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무장이 기정사실이 된 지금 대한민국은 생존투쟁 차원에서 결단을 내려야 한다. 국민과 국군과 지도부가 단결하여 전쟁을 각오하는 것이다. 敵이 전쟁을 각오하고 핵실험을 하는데 우리가 전쟁을 각오하지 않고도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항복뿐이다. 전쟁을 각오한 국가는 바깥으론 당당해지고 안으로는 건강해진다. 전쟁을 각오한 나라에선 말장난과 위선이 통하지 않는다. 實力과 實利가 지배하는 사회가 되는 것이다. 핵위기를 그런 사회를 만드는 기회로 이용한다면 대한민국은 사이비 좌파의 도전을 극복하고 한 차원 성숙할 것이다. 전쟁을 각오하려면 국가 지도부의 死生觀이 확립되어야 한다. 死生觀이 바로 선 지도부라야 위선적 평화론을 누르고 국민들을 끌고 갈 수 있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은 너무 많이 쓰여지고 있지만 진실이다. 1994년 1차 북핵 위기에 즈음하여 필자가 月刊朝鮮에 썼던 기사는 지금도 유효하다. 참고로 다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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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전쟁을 결심할 수 있는 나라인가(1)
<1994년 3월 월간조선>
수도권을 북한 다연장 로켓포의 집중 포격권 아래에 놓아두고도 굳이 [한반도에 긴장은 없다]고 우기는 이상한 반전론(反戰論)엔 역사적 뿌리가 있다. 한국은 김유신(金庾信)의 통일전쟁 이후엔 한 번도 자위적 전쟁을 결단해 본 적도, 자주 국방을 해본 적이 없다. 북핵(北核)문제를, 한국이 책임 있는 나라가 되기 위한 대각성의 계기로 삼을 때 위기는 호기(好機)로 바뀔 것이다.
김유신(金庾信)과 김일성(金日成)의 공통점
김유신(金庾信)과 김일성(金日成)은 1천3백년이란 간격에도 불구하고 공통점을 갖고 있다. 두 사람은 통일을 위한 전쟁을 결심했던 한국 역사상 유이(唯二)한 지도자이다. 신라(新羅)의 김유신(金庾信)은 당(唐)과 연합하여 백제(百濟)와 고구려(高句麗)를 멸망시킨 뒤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들려는 唐과 일전(一戰)을 벌여 평양-원산선(線) 이남 지역을 우리 민족의 역사 공간으로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가 하나의 국가, 하나의 민족으로서 1천3백여 년을 살아올 수 있도록 한 토대는 바로 金庾信의 이 전쟁의지였다. 동방의 한 작은 나라가 전성기에 있었던 세계적인 대제국을 상대로 전쟁을 결단할 수 있었다는 것, 이로써 우리는 독립국가의 자격증을 얻은 것이다. 군대는 국가 요소의 하나이지만 국가는 그 군대를 딛고서만 존립(存立)할 수 있다.
한국이 독립국가의 자격증을 잃은 가장 중요한 요인도 효과적인 군사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고종(高宗) 19년(1882년) 임오군란으로 재집권한 대원군(大院君)에 대해 일본이 무력 간섭을 할 움직임을 보이자 청(淸) 오장경(吳長慶)으로 하여금 3천 명의 병력을 거느리고 출동하게 하였다. 그 목적이 지원이든 간섭이든 일단 외국 군대가 주둔한다는 것은 독립성의 손상을 가져온다. 더구나 오장경(吳長慶)의 청군(淸軍)은 군영을 방문한 이 나라의 실권자인 大院君을 군란의 책임자라 하여 납치한 뒤 천진으로 호송해 버렸다. 한 국가로서의 붕괴, 그리고 식민지화는 여기서부터 결정된 셈이다.
전쟁이란 명제(命題)로부터의 도피
신라 통일 이후 한국은 국가체제를 유지하면서 특이한 기록을 남겼다. 수많은 침략을 당하고 강요된 전쟁을 치렀지만 우리가 스스로 전쟁을 결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왕건(王建)이 치른 내전(內戰), 월남 파병·대마도 정벌·여진족 토벌 수준의 전투를 국가 대 국가의 전쟁과 구별한다면). 조선조 건국 이후의 6백년 동안엔 자주국방의 능력과 의지마저 잊어버렸다. 임진왜란 때는 명군(明軍)의 도움으로, 한국전쟁 때는 남한은 미군, 북한은 중공군의 지원으로 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자력(自力)으로 나라를 지켜야 했을 때, 즉 병자호란과 개항기(開港期)에 우리는 실패했다.
전쟁을 스스로 결단해 본 적이 없는 국가는 결투를 해 본 적이 없는 남자와 비교될 수 있다. 전쟁이란 것은 지도층과 국민이 개인적 운명과 체제의 존망을 걸고 국가의 힘을 총동원하는 건곤일척의 승부이다.
그 사회의 가치관, 정부와 국민의 총체적 능력과 의지력, 그리고 민족과 국가의 명예를 거는 집단적 고뇌·각오·결단·희생·욕망이 전쟁인 것이다. 이기면 노예가 주인이 되고, 지면 남편이 아내도 지킬 수 없게 되는 전쟁을 통하여 국가·민족이 탄생, 소멸, 성장, 성숙을 거듭해왔다는 것은 역사의 가르침이다. 전쟁을. 통해 민족적인 대 각성을 이룬 나라는 선진국으로 성장했고 그렇지 못한 나라는 쇠락의 길을 걸었다. 한 인간이 어른으로 성숙하는 데 있어서 때로는 주먹다짐이 필요하듯 한 국가로서 존립하고 성장하는 데 있어서 전쟁은 피할 수 없는 명제인 것이다.
위선적 평화론의 지배
그러함에도 한국은 이 명제를 직시하지 못하고 그로부터 도피해온 역사를 갖고 있다. 그것을 평화를 사랑한 때문이라고 설명하면 그만이지만 강요된 방어전을 하는 것과 자신의 철학·책임·계산·의지 하에 전쟁을 선택하는 것은 깊이가 다른 행위이다. [스스로의 전쟁 결심 없이 나라를 지켜왔다]는 한국 역사의 특이성은 우리의 민족성 형성에도 크나큰 그림자를 드리웠다.
