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동료끼리 싸우는 데 바빠서 독일군과 싸울 시간이 없다"
프랑스 작가 앙드레 모로아는 1940년 11월 미국에서 발간한 '프랑스의 비극'에서 프랑스의 국가지도부가 독일과 전쟁을 치르면서도 반목, 분열해간 사정을 실감 있게 묘사했다. 전쟁이 터졌을 때 수상은 에도알 달라디에였다. 이 내각의 재무장관은 폴 레노. 두 사람은 상대를 나름대로 높게 평가하면서도 公的인 일에선 앙숙이었다. 1940년 3월 달라디에 수상이 핀란드 사태와 관련한 책임을 지고 사임하자 레노가 수상이 되었다. 그는 국민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달라디에를 육군장관으로 붙들어놓았다.
앙드레 모로아는 레노 수상에게 축하의 뜻을 담아 이런 문구를 써보냈다고 한다.
<의회는 평화시엔 국민을 대표하고, 戰時엔 군대를 대표한다>
군대를 신뢰하고 밀어주라는 뜻을 담은 것이었다. 사태는 정반대로 흘렀다. 레노 수상은 프랑스군의 총사령관인 가므랑 원수를 싫어했다. 너무 소극적이란 이유에서였다. 가므랑 원수는 1939년 9월 독일이 폴란드를 쳐들어가고 있을 때를 틈타서 독일로 쳐들어가야 한다는 견해를 묵살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이때 프랑스 군대가 선제공격을 했다면 독일군대는 붕괴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독일군은 동부전선에 주력하느라고 프랑스 접경지대에 배치했던 병력을 많이 빼버렸던 것이다.
가므랑의 논리는 이러했다.
<우리 프랑스는 출산율이 매우 낮다. 1차 대전 때처럼 피를 흘리는 것을 감당할 수 있는 人的 자원이 없다. 인명손실을 최소한으로 막기 위한 과학전쟁을 해야 한다>
레노 수상은 공격적 전략을 원했고, 가므랑은 방어위주의 전략을 고집했다. 두 사람은 반목했다. 당시 프랑스 지도부엔 이런 異見을 조정하고 종합하여 더 나은 전략을 만들어낼 수 있는 지도력이 부족했다. 이 점이 영국과 달랐다. 이견은 어떤 조직에도 있다. 문제는 그 이견이 반목으로 악화되는가, 아니면 더 높은 수준으로 승화되는가이다.
레노는 가므랑을 교체하려고 했다. 이런 움직임을 가므랑도 알았을 것이니 전쟁을 지도할 마음이 내키지 않았을지 모른다. 레노 수상은 독일군이 벨기에로 쳐들어갈 것이 뻔한데도 벨기에 정부가 프랑스-영국 연합군의 진주를 허용하지 않는 데 화가 났다. 그는 벨기에 영토로 강제 진입할 생각을 했는데 가므랑은 이에 반대하여 싸우기도 했다.
독일군의 기습이 시작되기 열흘 전인 1940년 4월29일 앙드레 모로아가 레노 수상 집무실을 찾아갔더니 그는 이렇게 불평했다.
'탱크는 서류상으로만 존재한다. 대포와 기관총은 창고에서 잠 자고 있다. 독일은 240개 사단을 갖고 있는데 우리는 고작 100개 사단밖에 없다. 달라디에의 게으름과 우둔함이 모든 것을 망쳤다'
모로아가 '그래도 달라디에는 프랑스를 사랑하는 사나이입니다'라고 변호했다. 레노가 한 말은 이랬다.
'그렇다. 달라디에는 프랑스의 승리를 원한다. 그러나 그는 프랑스의 승리 이상으로 내가 실각하는 것을 바라고 있다'
독일군 침공 나흘 전인 5월6일에 모로아는 다시 레노 수상 집무실에 들렀다. 책상에 세 개의 직통전화가 놓여 있었다. 정부기관, 외부, 그리고 愛人인 모 백작부인 거실로 통하는 전화였다. 그때 레노는 백작부인으로부터 수시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기에 바빴다고 한다. 이날에도 달라디에와 레노는 국회에서 격렬하게 충돌하여 대통령이 중재에 나서야 했다.
