다. 나치당원은 오스트리아 수상 돌푸스를 암살하기도 했다. 이 세력이 독일 민족주의를 외치면서 독일과 통일하자고 선동하고 소요를 일으키자 1938년 2월 히틀러는 오스트리아 총리 슈스니크를 잘츠부르그 근방 별장으로 불렀다. 그는 군대를 동원하여 쳐들어가겠다고 협박한 뒤 평화적 해결의 조건을 제시했다. 히틀러는 이 조건만 충족시켜주면 오스트리아의 主權을 보장하겠다고 했다.
<투옥된 나치당원과 돌푸스 수상 암살범을 석방할 것. 공직에서 해직된 나치당원들을 전원 복직시킬 것. 내무장관엔 나치 당원인 아서 세이스 인콰트를 임명하고 경찰통제권을 전폭적으로 보장할 것, 국방장관에도 나치당원을 임명할 것, 현재의 선전장관은 해임할 것>
히틀러는 슈스니크 수상에게 3일간 여유를 주고 이런 최후통첩을 한 것이다. 오스트리아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자 마자 히틀러는 오스트리아 나치당원들의 폭동을 유도한 뒤, 오스트리아 나치당이 집권하도록 만들고, 두 달 만에 오스트리아를 먹어치웠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최후 순간에 自國軍의 저항을 금지시키고 나치군대의 오스트리아 진주에 길을 내주곤 자멸했다.
김정일이 히틀러를 숭배한다면 바로 이런 오스트리아 합병戰略을 연구하여 對南적화전략에 응용하려 할 것이다.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같은 게르만 민족으로서 남북한의 정세와 유사한 면이 있다.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합병하는 데 걸림돌은 영국과 이탈리아였다. 영국은 오스트리아의 지원 요청에 대해서 독일과 맞설 입장이 아니라면서 거절했다. 오스트리아의 독립을 지원해왔던 뭇솔리니의 이탈리아는 히틀러의 회유에 넘어가 합병을 묵인했다.
간접침략, 즉 반역세력에 의한 내란과 武力을 이용한 직접침략을 결합시킨 히틀러의 오스트리아 잡아먹기 사례는 김정일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을 것이다. 김정일은 남한내 친북세력을 지원하여 이들이 정권내의 핵심부를 장악하게 하는 데까지 성공했고, 동시에 핵무기 개발에도 성공했다. 남한내 친북정권과 핵무기를 결합하면 韓美동맹도 와해시킬 수 있고 보안법도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자신했는데 거의 성공했다. 이제 남은 것은 정면돌파 이전의 최후통첩인가? 내년에 김정일이 노무현 대통령을 평양으로 불러서 만난다면 그 자리에서 김정일은 무슨 통첩을 할 것인가?
<<조선일보, 동아일보를 침묵시켜라! 한나라당 후보의 대통령 출마를 막아라! 내무, 국방장관엔 좌파출신을 임명하라! 간첩들을 특별사면하라!(작년에 재범간첩 閔모를 특별사면 복권시켰듯이). 애국운동을 금지하라! 공무원들의 노조활동을 보장하라!>>
김정일의 히틀러식 對南전략 연구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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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09-18, 00: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