책임감과 명예심의 문제=목숨을 걸고 민족과 개인의 명예를 지키고 그 결과에 책임진다는 전통이 없는 지도층에 [노블레스 오블리제] (Noblesse Oblige)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국가와 국민 관계의 문제=대외적(對外的)으로는 나약하여 국민을 지켜주지 못한 권력은 대내적(對內的)으로는 가혹하게 행사되었다. 바깥에선 얻어맞고 집안에선 동생을 구박하는 형(兄)을 누가 따르겠는가. 국민은 무능하면서도 비열한 권력층을 불신·저주하면서 생존을 위한 요령을 터득해갔다.
19세기 말 한국을 여행했던 영국의 비숍(Bishop) 여사는 [한국 민중은 가난 속에서 보호를 구한다]고 썼다. 돈을 벌면 기다렸다는 듯이 관리들이 몰려와 착취해 가니 [가난 속에 머무는 것]으로서 자신을 보호했다는 뜻이다. 신석기 시대의 패총에는 고래뼈가 발굴되지만 그 뒤 한국 어민들은 포경업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조선조 시대에는 고래가 바닷가에 표착하면 어민들이 몰려나와 바다로 밀어 넣어 보내버렸다는 기록이 있다. 관리들이 알면 어민들을 동원하여 고래를 해체시키고 기름을 뽑아낸 뒤 아무런 대가도 주지 않기 때문에 고래를 돈벌이 대상이 아니라 원수처럼 여겼던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산업이 발달했겠는가. 유교적인 지배 이데올로기가 천 년을 이어온 이 나라에서 지난 1백 년 사이에 기독교 신도 수가 전국민의 약 4분의 1을 점하게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배층의 논리와 윤리에 대한 민심(民心)의 이반 때문이었다.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면 권력의 정당성이 상실되고 그런 권력층과 국민 사이엔 착취·경멸·저주·불신만 쌓인다. 그런 가운데서 올바른 공직자-시민, 정부-국민 관계가 생길 리가 없다. 무사·기사 집단이 나라를 세우고 이끌었던 영국·독일·프랑스·일본의 공직자-국민 관계와 문약한 지식인들이 지배했던 한국의 공직자-국민 관계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한국의 지배층이 불신 당한 가장 큰 이유는 착취에만 있는 게 아니라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면서, 즉 주는 것 없이 가져가기만 했기 때문이었다.
위선의 논리=한 민족이 전쟁을 결심하거나 스스로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행위는 책임을 지는 행위다. 국가는 국가의 명예, 국민의 안전과 복지를 책임지고, 군인은 국민을 책임지며, 가장은 가정을 책임지고, 남편은 아내를 책임지는 것이다. 이 책임과 의무관계 속에서 국가는 국민에게 고통분담을 요구하고 국민은 국가에 따른다. 비로소 떳떳한 국가, 국민, 그리고 국가-국민 관계가 형성되는 것이다.
국민을 지켜주지 못한 지배충의 생존 요령은 변명과 위선이다. [평화를 사랑하기 때문에] 한 번도 외국을 침략하지 않았다는 것을 자랑으로 삼게 된다. 전쟁을 결심할 용기가 없었기 때문에 평화를 선택했고, 그 평화란 것도 적국(敵國)의 평화이지 우리 민족의 평화는 아니었다(평화를 사랑한 민족이 왜 평화롭게 살지 못했나). 진정으로 평화를 사랑했다면 우리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전쟁을 결단했어야 할 경우가 많았으나 그것을 회피함으로써 평화가 아닌 고통을 맞아들인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한국의 역대 지배층을 이루어 온 지식인 사회에서 발견되는 위선적 명분론과 비열함, 그리고 산업·군사 경시사조는 자주국방과 전쟁이란 거국적 승부를 해 본 적이 없는 집단이란 점과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전쟁은 무조건 악이요, 피하고 볼일이라는 사조(思潮)가 북한 핵 문제에 직면한 남한 사회를 풍미하고 있다. 위선적인 반전론(反戰論)이 절대가치처럼 횡행하고 있다. 한국 역사상 주된 지배층이었던 유교적 지식인들은 국제관계의 변동기 때 국방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나라를 유린당하도록 함으로써 아내가 겁탈 당하도록 방치한 남편의 신세가 되었다. 무식한 남편이었다면 아내에게 사죄하고 복수의 칼을 갈았겠지만 논리라는 무기를 가진 지식인들은 달랐다. 겁탈 당한 아내를 부정한 여자라 하여 내쫓거나 자살하게 하고 침략 당한 민족이 침략한 민족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며 전쟁은 무조건 악이라는 위선적인 평화론을 개발하였다. 이 평화론과 맥을 같이 하는 분위기가 지금 이 나라를 지배하고 있다.
방어용 무기가 북한 자극?
이 글을 쓰기로 결심한 하나의 계기가 있다. 기자는 지난 1월 말 유럽을 여행했다. 거기서 아침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紙)를 사 보았다. 매일 북한 핵 관련 기사가 1면에 실리고 있었다. 미(美)CIA 국장 울시가 의회에서 증언했듯이 북한 핵 문제는 러시아의 물가폭등에 의한 정치불안 및 러시아 대(對) 우크라이나의 핵 대결 위험과 함께 세계적인 위험성을 가진 3대 주제 중 가장 비중이 높은 쟁점이 되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북한이 지난 수년간 다 연장로켓포를 남하시켜 전선에 배치함으로써 서울이 그 사정권 하에 놓이게 됐고, 주한미군(美軍)에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배치할 것을 검토중이라는 보도를 읽었을 때는 불과 며칠 전에 떠나온 서울이 불안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런 느낌을 갖고 김포공항에 도착하여 사든 신문은 기자를 두 번 놀라게 했다. 핵 관련 기사가 장영자(張玲子) 여인의 사기사건과 돈 봉투사건에 밀려서 [가장 큰 기사감]이 못되고 있는 데 놀랐고, 일부 언론·야당이 패트리어트 미사일 배치논의를 비판적, 음모적 시각으로 다루고 있는 데 놀랐다.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이 시점에 배치하는 것은 북한을 자극할 위험성이 있다느니 무기상들이 한국에 낡은 패트리어트를 팔아먹으려는 계산 하에서 꾸미는 일이라는 식의 보도가 대종을 이루었다. 우리 정부 당국자도 미국 언론이 한반도의 상황을 과장 보도하고 있는 데 대한 우려를 전달하기로 했다는 식으로 보도되고 있었다. 패트리어트 미사일 배치는 북한의 스커드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용이다.