5월10일 독일군의 전면 공격이 시작되었다. 독일 기갑군단은 벨기에의 아르덴느 숲지대를 지나 프랑스 군의 취약지구를 강타했다. 독일군은 탱크와 전투기를 결합합 電擊기동전술로 전선을 돌파하여 배후로 진출했다. 기다렸다는듯이 레노 수상은 가므랑 원수를 해임하고, 그를 싸고돌았다고 해서 육군장관 달라디에를 외상으로 전보시킨 뒤 자신이 육군장관을 겸했다. 전선은 무너지는데 내부 권력투쟁에 더 치중한 것이 프랑스 지도부였다. 한 영국군 장교가 말했다고 한다.
'그들은 동료끼리 싸우는 데 바빠서 독일군과 싸울 시간이 없다'
앙드레 모로아는 '개인끼리의 싸움 때문에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없었던 가장 좋은 사례를 프랑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1차 세계대전 때도 당시 대통령 포앙카레와 클레망소 수상은 사이가 나빴으나 전쟁지도라는 면에서는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對독일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모로아는 '지도층의 불화가 결정적 패인은 아니었지만 군대로부터 마지막 抗戰의 기회를 앗아갔다'고 평했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분열상은 순전히 노무현 대통령이 좌파적-계급적 적대감으로 야당과 국민들을 대한 데서 발생했다. 국민들은 盧대통령이 김정일보다도 대한민국과 자신들을 더 증오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만약 이때 김정일이 남침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분열 대통령이 국군과 국민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아 전쟁에 임할 수 있나? 국민과 국군은 이런 대통령을 믿고 따라줄 것인가? 특히 북한군의 기습이 성공하여 초전에 국군이 밀리고 서울이 포위될 때 국군과 국민들은 분열 대통령과 함께 서울을 死守할 것인가?
중요한 일들은 진공상태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반드시 축적된 원인의 결과로서 일어난다. 지금 盧정권이 한국 사회에서 축적시켜가고 있는 분열과 증오와 반목의 원인들이 무슨 재앙을 한국에 가져다 줄 것인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지 않는가? 피를 부를까 걱정이다.
프랑스 작가 앙드레 모로아는 1940년 11월 미국에서 발간한 '프랑스의 비극'에서 프랑스의 국가지도부가 독일과 전쟁을 치르면서도 반목, 분열해간 사정을 실감 있게 묘사했다. 전쟁이 터졌을 때 수상은 에도알 달라디에였다. 이 내각의 재무장관은 폴 레노. 두 사람은 상대를 나름대로 높게 평가하면서도 公的인 일에선 앙숙이었다. 1940년 3월 달라디에 수상이 핀란드 사태와 관련한 책임을 지고 사임하자 레노가 수상이 되었다. 그는 국민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달라디에를 육군장관으로 붙들어놓았다.
앙드레 모로아는 레노 수상에게 축하의 뜻을 담아 이런 문구를 써보냈다고 한다.
<의회는 평화시엔 국민을 대표하고, 戰時엔 군대를 대표한다>
군대를 신뢰하고 밀어주라는 뜻을 담은 것이었다. 사태는 정반대로 흘렀다. 레노 수상은 프랑스군의 총사령관인 가므랑 원수를 싫어했다. 너무 소극적이란 이유에서였다. 가므랑 원수는 1939년 9월 독일이 폴란드를 쳐들어가고 있을 때를 틈타서 독일로 쳐들어가야 한다는 견해를 묵살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이때 프랑스 군대가 선제공격을 했다면 독일군대는 붕괴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독일군은 동부전선에 주력하느라고 프랑스 접경지대에 배치했던 병력을 많이 빼버렸던 것이다.
가므랑의 논리는 이러했다.
<우리 프랑스는 출산율이 매우 낮다. 1차 대전 때처럼 피를 흘리는 것을 감당할 수 있는 人的 자원이 없다. 인명손실을 최소한으로 막기 위한 과학전쟁을 해야 한다>
레노 수상은 공격적 전략을 원했고, 가므랑은 방어위주의 전략을 고집했다. 두 사람은 반목했다. 당시 프랑스 지도부엔 이런 異見을 조정하고 종합하여 더 나은 전략을 만들어낼 수 있는 지도력이 부족했다. 이 점이 영국과 달랐다. 이견은 어떤 조직에도 있다. 문제는 그 이견이 반목으로 악화되는가, 아니면 더 높은 수준으로 승화되는가이다.