항만과 공항 주변에 배치할 계획인 것은 전쟁이 터졌을 때 미군 증원부대가 본토에서 올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하기 위함이다. 이것도 우리 정부가 사는 것이 아니라 미군(美軍)이 자체적으로 배치하는 것이다. 한국과 주한미군, 그리고 미군의 증강을 위해 필요하고 우리로서는 고맙게 생각해야 마땅할 패트리어트 배치에 대해서 일부 언론·야당인사들은 왜 시비를 걸고 있나?
[북한을 자극하여 핵 협상에 찬물을 끼얹을 우려]란 설명은 그야말로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논리에 불과하다. 방어용 무기로 어떻게 자극을 할 수 있으며, 핵 개발을 하는 나라를 자극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북한이란 집단은 자극을 받아도 세(勢) 불리하면 사찰을 받을 것이요, 자극을 안 해도 세(勢) 유리하면 사찰을 거부할 체제라는 것을 모른다면 평균적인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다. 한쪽에선 주한미군의 잔류와 전쟁시의 신속증강을 애타게 호소하고, 다른 쪽에선 방어용 무기 배치까지도 음모적 시각으로 보고 있는 나라!
젊은 기자들이 쓴 해설기사는 비판적·음모적 시각이고 같은 지면의 사설은 옹호적인 언론. 이런 언론에 대해서 주한미군의 정보 부서에선 [아주 특이하면서도 당혹스러운 구조… 같은 날 신문의 한쪽에선 국가적 재앙이 임박했다고 쓰고 바로 그 옆에는 대북(對北) 경제협력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실린다]라는 분석보고를 워싱턴에 한 적도 있다는 것이다.
자주국방 의식 없는 정치는 공허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런 국론 분열적인 심리상태는 정상이다. 자신의 아내와 자식들을 지킬 힘이 모자라 옆집의 힘센 남자를 집안으로 모셔다 놓은 남편의 속마음은 과연 [감사]로 가득 차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열등감으로 해서 그 이웃남자를 질투하고, 혹시 아내를 탐하지 않나 의심도 하게 될 것이다. 자식을 볼 면목이 없을 땐 {저 아저씨는 우리를 지켜주려고 여기 와 있는 게 아니야. 도둑놈을 붙들어 현상금 타려고 와 있는 거야. 미안해 할 것 없어}라고 둘러댈 것이다. 어쨌든 그 가장의 행태는 병적인 것이며 그 집안의 분위기나 부부, 부자간의 관계도 건강하지 못할 것이다. 자주국방을 못하는 나라와 국민들은 정신건강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이 자주국방의 기치를 내걸었던 가장 큰 동기는 {국방을 외국에 의탁한 나라는 독립국이 아니다}라는 절실한 문제의식이었다.
국방을 외국군대에 의존한 나라의 정치는 국가의 생존이란 정치의 제1주제를 놓아버린 공허한 말싸움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늘 있다. 중동에서 오래 근무했던 한 외교관은 {이스라엘과 한국은 비슷한 안보상황이지만 이스라엘은 자주국방으로 책임 있는 정치를 하고있고 한국은 국가의 생존문제를 도외시한 미숙한 정치를 연출하고 있다}고 비교하였다. 얻어맞기는 일쑤인데 결투신청 한 번 해본 적이 없는 인간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미숙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북한은 어떤가. 경제력, 세계사의 흐름, 국제역학관례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놓여 있으면서도 저들이 세계 유일의 강대국을 상대로 결연하고 의연하게, 때로는 우월하게 게임을 끌고 가는 힘은 도대체 어디서 연유되는 것인가?
전쟁을 결심해 본 지도자로서의 김일성(金日成), 자주국방을 신조로 삼아온 지배층, 그리고 무력통일을 기약한 국가총동원체제-여기서 우러나는 자존심, 생존의지, 일관성이 미국과 대등한 외교협상을 벌이도록 뒷받침하는 근원일 것이다. 유태인은 원래 문약한 민족이었다. 나라를 잃고 2천년 동안 세계 도처에서 당하기만 했다. 겁먹은 양떼처럼 수백만 명의 유태인은 나치의 게슈타포에 순종하면서 가스실로 걸어갔다.
그런 민족이 이스라엘이란 국가를 세우고 [민족의 생존권]이란 명제를 직시하니까 [자위를 위한 선제타격], 즉 예방적 공격을 두려워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독종으로 표변했다. 국가의 생존의지는 그만큼 무서운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 그런 국가관이 있는가. 국가관을 논하기 전에 대한민국이 과연 국가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검토해 본다. 국가의 형식은 갖췄으되 그것의 운용 면에선 국가가 아니라 협회나 친목회 같은 사회단체로 보이는 점들이 많이 눈에 뜨인다.
한국은 국가인가, 협회(協會)인가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은 {남한은 북한을 흡수통일 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는 요지의 말을 자주 한다. 한완상(韓完相) 전 부총리는 한 걸음 더 나가서 {우리는 흡수통일 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피해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흡수통일이란 무력통일이 아니고 사회주의 체제가 자본주의 체제로 흡수, 통합되는 식을 뜻한다. 대다수 국민들은 흡수통일 이외의 대안을 알지 못한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혼합한, 남한의 자유민주·시장경제 체제와 북한의 신정(神政)체제·폐쇄경제를 적당히 섞은 절충형이 개발됐다는 뉴스는 아직 없다.
국민이 바라지 않는 것은 급작스런 흡수통일이지 흡수통일 그 자체가 아니다. 바라지 않지만 흡수통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면 통일하는 수밖에 없다. 남한이 손해를 본다고 통일을 거부한다면, 그 것은 손해 보면서는 합병이 안 되는 기업간의 관계이지 민족국가의 행동윤리가 아니다.
흡수통일 반대론은 코너에 몰린 북한과 남한의 일부세력이 만든 허구의 논리인데, 6공 정부 때부터 정확한 단어의 선택도 없이 공직자들까지 막연하게 편승하고 있다. 흡수통일 반대론에는 북한 주민들의 고통에 대한 일부 남한 사람들의 이기적인 냉담이 끼여있기도 하다.
월간조선(月刊朝鮮) 3월 호에 소개돼 있기도 하지만 한국 정부는 북한국적의 동포들을 극히 선별적으로 귀순시키고 있다. 북한국적을 유지하느라 숱한 고생을 하면서 중국에서 살다가 고향을 찾아온 한 여인에게는 일단 내주었던 주민등록까지 취소했다. 그 여자는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는데 1심에선 패소했다. 중국의 조선족이 한국으로 몰려올 것을 두려워하여 그런 정책을 세웠단다. 조선족은 외국인이고 북한국적 자는 북한 주민으로 취급해야 하는 게 아닌가.
러시아에서는 지금 벌목장을 탈출한 북한 노동자들 수백 명이 유랑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 대사관에서 망명신청을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으로 탈출한 북한 청년이 우리 대사관에 망명신청을 했다가 거절당하자 신변의 위협을 느껴서 외국배에 몰래 숨어 들어가 인천으로 귀순한 적이 있다. 그런 목숨 건 모험을 한 북한사람들만 할 수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대한민국은 과연 통일을 하자는 나라인가. 북한 탈출자를 다 받아들이면 남한 사회가 혼란스러워진다는 것이 명분인데, 그런 부담도 감수 못한다면서 2천만 주민을 어떻게 통일하겠다는 것일까. 통일의 날이 다가오면서 남한에서 고개를 치켜들고 있는 이기심은 좌익세력의 反흡수통일론과 뒤섞여 국가와 통일의 기본 논리를 혼란시키고 있다.
자위권 천명에도 뭇매 가해
이인모(李仁模) 노인의 인권문제는 북한이 먼저 제기하고 남한의 언론이 이에 따른 뒤에 우리 정부까지 빠져든 경우이다. 李仁模 노인보다 더 심각한 오길남(吳吉男)씨의 재북(在北)가족(아내와 두 딸)에 대해서는 정부와 언론이 철저하게 침묵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는 1986년에 북한을 탈출했던 吳씨의 在北 세 가족을 양심수로 지정하고 북한에 대해서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송환을 요구했었다. 외국의 사설단체가 우리 정부보다 먼저 관심을 기울였는데 우리 정부는 그 뒤 성명서 한 장 내지 않았다. 신문·방송에서도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았다.
우리 정부는 북한이 제기하는 인권문제에 대해선 관심을 기울이고 자국민에 관해서는 냉담해 버리는, 그러면서도 李仁模 노인의 북송을 남한 정부의 도덕적 우월성이라고 선전하는 병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미군은 왜 한국에 와서 전사자 유골을 발굴하고 있는가. 국민에 대해서 국가는 저승까지 찾아가 보호해 준다는 믿음을 심기 위해서이다. 그래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생각이 우러나오지 않겠나.
무탄무석(無彈無石)이란 말은 대한민국이 국가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공권력의 최루탄은 합법이고 시위대의 투석은 불법이다. 합법과 불법, 공권력과 폭력을 동등하게 대우하면서 투석도 나쁘지만 최루탄도 나쁘다고 보는 언론의 시각은 국가를 사회단체의 하나 정도로 취급하는 자세이다.
통일원은 지난해 한 교수를 통일원 기관지 [통일문제연구]의 편집위원으로 위촉하였다. 그 교수는 [한국전쟁의 침략자는 북한이 아니고 미국이었다. 북한 정권이 더 정통성이 있다]는 주장을 하는 이다. 통일원이 지향하는 통일은 [無이념형]이 아닐진대 차라리 북한 노동당 간부를 편집위원으로 모시는 게 더 좋을 뻔했다.
1991년 봄, 이종구(李鍾九) 당시 국방 장관은 {북한이 핵 개발을 중단하지 않으면 엔테베 작전 같은 특공 작전도 검토할 것이다}라고 얘기했다. 너무나 당연한 이 발언에 대해 언론과 야당은 뭇매를 때렸다. 냉전적인, 호전적인 발언이란 것이었다. 냉전이 계속되는 한반도에선 냉전적인 발언이 정상이며, 국가의 자위권을 천명한 발언이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음에도 전쟁은 악이며 무조건 피해야 한다는 위선적 평화주의자의 허위의식은 한국의 지식인과 정치인을 포로로 삼고 있다(李장관의 발언은 세련되지 못했다는 점에선 비판받을 만했다. [북한이 핵 개발을 계속하면 우리는 국가의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다] 정도로만 이야기하면 언론이 [무력사용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고 알아서 써줄 것인데 너무 직설적인 표현을 했었다).
아웅산 사건에 보복 자제한 대가(代價)
정부와 언론, 그리고 일부 정치권은 [북한을 너무 자극하면 도발을 자초하게 된다]는 논리를 애용하고 있다.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은 지난 년초(年初)에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전쟁은 일전불사의 자세로써만 막을 수 있다. 깡패가 한판 붙자고 하는 데 이쪽에선 말로 하자고 대결을 피하면 계속 눌려 사는 수밖에 없다. 이쪽에서도 샌드백 치고 로드워크를 해서 한판 붙을 자세를 보이면 깡패도 생각을 달리하게 된다. 나도 이빨 나가고 머리 터지겠구나 하는 계산을 하게되고 그러면 말로 하게되는 것이다. 평화를 위해선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북한의 행태를 관찰해 보면 그들을 통제하는 수단은 [자극을 않겠다]는 저자세가 아니라 무력을 앞세운 고자세였음을 알 수 있다.