레노는 가므랑을 교체하려고 했다. 이런 움직임을 가므랑도 알았을 것이니 전쟁을 지도할 마음이 내키지 않았을지 모른다. 레노 수상은 독일군이 벨기에로 쳐들어갈 것이 뻔한데도 벨기에 정부가 프랑스-영국 연합군의 진주를 허용하지 않는 데 화가 났다. 그는 벨기에 영토로 강제 진입할 생각을 했는데 가므랑은 이에 반대하여 싸우기도 했다.
독일군의 기습이 시작되기 열흘 전인 1940년 4월29일 앙드레 모로아가 레노 수상 집무실을 찾아갔더니 그는 이렇게 불평했다.
'탱크는 서류상으로만 존재한다. 대포와 기관총은 창고에서 잠 자고 있다. 독일은 240개 사단을 갖고 있는데 우리는 고작 100개 사단밖에 없다. 달라디에의 게으름과 우둔함이 모든 것을 망쳤다'
모로아가 '그래도 달라디에는 프랑스를 사랑하는 사나이입니다'라고 변호했다. 레노가 한 말은 이랬다.
'그렇다. 달라디에는 프랑스의 승리를 원한다. 그러나 그는 프랑스의 승리 이상으로 내가 실각하는 것을 바라고 있다'
독일군 침공 나흘 전인 5월6일에 모로아는 다시 레노 수상 집무실에 들렀다. 책상에 세 개의 직통전화가 놓여 있었다. 정부기관, 외부, 그리고 愛人인 모 백작부인 거실로 통하는 전화였다. 그때 레노는 백작부인으로부터 수시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기에 바빴다고 한다. 이날에도 달라디에와 레노는 국회에서 격렬하게 충돌하여 대통령이 중재에 나서야 했다.
5월10일 독일군의 전면 공격이 시작되었다. 독일 기갑군단은 벨기에의 아르덴느 숲지대를 지나 프랑스 군의 취약지구를 강타했다. 독일군은 탱크와 전투기를 결합합 電擊기동전술로 전선을 돌파하여 배후로 진출했다. 기다렸다는듯이 레노 수상은 가므랑 원수를 해임하고, 그를 싸고돌았다고 해서 육군장관 달라디에를 외상으로 전보시킨 뒤 자신이 육군장관을 겸했다. 전선은 무너지는데 내부 권력투쟁에 더 치중한 것이 프랑스 지도부였다. 한 영국군 장교가 말했다고 한다.
'그들은 동료끼리 싸우는 데 바빠서 독일군과 싸울 시간이 없다'
앙드레 모로아는 '개인끼리의 싸움 때문에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없었던 가장 좋은 사례를 프랑스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1차 세계대전 때도 당시 대통령 포앙카레와 클레망소 수상은 사이가 나빴으나 전쟁지도라는 면에서는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對독일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모로아는 '지도층의 불화가 결정적 패인은 아니었지만 군대로부터 마지막 抗戰의 기회를 앗아갔다'고 평했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분열상은 순전히 노무현 대통령이 좌파적-계급적 적대감으로 야당과 국민들을 대한 데서 발생했다. 국민들은 盧대통령이 김정일보다도 대한민국과 자신들을 더 증오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만약 이때 김정일이 남침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분열 대통령이 국군과 국민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아 전쟁에 임할 수 있나? 국민과 국군은 이런 대통령을 믿고 따라줄 것인가? 특히 북한군의 기습이 성공하여 초전에 국군이 밀리고 서울이 포위될 때 국군과 국민들은 분열 대통령과 함께 서울을 死守할 것인가?
중요한 일들은 진공상태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반드시 축적된 원인의 결과로서 일어난다. 지금 盧정권이 한국 사회에서 축적시켜가고 있는 분열과 증오와 반목의 원인들이 무슨 재앙을 한국에 가져다 줄 것인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지 않는가? 피를 부를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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