대북(對北) 유화론과 저자세는 연속적인 도발만 자초하였다. 1968년 1·21 청와대습격 기도사건, 푸에블로호 납치를 묵인한 대가로 돌아온 것은 그 해 11월의 삼척·울진 공비침투 사건이었다. 우리는 대통령의 부인이 북한 공작으로 암살되어도 보복하지 않았고 아웅산 폭파사건으로 국가지휘부가 거의 전멸했는데도 저들을 자극하지 않았다. 국가 원수와 그 측근들의 암살을 노린 이 사건은 명백한 개전(開戰) 사유였다. 1차 세계대전도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에서 비롯되었었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압력과 서울 올림픽 개최라는 계산 하에서 보복을 자제했으나 북한은 별로 고맙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4년 뒤에 KAL 858 공중폭파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아웅산 사건 때 한·미 양국이 압도적인 무력을 배치시킨 뒤 원산항(또는 주석궁) 같은 곳을 보복 폭격했었더라도 북한은 감히 전쟁을 기도하지 못했을 것이다(승산 없는 전쟁을 신경질 차원에서 하는 나라는 없다). 그랬었다면 KAL858편 사건의 희생자 1백15명의 목숨을 건질 수 있지 않았을까.
반면 1976년 8월의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때는 미군이 국지전까지 각오하고 나서자 김일성(金日成)이 사과 친서를 보내는 저자세를 보였다. 북한 지배층 입장에선 국가 원수를 노린 여러 번의 공격에 대해서도 [자제]로 일관해온 한국 정부가 국가로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이 내비치고 있는 남한에 대한 군사적 자신감과 정치적 경멸감에는 이런 역사적 이유가 분명히 있는 것이다.
국가적 수모를 연속적으로 당하고도 {보복하자}는 여론이 일어나지 않는 나라는 대한민국을 빼고는 달리 없을 것이다. 이것은 당시 정권이 정통성이 없었기 때문이란 것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문민정부 하에서 북한 핵 개발이란 더한 위기에 처해서도 군사적인 대응을 요구하는 여론이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노태우(盧泰愚)와 이승만(李承晩) 비교
우리의 정부·군대·언론·국민은 침략을 받으면 저항은 했지만, 그 이전에 미리 자신들의 책임 하에서 스스로 안보와(安保)와 전쟁을 놓고 고뇌하면서 결단해 본 경험이 없다는 사실, 그리하여 국가와 국민이 위기에 대해서 일체감을 느껴보지 못했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그 해답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노태우(盧泰愚) 대통령은 1988년 7·7 성명에서 [남·북은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렀으며… 서로를 불신·비방하며 서로를 적대시하는 고통스런 분단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남한의 대통령으로서가 아니라 남북관계를 중립적인 입장에서 가치판단을 배제한 채 논평하는 언론인의 문법을 쓰고 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동족상잔의 전쟁이 아니라 남침전쟁이다.
우리가 절대로 잊어선 안될 한국전쟁의 책임소재를 애써 애매 모호하게 만든 노 대통령은 이 성명에서 [북한이 미국·일본 등 우리 우방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협조할 용의가 있다]고까지 했다.
그 뒤 우리정부는 과연 그런 협조를 해오고 있는가. 북한의 허물은 덮어주고 북한을 감싸주는 것이 정치적 인기를 높이는 것이라고 판단한 것은 일부 재야, 정치권 인사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통일과 북한이란 장르가 정치적 인기를 높이는 황금어장이라고 본 일부 정치인들은 지금도 남과 북의 중간에 서서 양비론이나 양시론을 토해내고 있다. 남북한 대결구도에서 과연 중립적 입장이 가능한가. 나치즘과의 대결에서 중립적 입장이 가능했던가?
UN의 승인 하에, 즉 국제사회의 공인 하에 세워진 국가, 그것도 민주화된 국가를, 그런 공인을 받지도 못한 노예사회와 평등하게 놓고 객관적 입장을 견지하려는 사람은 한국인인가 외국인인가. 그런 입장을 유행시킨 노(盧)대통령의 6공정부가 휴지화 돼버린 남북합의서를 제외하면 남북관계에서 아무런 실질적 진전도 이룩하지 못했다는 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북한을 움직이는 힘은 그들에 대한 아부가 아니라 힘이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이승만(李承晩) 박정희(朴正熙) 두 대통령은 국방을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의 문제점을 뼈저리게 느꼈던 지도자이다. 두 대통령은 국방을 미국에 의존하는 것은 불가피하지만 미국이 하자는 대로하다가는 한국의 안보를 유지하기가 어렵다고 판단한 데서도 같다(이스라엘은 미국이 하자는 대로 안하고 독자적인 국방정책을 폈기 때문에 살았고 월남은 미국이 하자는 대로 순응했다가 망한 경우다.
일본(日本)은 미국에 국방을 의존함으로써 경제력에 걸맞는 국제적 역할과 책임을 못 다하고 있다). 이승만(李承晩)은 북진통일이란 카드로써, 朴대통령은 자체적인 무기체제 개발이란 카드로써 미국을 위협하고 자극하여 국익을 도모하였다.
1954년 2월4일 이승만(李承晩)이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는 최근의 외교 문서 공개 때 포함돼 있었다. 이 친서는 외교적 문체를 무시한 직설적이고 공격적인 표현으로 차있다. [당신은 {우리와 협력하고 전쟁을 다시 시작하지 말자}고 말하는데, 한국의 생존을 부차적인 중요성으로 다루고 있는 나라와 어떻게 협력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미국이 하자는 대로 한다면 우리는 중국처럼 적화되든지 지난 40년간의 한국과 같은 신세가 되고 말 것이다.
우리가 적에게 팔려갈 바에야 차라리 싸워서 같은 민족과 통일을 이루는 게 나을 것이다. 우리가 성공하면 자유민이 될 것이 홀로 싸워 실패하면 노예가 되겠지만 어쨌든 통일은 되는 것이다] [좌우간 우리는 결심을 해야 할 때다. 한국의 통일에 대한 당신의 현재 정책이 무엇인지 솔직하게 알려주시오] {예스냐 노냐}고 단독 직입으로 들이대는 李承晩의 대담한 안보외교 덕분에 한미상호방위조약 체제의 구축과 한국군의 증강이 이루어졌다. 오늘의 한국안보와 경제번영, 그 토대는 李承晩 대통령의 처절한 자주국방 의지가 마련한 것이다.
북핵(北核)문제를 외국사건 다루듯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은 미국과의 관계를 호전시키려고 자주국방의 기치를 내려버렸다. 그러나 북한에 대해선 [힘의 논리]를 대담하게 구사함으로써 그들의 도발의욕을 최소한의 수준으로 통제하면서 경제안정·정권교체·서울올림픽을 준비하는 데 성공했다. 노(盧)대통령은 북방외교엔 성공했으나 남북한 협상에선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특히 김일성(金日成)과의 정상회담을 기대하면서 당연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북한핵(核) 문제에 대해서 애써 과소평가 하려는 자세를 유지하였다.
1989년 여름 미(美) CIA팀이 한국 정부에 대해 북한 核개발의 의혹을 브리핑한 뒤에도 정부와 대부분의 언론은 그 심각성을 축소, 또는 은폐했다. 대부분의 언론은 초기에 북한 核문제를, 외신기사를 인용하여 주로 보도함으로써 마치 외국문제 다루듯 하였다.
기자는 지금도 1990년 봄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 청와대 출입기자, 고위 관료들을 찾아다니면서 북핵(北核)문제가 머지않아 세계적인 뉴스가 될 것 같으니 우리가 적극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말했으나 {미국이 알아서 하겠지} {통일되면 우리 核론 될 텐데} {그런 게 왜 기사거리가 되죠?} 하는 식의 반응이었다. 군인 출신인 노(盧)대통령까지도 우리 국방은 미국이 알아서 해주겠지 하는 생각을 갖고 核문제를 등한시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盧대통령이 이 문제를 놓고 고민했다면 지금쯤 그런 비화가 흘러나올 만한데 아직 그런 게 없다. 기자는 김종휘(金鍾輝) 안보담당 수석비서관을 그가 미국으로 도피하기 직전에 만난 적이 있었다. 그 때까지도 그는 북한 핵(核)개발의 상황이 별 것 아닌데 과장되고 있다는 인식을 내비치고 있었다.
헐값에 판 [재처리시설] 카드
주한미군 측이 같은 군인 입장에서 전(全), 노(盧) 두 사람을 보는 태도는 경멸과 증오심이었다. 대북(對北) 안보는 자신들에게 책임지게 해놓고 등 뒤에서 안심하고 12·12와 같은 유혈하극상과 5·17과 같은 정치드라마를 꾸미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정직과 명예를 장교의 2大 덕목으로 생각하는 미군장교들은 12·12 때 全장군쪽에서 한 속임수를 잊지 못했다. 노(盧)대통령은 처음부터 북한 核문제를 [민족생존의 문제]로서 절실하게 끌어안지 않고 미국에 의탁하는 자세를 취했다.
1991년 11월 盧대통령이 비핵화선언을 하면서 핵 재처리 시설의 영구 포기를 천명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미국은 박(朴)대통령 시절부터 한국이 재처리 시설이나 기술을 개발하는지 눈에 불을 켜고 살펴왔다. 북한 核개발이 남한을 자극, 그 쪽 방향으로 몰아가지 않을까 전전긍긍해했다. 우리의 원자력 기술연구 상황은 명백했다. 재처리 시설을 가질 필요도 가까운 장래에 가질 이유도 없었다.
굳이 장래의 가능성을 담보로 하여 결백증명을 해 보일 필요가 없을 정도로 한 점 의혹이 없었다. 그러나 [핵 재처리 시설을 가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 자체는 중요한 카드가 된다(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면 남한이 할지도 모른다는 인상을 주면 美·中·日은 더욱 열심히 對北압력에 나서게 된다). 한국은 이 카드를 對美, 對北용으로 두루 쓸 수 있었다. 적어도 李, 朴대통령이었다면 브래지어를 벗으라니까 팬티까지 벗어던지는 식으로 값싸게 카드를 던져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핵 재처리 시설 포기는 남한에서 미리 화근을 제거하려는 미국의 종용하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일부 인사들은 핵 재처리 시설의 포기를 근거로 하여 북한의 재처리 시설 포기약속을 남북비핵화 공동선언에 담을 수 있었다고 변호한다.
그러나 이것은 경우에 맞지 않다. 북한은 재처리 시설을 갖고 있는 상태이고, 우리는 갖고 있지 않는데 전과자와 선량한 사람을 같은 조건으로 속박할 수는 없는 것이다. 더구나 그 공동선언은 현재까지 아무런 실천도 결과하지 못하고 있다.
말로써 對北 설득이 되나?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의 북한 핵(核) 대책은 {평화적 방법으로, 대화를 통해서, 최악의 경우는 피해야}란 말로 요약된다. 말하자면 말로 하겠다는 것이다. [힘의 외교]의 대가(大家)인 미국의 닉슨 전 대통령이 [진짜 전쟁](Real War)이란 책에서 말한 것이 있다. [공산주의자를 상대하는 데 있어서 하책(下策)은 자신의 카드를 보여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나쁜 하지하책(下之下策)이 있는데 그것은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이 알게 하는 일이다]
金泳三 정부는 북한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물리적 수단은 쓰지 않겠다]는 下之下의 카드를 쓴 셈이 된다. 특공작전, 예방폭격, 대응개발, 재처리 시설 도입 가능성 따위의 여러 카드를 쥐고서 상대가 이쪽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게 해야 하는데 처음부터 말로만 하겠다고 해버렸다.
말로들을 북한인가. 그 길로 우리의 대북 지렛대는 날아 가버린 것이다. 김영삼(金泳三) 정부의 대북(對北) 핵 정책은 대미 완전의존 및 대북 유화 제스처로 시종하고 있다. 對北의존의 결과는 숱한 오판이다. 지난해 3∼4월에 기자가 만난 정부 내 핵문제 담당 관료들은 {북한은 외교용으로 핵 개발을 하고 있으므로 채찍과 당근을 적당히 쓰면 포기할 것이다}는 견해였다. 북한 귀순자들과 북한 전문가들은 그러나 {김일성(金日成)은 국가 생존차원에서 핵을 개발하고 있으니 끝까지 갈 것이다}고 전망했다.
1년 뒤의 결과는 북한 전문가들의 분석이 옳았고, 외교관들은 지난 1년 세월을 북한의 생리를 배우고 깨닫는 데 허비했음을 보여주었다. 외무장관과 당시 통일원장관은 {북한은 앞으로 두 달 버티기 어려울 것} {9월까지는 특별사찰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 식의 公言을 거듭했다. 그 예측이 빗나가도 두 장관이 부끄러워하는 기색을 읽은 적이 없다.
두 장관을 몇 번 만나본 기자의 느낌으로 그 들이 핵 문제를 과연 민족생존의 차원에서 절실하게 생각하면서 고민하고 있는지 하는 확신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북한 핵 개발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는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해도 어느 나라보다도 북한과 김일성(金日成) 체제에 밝은 우리로서는 적어도 그 들의 핵 전략에 대한 해석은 미국보다도 더 정확히 할 수 있어야 했었다.
몇 달 전 미국의 정보기관들이 종합 분석한 [국가정보 판단서(National Intelligence Estimate)]는 클린턴 대통령에게 북한이 한 두 개의 핵 폭탄을 가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했다. 그 며칠 뒤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은 {북한이 핵무기를 가졌다는 증거는 없다}고 말했다. 그 며칠 뒤엔 {핵 문제가 연초에 해결될 것이다}고 말했다. 왜 金대통령은 굳이 애써서 [근거가 약한 낙관론]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그 돈 역시 북한 핵은 미국의 문제이며 우리의 안보는 미국이 알아서 해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가? 대북(對北)비관론이나 강경론은 인기를 얻는 데 불리하다고 판단하는가?
최근의 안보장관 회의에서 金대통령은 또다시 {북한 핵 문제가 UN 안보리로 넘어간 이후에도 대화 노력을 계속하겠다}고 했다. 이 말이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북한이 남한 정부를 상대로 核문제를 논의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난 데다가, 그들을 실질적인 대화로 끌어들일 수 있는 카드를 우리가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이젠 알게 돼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의 희망이나 예측과는 달리 긴장국면이 조성되고 우리 정부의 오판(誤判)과 무력증이 드러날 때 김영삼(金泳三) 정부엔 위기가 올 것이다. 안보대처능력의 문제는 다른 행정적 실수와는 차원이 다른 반응을 부를 것이다.
개방에 의한 붕괴보단 전쟁 승률이 더 높아?
북한 핵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핵 개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체제의 성격에 있다. 핵 개발에 대한 투명성 이전에 그것을 개발하는 체제의 투명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김일성(金日成) 체제의 대남(對南) 무력통일 전략과 폐쇄정책이 해결되지 않는 한 핵의 투명성은 영원히 확보될 수 없는 목표이다. 金日成 체제를 투명한 쪽으로 변화시키면 그 결과로서 핵 문제가 저절로 해결된다. 그런 변화는 곧 金日成 체제의 붕괴를 뜻한다.
미국 국무성은 북한이 특별사찰을 받아들인 후에도 인권 및 테러문제를 계속해서 제기할 것이라고 이미 공언한 바 있다. 이는 핵 문제 해결에의 접근방식이 핵 개발 저지에만 집착하는 각론식이 아닌 체제변혁으로의 유도라는 총론식임을 뜻한다. 체제를 지키려고 손댄 핵(核)개발 때문에 金日成은 체제의 변화를 강요당하는 순간을 맞게 될 것이다. 이것은 두 가지 가능성을 던진다. 급속한 체제 변화에 따라 통일의 날이 예상외로 앞당겨질 가능성과 金日成이 전쟁을 결심할 가능성이 있다.
강요된 체제 변화가 金日成 정권의 붕괴를 뜻하는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그는 전쟁에의 유혹을 느낄 것이다. 체제의 변화가 정권붕괴를 가져올 것이란 확신이 높을수록, 즉 개방하면 망한다는 인식이 굳어질수록 개방보다는 승률이 더 높은 전쟁 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주한미군의 정보 부서에선 북한 군사력은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증강되는 추세라고 말하고 있다. 내년까지는 상승 곡선이 계속 이어질 것이란 얘기다.
이 증강추세가 피크에 왔을 때, 즉 군수산업의 피폐와 외화 부족으로 무기체제의 현상 유지가 어렵게 되기 직전이 가장 위험하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그때쯤이면 원자폭탄도 확실하게 갖고 있을 것이다. 재래식 군사력이 더 약화되기 전의 그 순간에 최후의 도박을 걸 가능성이 제일 높아진다는 얘기다. 이때 남한이 약하게 보이면 전쟁에의 유혹은 더욱 강해진다. 결국 북한 핵 문제는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가서야 돌파구가 나올 것이다. 그 순간이 통일전야일지도 모른다.
장거리 로켓포의 인질 된 수도권
정부와 일부 언론은 지금이 긴장 상태가 아니라고 자꾸만 국민을 설득하려고 한다. 영어로 [결정적인 순간]을 [진실의 순간] (The Moment of Truth)이라고 하듯 현실을 직시해야만 결단의 순간을 맞는 자세를 제대로 가다듬을 수 있다. 정부와 언론이 그 심각성을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않은 휴전선상의 변화가 하나 있다. 북한군이 지난 2∼3년 사이에 다연장 로켓포(북한에선 방사포(放射砲)라고 부름)를 후방에서 남쪽으로 전진배치 함으로써 수도권을 사정거리에 놓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민군은 약 2천문의 로켓포를 갖고 있다. 18개의 발사대로 구성된 1개 대대는 수초 사이에 7백20발을 쏠 수 있고, 이는 2㎞×0.5㎞의 지역을 불바다로 만든다. 정확도는 미사일보다 약하지만 지역집중사격을 하면 도심지를 순식간에 초토화시킬 수 있다.
서울은 그런 집중포화의 인질로 잡혀 있는 것이다. 적과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한 나라의 수도권이 거의 알몸상태로 적의 장거리포에 노출돼 있는 곳은 한국뿐이고 그런데도 긴장이 없다고 우기는 곳도 이 나라뿐일 것이다. 북한의 남침은 입체적 기습으로 시작된다. 지휘소·비행장 폭격, 단·장거리 땅굴과 공정부대를 통한 후방침투, 장거리포에 의한 서울 도심 무차별 포격, 그리고 기계화사단의 全로선 돌파… 이런 상황은 각오해야 한다. 스위스 민방위체제의 논리는 [일선 전투부대의 사기는 후방이 교란되지 않고 든든하게 자신들을 받쳐준다는 믿음이 있을 때만 유지된다]는 계산에 근거하고 있다.
한국인과 한국군은 그러나 불행하게도 기습을 받고 붕괴해 버린 오점을 한국전과 임진왜란 등 여려 번의 전사(戰史)에서 남기고 있다. 국가와 국민의 관계, 그 사회의 가치체계에 대한 확신, 군대의 기율, 개인적 명예심과 책임감 등 국가체제를 채우고 있는 소프트웨어가 한꺼번에 무너질 때 군대는 군중(群衆)으로, 병기는 고철(古鐵)로, 시민은 도망자로 변한다.
이런 국가적 전의(戰意) 상실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있는가. 초전(初戰)에서 아군이 밀릴 때 죽음을 무릅쓰고 싸우기보다는 {김일성(金日成)이도 동족인데 같이 살아보지 뭐} 하는 자기합리화의 심리변화가 내 가슴속에선 일어나지 않는다는 자신이 있는가. 그럴 만큼 우리의 체제 및 가치관에 대한 신념이 강한가. 현역 육군 소장인 김희상(金熙相)씨는 [중동(中東)전쟁]이란 책의 [교훈] 부분에서 이렇게 썼다.
[기습을 달성치 않고는 승리를 기약할 수 없다. 역사적 사실들이 증명하는 바에 의하면 기습이란 통상 기습당하고자 준비된 사람에게만 성공하는 것 같다. 인간이 기습을 당하는 경우란 교만 나태하며 적을 경멸하거나 방심하는 경우이지 진지하게 사태에 대처하고자 하면 기습의 기회를 얻기 어렵다]
자위적 선제기습도 배제 않아야
주한미군의 한 간부는 이런 경고를 기자에게 했다. {미국의 도움 없이는 인민군이 한국군에 대해서 백전백승한다고 본다. 한국군 장교들 중엔 괜히 허세를 부리는 이들이 있지만 3성 장군 이상만 되면, 즉 군단 급 이상의 대부대를 지휘해본 경험자는 호언장담을 하지 않게 된다. 기습을 당했을 때 가장 큰 문제는 지휘체제의 정위치 문제이다. 과연 지휘관들이 몇 시간 이내로 지휘소에 도착할까? 그 순간에 눈이 왔다든지 교통체증이 심하다고 했을 때…}
북한 핵(核)문제는 다행히 한국인들로 하여금 전쟁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함으로써 기습을 예방하고 정상적인 국가의 국민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하는 의미심장한 화제(話題)를 제공하고 있다. 이 화두를 제대로 살려나가면 우리는 우리가 딛고 있는 한반도의 현실을 정직하게 인식하면서 아직도 진행중인 국가건설의 길을 매진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핵(北核) 위기는 호기(好機)가 될 수 있다.
우리가 한국전쟁의 의미를 제대로 공부했더라면 북핵(北核) 위기는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국전쟁을 경험한 이들이 뻔히 눈뜨고 살고 있는 상황에서 지식인 사회에선 6·25 북침설이 나돌고 집권자들마저 전쟁 책임론을 기피하는 바람에 기회를 놓쳤다. 한국은 통일 뒤에도 강대국 사이에서 자위를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숙명적인 입장에 놓여 있다.
스위스, 이스라엘과 같은 고슴도치 식(式) 국방전략이 우리의 모델이 될 만하다. 침략을 위한 전쟁은 할 생각이 없지만 자위를 위해선 언제든지 전쟁을 결심할 수 있는 국가란 인상을 주변국에게 강하게 심어주어야만 민족의 활로를 영구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은 1967년 6월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의 연합군에 의한 공격이 임박했다고 판단하자 국제 여론의 비난을 감수하고 선제공습을 감행, 개전 30분만에 적 전투기의 90% 이상을 비행장에서 파괴해버림으로써 전세를 결정지었다.
1973년 10월 전쟁 때는 전쟁개시 8시간 전에 {전쟁이 확실하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이스라엘 군 지휘부는 선제기습을 주장했으나 장관들이 반대하였다. 국제 여론을 두려워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때 이스라엘은 이미 비밀 핵무기 개발에 성공, 원자폭탄을 여러 개 가지고 있었으므로 여유를 가지고 대처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한국군도 인민군 기습작전에 의한 전쟁 임박을 상당히 빨리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이럴 때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도 이스라엘식의 [정당 방위적인 선제기습]을 감행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할 만한 배포와 논리를 국가 지휘부가 갖고 있을 것인가. 그것을 국민들이 납득할 것인가. 그리하여 그 기습으로 파생되는 부담을 한국은 감수할 수 있을 것인가. 북한 핵위기를 전국민적인 주제로 승화시켜 전쟁, 국가, 국민, 책임, 명예란 단어를 가지고 진지하게 고뇌해 간다면 통일 이후까지 有用할 거대한 집단적 깨달음을 우리는 여기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전쟁을 결심할 수 있는 국가만이 전쟁을 막을 수 있고, 전쟁을 절단할 수 있는 국민만이 책임 있는 시민으로서 정상적인 나라를 가질 자격이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전쟁을 각오해야
-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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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10-04, 19:15











